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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156화 (156/200)

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56화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무수히 많은 책장이었다.

빽빽이 꽂혀 있는 각종 책과 서류들은 오랜 세월 동안 쌓여 왔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수왕들의 비밀 서고쯤 되겠군.”

역시나.

이런 게 없으면 섭섭하지.

단서를 찾기에 이보다 적절한 장소는 없을 터.

파렌을 향해 눈짓을 주자, 그는 후다닥 어디론가 뛰어간다.

“저는 저쪽부터 찾아보겠습니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뒷모습만 봐도 경쾌함이 느껴진다.

벌써부터 지루해 하품을 해대는 나와는 정반대였다.

‘당분간 여기서 먹고 지내게 생겼군.’

벌써부터 책냄새에 질식할 정도다.

우선 가장 가까이에 있는 책을 꺼냈다.

주변 것들 중 제일 고급스러워 보이는 물건이었다.

제목은 <수인계의 고대 역사>.

보기만해도 지루한 제목이지만, 의외로 첫 장부터 흥미롭다.

[마계에는 마신, 정령계에는 정령신이 있다. 빈도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 왕들과 긴밀한 소통을 하는 신성한 존재들이다.]

[허나,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신은 왕과의 대화를 멈춰버렸다. 오직 수왕을 정하는 일방적인 신탁만 내려줄 뿐. 정녕 신은 수인족을 버렸는가?]

그 뒤로는 최초의 수왕이 나라를 건립한 내용들이었다.

그것도 직접 적어 내린 자서전 형식의.

‘흠? 이건 제법…….’

[……1차 관문은 신탁으로 내려온 임무 두 가지를 해내는 것, 2차 관문은 백성들의 마음을 사는 것, 마지막 3차 관문은 도전자 간의 명예로운 전투이다.]

대충 살펴보는데 관문에 대한 설명들이 나온다.

나중에 헌터들이 돌아오면 알려 줄 겸, 책의 두어장을 찢어 내려 했다.

움찔

“……뭐지? 이게 왜…….”

하지만 페이지는 흠집 하나 생기지 않는다.

어이가 없어 좀 더 힘을 가했지만, 책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설마 종이가 아니라 미스릴로 만들어지기라도 한 건가.

아니, 미스릴을 통으로 가공해도 내 악력에는 이겨내지 못한다.

‘고작 물건 주제에…….’

슬슬 오기가 생긴다.

인벤토리에서 폭렬의 페르아렌을 꺼냈다.

거의 닭 잡는데 드래곤 잡는 칼을 사용하는 셈이지만, 이쯤 되면 책의 내구성이 궁금해 잠을 못 이룰 지경이었다.

우우웅-

약간의 마나를 불어넣었다.

하지만 종이에는 약간의 흠집만 생길 뿐이다.

‘이걸 버텨?’

물론 아주 미약한 마력으로 이루어진 검기다.

허나 이정도만 되어도 왠만한 갑옷 하나쯤은 통째로 썰려 나가도 이상하지 않았다.

나는 결국 검에 상당한 마나를 털어 넣었다.

서걱!!!!

결국 종이가 베어지다 못해 책 자체가 조각나 버린다.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냈지만 내 얼굴은 완전히 일그러져 버렸다.

보호 마법이 걸려 있는 건 확실하다.

하나, 이정도면 거의 5서클의 마법.

고작 책 따위에 사용하기에는 지나치게 과하다.

책에 자아가 있다면, 왜 저에게 이런 마법을? 이라며 감격했을 것이다.

‘설마 여기 있는 모든 책이……?’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나는 바로 주변의 책들을 와르르 쏟아 내었다.

써겅!!!!

이번에는 마나를 담지 않았다.

하지만 수십권의 책이 순식간에 반토막나 버린다.

“이건 또 그냥 썰린단 말이지…….”

역시 모든 책에 보호 마법을 걸 수는 없는 노릇이지.

물끄러미 바닥에 놓인 책들을 보며 생각에 잠길쯤.

쓰레기더미 사이에서 파묻힌 책 하나가 눈에 띄인다.

마찬가지로 흠집 하나 없는 것이었다.

“<보물창고 목록>이라.”

확실히 마법까지 걸며 보호할 만한 물건이다.

베어진 책들은 그 정도로 중요한 것은 아닐 테고.

