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61화
카앙-!!
“큭!!”
“오? 이것까지 막아?”
훈련장에선 여전히 파렌과 헌터들의 전투가 진행 중이었다.
땀투성이인 몰골을 보아하니, 아직까지 휴식 한번 취하지 않은 듯했다.
하도 집중하고 있는 탓에 나는 우선 그들을 잠자코 지켜보았다.
‘흠, 제법…….’
검로를 정확히 꿰뚫어 보고, 피하고, 반격한다.
기본기가 탄탄했다고는 하나, 짧은 시간 내에 이 정도 성취를 보인 자는 여태껏 없었는데.
제법 훈련시키는 보람이 있는 제자였다.
특히나 박민호의 어깨를 찔러오는 공격이 생각보다 매섭다.
‘저 녀석은 여전히 왼쪽 어깨를 방어하지 않는군.’
오른손잡이여서 신경 쓰기 힘든걸까.
여태 몇 번을 말했어도 고쳐지지 않는 버릇이다.
보는 눈이 날카로운 파렌은 그 허점을 확실히 파악한 듯했다.
공격을 피하는 내내 그곳만 쳐다보고 있었으니.
“흐읍…….”
공격을 막으면서 드러난 박민호의 빈틈.
순간, 파렌의 눈이 번뜩인다.
시퍼런 검기가 서린 칼날은 크게 휘둘러지려 하고 있었다.
‘누구 하나 크게 다치겠군.’
아니면 둘 다던가.
재빨리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틈을 파고들었다.
콱!
“응? 형님??”
두 개의 검날을 맨손으로 움켜쥐었다.
살을 에는듯한 살기는 순식간에 사그러든다.
“그만. 이제 충분하다.”
“에이, 한참 재밌어지려는데요.”
“그래. 팔이 잘리면 참 재밌는 상황이 되겠지. 썩 보기 좋지 않겠지만.”
박민호는 금세 뾰루퉁한 얼굴이 되었다.
한창 불이 붙은 와중에 그만두려니, 꽤 아쉬운 기색이었다.
“뭐, 그럼 저는 이만 도윤이 일이나 도우러 가겠습니다.”
그는 투덜거림을 멈추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한마디 더 하면 오랜만에 본때를 보여 줄 생각이었는데.
나름대로 눈치는 빨랐다.
나는 바닥을 나뒹구는 파렌에게 다가갔다.
“허억……헉……”
“너무 많이 다쳤는데……당장 치료 마법을 걸어야겠어요.”
신연주는 파렌을 싸고돌며 안절부절못한다.
함께한 시간도 벌써 한 달이 넘어, 여러모로 정이 붙은 모양이었다.
“포션도, 마법도 안돼. 이 정도 고통쯤은 익숙해져야 한다.”
“에휴. 하여간 근접계 헌터들이란…….”
그녀는 할 말 많은 얼굴로 자리에서 비켜난다.
그제서야 파렌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몸을 일으켰다.
“……조금만 더 했으면 한 방 먹여 줄 수 있었습니다.”
“고작 저 녀석을 다치게 하겠다고 목을 걸 셈이냐.”
이래서 햇병아리들이란.
쓸데없이 호승심을 부리는 그를 향해 작게 혀를 찼다.
“네 삼촌이 도착했더군. 이제 곧 2차 관문이 시작될 거다.”
“2차 관문……백성들의 호의를 얻는 거였죠. 쉽지 않을 겁니다. 지금은 멈춰 있지만, 아직도 인간과 전쟁을 하기 바라는 수인족은 한둘이 아닙니다.”
“카이론이 왕의 자리를 차지한다면 전쟁을 하게 된다는 건가? 지금도 아마 바르시엔 대륙은 긴 전투로 엉망일 텐데.”
“네. 인간계에서 삼촌이 벌인 전쟁을 아버지께서 잠시 멈춰 놓으셨지만, 완전히 마무리된 것은 아니니까요.
그런 사정이 있었나.
지금 수인족은 전쟁 재개를 주장하는 측과 반대파로 나뉜 듯하다.
질끈, 입술을 깨문 파렌이 다시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한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안 됩니다. 이미 긴 싸움으로 수인족들은 힘겨운 상태입니다. 처음에야 그렇다 치더라도, 얻을 것도 없는 무의미한 전쟁을 이제 끝내야 합니다.”
