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65화
다가오는 사람은 몇 번인가 보았던 협회 직원이었다.
그리고 정신없이 발을 움직이는 그의 등 뒤편.
그곳에는 달갑지 않은 손님도 함께하고 있었다.
‘……저것들이 왜 여기에?’
“다른 헌터분들은 이미 도착하셨-”
써겅-!!!
들고 있던 검을 그를 향해 휘둘렀다.
정확한 목표는 뒤에 있던 적들이었다.
종이 한 장 정도의 틈을 두고 찔러진 검에, 협회 직원은 기겁을 한다.
“히익!!! 진, 진 헌터님!???”
그는 지진이 나버린 동공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곧 묵직한 덩어리가 쿵-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뒤를 돌아본 직원은 가뜩이나 놀란 눈이 튀어나올 듯 크게 떠졌다.
“동료는 아닌 듯해서.”
“당연히 아니죠!!”
협회 직원을 졸졸 쫓아오던 놈들은 아이스 트롤이었다.
서울 한복판에 몬스터라니?
딱 봐도 심상치 않지만, 너무나도 의아하다.
“설마 게이트 폭주인가?”
하지만 오지산간 강원도의 게이트도 발견해내는데, 여기는 온갖 헌터 길드의 지부가 세워진 서울이다.
심지어 최근 국내 헌터들의 실력은 상향평준화 된 상태.
이깟 게이트쯤은 진즉 처리되어야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스템의 폭주죠. 앞서 나오셨던 분들에 의하면, <검은 탑>내부는 멀쩡했다던데…… 지금은…….”
그는 어두운 얼굴로 나를 탑 주변으로 이끈다.
게이트의 출현을 알리는 마석이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날짜와 게이트 등급이 적혀 있어야 할 거대한 마석에는 알 수 없는 문자만 떠있다.
[7월!#일: [email protected]$등급 !#$!%%%……]
“시스템이 미치기라도 한 건가.”
“정확합니다. 일주일전부터 수많은 게이트가 우후죽순으로 생기더니, 심지어 생성 직후부터 몬스터들이 튀어나오더군요. 폭주 기간까지는 시간이 남았는데도 불구하고요.”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지금은 손 하나라도 더 필요할 테니까.
“제일 급박한 곳은 어디지?”
“아무래도 거리가 제일 먼 제주도입니다. 이미 다른 랭커분들은 각 구역으로 찢어져 토벌을 진행 중이시고요.”
아직 놀러가 보지도 못한 제주도를 몬스터 잡으러 떠날 줄이야.
알겠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자, 협회 직원은 또다시 다른 장소로 떠난다.
‘그러고보니 지구로 돌아왔는데 아렐리아가 말조차 없다니.’
<검은 탑>으로 향하기 전.
그녀에게는 혹시나 모를 일을 위해 지구에 남으라 명령했었다.
위험이 닥친다면 최대한 헌터들을 보호하라고.
아마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몬스터를 처치하고 있을 터.
나는 우선 그녀의 위치를 파악했다.
다행히 이곳에서 멀지는 않았다.
파앗-
지면을 박차 가까이에 있는 빌딩 꼭대기에 올라섰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주변 풍경은 더욱 가관이다.
“민간인들은 모두 대피시켰나!?”
“예!!! 그리고 게이트 안에는 부길드장님이 제2공격대와 함께 들어가셨습니다!”
“부길드장님이 직접? 이제 좀 숨 돌리겠군. 젠장, 길드장님만 계셨어도 우리 구역은 진작 마무리되었을 텐데…….”
얼굴을 보니 나비 길드원들이었다.
대충 들어보니 길드별로 구역을 나눠 청소를 진행하는 모양.
그 중에 길드장인 서채아가 없다는 말이 귀에 박힌다.
‘또 길드에 무슨 일이 난 건가.’
하여간 바람 잘 날 없는 길드다.
나는 그들에게서 눈을 떼고 다음 빌딩으로 도약했다.
그렇게 건물 몇 개를 지나 서울 외곽근처에 도착하고.
애써 둘러볼 필요도 없이 나는 바로 아렐리아를 찾을 수 있었다.
“……미천한 놈들이.”
오랜만에 보는 그녀는 헤츨링의 껍데기를 벗은 채 칠흑같은 긴 머리를 휘날리고 있었다.
이미 많은 전투가 진행되었는지 주변은 이미 폐허다.
각양각색의 건물 잔해와 잔혹하게 찢겨진 몬스터들의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여 마치 한폭의 지옥도를 형상케 했다.
“아렐리아.”
“누가 감히…… 마왕님?”
으득-
마지막 남은 그리폰이 단숨에 반으로 갈라졌다.
