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55화
“어디서 저런 시정잡배들만 모아 놓은 건지. 참으로 망측하오.”
거품 물고 쓰러진 동료를 추스리던 한 원로가 눈살을 찌푸린다.
옆에 있던 다른 귀족 원로는 크흠, 헛기침을 하며 주의를 돌렸다.
“파렌 왕자님. 다시 돌아 오시다니, 참으로 기쁩니다. 역시 아슬란 왕의 자랑스러운 아들이십니다.”
“……환영해 주니 고맙습니다.”
“그러나 저 인간……아니. 마왕을 스승으로 삼은 건 성급한 판단이셨습니다.”
그는 조용히 파렌의 귓가에 속삭인다.
하지만 아무리 작게 말한들 내 귀에 들리지 않을 리가.
‘대체 귀족이란 작자들의 입김이 왜 이렇게까지 센 것이지?’
아닌 게 아니라, 아까부터 계속 갖고 있던 생각이다.
특히 카이론이라는 자를 대하는 태도가 거슬렸다.
아무리 개차반인들 그도 아슬란의 피를 나눠 받은 왕족.
이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다.
“수인족들은 위아래도 없는 건가.”
콱-
속살거리던 놈의 머리 위에 달린 동물 귀를 움켜쥐었다.
기분 나쁘게 살랑거려서, 진작부터 신경 쓰이던 물건이었다.
“헉!! 대장로님!!”
“이, 이게 무슨 짓이오!!!!”
“그러는 네놈들은 무슨 짓이지. 왕자의 판단이 성급하니 뭐니 운운하다니. 그 시건방진 입을 찢어 줄까, 아니면 그런 생각을 하는 머리를 떼어 줄까.”
동공이 커진 잿빛 눈알에 시선을 맞췄다.
하지만 무려 두 가지나 주어진 선택지에도, 그놈은 차마 입을 떼지 못한다.
“왜 말이 없지? 둘 다 원하는 건가? 욕심이 많군. 그래도 내가 특별히 도와주겠다.”
농담은 아니었다.
이정도면 충분한 본보기로는 쓸 만할 터.
손을 직접 쓰려는 그때였다.
“잠깐만요!!!! 스승님!!”
파렌이 황급하게 내 팔을 부여잡았다.
인상을 찡그리자, 그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내젓는다.
“귀족의 정점인 원로들입니다! 지금 건드리면 귀찮은 일에 휘말리실 겁니다!! 모든 일이 끝난 뒤에 처리하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아니, 아예 말리려는 거 아니었소? 이게 후일까지 도모할 일이라니??”
“제가 어떻게 스승님이 하시는 일을 막습니까?”
파렌의 순진무구한 말이 이어진다.
결국 다른 한 명도 뒷목을 잡고 쓰러지는 시늉을 한다.
‘지금은 때가 아니긴 하지.’
그의 말대로 아직은 고작 1차 관문을 도전하는 상태.
신경 쓸 일들이 산더미처럼 남아 있다.
나는 잠시 그들에 대해 생각하다, 결국 특별히 기회를 주기로 결심했다.
“뒤지기 싫으면 다 꺼져.”
“큭……!!”
원로들은 자존심이 상한 모습이 역력하다.
하지만 발은 몸뚱이를 착실하게 밖으로 옮기고 있었다.
아직 죽기는 싫은 모양이었다.
“아, 그리고 시끄러운 건 질색이니 궁은 다 비워.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얼씬하지 못하게.”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표정들을 보아하니 눈치껏 일은 잘 처리해 놓을 것 같았다.
“……착하던 왕자가 벌써 마왕에게 물들었나보오.”
착한 게 아니라 호구 같았던 거겠지.
꼴들을 보아하니 파렌을 쥐락펴락하며 재미 좀 보았던 듯하다.
타악-
끝까지 궁시렁거리던 원로들이 문을 닫고 사라진다.
흥미진진하게 상황을 지켜보던 헌터들이 그제서야 나에게 다가온다.
“형님. 상황이 엄청 재밌게 돌아가는데요?”
“재미야 있지. 그 개같은 관문 내용만 아니었다면.”
갈기갈기 찢긴 편지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신연주는 파렌과 같이 조각 맞추기를 하는 중이었다.
“확실히 난해하네요. 저희보다는 왕자님이 잘 아실 것 같은 내용들이고요.”
파렌에게 시선이 모인다.
그는 허둥대다 진지하게 얼굴을 고쳤다.
“……하나는 알 것 같지만…….”