그의 얼굴이 점차 어두워진다.
이쯤 되면 수왕의 자리 따위는 문제가 아니다.
사실상 이번 일에 수인족과 바르시엔 대륙 인간들의 미래가 걸려 있는 것이다.
‘어깨가 무겁겠군.’
고작 성인식도 치르지 못한 왕자가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큰 무게.
이제야 자존심마저 버린 채 나에게 찾아온 이유를 알 듯하다.
‘전쟁의 화신으로도 불렸던 내가 이제는 전쟁을 멈춰야 한다니.’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하지만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솔직히 2차 관문에는 큰 기대가 없습니다. 삼촌도 통과하긴 했지만, 저희는 1차 관문을 빠르게 통과해 얻은 점수가 클 테니-”
“왜 해 보지도 않고 포기를 하는 거지?”
나는 피식 웃으며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길거리는 여전히 수인족들의 목소리로 떠들썩하다.
파렌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들을 멍하니 쳐다본다.
“분명 한 달 전만 해도 이렇지 않았는데……?”
이래서 애는 가둬 놓고 키우면 안 된다는 건가.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변하고 있는지도 몰랐다니.
그동안 거리는커녕, 높은 담장 안에서 매일 같이 훈련에만 매진한 탓인 듯했다.
“파렌 왕자님……?”
“정말 파렌 왕자님이셔! 왕자님 정말 감사해요! 덕분에 마음껏 식량을 살 수 있게 되었어요!”
파렌을 알아본 수인족들이 우르르 달려든다.
그들은 연신 감사를 표시하며 사과니 간식 따위를 선물한다.
그제서야 얼떨떨한 표정이던 그도 서서히 얼굴이 밝아진다.
한창 기분 좋은 분위기가 이어지던 그때.
저 멀리서 강준하가 탐탁지 않은 듯한 얼굴로 다가온다.
미행을 하던 중 무슨 일이 생긴 듯했다.
“진 님. 잠깐 이쪽으로 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강준하가 우리를 광장으로 이끈다.
그곳에는 갑옷을 두른 수인족 기사들과 카이론 일행이 있었다.
한눈에 봐도 분위기는 무거웠다.
“파렌 왕자의 동료들은 모두 더러운 인간족임을 모르는가? 그들은 분명 왕자를 조종해 우리를 다시 노예로 만들게 분명하다. 수인족은 전쟁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뭘 하나 했는데, 카이론이 시민들을 모아놓고 개소리를 퍼붓고 있었다.
역시 투표를 앞두고 선거 유세가 빠지면 섭하긴 하지.
하지만 말투며 무기까지 든 채 눈을 부라리고 있는 기사들까지.
거의 협박에 가까운 연설이었다.
“확실히……카이론 님의 말에도 일리가 있어. 대장군님까지 함께하니 전쟁은 빠르게 끝날 테고.”
“그래도 역시 나는 평화로운 게…….”
“헉? 조용히 해! 지금 파렌 왕자님이 나눠 주신 돈을 받은 자들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몰라? 3차 관문에서는 분명 카이론 님이 승리하실 텐데, 지금부터 배신자로 찍히면 큰일이 날 거라고!”
말뿐이 아니라 이미 난폭한 행동도 하고 있었나.
상황이 너무나 예상했던대로 흘러간다.
궁지에 몰린 카이론이 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이런 건 재미가 없는데.’
쓸데없이 큰 포부를 지닌 자이니만큼, 다른 면모도 보여 주리라 생각했는데.
기대가 컸던 탓일까.
뻔한 상황에 점차 심드렁해진다.
“저쪽에서 바람잡이를 풀어놓은 모양입니다. 젊은이들을 주축으로, 전쟁을 해야 한다며 부추기는 자들이 몇 있다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는 협박과 폭력이 동반되었을 테고.”
“맞습니다. 아직은 소수이지만, 일주일 뒤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군요.”
돌아온 지도 얼마 안 되었지만 대강의 분위긴 파악한 모양이었다.
누가 봐도 불리하게 돌아가는 상황.
가만히 있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맞불 작전을 펼칠 돈은 없으니, 몸으로 때우려는군.”
무식하기 짝이 없는 방법이다.
