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64화
한눈에 봐도 푹신해 보이는 노란빛 털과 둥그런 몸체.
생김새는 양과 비슷하다.
그보다는 더 완벽한 원형에 가까웠지만.
비현실정도로 봉제 인형같은 외관은 대부분 귀엽다며 호감을 가지기 충분했다.
[행님???]
다만 저 이상한 말투는 빼고.
저놈이 나를 왜 저렇게 부르는지는 둘째 치더라도, 어울리지도 않는 말투가 거슬린다.
심지어 어딘가 뒷골목 양아치를 떠오르게 하는 억양이었다.
목소리만 들으면 당장이라도 침을 칵 뱉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행님, 괜찮으십니까? 역시 임시로 만들어진 공간이라 영향이 있나……]
신인지 인형인지, 아니면 불량배인지 모를 것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는 우선 저 행님 소리부터 멈추기 위해 입을 열었다.
“언제 봤다고 친한 척이지? 일단 그 빌어먹을 형님은 그만 찾지 그래.”
[엥? 인간에게 좋은 첫인상을 남기고 싶다면 친밀감 있는 말투로 다가가라고 쓰여 있었는데……]
그녀석은 당황하더니 작게 헛기침을 한다.
그리고 바로 인사라도 하듯 공손하게 고개를 꾸벅인다.
[인사 올립니다. 제 이름은 아스테리뮤인데……너무 기니까 편하게 뮤라고 불러 주십쇼.]
그는 헤헤 웃으며 통성명을 시도한다.
넉살스러운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분명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시도였으리라.
하지만 나는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 그런 노력 따위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수인계의 신이 아닌 것인가.’
고서에 적혀 있던 수인족 신의 이름은 테샤.
개명 신청이라도 하지 않은 이상, 이름이 바뀌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럼 이 노란 털덩어리는 뭐지?’
확실히 외형만 봐도 신이라 생각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정령신이 비둘기로 변하고 구구소리까지 내는 미친 세상이다.
심지어 저놈의 몸 안에 흐르는 힘은 분명한 신의 것.
그것도 방금 전 신전에서 느꼈던 기운과 똑같았다.
“넌 대체 뭐지? 반신과 비슷한 존재인가.”
[앗? 저 말입니까? 아, 제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신의……]
녀석은 갑자기 목소리를 내리깐다.
얼굴은 사뭇 진지했다.
잠시 뜸을 들이던 그는 다시 천천히 입을 연다.
[애완동물인데요!]
“……뭐?”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나도 모르게 인상이 와락 구겨진다.
“허. 이렇게 신의 기운이 느껴지는데 애완동물이라고? 개소리도 이쯤 되면 참신하군.”
[진짠데요…… 물론 제가 가진 힘이 과한 건 잘 알지만, 이건 우리 큰 행님…… 아니, 신께서 소멸하면서 남겨 주신 겁니다. 인간 수왕이 탄생한다면 넘겨주라고요.]
녀석은 억울한듯 항변한다.
하지만 설명에는 여전히 빠져 있는 조각들이 많다.
특히나 신의 소멸이라니?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지만, 한 차원계 전체를 수호하는 고위급 신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그 정도로는 부족해. 일단 알고 있는 것부터 다 말해.”
대화가 길어질 듯하다.
나는 주변에 있는 책더미에 대충 걸터 앉았다.
그제서야 눈치 보던 털덩이 뮤가 살며시 날아온다.
[일단 처음부터 말하자면요……]
그는 한참을 주절거렸다.
자기가 신에게 선택받아 신수가 된 과거부터, 신을 대신해 신탁을 내리며 살게 된 지난 날들까지.
본인이 이곳에서 나가지도 못하고 얼마나 외로웠는지에 대한 불만도 군데군데 섞여 있었다.
“상황은 대충 알겠다만. 그래서 테샤는 왜 소멸한 거지?”
[복장 터져 죽었는데요.]
아까부터 생각한 거지만, 5세 이용가 완구같은 외모에 비해 입담이 제법 구수하다.
허나 지나가는 개도 안 믿을 소리였다.
불신의 눈빛으로 놈을 쏘아보자, 허겁지겁 말을 덧붙인다.
