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54화
“이자가 네 스승이라고?”
그는 날카로운 눈초리로 나를 천천히 살펴본다.
로브로 모습을 가린 헌터들에게도 관심을 주는 건 마찬가지다.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동료인지 가늠해 보는 듯했다.
“더러운 인간의 냄새가 나.”
사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개새끼였나.
다른 건 몰라도 후각 하나만은 뛰어났다.
판단을 마친 놈은 인상을 와락 구긴다.
심지어 몇 발자국 물러서기까지 했다.
‘수인족들이 인간을 싫어하는 건 알지만, 이건 정도가 심하군.’
마치 역병이 걸린 환자를 대하기라도 하는 반응이다.
하지만 파렌은 그럴줄 알았다는듯 담담하다.
“혐오스러운 인간들과 어울리다니…… 수인족의 수치로다.”
“제 소중한 동료들입니다.”
“못 본 사이에 언제 이렇게 어리석게 변했는지. 그래. 다 좋다. 하나 동료는 그렇다 치더라도, 도전자의 스승은 명예로운 자리. 수인족이 아닌 자가 그 역할을 맡을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지 않는가.”
그는 비웃으며 파렌을 노려본다.
급하니까 아무나 데려왔구나, 라는 눈빛이었다.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그게 사실이라면 애초에 이 도전은 성립할 수 없다.
“그런 조건이 붙어 있었나.”
파렌을 향해 묻자, 그는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크게 동요하지는 않는다.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는 듯했다.
“어거지로 밀어붙일 생각인가? 내 조카는 아직도 아기로군. 조금만 더 도전을 기다려 달라 울지나 않았으면 좋겠군.”
비꼬는 말투도 일품이다.
저 독설에 수왕이 복장이 터져 죽었다고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파렌은 차마 대답하지도 못하고 입술만 깨문다.
그리고 그때.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더니, 노크 소리가 이어진다.
똑똑-
“주군. 시간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시작인가…….”
그는 전율에 떠는 목소리로 문을 바라보았다.
곧 화려한 복장의 수인족 몇 명이 이곳으로 들어선다.
그 뒤에는 전사로 보이는 자들도 우르르 따라오고 있었다.
“앞에는 귀족 원로들입니다. 도전의 시작을 정식으로 알리는 역할을 하러 온 거죠. 그리고…… 뒤에는 삼촌의 수하들이겠군요.”
“수하들? 그보다는 양아치 무리같은데.”
어디서 긁어모았는지 하나같이 험악한 인상들이다.
얼굴에 흉터 한두 개는 기본이요, 몇 명은 눈알 하나는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안대까지 쓰고 있다.
척 봐도 밑바닥에서 굴러온 인생들로 보였다.
“주군! 부름을 받고 왔습니다!”
“으하하!! 여기가 말로만 듣던 그 왕궁입니까?”
그들을 지켜보는 귀족들이 인상을 찌푸린다.
거친 행동에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앞서 만났던 시드란이나 대장군과는 결이 다르다.
하지만 저 꼬라지들이 어딘가 매우 익숙하게 느껴진다.
“용병대 형님들이 기억나는데요.”
잠자코 있던 박민호가 작게 속삭인다.
추억에 젖어 있는 목소리였다.
‘……그러고 보니.’
용병대 시절의 내 부하들도 어지간히 개차반이었지.
갑자기 옛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저놈도 어지간히 험난한 생을 살았나 보군.’
저런 놈들과 어울리기는 쉽지 않다.
성격 버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갑자기 삼촌이란 자에게 동질감이 든다.
“고귀한 왕궁에 저런 하급 수인족들이 발을 들이다니.”
원로 한 명이 탐탁지 않은 모양인지 중얼거렸다.
하지만 할 일은 하겠다는 듯, 중앙에 자리를 잡고 들고 있던 막대기를 들어올려 내리친다.
쿠웅-
“모두 들으시오. 지금부터 비어 있는 수왕의 자리를 놓고, 도전자를 받겠소. 지고한 왕을 차지하고 싶은 자는 앞으로 나오시오.”
주변은 숨 막힐 듯한 정적으로 가득 찬다.
곧 시작될 도전에 파렌은 침을 꿀꺽 삼켰다.
“오랜만이오, 늙은이.”
“……카이론.”
“아슬란 밑에 있는 동안은 살기 좋았던가 보오? 당장 대지의 품으로 돌아가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인데, 아직도 외관은 번드르르하니.”
