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159화 (159/200)

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59화

파렌은 멍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올린다.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하는 표정이었다.

“왕궁을 보기 싫다지 않았나. 그런데 이정도 크기면 수인계 끄트머리를 가지 않는 이상, 웬만하면 보일 테고. 결국은 없애야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바르시엔 대륙으로 넘어갈 순 없지 않은가. 남아있는 인간들이 당장 죽이겠다 달려들 텐데.”

하나같이 맞는 말에 그는 입을 꾹 다문다.

하지만 설득되는 와중에도, 눈동자는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답은 오직 하나야. 왕궁을 무너뜨리는 것.”

여전히 머뭇거리는 그에게 단호하게 말해 주었다.

고민이 길어 봤자 결과만 늦춰지는 법.

나는 파렌의 팔을 끌고 궁 밖으로 나갔다.

“이게 정말 최선일까요?”

그가 궁전을 쳐다보며 중얼거린다.

아직까지도 혼란스러운 듯했다.

“후회할지언정, 일단 저질러 놓는 것도 나쁘지 않지.”

특히나 지금처럼 생각이 복잡할 때에는.

무덤덤한 대답에 그는 마침내 결심한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스승님.”

드디어 집주인의 승낙이 떨어졌다.

이제는 철거반이 나설 차례.

나는 인벤토리를 뒤적여, 적절한 아티팩트를 찾아냈다.

[레비테이션의 반지[A급]: 최대 7시간동안 몸을 허공에 띄워 준다. 시전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 *최대 5인까지 사용 가능.]

반지를 사용하자 몸이 떠오른다.

거대한 궁전이 손바닥에 가려질 정도가 되었을쯤.

나는 함께 있는 파렌을 흘깃 돌아보았다.

“작별 인사는 필요 없나? 그래도 한평생 지낸 장소인데.”

“괜찮습니다. 이건 그저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에 불과하니까요.”

이제는 썩 마음에 드는 소리도 할 줄 아는 건가.

갑자기 성장한 계약자가 흡족스럽다.

나는 바로 생각해 두었던 스킬을 사용했다.

<정령신의 가호[L]:일주일에 한 번, 자연의 분노를 끌어다 쓸 수 있습니다. 불어넣은 마나의 양에 따라 파괴력이 달라집니다. (지진/홍수/폭풍/용암 중 효과를 고를 수 있습니다.)>

저번처럼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 생각은 없다.

나름대로 적절하다 생각하는 마나양을 끌어올렸다.

“<정령신의 가호>.”

[<정령신의 가호>를 발동합니다. 효과를 골라 주세요.(지진/홍수/폭풍/용암)]

이제는 선택할 시간이다.

나는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 앞에서 잠시 고민했다.

‘역시 용암인가? 아냐. 역시 깔끔하게 가는 게 나아.’

지옥의 아가리 같았던 그때의 광경이 문득 기억난다.

이번에는 보기 좋게 만드는 것도 좋을 터.

나는 우선 지진의 효과부터 선택했다.

쿠르르르릉-!!!

대지가 공기마저 쪼갤 듯 격렬하게 진동한다.

왕궁의 주변 땅은 종잇장마냥 갈래갈래 찢어졌다.

그리고 건물이 허물어지는건 순식간.

마치 사막에 빨려 들어가듯, 온갖 것들이 지하 깊숙한 곳으로 내려앉는다.

쿵!!!!!!

오 분쯤 지났을까.

남은 건 오직 기이하게 뻥 뚫려버린 구멍뿐.

무언가 있었던 흔적조차 사라져 있었다.

“이건…… 정말 대단하군요.”

잠자코 구경하던 파렌이 입을 떡하니 벌렸다.

박수라도 치고 싶은지 손은 계속 꼼질거린다.

나는 두 눈을 반짝이는 그를 보며, 마지막 마무리를 준비했다.

“<정령신의 가호>.”

이번에는 홍수였다.

청명했던 하늘은 금새 시꺼먼 먹구름으로 가득 찬다.

콰르르르륵-!!!

번쩍이는 천둥과 번개 속에서 거센 빗줄기가 쏟아져 내린다.

하늘에 구멍이 뚫렸다 해도 믿을 만큼의 양이었다.

하지만 빗물은 내가 의도한대로 방금 생긴 구멍의 안으로만 떨어졌다.