[진짜입니다, 행님. 수왕이 도전자를 줄이기 위해 부적격자들을 가둔 건 잘 아시죠? 도무지 말을 해도 고쳐지지가 않아서 그 뒤로 시름시름 앓다 소멸했습니다. 워낙 마음 약하신 분이시긴 했는데……]
무슨 신이 저리 멘탈이 약하단 말인가.
얼토당토않은 원인이었지만
[그래도 드디어 그분의 힘을 이어받을 만한 분이 나타나서 다행입니다. 신의 가호는 못 내려 드리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도움이 될 거예요. 조금밖엔 없지만.]
“잠깐. 수왕은 여태껏 많았는데 그동안 힘을 이어받을 자가 없었다고?”
[엥? 그야 당연하죠. 이미 아시지 않습니까? 그깟 왕의 자리, 백날 이종족이 차지하면 뭐 합니까. 그릇이 안되는 것을. 신의 힘을 감당할 수 있는 건 세상의 본질과 근원에 가장 가까운 인간만이-]
떠벌거리던 뮤가 갑자기 입을 떡 벌린 채 멈춘다.
새까만 동공은 지진이라도 난듯 미친듯이 떨린다.
누가 봐도 X 됐다, 라고 외치는 모습이었다.
쿠르릉-
갑자기 천장에 먹구름이 드리운다.
털덩어리는 결국 체념한듯 고개를 푹 떨궈버렸다.
[씨바……]
콰아앙!!!!
낙뢰가 바닥에 그대로 내리꽂아진다.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공간 전체가 흔들렸다.
‘……<세계의 율법>을 어겼군.’
이번에도 입을 잘못 놀린 자가 또다시 번개에 희생되어 버렸다.
눈 앞을 뿌옇게 가리던 먼지가 걷힌다.
앞에는 노릇노릇 잘 익은 신수 한 마리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모르셨나요. 오직 인간만이 신이 되기 위한 과정을 밟을 수 있다는걸……]
뮤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당장 눈물을 쏟아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눈망울이 촉촉했다.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는데.”
저토록 어마어마한 것을 일러줄 존재가 있을 리가.
이정도면 무수히 많이 마주쳤던 신들조차 입을 다물고 있을 만했다.
그들이라고 율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인간이, 아니 인간만 신이 될 수 있다고?’
계속 곱씹어 보아도 어안이 벙벙할 만큼 놀라운 정보다.
사실, 바로 앞에서 번개를 맞는 뮤를 목격하지만 않았어도 헛소리라 치부할 정도였다.
[왕좌를 모으시기에 알고 있으신 줄 알았는데…… 에휴 이걸 어떻게 하지……]
터덜거리는 걸음이 내 앞에 멈춰 선다.
그리고 무언가를 하려는 듯 집중하더니, 다시금 긴 한숨을 내쉰다.
[역시나 안되는군요. 아직 스킬 못 받으셨죠? 왜, 그 무슨 신의 가호니 뭐니 하는 거요.]
“그걸 받기 전에 소환당한 건 기억에서 잊었나 보군.”
[사실 신의 가호를 내릴 순 없으니 힘을 일부분이라도 드리려고 했던 건데…… 방금 전에 규율을 잘못 놀려서 다 잃어버렸네요.]
모조리 잃었다니?
빠르게 그의 몸에 흐르던 신력을 읽어보았다.
하지만 방금까지만 해도 넘치던 힘은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다시 차오르거나 하지는 않는 건가?”
[저에게 그런 기능은 없는데요.]
“그래도 신의 곁을 지키던 신수인데, 할 수 있는 게 고작 털 뿜는 것밖에 없다고?”
[저는 귀여움으로 먹고 사는 신수라……헤헤.]
천연덕스러운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녀석의 멱살을 쥐어 잡았다.
푹신한 감촉이 손에 느껴지지만 기분이 풀리지는 않는다.
[그게 턴다고 나오는 건 아닌……꿱!!]
나도 모르게 손아귀에 힘이 강하게 들어간다.
털뭉치는 거의 쥐어짠 걸레의 몰골이 되어 가고 있었다.
[행님…… 컥!!]
갑자기 조그만 입에서 무언가가 툭 튀어나온다.