하긴 오랫동안 인간의 노예였던 카이론이 무슨 재산이 있겠는가.
이짓거리라도 해야 2차 관문에서 한 표라도 얻을 터.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이었을지도.
“그야말로 공포 정치군요…….”
가만히 저들의 모습을 보던 파렌이 이를 간다.
죽어라 평화에 힘써도 결국은 힘 쎄고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주먹이 더욱 가까운 법이니까.”
대놓고 무력을 보이면 수인족들이 겁에 질리는 것은 당연지사.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단 하나였다.
나는 피식 웃으며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우리를 알아본 카이론의 눈초리가 더욱 사나워진다.
“벌써부터 인간의 꽁무니나 쫓아다니는 꼴이라니…….”
그는 첫 대화부터 시비를 털어댄다.
발끈한 파렌이 움직이기 전.
나는 그를 만류하고 앞으로 나섰다.
“전쟁이라. 그래, 전쟁은 이길 자신이 있고?”
대놓고 자존심을 긁는 말이 그는 바로 인상을 구긴다.
주변에는 이미 많은 구경꾼이 모여들어 보는 눈이 많다.
평소라면 정면으로 다투는 건 피했겠지만, 지금은 그로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연하오. 아슬란만 아니었다면, 진즉 승리로 이끌었을 터. 모든 인간의 무릎을 꿇리고도 남았을 것이오.”
“지금까지라면 그랬겠지.”
그에게 한 발자국 더 다가갔다.
극도로 좁혀진 거리에 곁을 지키던 대장군이 경계를 한다.
철컹!!
검은 이미 뽑아져 나온 상태.
조금만 더 가까이 오면 당장 베어 버리겠다는 무언의 신호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몸 안에 내재되어 있던 마력 일부분을 마기로 변환시켰다.
“윽!!!”
순식간에 칠흑같이 어두운 마기가 그들에게 쏘아진다.
묵직한 힘을 버티지 못한 자들이 하나둘 무릎을 꿇는다.
방금 전 카이론이 말한 상황과 비슷했다.
“인간의 무릎을 꿇리긴, 개뿔.”
바로 정면에서 집중적으로 마기를 받고 있는 카이론만큼은 아니지만, 수인족들 역시 이 정도 힘을 느끼지 못할 리가 없었다.
주변은 이제 쥐 죽은 듯 고요하다.
꿀꺽-
누군가 침 삼키는 소리조차 크게 들린다.
나는 피식 웃으며 대장군이 애써 붙들고 있는 검을 빼들었다.
“크윽…… 그건…….”
이제껏 무표정이던 그가 유난히도 동요한다.
전사에게 검은 자존심을 상징하는 법.
그걸 두눈 멀쩡히 뜨고 빼앗겼으니, 수치스러울 수밖에.
“나도 바르시엔 대륙 인간이야, 고생 좀 해 봐야 정신차리겠다는 입장이긴 하다만……”
그래도 여기에 내 수왕의 자리가 걸려있다면 상황이 다르지.
나는 손에 들고 있는 장검을 이리저리 살폈다.
훌륭한 장인이 제작했는지 한눈에 봐도 잘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아마 재질도 미스릴이나 아만다티움 정도 될 터.
하지만 내 힘에는 한낱 종잇장에 불과했다.
파삭!!
손아귀에 폭발할 듯한 마나를 감쌌다.
그러자 마력을 이겨 내지 못한 검이 산산조각나 버린다.
“헉!!! 대대로 이어진 대장군의 검이……!!”
군중들이 당황으로 수군거린다.
하지만 바로 눈앞에서 지켜보는 카이론 일행과 비교하면 침착한 수준.
격렬하게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며, 나는 천천히 입을 떼었다.
“전쟁? 원한다면 해 주지. 다만 다음에는 바르시엔 인간뿐이 아니라…….”
수많은 수인족의 시선이 몰린다.
수도 인원을 전부 다 끌어온 듯, 이미 주변은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했다.
“마족과 요정족, 정령족. 그리고 나까지 상대해야 할 거.”
이정도면 제대로 알아들었겠지.
나는 파렌과 강준하를 데리고 광장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일주일 뒤.
2차 관문이 끝났다.
결과는 압도적인 파렌의 승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