제일 먼저 앞으로 나선 건 역시나 그놈이었다.
비꼬는 말에 원로들의 표정이 삽시간에 어두워진다.
알만했다.
사이가 보통이기는커녕, 그와 귀족들의 사이는 원수에 가까웠으므로.
카이론이라 불린 저자가 왕이 된다면 당장에 피바람이 몰아칠 것이다.
“예의를 차리시오!!”
“원로들이야말로 예의를 차리는 게 좋을 텐데. 앞으로 내가 수왕이 되면 곤란하지 않겠소?”
카이론은 그렇게 말하며 주변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대장군이 여전히 감정 없는 차가운 얼굴로 천천히 걸어 나온다.
“대장군…… 아슬란 왕을 섬겨야 하는 그대가 카이론에게 붙다니.”
“정확히는 왕이 아니라 왕족을 섬기던 자였으니 나를 따른다 해도 이상할 건 없지. 그리고, 잡소리 할 시간에 할 일이나 이만 마치는 게 어떠한가.”
“……건방진.”
맞는 말을 하는 카이론에게 원로들은 결국 백기를 올렸다.
큼큼, 헛기침을 하던 그들은 못마땅한 얼굴로
“도전자 카이론은 들으시오. 왕위를 차지하기 위한 길은 험난한 바. 고난을 함께하고 그대를 이끌어줄 스승을 정하시오.”
“대장군 쿠르베가 내 스승이지.”
카이론은 송곳니를 드러내며 씨익 웃는다.
그러나 자신만만한 표정을 마주하는 파렌은 결국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예상하긴 했지만 결국…….”
“강한 자는 맞지만, 그리 낙심할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대장군 휘하의 수하들은 하나같이 수인계를 지탱하는 자들입니다. 충성심도 강하니, 아마 그들도 삼촌의 뒤를 따르게 될 겁니다.”
군대도 파렌의 편은 될 수 없다는 건가.
저 양아치 무리도 그렇고.
확실히 불리한 상태로 보이긴 했다.
그러니까, 정말 단순한 숫자로만 따졌을 때만.
“그깟 놈들 수천, 수만이 덤벼도 상관없다.”
싸움의 기본은 기선 제압이다.
벌써부터 기죽어 있는 파렌이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당당하게 마족의 계약을 요구해 올 정도로 깡다구가 있는 놈이다.
내가 사람을 잘못 봤을 리가 없었다.
“예? 잠깐…… 스승님!”
파렌을 앞으로 떠밀었다.
그를 바라보는 원로들의 눈에는 이채가 돈다.
“역시. 왕자님도 도전하실 생각이었군요.”
카이론을 향해 시종일관 시비를 걸어대던 말투는 따스하게 변했다.
태도는 손자를 대하는 할아버지와 비슷하다.
“도전자 파렌. 그대의 스승은 누구입니까?”
“이분입니다.”
파렌은 재빨리 나를 옆에 세운다.
원로들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간다.
꽤나 혼란스러워 보였다.
“이 자는…… 인간으로 보입니다만.”
“맞습니다.”
당황스런 반응에도 파렌은 꿋꿋하다.
재밌다는 듯 지켜보던 카이론이 결국 피식 비웃는다.
“스승님, 혹시 전에 아버지께 받은 팔찌 기억하십니까?”
뜬금없는 팔찌 이야기는 왜 꺼내는 거지.
우선 의문을 뒤로한 채, 인벤토리를 뒤져보았다.
다행히 금빛의 물건은 금세 눈에 띄었다.
“이것 말인가?”
“헉!! 이…… 이건!! 수왕에게만 대대로 내려오는 팔찌……?”
원로들은 경악하며 내 손에 들린 팔찌를 요리조리 살핀다.
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대 수왕이 인정한 분이군. 특히나 이 정도면 수인족 전체가 은혜를 갚아야 하는 수준일 터. 비록 이종족이지만, 도전자의 스승 자격은 충분하오.”
“……그 고루한 전통에 부합하는 자격 말이지. 조카님이 생각보다 더 대단한 스승을 모셔왔나 보군.”
흡족한 미소를 띠우던 늙은 원로가 작게 헛기침을 한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귀족이 편지 봉투 몇 개를 상자에서 조심스럽게 꺼낸다.
“이제 도전자들에게 1차 관문이 대해 알려 주겠소. 우선 카이론과 그의 스승인 대장군 쿠르베는 받들라.”
