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67화
아렐리아는 이래야 내 마왕님이지, 하는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그리고는 본인이 먼저 앞장서서 골목을 빠져나갔다.
“생각보다 평범하네요.”
심드렁한 평가가 이어진다.
각종 물건을 파는 가판대에, 수다 떠는 사람들.
그리고 간혹 보이는 아이들까지.
확실히 악명높은 이름과는 다르게 평범해 보이는 풍경이었다.
“어이, 형씨. 눈깔 안 깔아!?”
“뭐 이 새끼야??? 너 어디 소속이야!!!”
얼굴부터 나 흉악범이오 외치고 있는 놈들 빼고.
하나같이 험상궂은 몇몇 놈들이 얼굴값은 해야겠는지 사방에서 고함을 지른다.
멀리 있는 나까지 얼굴이 찌푸려질 정도로 시끄럽다.
하지만 그 위협적인 모습에도 사람들은 익숙한지 묵묵히 자기 일만 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생태계가 있나 봐요.”
‘일반인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건가.’
꽤나 인상적이다.
하긴 범죄자들만 모여서 사회가 이루어질 수는 없다.
저들도 음식을 사 먹고 쉴 장소는 있어야 할 테니.
어찌 보면 당연한 광경 속에서, 이질적인 장면 하나가 눈에 띈다.
헌터 한 명이 상인을 윽박지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콱씨!! 아저씨, 누가 여기서 장사하래!!!”
“아이고…… 미안허이.”
역시 완전히 선을 긋고 생활하는 것은 무리인가.
아무리 관리해도 저런 놈이 하나씩 튀어나오는 건 어쩔 수 없는 듯했다.
“마왕님, 가까이 가 보면 안될까요?”
아렐리아는 잔뜩 신이 난 기색이다.
심드렁하게 그들을 쳐다보는데, 범법자 놈의 팔뚝에는 선명한 초승달 모양이 새겨져 있다.
‘때마침 잘 걸렸군.’
그렇지 않아도 주변 놈들의 팔만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버려진 땅의 범죄자들은 보통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조직의 문신을 온몸에 새긴다.
문서에는 각 문양이 어떤 조직을 뜻하는지도 쓰여 있었다.
그리고 ‘붉은 달’은 여기서 힘 좀 쓴다는 곳이었다.
‘제일 먼저 저자식부터 끌고 가야겠군.’
몇 대 맞으면 조직의 본거지 따위야 술술 내뱉을 것이다.
나는 붉은 달부터 하나씩 접수하면 될 테고.
무법 지대에서 새로운 강자가 나타나 보스를 차지하는 것쯤은, 이들에겐 일상과도 같은 일이었다.
“상인을 구하시려고요?”
“겸사겸사.”
죄 없는 상인과 시비 거는 불량배라니.
그림으로 그린 듯한 조합이다.
원래 이런 상황에서는 난입해줘야 제 맛인 법.
아렐리아가 내가 가는 방향을 신나게 따라온다.
그리고 놈을 불러 세우려는 찰나.
험상궂은 얼굴에서 예상치 못한 말이 들려온다.
“내가 이쪽 말고 저기 길이 지나다니는 사람이 더 많다고 말했잖아! 장사 수완이 왜 이렇게 없어?? 굶어 죽을 일 있어??”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잠깐 행동을 멈추고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자는 노상을 깔아 놓은 테이블을 힘껏 들어올린다.
심지어 본인이 말했던 것처럼 장사가 잘되는 장소로 물건들도 하나씩 옮겨 주었다.
“흐음? 이건 좀 의외네요.”
아렐리아가 어이없는 얼굴로 실소를 터트린다.
겉은 바삭하다못해 버석해보이는 놈인데 속은 촉촉한 놈이었나.
의외의 친절함에 나는 헛웃음을 삼켰다.
“……그래도 목적은 달성해야지.”
성큼 그에게 다가갔다.
명백히 볼일이 있는 듯한 내 태도에, 손에 묻은 먼지를 탁탁 털던 놈은 나를 아래위로 훑는다.
“뭐냐, 꼬마.”
역시 이 얼굴로는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는 건가.
대뜸 걸려 오는 시비에 나는 바로 손을 뻗었다.
쿠당탕!!!
“억!!!!”
