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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163화 (163/200)

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63화

“파렌!! 마왕과 계약을 한 것이냐!??”

졸지에 선수 교체 당한 카이론은 빠르게 전후사정을 파악했다.

하지만 흔들리는 동공을 보아하니, 어지간히 받아들이기 힘들어 보인다.

“수왕의 도전자가 사악한 계약을 하다니!!! 고귀한 사자족의 명예에 먹칠을 하는구나!”

그는 갑자기 사자족의 대표가 된 것마냥 분기탱천한다.

심지어 명예까지 운운하다니.

그런 걸 챙기는 자로 보이진 않았는데, 이쯤 되면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느낌이었다.

“왜, 그저 스승으로만 초빙된 마왕인 줄 알았나?”

“수왕이 되기 위해 마왕과 계약하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지 않소!?”

언제부터 그런 게 상식이었는지.

그를 향해 작은 비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그런 무임금 노동 따위를 할리가.”

부스럭, 바로 옆에서 작은 소음이 들린다.

간신히 정신을 부여잡은 파렌이었다.

그는 창백한 얼굴로 몸을 일으킨다.

“스승님…… 결국 이렇게 도움을 요청하는군요…… 면목 없습니다.”

푹 떨군 고개에서 표정은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목소리에 잔뜩 묻어 있는 자괴감.

보지 않아도 그는 지금 자신의 나약한 힘에 분노하고 있었다.

“틀렸다. 이건 도움이 아니라 신성한 마계의 계약이지. 그리고 너는 나의 계약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고.”

아닌 게 아니라, 이미 계약에 걸린 보상이 상당하다.

수왕의 자리를 거저 얻을 수 있다면 이깟 일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군요. 계약…… 스승님의 말이 맞습니다.”

그는 천천히 나와 눈을 마주친다.

그리고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마무리를 짓자는 듯이.

몇 발자국 물러나는 파렌을 뒤로한 채, 나는 다시금 카이론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는 핏발선 눈으로 입술을 강하게 깨문다.

이미 입가에는 선연한 한 줄기의 핏줄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절대로 패배해선 안된다.”

굳은 의지가 새겨진 말이었다.

보나마나 심한 반항을 할 생각인 듯했다.

일이 귀찮게 되었다.

카이론은 분명 내가 본 자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강자이다.

하지만 나와의 힘의 차이는 분명하다.

‘그걸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무언가 사정이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내 알바는 아니었고, 일을 질질 끌 생각은 없다.

나는 단번에 끝낼 생각으로 스킬을 시전했다.

“<마신의 가호>.”

<마신의 가호[L]:일주일에 한번, 마신의 가호를 부여받습니다.스킬 발동 시 버서커 상태가 되며, 모든 능력치가 일시적으로 2배로 향상됩니다.>

익숙한 힘이 온몸을 감싼다.

터질 듯한 마력을 애써 응축했다.

그걸 보는 카이론의 표정이 점점 사납게 굳어진다.

무언가 본인도 준비를 하려는 그때.

나는 예고도 없이 검을 휘둘렀다.

콰아앙!!!!!!!!!

“크악!!!!”

순식간에 쏘아진 검기에 핏물이 흩날린다.

정확히 가슴께를 노린 공격.

차마 방어할 새도 없었는지라, 그는 고통에 몸을 비튼다.

하지만 내 예상대로 단번에 쓰러지지는 않았다.

‘이걸 버틴다고?’

그럴 리가.

온 마력을 쏟진 않았지만, 그래도 무시 못할 공격이다.

적어도 치명상은 얻어야 한다.

천천히 그를 훑어보았다.

그제서야 쪼개진 갑옷 안쪽에 무언가 번쩍이는 게 보인다.

휘익-!!!

장검이 길게 찔러진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꺾어 피했다.

동시에 발을 움직여 그의 품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순식간에 가까워진 거리.

그는 본능적으로 뒷걸음 친다.

하지만 너무나 늦은 행동이었다.

쾅!!!!!!!!!!!

산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들린다.

한곳에 집중하기 보다는, 넓게 마력을 퍼트린 공격이었다.

아마 드래곤이 몸통 박치기 한 정도의 고통이 느껴질 터.

걸치고 있는 단단한 갑옷은 가루가 되어 버렸다.