“일단 예상되는 정보부터 말해.”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원래 관문에 대한 임무는 애매모호한 편입니다. 삼촌이 가져간 것도 그럴 테고요. 그런데……어둡고 깊숙한 곳이라던 장소 말입니다.”
그는 품 안을 뒤적거리더니 지도를 꺼낸다.
그리고 제일 구석에 있는 곳을 가리켰다.
“여기는 심연의 동굴입니다. 고대부터 있던 곳으로, 수인계에서 제일 넓은 던전이죠. 그 끝을 본 자는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초반부까지 갔다온 자들에 의하면, 그 깊이는 짐작할 수 없을 정도라 합니다.”
심연의 동굴이라.
이보다 더 어울리는 장소가 없다는 건 확실하다.
하나, 이름부터 맡아지는 냄새가 있었다.
개고생의 냄새였다.
“확실하군요.”
강준하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다른 헌터들도 여기 말고는 없다, 라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문제는 ‘가장 화려하고 영광스러운 장소에 묻힌 진실을 파헤쳐라'. 이것인데…….”
파렌은 이것만큼은 자신 없다는 듯 중얼거린다.
그때 문득 생기는 의문 하나.
나는 머리를 쥐어짜내는 파렌에게 바로 질문을 던졌다.
“이 왕궁은 얼마나 오래 되었지?”
“예? 갑자기 왕궁이요? 아……제가 알기로만 몇천 년입니다. 초대 수왕이 건설하고 대대로 수왕들이 머물렀던, 역사적인 곳이죠. ”
그는 뿌듯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누가 들으면 본인이 세운 궁인줄 알 정도였다.
“그 정도로 자랑스러운 장소면, 영광스럽기도 하겠군?”
“네. 모든 수인족의 자랑…… 헉. 설마?”
거기까지 말한 파렌이 놀란 토끼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름대로 스스로 고민해 보던 헌터들도 슬슬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화려한 것도 솔직히 이 왕궁만 한 곳이 없죠.”
“맞습니다. 기둥 하나까지 보석이 박혀 있던데요.”
가장 화려하고, 영광스러운 곳.
그리고 숨겨진 진실 따위가 있을 만한 장소.
“이정도면 그럴싸한 곳 아니던가.”
“맞습니다. 궁에는 왕족만 이용할 수 있는 비밀 장소도 한두 개가 아니고…… 스승님의 말을 들으니 왕궁밖에는 생각나지 않을 정도입니다.”
파렌이 밝은 미소로 대답한다.
얼른 도전자에게 주어진 임무를 진행하고 싶어 안달이 난 모양새였다.
“그럼 궁전부터? 아니면 동굴부터 갈까요? 두 군데 모두 가려면 서둘러야-”
“아니. 우리는 찢어져서 행동한다.”
“예에????”
언제 시간 아깝게 두 장소를 쑤시고 다닌단 말인가.
이러다 탑 안에서 몇달을 헤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특히나 끝이 없다는 동굴은 듣기만해도 징글맞다.
나는 기꺼이 모험의 즐거움을 헌터들에게 양보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심연의 동굴은 만만치 않은 곳입니다……각종 함정과 간간히 나오는 몬스터들은 상당히 위험하다며 유명합니다. 이미 수인족 모험가들도 발길을 끊은 지 오래고요.”
그 와중에 동굴형 던전의 특성상, 분명 길도 미친듯이 헤매게 되겠지.
들으면 들을 수록 나와 상극이었다.
‘다 때려 부수는 건 자신 있지만, 무너지면 보물은 물 건너가니 그렇게 하지도 못하겠고.’
마침 이런 일에 제격인 헌터도 있었다.
나는 멀뚱거리며 서 있던 홍현민을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그러자 그는 재깍 내 곁에 다가온다.
“모험가 길드장 출신이었던가? 네가 이번 탐사의 대장을 맡아라.”
“헛. 내가…… 아니, 제가요?”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화들짝 놀란다.
하지만 아무리 지옥의 주둥아리로 유명한 홍현민이라도 국내 랭커에, 5대 길드의 길드장이다.
그가 가진 실력은 진짜라는 소리였다.
‘아스티란에서도 내 귀에 몇 번 들려올 정도였지. 이런 던전쯤은 오히려 즐길 테고.’
거절의 말은 들려오지 않는다.
내 예상처럼 표정은 자신만만하게 변했다.
“그 정도 쯤이야. 맡겨 두라고요.”
“……확실히 천상 길드장이 제격이긴 하겠군요.”
강준하가 차갑게 식은 눈으로 홍현민을 훑어본다.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만, 아무래도 마음이 받아주지 않는 듯했다.