거기까지 생각을 마치자, 나는 보호 마법이 걸린 책들을 가지고 실험을 시작했다.

“스승님!! 여기 저희 아버지의 일기가…….”

화르륵-

[<업적:책 한 권을 1시간 동안 파괴하기>를 달성하였습니다.]

[새로운 칭호를 얻었습니다!

<책 고문자>: 책에는 입이 없다는걸 잊으셨나요? 불쌍한 책은 아무리 고문해도 비밀 기지를 말할 수 없습니다. 지혜-1%]

“이 무슨 개쓰레기 같은 칭호가 또…….”

지혜 스탯을 낮추는 능력이라니.

어차피 저따위 칭호를 착용하지도 않을 것이지만, 어처구니가 없다.

미간을 찌푸리며 불태우고 있던 책을 내동댕이쳤다.

“스승님……?”

파렌은 발 근처에 뒹구는 책을 멀뚱히 쳐다봤다.

이미 온갖 고초를 당해 누더기가 되어버린 상태였다.

“……이건 도대체……아니, 뭘 하신 겁니까?”

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어차피 곧 알게 될 텐데, 굳이 대답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나는 그가 품에 안고 있는 책을 향해 턱짓했다.

“그건 뭐지?”

“아! 이건 아버지께서 살아 생전에 쓰셨던 일기입니다! 아직 앞에만 살펴보았지만, 중요한 내용들이 있는 것 같기에 들고 왔습니다.”

그는 소중한듯 책 표지를 살며시 쓸어내린다.

아무래도 아버지의 유품 같은 느낌이라, 여러모로 마음이 가는 모양이었다.

“여기 내용을 보면, 이곳에 <왕족의 비사>라는 책이 존재하나 봅니다. 아마 이걸 찾으면 왕궁의 비밀에 접근할 수-”

타악!

파렌이 눈을 반짝이며 말하고 있는 도중, 나는 수왕의 일기를 낚아챘다.

그리고 한 시간 동안 책 고문에 동참해 주던 화염 아티팩트에 가져다 대었다.

화르르륵!!!

“아악!!!! 스승님!???”

귀청이 떨어질 듯한 비명소리가 들린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책을 앞뒤로 골고루 구웠다.

하지만 책은 붉게 달아오를 뿐, 잿더미로 변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것도 제법 중요한 책인가보군.”

다시 일기를 파렌에게 돌려주었다.

그는 황급히 책을 살핀다.

“관문에 대한 단서인데 이렇게…… 어? 멀쩡하네……?”

당연히 멀쩡하겠지.

책에 걸린 보호가 어떤 수준인지, 어느 정도까지 버틸 수 있는지.

그것만 알아보는데 걸린 시간이 한 시간이다.

희생당한 책들은 이미 수백 권이었고.

결국 나는 책에 걸린 마법에 대해 모두 파악해 냈다.

‘덜 중요한 책은 3서클, 그리고 최대 7서클의 보호 마법이라……’

그렇다면 왕궁에 숨겨진 비밀은 어느 정도일까.

모르긴 몰라도 6서클은 되어야 파헤치는 맛이 있을 것이다.

나는 바로 인벤토리에서 6서클짜리 화염마법이 적힌 스크롤을 수십 장 꺼냈다.

모두 크레아시론의 피와 땀, 눈물로 만들어진, 품질 하나는 믿을 만한 물건들이었다.

“꼬맹이 계약자?”

“네……?”

“인생 선배로서 조언해 줄 게 있다.”

“갑자기요? 그것도 이 타이밍에……?”

멍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는 나의 행동만 홀린 듯 쳐다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내 손에 들린 스크롤 더미겠지만.

“쌓인 과거는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더 큰 미래를 위해서는, 그 과거들을 청산해야 하는 법.”

이제는 들려오는 대답이 없다.

그저 입만 점점 떡 벌어질 뿐.

“앞으로의 역사는 네가 만들어가면 되는 거겠지.”

사실 장황한 개소리였다.

수천, 수만 년 동안 쌓아온 수왕들의 문서이다.

중요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까, 수인족들에게만.

인간인 나에게는 그저 태워 먹기 좋은 장작,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아니죠? 스승님? 제발 제가 생각하는 게 아니라고 말씀을…….”

찌이익-!!

“맞는데?”

수십 장의 스크롤을 한 번에 찢었다.

마나의 폭풍이 비밀 공간에 휘몰아친다.