그는 차마 신음조차 내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진다.

나는 굼벵이마냥 구르고 있는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무슨 수를 썼기에 공격을 버티나 했는데.”

이걸 발상이 특이하다고 해야 할지.

나는 슬쩍 웃으며 발을 그의 몸뚱이 위에 얹었다.

발 밑에는 아까 보았던 번쩍이는 물건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상태였다.

“갑옷 안에 갑옷이라.”

과대포장된 과자마냥 겹겹이 쌓인 방어구가 우습다.

안쪽에 감춰진 검은 갑옷은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물건이다.

제법 흥미로웠다.

콰아악-

“크윽……!!!!”

발에 마나를 실어 강하게 눌렀다.

내 밑에서 벗어나지도 못하는 카이론이 꿈틀거린다.

이미 온몸은 만신창이다.

하지만 나는 그만두지 않고 계속 갑옷에 압력을 가했다.

빠직-!!

결국 마력을 버티지 못한 갑옷이 파괴된다.

나는 검은빛 조각 하나를 주워들었다.

금속은 차갑지만 묘하게 부드럽다.

강철도, 아만다티움도 아닌 특이한 재질.

몇 번이나 봐온 것이었다.

“렌을 만났었나보군?”

피식 웃으며 던지는 말에 카이론이 흠칫 놀란다.

쓸데없는 몸부림도 멈춘 상태였다.

이미 어느 정도 짐작했던 일이다.

마계도, 요정계도 들쑤시고 갔던 놈이 수인계라고 가만 뒀을 리가.

왕궁 밑의 지하감옥은 도저히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곳이다.

분명 목적을 갖고 카이론을 빼내 줬을 터.

그리고 그가 바르시엔 대륙을 흔들고, 수왕의 자리까지 넘볼 수 있도록 도왔을 것이다.

‘그 와중에 말로 잘 구워삶았나 보군.’

카이론에게 딱히 정신 지배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힘들여 용언을 썼던 마계의 마르바스와는 달랐다.

나름대로 가성비 좋은 방식을 택한 것이다.

“검은 미스릴이라…… 이걸 만드는 놈들은 전에 블랙 마켓뿐이었지. 그리고 그놈들은 렌의 수하였고.”

완전히 꿰뚫어보는 말에 그는 애써 변명조차 않는다.

그저 입을 다문 채 눈만 번뜩일 뿐.

주변이 조용해진 가운데.

멀리서 지켜보던 파렌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다가온다.

“스승님…… 대체 렌은 누구입니까? 아니, 그보다도 블랙 마켓이라니요? 거기라면 분명 저를 비롯한 이종족을 노예로 만들던…….”

블랙 마켓이라는 단어에 반응한 건가.

그는 아직도 치욕이 잊혀지지 않는지, 빠득거리며 이를 간다.

“맞다. 그리고 렌은 그곳의 수장이었지. 참 우스운 상황 아닌가. 수인족 노예를 해방시키려는 자가 정작 노예를 사고파는 조직의 도움을 받다니.”

똥묻은 개가 겨묻은 개 나무란다더니.

지금 마왕과 계약하니 뭐니를 운운할 때가 아니었다.

세상을 혼란에 밀어넣겠다는 렌에 비하면 나는 목적조차 깔끔했으니까.

“……삼촌의 마음을 이해해 보려 했습니다. 과정을 잘못되었지만, 결국은 수인족을 위해 행동하신 일이었으니까요.”

배신감? 분노? 아니면 슬픔인가.

잔뜩 찡그린 눈에 실린 감정은 너무나 복잡해 읽기 힘들다.

파렌은 카이론에게 천천히 다가간다.

그리고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검집에서 검을 꺼내들었다.

‘직접 처리할 셈인가.’

나야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라, 한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이미 큰 상처를 입은 카이론은 몸을 지탱할 힘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쓰레기통에서 건져 올린 주둥이만큼은 살아 있었다.

“날 직접 죽이려고? 으하하!!!! 그래, 도전에서 패배한 자는 사라져야지. 다만 이 저주받은 수왕의 핏줄을 완전히 끊어 내지 못해서 아쉬울 뿐.”

쓴 웃음이 입술에 걸린다.