그 사이로 드러난 서릿발처럼 차갑던 얼굴이 부드럽게 풀려간다.
보랏빛 눈동자는 촉촉하게 젖어 들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셨어요!”
퐁-소리와 함께 다시 드래곤의 모습으로 변신한 그녀가 나에게 달려든다.
아렐리아는 둥그런 머리통을 한참 쓰다듬어 주고 나서야 내게서 떨어졌다.
[무려 한 달이에요! 그동안 말씀하셨던대로 인간들을 살피느라 얼마나 지겨웠는지 아세요? 물론 갑자기 게이트가 터져서 몬스터들 가지고 노는 재미는 있었지만……]
연신 투덜거리던 그녀는 앞에 열려 있는 게이트를 흘깃 쳐다본다.
선연한 검붉은 색을 띄는 S급의 게이트였다.
아무래도 헌터들만으로는 막아 내기 힘들 테니, 직접 나선 듯했다.
“고생 좀 했겠군.”
[내키지 않는 일도 했고요.]
아렐리아가 뚱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시선은 여전히 일렁이는 게이트로 향해 있다.
“내키지 않는 일?”
[엄청 하기 싫은 일이요. 그러고보니 슬슬 나올 때가 되었는데……]
대체 뭐가 나온다는 거지.
의아한 마음에 다시금 질문을 하려고 할 때쯤이었다.
쿠우우우-
쉴 새 없이 기운을 흘려대던 게이트가 천천히 크기를 줄인다.
내부에 있던 보스 몬스터가 처치되고, 목적을 다 한 게이트가 사라질 때 나타나는 징조였다.
“오랜만에 몸 좀 풀었…… 음? 아니, 마왕님 아니십니까?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게이트가 완전히 소멸하고 나타난 이는 둘이었다.
그것도 마르바스와 릴리스.
아렐리아가 탐탁지 않아 할 만했다.
“어머, 마계의 일원들이 다 모였네요.”
뒤따라온 릴리스가 싱긋 웃으며 나에게 인사를 한다.
그러자 아렐리아의 얼굴이 더욱 뚱하게 변했다.
하지만 그녀는 손톱만큼이나 신경 쓰지 않고 나에게 다가왔다.
“마왕님이 돌아오셨으니 저희는 이만 돌아가고 싶지만…… 마지막까지 일하고 가라 명하시겠죠?”
잘 아는군.
보아하니 열린 게이트가 한두 개도 아니다.
마족들이 도운다면 더 빠르게 상황이 정리될 건 당연지사.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자, 릴리스는 작게 웃음을 흘린다.
“아무래도 지구 계약자가 없어 힘이 제약되는데…… 어쩔 수 없죠. 그럼 저희는 이만 사라질게요. 마왕님의 충견은 여전히 우리가 마음에 들지 않나 봐요.”
[같이 복종의 맹세만 하지 않았어도 진작 처리했을 텐데……]
릴리스는 노려보는 아렐리아를 향해 멋쩍은 미소를 보인다.
그리곤 마르바스를 끌고 바로 다음 장소로 사라졌다.
이제 이곳에 남은 건 몬스터들의 시체 더미뿐.
나 역시 발걸음을 옮길 때였다.
[에휴. 또 일이나 하러 가죠, 마왕님. 어디로 텔레포트 할까요?]
“다음은 제주도로…… 흐음? 잠깐.”
위험한 상황은 비켜간 것 같지만 아무래도 정리는 빠를수록 좋을 터.
특히나 나에게는 쓸 만한 수하가 많다.
지금 부를 수 있는 노예들 목록을 쭉 떠올려보았다.
“크레아시론은?”
[그 리치 놈은 이미 다른 게이트에 있어요. 새로 생긴 제자와 함께요.]
명령 없이도 이미 눈치 빠르게 행동하고 있었나.
위험에 빠진 인간들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손 놓고 있다간 후환이 두려워 나선 것이 틀림없었다.
‘정령들은 <타락>에서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인데…… 아마도 요정 쪽도 비슷하겠고.’
한두 마리면 모를까 수백, 수천에 달하는 피를 묻혀야 하는 일이다.
근원부터 전투나 살생과는 먼 종족들이라 이번일에는 끌어들이기 힘들어 보였다.
“나머지는 영…… 아, 그래. 그놈이 있었지.”
[어떤 놈이요? 지금 부를 만한 자는 딱히…… 앗!!! 설마!]
아렐리아가 놀라서 펄떡 뛰어오른다.
누가 봐도 싫어하는 기색이 완연하다.
하나 지금 이 상황에서 자신의 일처럼 발벗고 나설 만한 존재는 딱 하나였다.