노란빛이 도는 둥근 구슬이었다.
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그 물체를 발로 툭 건드렸다.
“이건 뭐지?”
[엥? 아 맞아!! 이게 있었지!!]
멋쩍은 듯 웃던 놈은 그 물체를 대뜸 내 눈 앞으로 가져온다.
얼굴에는 미묘하게 뿌듯함이 감돈다.
[행님, 신력은 못 드려도 비슷한 건 드릴 수 있습니다.]
말하는걸 보아하니 예사 물건은 아니었다.
우선 검지로 구슬을 툭 건드리자, 아티팩트의 정보가 떠오른다.
[아스테리뮤의 정수[SSS급]]: 신이 창조한 유일무이한 종족, 아스테리뮤가 1년에 한 번 만들어 낼 수 있는 정수. 재료로 사용 가능하며 사용한 아이템에 신력을 부여한다. <타락>한 상대 공격력 +300%]
꽤 쓸 만한 능력치다.
<타락>한 상대라는건, 결국 천천히 무너져 가는 렌에게도 통용되는 것.
언젠가 그를 상대할 때가 온다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듯하다.
그런데 1년에 한번이라.
뮤가 살아 있다면 정수는 무한리필이 된다는 소리와 마찬가지였다.
‘정수가 나오는 자판기를 포기할 수는 없지. 데려가야겠군.’
그렇다고 내가 키울 생각은 전혀 없다.
이미 주변에는 나 대신 귀찮은 일을 도맡아 줄 녀석이 잔뜩 있으니까.
나는 그녀석의 몸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번갯불에 구워졌지만 여전히 푸근한 인형처럼 보인다.
어린 아이에게 선물하기는 딱이었다.
“너, 오랫동안 혼자 있어서 외롭다고 했었나.”
[그렇죠……사실 이렇게 누군가와 말해 본 지도 오래전입니다. 행님 가시면 또 그렇게 되겠지만.]
“그럼 괜찮은 친구 하나 소개시켜 주지. 여기서 죽을 때까지 있는 것보다 나을 거다.”
내 말에 뮤는 눈을 동그랗게 뜬다.
나는 녀석을 옆구리에 끼워 들고 틈으로 보이는 출구로 몸을 던졌다.
“……스승님!!! 어디 계신……스승님??”
밖으로 나오자마자 신전 내부가 보인다.
사라진 나를 찾고 있었는지 파렌이 눈에 띄게 당황한 기색으로 사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대체 어디 다녀오신 겁니까? 그리고 그 노란 털뭉치는 뭐고요?”
파렌이 다급하게 나에게 뛰어온다.
하지만 시선은 갑자기 튀어나온 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네 친구다.”
뮤를 던져 주자 파렌은 얼떨떨한 얼굴로 품에 안는다.
당황스러워 보이지만 손은 본능적으로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고 있었다.
‘저래뵈도 신수니 아는 것도 많을 테고. 혼자 남을 파렌에게 딱이군.’
털 색이 비슷한 그들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난다.
몇 마디 얹어 줄려는 그때.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른다.
[<검은 탑>공략 성공. 지금 퇴장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다른 헌터들은 이미 돌아갔을 터.
이제는 정말로 떠나야할 때였다.
“그럼 이제 작별할 시간이군. 다시 볼 때까지 얌전히들 있어.”
“네? 이렇게 가시나요??”
당황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하지만 작별 인사는 길어 봤자 쓸모 없는 법.
나는 작게 손을 흔들어 주며 퇴장 버튼에 손을 얹었다.
* * *
오랜만에 맡아 보는 서울 공기는 여전했다.
곧 <검은 탑> 주변에서 대기하던 협회 직원들이 들이 닥칠 터.
특히나 이번에는 막무가내로 공략을 떠났는지라, 약간의 잔소리는 감안해야 했다.
‘잠깐, 그런데 분위기가…….’
무언가 이상하다.
느껴지는 바람은 유난히 서늘했다.
“진 헌터님!!!!”
저 멀리서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바로 동시에 울려 퍼지는 낯선 소음들.
아아악!!!!!!
쾅!!!!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
무언가 터지는 폭발음.
바깥은 아비규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