이제 모든 것을 포기했는지 온몸은 허점투성이였다.

하지만 파렌은 공격을 하지 않고 들고 있던 검마저 천천히 내린다.

마지막으로 이야기라도 나누고 싶은 기색이었다.

“당신도 그 핏줄을 이어받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그래서 내가 수왕이 된다면 모든 흔적을 지워 버리고 죽으려 했지. 네가 왕궁을 무너트린 것처럼.”

왕궁, 이라는 단어에 파렌이 움찔한다.

카이론은 이제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그를 쏘아본다.

“너는 더러운 왕궁의 깊숙한 곳에 무엇이 있는지 아느냐? 물론 모르겠지. 알았으면 왕궁을 무너뜨리고 호수까지 만들어 내지 않았을 터. 나의 조카야, 넌 앞으로 평생을 후회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음침한 저주가 쏟아진다.

하지만 파렌은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나 역시 피식 웃으며 그가 다음에 할 말을 기다렸다.

“제 동생들 말입니까?”

“……뭐?? 그걸 어떻게……!!”

“쌍둥이들은 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추악한 왕족의 비밀은 알지 못한 채 자라나게 될 것이고요.”

혼란스러워하던 카이론은 결국 입을 꾹 다문다.

그 뒤로는 긴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잠시 뒤.

카이론은 눈을 천천히 감는다.

시종일관 한 대 쥐어 패고 싶었던 비웃음은 어느새 사라진지 오래.

얼굴에는 속시원한 웃음이 띄워져 있었다.

“……이만 죽여라.”

숨소리마저 느려진다.

결투장은 이미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이제는 정말로 끝내야 할 때.

파렌은 다시금 검을 고쳐 쥔다.

푸욱-!!

“승자는……파렌 왕자입니다.”

지켜보던 수인족 원로가 넋이 나간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모든 시선이 파렌에게 집중된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 승리의 기쁨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말없이 걸음을 옮기는 파렌과 함께 나는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스승님, 정말 감사합니다.”

어느 정도 걸었을까.

한참 침묵을 유지하던 파렌이 드디어 입을 연다.

우리는 신전 깊숙한 곳까지 도착한 상태였다.

복도 끝에는 이미 찬란한 왕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마울 게 뭐가 있나. 어차피 나는 계약을 이행했을 뿐인데.”

피식 웃어 보이자 그도 덩달아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왕관을 향해 손짓했다.

“어서 잡으시죠. 스승님의 것입니다.”

사양할 필요는 없지.

나는 바로 왕관을 잡아들었다.

그러자 눈 앞에는 그토록 원하던 메시지가 끊임없이 떠올랐다.

[퀘스트 <수왕에 도전하는 자들> 완료.]

[아시아-대한민국 채널이<검은 탑> 61~70층을 클리어 하였습니다.]

[수인족 왕자 파렌과의 계약에 따라, 진 플레이어가 수왕이 됩니다.]

[위대한 업적! 인간의 몸으로 수왕이 되는 믿을 수 없는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칭호 <수왕>을 얻습니다.]

[<수왕>: 모든 수인족들의 왕이자 수호자에게 주어지는 칭호입니다.

수인족 친화력+200% 힘 +200% 체력 +200% ]

[<퀘스트:왕의 길>이 갱신됩니다.]

[<왕의 길>-(4)

-요정계의 왕:달성

-마계의 왕:달성

-천족의 왕:미달성

-수인계의 왕:달성

-거인계의 왕:미달성

-정령계의 왕:달성]

이제 남은 건 스킬인가.

나는 어지러이 올라오는 시스템 메시지들을 느긋하게 지켜보았다.

하지만 잠시 뒤.

알 수 없는 신력이 몸을 감싼다.

‘또 신과 면담인가.’

신의 힘으로 만들어진 공간이지만, 이쯤 되면 친구 집 방문하는 것처럼 편하다.

서서히 바뀌는 풍경을 구경하며 신의 형태를 내 나름대로 상상하고 있을 쯤.

눈앞에 웬 털덩어리가 뿅하고 나타난다.

[아이고, 오셨습니까 행님.]

형님이라고?

난 이런 가축과 형동생을 맺은 기억이 없는데.

털에 파묻힌 동그란 눈과 마주치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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