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60화
* * *
헌터들은 금세 돌아왔다.
손에는 웬 쪽지 하나를 들고서.
[나는 초대 수왕인 체르쿠반. 언젠가 이곳까지 도착할 훌륭한 모험가를 위해 남긴다.]
그 따위 것을 보물이랍시고 던져 놓다니.
쪽지를 받아들자마자 구겨 버린 건 당연지사였다.
어쨌든 성공적으로 던전을 통과했으니 첫 번째 관문은 통과.
두 번째 관문 역시 이미 나와 파렌이 밝혀 냈다.
남은 건 곧 돌아올 카이론 일행을 기다리며 2차 관문을 준비하는 것.
그리고 나에게는 그동안 필히 할 일이 있었다.
“검로가 흔들리잖나. 검을 만 번 휘둘러도, 모두 오차 없이 일정해야 한다.”
퍼억-!!!
“큭……!!”
벌써 거의 한 달째.
오늘도 파렌은 열렬히 훈련을 받는 중이다.
“……저러다 죽는 거 아니에요?”
“그런 건 전혀 걱정 마시죠. 형님의 훈련은 죽을 만큼 힘겹지만, 결코 죽게는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곁에서 구경하던 헌터들이 걱정스럽게 쳐다본다.
하지만 강준하와 박민호는 유난히 심드렁했다.
이미 이정도 훈련쯤은 한달이 아니라, 몇 년에 걸쳐 겪어봤기 때문이었다.
“잠도 재우지 않고 각종 포션에 회복 마법만 들이붓다니…… 분명 무리한 게 돌아올 텐데.”
“경험상 두 달까지는 괜찮았습니다. 특히나 저 정도 고등급 포션이면 세 달은 너끈하겠는데요.”
수다 떠는 걸 보니 심심한가 보군.
시간을 보니 슬슬 오후 일정을 소화할 시간이 되었다.
나는 앉아있는 헌터들 중 박민호를 향해 손가락을 까닥였다.
“엥? 슬슬 제 차례였던가요?”
그는 잔뜩 지쳐 있지만, 아직도 검을 놓지 않고 있는 파렌에게 다가갔다.
“이번에도 각오는 되어 있겠지?”
장난기 가득한 박민호의 말에 파렌이 말없이 고개를 까딱이며 인사한다.
눈빛은 잘 벼려진 칼날마냥 날카롭다.
고작 한 달 만에 치기 어린 소년같던 모습조차 바뀌었다.
이제는 한 명의 전사라 불려도 손색없는 정도.
매일 반복되는 훈련과 헌터들과의 전투가 만들어 낸 성과였다.
‘하지만 아직 부족해.’
S랭크 헌터와의 1:1전투는 이제 제법 따라온다.
적어도 날아오는 공격을 모조리 볼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아직 몸까지 따라 주지는 않는 모양이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공격의 흐름을 읽는 눈이 좋아, 꽤나 기대되는 제자였다.
“이번 전투는 2:1로 진행한다.”
“설마 또 강준하 길드장이랑…….”
“아니. 신연주와 함께.”
여전히 이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그녀를 불렀다.
마법사와 전사가 팀으로 함께하는 전투는, 그 어느 때보다 고역이다.
오늘은 평소보다 느끼는 것이 많을 터였다.
“저도 같이하는군요.”
그녀는 싱긋 웃으며 스태프를 고쳐 쥔다.
박민호 역시 준비 동작을 하며, 파렌을 죽을 때까지 몰아붙일 준비를 했다.
“진 헌터님? 말씀하신 조사 끝냈는데, 한번 확인하시겠습니까.”
아레스 소속의 길드원이 나를 조심스레 불러세운다.
훈련장에서 나와, 임시로 구매한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 거실에는 서류나 종이뭉치 따위가 너저분하게 깔려 있었다.
“우선 수도의 시민 인원은 이정도입니다. 각 위치도 표시해 두었습니다.”
“이미 이도윤 길드장님과 몇몇이 나가서 분위기도 만들고 있습니다.”
2차 관문, 백성들의 마음을 사는 것.
사실 말이 1차 다음의 관문이지, 이미 2차는 시작된 거나 마찬가지.
주어지는 시간도 고작 일주일밖에 없다.
그 뒤에는 무작위로 뽑힌 수인족 시민 천 명이 투표를 한다고.