폭발은 순식간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앙!!!!!!!!!!

“허어억!!!!”

숨 막힐 정도로 뜨거운 열기가 휩쓴다.

눈 앞의 풍경은 그야말로 불의 지옥.

사방에는 크고 작은 화염들이 넘실거렸다.

“역시 종이가 많아서 잘 타는군.”

파렌은 이미 말을 잃은 지 오래였다.

죽은 생선마냥 텅 빈 동공을 보아하니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꿈인지 생시인지도 파악도 안되는 모양이었다.

한 십 분쯤 지났을까.

주변은 이미 잿더미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마지막 스크롤을 찢었다.

휘잉-

바람 마법이 바닥의 재를 털어 낸다.

그것들은 곧 까마득히 높은 천장의 환풍구로 사라졌다.

“깔끔하군.”

화마가 할퀴고 간 흔적들 사이.

곳곳에는 책 몇 권이 덜렁 놓여 있다.

[<업적:책 9,999권 파괴하기>를 달성하였습니다.]

[새로운 칭호를 얻었습니다!

<책 학살자>: 죄 없는 책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나요? 당신은 책과 원수진 사람이 틀림없습니다.

지혜 -20%, 독서 능력 -50% *도서관에 출입 금지를 당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이놈의 시스템은……’

또다시 미친 칭호가 튀어 나왔나.

미간을 구긴 채 시스템 메시지를 구석으로 치웠다.

“으허억…….”

죄 없는 책들이 울부짖는 소리는 모르겠지만, 파렌이 우는 소리는 확실하게 들려온다.

그는 바닥에 주저앉아 넋 나간 부랑자마냥 텅 비어 버린 서고를 쳐다보고 있었다.

“쯧. 고작 이런 걸로 충격 받기는.”

“하지만, 하지만…… 수십대에 걸쳐온 수왕들의 책들이…….”

“고작 물건이 아니더냐. 그리고, 이 많은 책을 하나하나 살펴볼 생각이었나?”

그를 향해 차갑게 일갈했다.

그제서야 파렌의 눈빛이 서서히 돌아온다.

“……살펴본다니요?”

그러고보니 아직 말 하지 않았던가.

나는 책에 걸린 보호 마법에 대해 짧게 설명했다.

“중요한 책만 남는다라……확실히 괜찮은 방법이긴 합니다…….”

그는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책을 한 권씩 주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나 역시 제일 가까이에 놓인 책을 들어올렸다.

사실상 책이라고 말하기도 무안할 정도의 얇은 책자였다.

‘<도전자의 조건과 기록>이라. 그저 사자족이면 다 되는 것 아니었던가?’

무심하게 한 페이지를 넘겼다.

전통처럼 굳어져 사자족의 왕족들만 도전할 수 있는 수왕의 자리.

그리고 그 왕족 도전자들이 많았을 때 벌어진 일들.

수많은 활자에 머리가 아플쯤, 내 눈을 의심하게 하는 문장이 있었다.

[……결국 경쟁이 과해져 모든 도전자이자 소중한 자식들을 잃었다. 그제서야 나는 깨달은 것이다. 도전자는 한 명으로도 족하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다음 도전자인 손자들을 모두 가두었다. 단 한 명, 제일 강한 힘을 가진 공주를 제외하고.]

[후대의 수왕들이여. 부디 나의 실패를 똑똑히 기억하고 후회할 일은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도전자를…… 가뒀다고?’

결국은 수왕의 자리에 오를 한 명만 필요하니, 나머지는 제거했단 말이다.

얼토당토않은 소리였다.

다급히 다음 장을 넘기자, 그 뒤에는 후대 수왕들이 적어 내린 글들이 있었다.

[막내 아들을 제외한 나머지를 가두었다.]

[첫째를 ……]

그리고 마지막 수왕인, 아슬란이 적어 내린 문장.

[첫째인 파렌 왕자를 제외한 쌍둥이를 지하 감옥에 가둬 놓았다. 신이시여, 존재하시다면 제발 이들을 굽어 살피시길.]

“스승님, 총 열네 권이네요. 전 이것부터 읽어 볼 생각입니다.”

파렌이 양 손 가득 책들을 들고 온다.

그것들을 와르르 무너트리자, 그는 허망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파렌, 가야할 곳이 있다.”

“예? 갑자기 어딜…….”

“지하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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