“맨날 게이트만 돌다가 던전이라니! 오랜만에 모험하는 기분 나는데요?”
“아무래도 오래 걸릴 테니 준비는 철저히 하는게 좋겠군요. 일단 다들 가진 포션부터 파악해 보죠.”
헌터들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서로의 머리를 맞댄다.
음식을 더 가져오겠다며 궁에 있는 부엌으로 떠나는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파렌은 도통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정말로 위험한 곳입니다. 한 명이라도 아쉬우니 다같이 모여서 탐사해도 이상하지 않은데…….”
얼굴에 물음표가 가득하다.
대체 이 해맑음은 뭐냐는 뜻이었다.
“걱정은 이해한다만. 이들도 호락호락하지는 않은 놈들이야.”
“그 정도로 강한 자들이란 말입니까?”
어리둥절한 표정의 그의 머리를 푹 눌러주었다.
“그래. 강하지.”
귀환 후에도 한국의 헌터들은 끊임없이 성장했다.
이미 월드 랭커의 자리까지 넘보는 자들이 수십인데, 정예 중에 정예를 모아 놓은 파티가 이정도로 난관에 빠질 리가.
이들이라면 믿을 수 있었다.
“진 님. 준비는 얼추 되었습니다. 이제는 지도에 적힌 텔레포트 좌표로 출발하려 합니다.”
확실히 이런 일에는 이골이 난 헌터들이라, 상황은 금세 정리되었다.
이도윤이 들뜬 얼굴로 출발을 알린다.
허락한다는 의미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헌터들이 우르르 궁전을 빠져나간다.
텅 비어 버린 공간은 나와 파렌뿐.
나는 여전히 혼란스러워 보이는 그의 등짝을 가볍게 후려쳤다.
“윽!! 스승님??”
“뭘 멍하게 있는 거냐. 뒤져봐야 할 곳이 한두 군데도 아닐 텐데.”
“……맞습니다. 스승님의 동료들에게 큰 빚을 졌으니, 저도 놀고 있을 수는 없죠.”
그제서야 파렌은 정신을 차렸는지 눈을 반짝인다.
그리고 왕좌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드르륵-
벽 어느 한곳을 누르자 비밀 공간이 나타난다.
파렌은 주저없이 그곳으로 들어갔다.
“보물창고, 지하 감옥, 집무실…… 찾아가 봐야 할 곳이 너무 많군요.”
그는 이빨을 드러내며 빙그레 웃는다.
마음을 먹었으면, 행동은 빨리.
꾸물거리지 않는 게 마음에 든다.
“그럼 집무실부터 가지.”
나 역시 그를 향해 씨익 웃으며 비밀 통로로 들어섰다.
안쪽은 미로처럼 복잡하다.
하지만 파렌은 익숙하게 길을 찾았다.
“집무실은 여기입니다. 어렸을 때에는 자주 오갔었는데…….”
그는 씁쓸하게 중얼거린다.
아무래도 과거 생각이 나기는 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단호하게 그를 다잡았다.
“그만. 주접 떨 시간 없다.”
“주접…… 큼.”
효과가 있긴 했는지 그는 바로 주인이 사라진 책상을 살핀다.
그곳에서 꺼낸 서류들을 쳐다보기도 하는 등, 꽤나 열심히다.
그러나 모두 탐탁치 않은 모습이었다.
“그런 곳에 비밀 같은 걸 떡하니 둘리가.”
“네? 그럼 책장을 찾아볼까요?”
말없이 거대한 집무실을 살펴보았다.
벽과 바닥까지 샅샅이 뒤져보니 드디어 원하는 게 나온다.
“내가 소싯적에 온갖 나라를 돌아다니며 정복 전쟁을 했을 때 말이다.”
중얼거리는 내 말에 파렌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대체 무얼 하느냐는 반응이었다.
“궁전을 털 때 제일 먼저 뒤져 보는게 집무실이었지. 그리고…… 왕의 집무실에는 꼭 이 런게 있더군.”
미세하게 마나가 흘러나오는 곳.
그곳을 향해 강하게 주먹을 휘둘렀다.
쾅!!!!!!
우르르-
“헉!!!”
“하여간 이놈의 왕들은 생각하는 게 다 똑같단 말이지. 뻔한 놈들.”
지루할 만큼 상투적이다.
벽이 무너지자 가려져 있던 단단한 철문이 튀어나온다.
나는 그 문을 우그러뜨렸다.
“제대로 찾았군.”
대대로 수왕이 드나들었던 비밀 공간.
확실히 이곳에는 수상쩍은 물건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