나는 오랜만에 손등에 있는 문양을 문질렀다.
“헤르멘, 급하니 당장 와 줘야겠어. 부탁할 게 있으니.”
돌아오는 말이 없다.
언제나 대기하고 있던 것마냥 즉각 대답하던 평소와는 달랐다.
의아한 마음이 들 찰나.
눈앞에 거대한 마법진이 생기더니 은빛 몸뚱이가 모습을 드러낸다.
왜인지 모르게 비늘 사이사이에는 정체모를 풀이나 낙엽 따위가 끼워져 있었다.
‘졸다 왔나 보군.’
눈을 보니 반쯤 풀려 있다.
황궁 정원에서 낮잠이라도 청했던 모양이었다.
“부탁? 그것도 급한 거라고?? 마왕이라도 쳐들어온 겐가? 아니, 잠깐. 내 친우가 마왕이지…… 그러면 천족들?”
그는 황급히 인간의 모습으로 폴리모프하더니 질문을 미사일처럼 퍼붓는다.
나는 우선 아는 것부터 그에게 천천히 설명했다.
현자라고 불릴 만큼 머리가 좋은 헤르멘은 금세 상황을 이해했다.
“심각하군. 다른 종족도 아니고 인간들이, 그것도 헌터들까지 위험에 빠졌다니…… 내 당장 주변 몬스터들을 쓸어버리겠어!!”
인간 애호가 드래곤이 분노를 감추지 못한다.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분화구 같다.
부모의 원수를 마주쳐도 저 정도는 아니리라.
그는 바로 스태프를 꺼내들고 사라진다.
당연히 말릴 새조차 없었다.
“……부르길 잘했군.”
아스티란에서 수호룡으로 지내며 인간을 더욱 아끼게 된 건가.
좀 과해진 것 같지만 여러모로 일관된 반응이라 다루기는 쉬웠다.
[……지금이라도 친구 맺으신 거 취소하시면 안 돼요? 영 수상쩍은 게 좀……]
아렐리아가 한심해 죽겠다는 얼굴로 중얼거린다.
그리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텔레포트를 준비했다.
* * *
딱 삼 일이 걸렸다.
한국에 생겼던 게이트는 총 80여개.
모두 폭주했던 걸 감안하면 당장 나라가 망했어도 이상하지 않지만, 다행히 생각보다 피해가 크지는 않았다.
“……보고를 이만 마칩니다. 다시 한번 이 자리의 헌터분들에게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죄송하지만, 몇 분은 타국가를 돕기 위해 다녀오셔야 할 듯합니다. 대부분은 아직도 애먹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박신우는 퀭한 눈빛으로 길드장들에게 서류를 나눠준다.
떠나야할 국가의 이름과 필요 등급 인원, 급하게 발행된 헌터들의 출국 허가서같은 것들이었다.
“우리 쪽에도 아직 몬스터가 숨어 있을지 모르는데요.”
이도윤은 굳은 얼굴로 서류를 갈무리한다.
일이 완벽히 마무리되지도 않았는데, 다른 나라에 도움을 주러 가는 것이 마음에 차지 않는 듯했다.
“그 정도는 드래곤…… 아니, 진 헌터님의 친구님이 도와주실 겁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들은 지금 저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입니다.”
다른 길드장들 역시 탐탁치 않아 보인다.
그동안 타국가에 엿먹은 일이 한두개가 아니기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박신우의 말대로 전 세계는 게이트로 난리가 난 상황.
지구 전체의 위기라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모두들 어쩔 수 없이 수긍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 역시 정신없는 협회에 남기는 싫어 움직이려는 그때.
모두가 빠져나간 회의실에서 천상 길드의 차은진이 내 앞을 가로막는다.
명백히 할 말이 있어 보이는 태도였다.
“뭐지? 길드의 간부이니 지금 당장 할 일이 한두개가 아닐 텐데.”
“간부가 아니라 천상의 길드장이죠. 그리고 진 헌터님께는 중요하게 알려 드릴 정보가 있습니다.”
그녀는 아직 몇 남아 있는 협회 직원을 쳐다보더니 싱긋 웃는다.
아무도 듣지 않길 바라는 눈치였다.
“따라와. 다른 장소로 가지.”
툭 말을 던지고 먼저 자리를 벗어났다.
대충 주위를 둘러보자, 옆 회의실이 비어 있는 것이 보인다.
문을 열어놓고 자리를 잡자 그녀가 따라 들어왔다.
“서채아 길드장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시나요?”
웬 뚱딴지 같은 소리지?
다짜고짜 쏟아진 질문에 미간을 찌푸리고 차은진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이제 대놓고 조급함이 드러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