두 개의 편지 봉투가 그들 손에 주어진다.
그리고 다음은 파렌의 차례.
원로는 인자한 미소를 띠운 채 나머지 편지 봉투 두 개를 들어올렸다.
“왕자 파렌과 그의 스승…… 잠깐. 그대의 신분과 이름은 무엇이오?”
참 빨리도 물어본다.
일 처리가 어설프다 못해 어처구니가 없는 수준이었다.
‘신분이야 하도 많아서 탈이다만…….’
나는 긴장한 듯한 파렌을 슥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작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진. 아스티란의 귀환자다.”
“그렇군. 진이라…… 응?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
“그리고 마왕이자 요정왕. 정령왕이지.”
순식간에 정적이 내려앉는다.
모두가 입을 떡 벌리고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건 파렌도 마찬가지였다.
기절할 듯한 낯빛의 그를 툭, 치자 비명소리가 튀어나온다.
“거기까지 밝히란 뜻은 아니었는데요!!??”
“안다. 쯧. 왕자라는 놈이 담 작기는.”
아마도 파렌이 의도한 건 어디 변방에 있는 헌터 나부랭이 정도의 신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밝혀질 일.
순서 따위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지금 알려지는걸 꺼림칙하게 생각하는건 알겠다만.’
안다고 해서 그걸 이해까지 해 줄 필요는 없을 터.
나는 넘어갈 것처럼 숨을 몰아쉬는 파렌의 어깨를 꾹 누른 채, 카이론에게 시선을 던졌다.
“……수왕에 도전하는 자리에 다른 왕이 끼어들다니.”
역시나 적대적인 눈빛이 쏟아진다.
동시에 어이없다는 반응도 함께였다.
마치 치트키를 쓰는 게이머를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하긴, 애들 축구 놀이에 갑자기 프로 축구 선수가 끼어들면 누구라도 비슷한 반응일 것이다.
“카이론이라고 했던가? 그러게 사회생활 좀 잘해 보지 그랬나.”
겸사겸사 인맥도 좀 넓히고.
그랬다면 파렌처럼 아는 왕 한두 명쯤은 생겼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나저나 정말 일을 대충하는군.’
원로들은 여전히 편지 봉투를 들고 멍하니 나만 쳐다보고 있다.
누가 보면 여기 구경하러 온 작태다.
휙-
“헛!!”
꾸물거리는 꼬라지들을 더 이상 지켜보기 힘들다.
나는 바로 편지 봉투 두 개를 빼앗아 들었다.
“관문에 적힌 건 이건가.”
“그건 지금 보는 게 아니라-”
“한가하게 네놈들의 순서에 맞춰 줄 생각 없다.”
찌익, 소리와 함께 금박으로 장식된 봉투가 찢어진다.
수왕이 되는 1차 관문이라.
대체 뭐가 쓰여있기에 이토록 무게를 잡고 있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가장 어둡고 깊숙한 곳에 있는 보물을 가져와라?”
하지만 그곳에 쓰인 문장은 딱 한 줄.
아무리 뒤집어보고 샅샅이 쳐다보아도 다른 글은 없다.
이게 다라고?
아니겠지. 분명 편지 두 장이 있어야만 이어지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설마하는 마음을 애써 숨긴 채, 다음 봉투를 확인했다.
“가장 화려하고 영광스러운…… X발.”
쫘아악-
편지들을 찢어발겼다.
원로들은 마치 본인들의 몸과 마음이 찢어진 것처럼, 거품 물고 뒤로 넘어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저…… 저! 신전에게 직접 받아온……억-.”
쿠당탕!
결국 심약한 한 놈이 쓰러진다.
그러자 황급히 쓰레기들을 줍고 있던 파렌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스승님. 원래 이런 겁니다…… 관문에 대한 내용은 항상 애매모호하게 내려온다고요.”
“……으하하!!!!!”
어디선가 호쾌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배까지 잡고 있는 카이론이었다.
한참을 웃던 그는 편지 봉투를 잡아든 채 수하들에게 눈짓했다.
“조카님이 재미있는 스승을 데려왔군. 하지만 나도 쉬이 물러날 생각은 없어. 피차 바쁠 텐데 그럼 이만.”
카이론은 파렌을 향해 몇 마디 하더니 문밖을 나선다.
우르르 몇십 명의 부하들이 뒤따르자 북적거리던 공간은 조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