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53화
끊임없이 나불대는 놈이 단번에 입을 다문다.
정확히 말하자면 주둥이가 터져버려 놀릴 힘이 없다는 게 맞겠지만.
역시 말보다는 주먹이 빠르다.
“쯧. 저럴 줄 알았다.”
뒤에서 구경하던 홍현민이 모기만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의 말에 모두 당연하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억…… 억…….”
그래도 맷집이 있어 보이더니, 단번에 기절까진 하지 않았던가.
그는 넋 나간 얼굴로 알 수 없는 말을 웅얼댄다.
그때마다 이빨 몇개가 우르르 빠져나왔다.
“수하인데, 그래서?”
“그러니까…… 정식으로 도전자가 되기 전에 싸우는 건 금지되어 있는…….”
“싸우다니, 섭섭한 소리를. 이건 평범한 대화지.”
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성벽에 깊숙이 처박힌 놈에게 다가갔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그놈은 나를 오롯이 쳐다본다.
눈동자는 공포로 물들어 있다.
이제야 맘에 드는 눈빛이었다.
“……대화요???”
파렌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중얼거린다.
마치 꿈이라도 꾸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래. 주먹으로 하는, 물리적인 대화.”
콰아아앙-!!!!!!!
마지막 주먹을 내질렀다.
확실히 덩치가 큰 만큼 손 맛이 좋았다.
와르르르-
그가 기대어 있던 성벽 한쪽이 결국 무너져 내린다.
시드란은 여전히 움직임 하나 없이 조용했다.
벽돌 이불을 덮더니 잠이라도 자고 싶은 모양이었다.
“이정도면 개 같은 소리들은 지껄이지 못하겠군.”
가볍게 손을 털었다.
정령왕들을 상대하면서 느낀 바가 있다.
미친 놈에게는 매가 약이라는 것이었다.
역시 선조는 틀리지 않았다.
고대부터 내려온 만병통치약은 종족을 막론하고 통했다.
“저……왕자님? 이분들은……?”
옆에서 구경꾼마냥 쳐다보던 경비원들이 황급히 다가온다.
조심스러운 질문에, 파렌은 얼떨떨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나를 수왕으로 만들어 주실 분들이지.”
“과연…….”
그들은 파렌과 우리를 번갈아 가며 쳐다본다.
말없이 고개까지 끄덕이는 표정은 사뭇 진지하다.
어린애를 물가에 내놓은 심정으로 바라보던 얼굴은 어느새 지워진 지 오래.
경비병들은 천천히 발걸음을 움직인다.
그리고 잠시 후.
굳게 닫혀 있던 성문이 열렸다.
어린 왕자를 믿어 보겠다는, 무언의 신호였다.
“……고맙군.”
그들의 심정을 읽은 파렌이 활짝 웃는다.
어딘가 후련해 보이는 미소였다.
양 옆에 도열해 있던 경비병들은 고개를 푹 숙인다.
“부디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모두를 위해서요.”
파렌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문 안으로 들어선다.
왕궁으로 향하기 위함이었다.
“잠깐.”
출발하기 전.
아직 챙겨야 할 것이 있었다.
나는 공략대를 불러 세우고 무너진 성벽 쪽으로 다가갔다.
아직도 사경을, 아니 꿈을 헤매고 있는 놈의 방향이었다.
“예? 아니, 설마…….”
내 행동을 짐작한 파렌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든다.
헌터들도 수근거리기는 마찬가지.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벽돌을 헤집었다.
그리고 침을 질질 흘리는 시드란을 끄집어내 줄로 묶었다.
“빈손으로 갈 수는 있나.”
남의 집을 방문하려면 음료라도 사 들고 가야하는 법.
그게 예의이고 도리였다.
“그렇죠…….”
멍하니 서있는 이도윤에게 줄의 끄트머리를 쥐어 주었다.
그는 싫은 내색없이 순순히 받아든다.
“그럼 정말로 출발하죠…….”
잔뜩 지친 듯한 파렌이 다시 발걸음을 떼었다.
그를 따라 성문을 통과하니 거대한 도로가 나타난다.
그곳에는 대충 보기에도 공 꽤나 들였으리라 짐작되는 네모 반듯한 돌이 길게 깔려 있다.
분명 수많은 주민들이 오갔을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인적은커녕, 개미새끼 한 마리 찾아볼 수 없다.
오직 중무장한 채 돌아다니는 병사 몇 뿐.
“완전 텅 비어 있군.”
그렇다고 수도를 떠난 것은 아니다.
지금도 굳게 닫힌 창문 틈새로는 따가운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
“……두려워하는 거겠죠. 지금의 삼촌은 아무도 상대할 수 없으니까.”
파렌이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경비병들도 그렇고, 백성들과 썩 사이가 나쁜 왕자는 아니었던 모양.
어깨가 유난히 무거워 보인다.
왕족이라지만 어린 수인족에게는 버티기 힘든 상황일 것이다.
특히나 지금처럼 세상에 홀로 남겨진 기분일 때는.
“아무도라니. 감히 나를 무시하는 것이냐?”