놈은 순식간에 바닥을 나뒹군다.
주변에 있던 자들은 하나둘씩 흥미진진한 얼굴로 거리를 좁혀온다.
“뭐지? 조직간의 싸움인가?”
“저 녀석은 못 보던 얼굴인데. 새로 생긴 조직이 구역 정리를 하려는 모양이야.”
“크크크. 뭘 모르는 애송이겠군. 설마 붉은 달에 손을 댈 줄이야.”
모두가 이후에 생길 일을 기대한다.
대충 분위기를 보아하니, 내가 처참히 얻어터질 거라 기대하는 모양이었다.
“이새끼가!!!”
그건 대뜸 바닥에 던져진 놈도 마찬가지.
그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나에게 덤벼든다.
“제가 처리할까요?”
아렐리아가 눈을 번뜩인다.
나는 작게 고개를 내젓고 뛰어오는 놈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에는 방금전과는 달리 푸른빛의 마력이 넘실거린다.
쾅!!!!
“커억!!!”
아까보다 더 강한 공격에 땅은 움푹 패인다.
그 안에서 놈은 물에 빠진 사람마냥 허우적거린다.
구경꾼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이미 바뀐 지 오래였다.
“네놈은 대체…… 쿨럭.”
적절한 조절 덕분에 그는 아직 기절하지 않은 상태다.
여전히 입은 살아 재잘거리는 얼굴에 다시한번 주먹을 꽂아 넣었다.
퍽!!!
“억!!”
“언제 봤다고 반말이지? 살고 싶으면 말을 곱게 하는게 좋을 거다. 나야 다른 놈을 찾으면 그만이니까.”
살기를 담아 날카롭게 그를 쏘아보았다.
그제서야 눈빛은 고분고분하게 변한다.
“……원하는 게 뭡니까.”
이제서야 대화할 만한 태도가 되었다.
피식 웃으며 그의 멱살을 잡고 일으켰다.
주변은 이미 쥐 죽은 듯 조용한 상태였다.
“네놈의 본거지로 안내해라.”
“……본거지 말입니까. 설마 붉은 달과 전쟁을 하려는…….”
“붉은 달과 전쟁이라.”
고작 구역 정리 따위를 전쟁이라고 말하는 것이 퍽이나 우습다.
하지만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생각하면 제법 어울리는 단어였다.
“아니.”
“그렇다면 대체 왜……?”
“나는 너희의 보스가 될 생각이다.”
당당한 내 말에 모두가 술렁거린다.
그리고 나는 구경꾼사이에 섞여 있는 다른 조직원들을 하나씩 쳐다보며 씹듯이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다른 조직들도 마찬가지고.”
말이 끝나자마자 몇몇 헌터들이 자리를 떠난다.
황급한 발걸음을 보니, 이 소식을 빠르게 알리러 간 모양이었다.
물론 내가 원하던 바였다.
순간 아렐리아의 라벤더색 눈동자와 시선을 마주친다.
그녀는 그 안에 담긴 속뜻을 알아듣고 바로 그들을 쫓아 이동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놈은 어지간히 놀랐는지, 터진 쌍코피를 닦지도 못한 채 멍하니 나만 쳐다본다.
“내가 농담하는 것 같나?”
슥 하고 주먹을 올려 보였다.
물리적인 대화 수단과 나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던 그가 재빨리 태도를 고친다.
더이상 지체했다간 곱게 죽지 못하겠다는 재빠른 판단이 엿보였다.
“아닙니다!!! 이쪽으로 가시죠!!”
역시 이런 놈들을 다룰 때에는 대뜸 힘부터 보여 주는 게 편했다.
조직에 대한 의리도 결국 목숨이 붙어 있어야 가능한 일일 테니까.
“헤헤…… 혹시 수발 들어줄 사람은 필요치 않으신지…….”
그는 아예 노선을 바꾼 듯, 나를 이끄는 내내 비굴하게 웃어 보인다.
하지만 꿈에 나올까 걱정될 정도로 험상궂은 얼굴이 입가를 씰룩거리니 더욱 보기가 좋지 않다.
다시 한번 손을 풀자 그는 바로 입을 다물고 나를 어디론가 안내했다.
* * *
콰아아앙!!!!!!!!
철문이 순식간에 산산조각 난다.