쏴아아아-!!

‘조절하는 방법은 이제 대충 알겠군.’

스킬이 점점 멎어간다.

왕궁이 있던 자리는 이제 거대한 호수가 생겨났다.

생각한 것보다 더 만족스러운 풍경이다.

“호수를 만들어 내다니…… 이정도라면 왕궁은 생각나지도 않겠군요.”

허공에서 내려오자 마주한 호수는 더욱 웅장하다.

파렌은 연신 감탄하며 주위를 둘러본다.

“모든 것이 땅에 묻혀 좀 아쉽지만요.”

“챙길 건 다 챙긴 것 아니었나.”

분명 전대 수왕의 일기를 품에 넣는 걸 보았다.

무너뜨리기 전에 충분한시간도 주었고.

모르긴 몰라도, 나름대로 소중하다 생각한 물건들은 주워담았으리라.

“사실 보물 창고는 아직 들려보지 않았거든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고작 재물 따위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새로운 시작이 펼쳐져 있는데요.”

‘그건 이미 내가 털었는데.’

빈털털이가 되었다는 소리를 저렇게 태평하게 말하는 놈도 처음이었다.

나는 여전히 해맑게 웃는 거지 왕자를 보며 작게 혀를 찼다.

“보물 창고는…… 그래. 네 마음이 편하다면 그걸로 되었다.”

“설마 몸뚱이 멀쩡한데 굶겠습니까?”

곱게만 자란 왕자가 뭘 알겠는가.

말하는 꼬라지를 보니 당장 굶게 생겼다.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을 터트렸다.

‘세상물정 모르는 녀석 같으니라고.’

떠나 기전에 몇 푼 쥐어 줘야겠군.

아무리 계약으로 이루어진 관계라지만, 파렌이 객사하는 것은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다.

특히나 그게 아사라면.

지이잉-

파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몸에 매달고 다니던 조그마한 구슬이 부르르 떨린다.

“응? 스승님, 어디서 진동 소리가…….”

“아, 이거 말인가.”

나는 구슬이 엮인 장신구를 들어올렸다.

단조로운 외관과는 다르게 꽤나 복잡한 마법이 걸려있는 아티팩트였다.

어찌되었든 주 기능은 통신을 주고받는 것에 불과하긴 했지만.

‘마침 적절할 때 연락이 왔군.’

바로 아티팩트를 작동시켰다.

그러자 박민호의 얼굴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파렌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본다.

“스승님과 함께 왔던 헌터군요. 설마 던전을 클리어했다는 연락인가요?”

“아니, 박민호는 다른 곳으로 보냈다.”

“예? 공략에 함께한 것이 아니었습니까?”

점점 파렌의 얼굴이 궁금증으로 가득 찬다.

나는 설명을 뒤로한 채 화면상의 박민호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형님. 말씀하신대로 카이론을 방해했습니다. 덕분에 아직도 첫번째 관문을 진행 중이고요. 헌데, 주신 아티팩트와 스크롤은 이미 거의 다 사용해버렸습니다.]

“그걸 벌써 다 썼다고?”

대체 얼마나 난리 피운 거지.

내가 넘겨준 물건들의 양은 소규모 전쟁쯤은 가벼이 치룰 정도였다.

[생각보다 동료가 많던데요. 거의 군대 수준이었습니다. 그래도 이제 열명 내외로 줄어들었으니, 숫자로는 비슷해졌네요.]

말하는 내내 박민호의 얼굴은 산뜻하다.

그동안 스트레스가 꽤나 있었는지, 이때다 싶어 마음껏 활개친 모양이었다.

[대부분 힘든 고난을 이기지 못하고 내부 분열이 나서, 뿔뿔이 흩어진 상태입니다.]

“그 정도로 오합지졸이었나.”

[듣자 하니 바르시엔 대륙에서 만나, 뜻을 함께한 놈들인 듯합니다. 충성을 바칠 정도는 아니라는 소리죠. 덕분에 쉬웠습니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화면을 슬쩍 돌린다.

카이론과 대장군이라던 자.

그리고 몇몇이 보인다.

과연 그의 말대로 온갖 고초를 겪은 몰골이었다.