‘무슨 수왕을 인기 투표로 뽑는 것도 아니고.’
참으로 원론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덕분에 계획을 바로 정할 수 있었다.
“슬슬 시작하지.”
“어떤 방식을 사용하실 겁니까?”
헌터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이번 관문만큼은 카이론의 일행이 더 유리하다.
아마 이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 염려하고 있는 거겠지.
파렌 왕자가 있다지만, 그 동료와 스승이 인간이다.
수인족이 꺼리다 못해 혐오하는 종족들이란 소리였다.
하지만 나는 수인족이고 마족이고 절대 거절하지 못하는 것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누구보다 많이.
“돈을 뿌려.”
“……예?? 잠깐, 제가 잘못 들은 게-”
“금이나 보석은 얼마든지 주지. 일단 닥치는 대로 뿌려. 최대한 공평하게.”
나는 인벤토리를 열어 금괴 따위를 쏟아 냈다.
금은보화는 순식간에 작은 산만큼 쌓인다.
그 눈부신 자태에 헌터들은 말문이 막힌 듯 벙찐 표정으로 쳐다보기만 한다.
“이……정도의 양이면…….”
“거대한 성 몇 채쯤은 살 정도지. 개인에게 각각 나눠준다면 인생역전할 수준까지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몇 년은 놀고먹어도 될 금액은 충분히 될 터.
하지만 나에게는 어린아이 간식 값에 불과하다.
이미 있는 재산도 상당한데, 슬슬 자리잡아 가는 블랙 마켓은 가만히 있어도 돈이 증식하는 수준이다.
심지어 이번 수인계에서는 꽤 쏠쏠한 수확도 있었고.
‘이깟 돈쯤이야.’
사실상 왕족의 재산을 시민에게 돌려주는 것과 마찬가지.
아깝기는커녕, 오랜만에 돈지랄할 생각에 흥미가 돋는다.
“……확실히 수인족들이 혹할 만하겠군요. 수왕이 무너지면서, 점점 먹고 살기도 힘들어지는 비율도 늘었다고 하니까요.”
“다양한 물건들도 사들여서, 금과 함께 뿌려. 그러면 경제도 활성화되겠지.”
물론 임시 방편일 뿐이겠지만, 이정도만 해도 충분하다.
헌터들은 얼떨떨한 얼굴로 금을 주워담는다.
얼굴을 보니 이래도 되나, 싶은 표정들이었다.
“뭐, 여기에 선거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건 맞습니다…….”
헌터들이 본격적인 일을 위해 나섰다.
북적이던 거실은 금세 텅 비어 버렸다.
잠시 소파에 앉아 서류를 쳐다보려는데, 뒤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린다.
“좋은 방법입니다. 환심을 사는데 돈만큼 적절한 건 없으니까요.”
강준하는 내 맞은편에 앉으며 주변을 정돈한다.
너저분한 환경이 깔끔한 성미에 안 맞는 듯했다.
“방금 카이론과 그 일행이 수도에 입성했다고 합니다.”
“빈손이라면 오지 않았을 테고, 관문을 모두 통과한 건가.”
“예. 모습을 보아하니 제법 고생 한 모양이더군요. 지금은 왕궁…… 아니, 호수로 향하고 있던데 가 보시겠습니까?”
창 밖으로 파렌을 흘깃 쳐다보았다.
그는 훈련을 빙자한 목숨을 건 전투 중이었다.
퍼억-!!
“큭!!”
“왕자님, 확실히 좀 빨라지셨네요. 전에는 아예 피하지도 못하더니.”
“바로 이어서 갑니다! <파이어 볼>!!”
쿠우웅!!
저렇게 열심히인데 같이 갈 순 없겠지.
나는 강준하와 함께 저택을 빠져나왔다.
왕궁이 있던 터로 가는 길.
텅 비어 있던 거리에는 어느새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도윤이 열심히 했나 보군.”
“수왕이 죽고 나서 뒤숭숭한 건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가만 두어도 분위기는 평상시로 돌아왔을 것입니다.”
맞는 소리이긴 했다.
하지만 이만큼 빠르게 변화시키긴 힘들었을 것이다.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몰라도 꽤 수완이 좋았다.
“이봐, 상점가 거리 이야기 들어봤어? 파렌 왕자님의 동료들이 물건을 아주 휩쓸어 간다던데.”
“뭐? 그쪽 상인들은 수지맞았네. 부럽군.”