그 안에 있던 놈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각자 무기를 꼬나 쥐었다.
“X발, 저놈은 대체 뭐야!!!!!!”
“어느 조직놈이냐!!!”
“보스는 어디 있지?”
“그걸 묻는다고 우리가 말할-”
으득!!
“아아악!!!”
모르면 쳐맞아야지.
발목이 으스러진 헌터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동료로 보이는 자들은 주춤거리며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젠장, 어디서 이런 놈이 튀어나온 거지……!?”
뒷걸음치며 도망가려는 놈들을 싸그리 붙잡았다.
그들은 사이좋게 한 대씩 터지고 저 구석으로 쌓여간다.
벌써 삼십 분째 같은 광경.
본거지는 제대로 찾아온 듯했지만 보스는 아직 옷깃조차 발견할 수 없다.
“여기가 확실한 건가.”
“넵!!! 오늘 따로 외출 계획도 없을 테니 분명 여기 숨어 있을 겁니다! 저만 믿으십쇼!! 이래뵈도 조직내에서 간부를 맡고 있다고요.”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경계가 삼엄해진다.
확실히 방향은 맞는 듯한데.
“일단 이쪽이 보스의 사무실인데요…….”
그는 재빨리 앞에 있는 문을 벌컥 연다.
하지만 역시나 안은 비어 있다.
정리되지 않은 내부를 보아하니 이미 튄 지 오래인 듯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 주인 없는 가죽 의자에 대충 걸터앉았다.
“무법지대의 조직 보스를 차지하는 방법은 딱 하나라던데. 현재 보스인 놈을 잡아다 죽이거나 굴복시키는 것.”
“맞습니다! 물론 기존 조직원들의 반발도 무시못하겠지만…….”
그는 말꼬리를 흐리며 뒤쪽을 힐끔 쳐다본다.
열린 문 사이로는 삼도천을 건너기 직전인 조직원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었다.
“형님정도의 강자라면, 무조건 다들 따를 겁니다. 확실합니다.”
그거야 당연한 거고.
나는 피식 웃으며 비굴하게 몸을 구기고 있는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의자에서 일어나 천천히 놈을 향해 다가갔다.
“형, 형님??”
지레 겁먹은 그가 몸뚱이를 움츠린다.
그래 봤자 곰 같은 덩치는 조금도 작아지지 않는다.
나는 거대한 공처럼 변한 그를 무시한 채, 뒤에 놓인 책장으로 다가갔다.
“그래. 조직원들은 그렇게 정리된다 쳐도, 중요한 게 하나 남았지?”
콰직-
철제 책장을 잡아 뜯으니 작은 공간이 나온다.
안에는 아까부터 느껴지던 기운의 주인공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스?”
“젠장!! 대체 여기를 어떻게 알았지!?”
“기운을 숨기는 마법을 걸어 놨나. 꽤나 발상은 좋다지만 영 조잡한 마법이라.”
내부에 숨어 있던 건 보스와 수하 몇명이었다.
그들은 나를 보자마자 낭패 어린 얼굴로 검을 휘둘렀다.
휙-카앙!!
“마력이 담긴 검을 손으로 잡아!??”
더한 것도 보여 줄 수 있는데.
나는 씨익 웃으며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제법 좋은 재질로 만들어진 검은 순식간에 조각나 바닥에 떨어진다.
그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변했다.
“더 할 테냐.”
간단한 한마디였지만 그 안이 숨겨진 뜻은 모두가 이해하기 쉬웠다.
보스를 포함한 조직원들은 천천히 무릎을 꿇는다.
항복의 표시였다.
“그래. 목숨 중한줄은 아는군.”
“……당신은 대체 누구십니까? 버려진 땅에 오실 만한 분은 아닌 듯합니다만…….”
“그 정도 눈치는 있었나? 나도 딱히 오고 싶진 않았다만, 찾아야 할 사람이 있어서 말이야.”
나는 편한 자리로 이동해 그들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서채아에 대해 캐묻기 시작했다.
“저희를 찾아온 여자요?”
“여러 조직을 거쳐갔을 텐데. 하지만 분명 붉은 달에도 왔던 적이 있어. 모습은 변장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상당히 강한 헌터다.”
놈들은 머리를 맞대고 쑥덕거린다.
그러더니 곧 무언가 깨달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