[하지만 보아하니 두 번째 관문도 통과는 할 것 같습니다. 상당한 강자들로 이루어진 정예만 남았거든요. 물론 개고생은 할 테지만……]

아쉬운 듯이 박민호가 입맛을 다신다.

함정을 파 놓으며 훼방 놓는 것이 적성에 맞았던가.

슬슬 재미 들린 게 분명했다.

[이크, 잘못하면 들키겠군요. 그럼 전 나머지를 사용하고 곧 돌아가겠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결국 1차 관문에서 저지하지는 못하는군.

아무래도 적정선에서 조절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이정도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다.

꼴들을 보아하니 남은 자들이라고 몸상태가 멀쩡하진 않을 테니.

“……스승님?”

그때, 조용히 듣고만 있던 파렌이 슬그머니 나를 부른다.

목소리는 당황으로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설마 삼촌을 공격하신 겁니까?”

“공격이라…… 비슷하지.”

“……도전자 간의 전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3차 관문에서의 정식 결투까지는요. 알려지면 도전자 자격을 박탈당할 수도 있다구요…….”

이미 한번 설명을 들었던 내용이다.

혹여나 암살을 시도할 수도 있기에 만들어졌다던가.

수인계 역사상 지금까지 도전자는 한 명뿐이었기에, 사실상 사장된 규칙이었지만.

하지만 여기에는 가장 중요한 게 빠져 있었다.

“알다마다. 물론 금지되어 있겠지. 그게 ‘전투'라면 말이야.”

“예? 설마…….”

“가는 길마다 다리가 무너지고, 산사태가 일어나고. 아니면 누가 심어 놓은지도 모르는 폭탄을 밟는다던가? 살다 보면 그런 안 좋은 일이 연달아 터질 수도 있지. 카이론도 참 운이 나쁘군.”

들키지 않으면 범죄가 아니다.

특히나 내가 가볍게 쳐 놓은 ‘장난'은 목숨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운 나쁘면 팔다리 하나쯤은 불구가 될 수도 있겠지만.

뭐, 그쯤은 이미 관문 자체가 험한 임무이니 그들 나름대로 각오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건 너무…….”

파렌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한다.

내 기분이 상할까 눈치보는 기색이 역력했다.

“정정당당.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셈이군.”

뒷말은 듣지 않아도 대충 짐작 간다.

어린 놈이 으레 하는 생각이란 건 너무나 뻔했으니.

‘이 상황이 되어서까지도 명예 따위를 찾는 건가.’

정의롭지만, 어리석다.

그래도 그의 의견이 썩 기분 나쁘지는 않다.

세상에는 이런 녀석도 하나쯤은 있어야 살 만해질 테니까.

물론 그게 내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3차 관문은 도전자 간의 전투라지. 너, 그자를 이길 수 있겠나? 그것도 멀쩡한 상태인 놈을 상대로.”

파렌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제법 강하긴 했지만, 그뿐.

아직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애송이었다.

그런 녀석이 수왕까지 처치한 카이론을 이길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그건…….”

차가운 눈빛에 파렌이 움찔한다.

부끄러운 건 아는지 얼굴은 금세 새빨개졌다.

‘아직 가르쳐야 할 게 한가득이군.’

이래서 조력자 같은 명칭이 아니라 스승이었나.

그렇다고 굳이 탓할 생각은 없었다.

온실 속 화초로 자란 왕자에게 애초에 기대한 바도 없었으니.

이제부터는 내가 하기 나름이다.

충격은 이미 주었겠다, 나는 바로 다음 계획을 위해 운을 띄웠다.

“헌터들은 하루이틀이면 공략을 끝낼 거라 이미 연락 받았다. 다 네가 죽상을 하고 집무실에 처박혀 있을 때의 일이지.”

“……죄송합니다. 저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군요.”

그는 얼굴 들 낯도 없다는 듯 머리를 푹 숙인다.

서툴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사과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보아하니 카이론은 최소 일주일은 더 걸리겠군. 그전에 알아서 죽어주면 좋겠지만, 물론 그러지 않겠지?”

파렌은 크게 반성하는지 묵묵부답이다.

대답을 들을 생각은 없었으므로,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했다.

“그럼 그동안 최소한의 시간은 있다는 소리지. 파렌, 준비됐나?”

“……예? 준비라면…….”

당연히 지옥에서 구를 준비지.

나는 말없이 그를 향해 씨익 웃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