“그뿐만이 아니야. 사간 물건들은 빈민층부터 나눠 주고 있대.”
지나가다 보니 헌터들의 소문이 들려온다.
딱 봐도 신나게 돈을 쓰고 다니는 듯했다.
덕분에 수인족 시민들은 축제마냥 들떠 있었다.
“역시 파렌 왕자님인가. 그분이 수왕이 되면 정말 좋겠어. 카이론 님은 너무 강압적이야. 아무리 인간들에게 잡혀 있던 노예를 해방해 주셨다지만, 이건 좀…….”
“쉿.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해? 아직 그분을 따르는 세력도 많다고.”
그들은 행여나 누가 들을까 사방을 살핀다.
카이론이 어지간히 겁을 주고 다닌 모양이었다.
‘2차 관문은 문제없겠군.’
아직 분위기가 우리 쪽으로 완전히 넘어오진 않았다지만, 그건 시간 문제일 터.
헌터들이 펑펑 써 대는 재물은 아직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곧 제대로 돈맛을 본다면 여론은 순식간에 바뀔 것이다.
“이……이게 대체…….”
“……꿈이라도 꾸고 있는 기분입니다.”
도착한 거대한 호수 주변.
저 멀리 카이론의 일행들이 보인다.
그들은 벙찐 얼굴로 사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뻥 뚫려서 보기 좋지 않은가.”
선선한 바람도 잘 들고 얼마나 좋은지.
수도 가운데에 떡하니 존재하던 답답한 왕궁보다야 훨씬 좋은 풍경이다.
하지만 그들은 졸지에 노숙자가 된 신세가 원망스러운지, 나를 어이없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당신이 여길 이렇게 만들었나?”
조금도 쉬지 못한 탓에, 그들은 모두 초췌한 몰골이다.
영구적인 상처를 입은 자들도 상당했다.
심지어 카이론조차 손가락 하나를 잃었다지.
하지만 기세만큼은 여전히 날카롭다.
마지막까지 남은 최정예다웠다.
“감히 수인족의 상징 같은 곳을…….”
몇 명이 나를 향해 이를 드러낸다.
명백한 적의가 느껴진다.
‘잘하면 덤벼들겠는데.’
나는 피식 웃으며 가까이에 있던 자의 어깨를 두드렸다.
물론 손에는 힘이 가득 실린 채였다.
“큭!!!”
그는 순식간에 가해지는 압력에 무릎을 꿇는다.
적대감이 가득했던 얼굴은 어느새 당황으로 가득 찬다.
“그래. 그렇게 내 앞에서는 항상 눈을 깔아라. 다시한번 그 따위 눈빛으로 쳐다보면, 당장 뽑아 버릴 테니.”
“……제길…….”
직접 목도한 압도적인 힘의 차이.
그에 카이론을 포함한 모두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래도 경고를 잊지는 않았는지, 나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는 않았다.
“자, 이제 다 돌아왔으니 2차 관문을 치뤄야 할 차례 아니던가. 느린 건 딱 질색이니 신전이나 가 보지 그래. 이딴데서 시간 쓰지 말고.”
“……우리 조카님은 이미 1차 관문을 끝냈나보군.”
카이론은 이를 으득, 갈며 일행에게 눈짓한다.
곧 그들은 신전에 얻은 물건들을 봉헌하러 떠났다.
이미 우리가 던전에서 얻은 종이 쪼가리와 파헤친 비밀을 말한 것처럼.
“이제부터 2차 관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겠군.”
“예. 저들이 일을 마치면 저희가 있는 곳으로도 원로회나 신관들이 찾아올 테니, 이만 돌아가시죠.”
“그래. 어차피 우리야 이미 계획을 진행중이니 저자들의 동태나 파악하고 보고해.”
“알겠습니다, 진 님.”
우리가 수도에 돈을 뿌리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면 어떤 반응을 보여 줄까.
예상되는 것이야 몇 가지 있다지만, 제발 그렇게 뻔한 행동은 피해 줬으면 했다.
허를 찌르는 사건이 벌어지는 건 언제나 흥미로웠으니까.
“부디 날 재밌게 해 줬으면 좋겠건만.”
“저는 그럼 저들의 뒤를 밟으러 가겠습니다.”
강준하가 가볍게 목례를 하고 사라진다.
나 역시 다시금 파렌이 있는 저택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