축 쳐져 있는 그에게 가볍게 핀잔을 주었다.
시작하기도 전이다.
벌써부터 패배감에 젖어 있기는 이르다 못해, 멍청한 일이었다.
지금 본인이 계약한 존재가 누군지 알기나 하는건지.
나는 내 앞까지 굴러들어온 수왕의 자리를 걷어찰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맞습니다. 스승님이 있는데 질 리가 없지요.”
그의 눈이 다시 반짝거린다.
신뢰로 가득 찬 눈동자였다.
“하긴. 진 헌터님이 어떤 사람인데.”
동조하는 헌터들의 말이 이어진다.
파렌은 이제서야 완전히 자신감을 찾았다.
비로소 왕자다운 모습이었다.
“잠깐! 멈춰라. 여기는 왕궁-”
“감히 나를 몰라보다니. 나는 사자족의 왕자, 파렌이다.”
잠깐이나마 정신교육 시킨 보람이 있다.
파렌은 도착한 왕궁의 입구에서도 시종일관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삼촌이라는 자의 부하로 보이는 경비병이 오히려 당황할 정도였다.
“허??”
박력에 놀란 경비병들이 엉거주춤하게 서 있다.
문을 열 생각은 없어 보였다.
‘쯧. 본업에 충실하지 못하기는.’
“비켜.”
콰앙-!!!!
문을 가볍게 발로 찼다.
순식간에 화려했던 성문은 조각난 고철덩어리로 변해 버렸다.
“미……미친…….”
벙찐 경비병들이 멍하니 우리를 쳐다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잔해를 밟고 왕궁 안으로 들어섰다.
“이럴 줄 알았다. 그러게 진작 문 열지.”
“실례합니다~”
이후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굳게 막힌 문.
그리고 도통 일하지 않는 문지기들.
하나같이 게으르기 짝이 없다.
쾅!!!
콰아앙-!!!
‘대체 문이 몇 개나 있는 거지.’
뭔 놈의 성이 걷는 족족 크고 작은 문들이 가로막는다.
이정도면 인테리어 업자를 사형시켜도 할 말이 없을 지경.
나는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은 채, 발로 다음 문을 걷어찼다.
콰앙!!!
“여기는 무도회장인가 봐요.”
“확실히 양식이 독특하네요. 바르시엔 대륙의 문양인가? 아스티란과는 많이 달라요.”
헌터들은 그때마다 등장하는 왕궁의 모습을 재밌다는 듯 구경한다.
파렌은 그저 멍한 눈으로 내 손에 질질 끌려 다닌다.
점점 화려한 궁은 폐허가 되어갔다.
“침입자들이여!! 멈춰라!!!!”
역시나 막아서지 않으면 섭섭하지.
수십의 수인족들이 달려 나왔다.
각자 손에는 무기를 꼬나 쥔 채였다.
하지만 차마 덤벼들지는 못한다.
그저 멀리서 겁먹은 목소리로 나불거릴 뿐.
그야말로 입만 산 놈들이었다.
“멈추긴, 개뿔.”
피식 웃으며 다음 문을 걷어차려 할 때였다.
계속 멍하니 있던 파렌이 다급히 정신을 차리고 나를 붙잡는다.
잡힌 옷깃을 쳐다보자, 그는 황급히 손을 떼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문은 안됩니다!! 수왕만 드나들 수 있다는 제왕의 문이니까요!”
제왕의 문이라.
흘깃 앞에 놓인 문을 쳐다보았다.
확실히 여태껏 때려 부셨던 문들과는 다르게 유난히 고상한 느낌이다.
천천히 훑어보는 그때.
옆의 문이 달칵, 소리를 내며 열렸다.
“파렌 왕자님이시군요.”
나긋나긋한 목소리.
그러나 목소리의 주인에게서는 무시못할 마나가 느껴진다.
“……칸 대장군. 당신도 삼촌을 따르기로 결정한 겁니까.”
파렌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적으로 돌리기에는 껄끄러운 자인 듯했다.
“들어오시죠. 주군께서 기다리십니다.”
할 말을 마친 수인족이 다시 문 안쪽으로 사라진다.
슬쩍 비친 샛노란 눈동자는 감정 한 톨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차갑다.
하지만 파렌을 바라보는 시선에 순간 약간의 염려가 스쳐 지나간다.
‘동요하고 있군.’
마치 일부러 거리를 두는 모양새였다.
“……어떻게 대장군마저. 제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삼촌이 기존 세력까지 확장한 모양입니다.”
중얼거리는 꼬맹이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든다.
보통 사이인 것 같지는 않았지만, 예상보다 더욱 믿음을 주던 자인 듯하다.
“그럼 제 형제까지 살해한 자가 여태껏 놀고만 있었겠나.”
세상에 영원한 동료가 어디있던가.
이럴 때에는 정말 세상물정 모르는 왕자다웠다.
작게 핀잔을 주고, 열려 있는 문으로 들어섰다.
“파렌의 동료들인가.”
으르렁 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시선을 옮긴 곳에는 거대한 왕좌에 기댄 자가 있었다.
‘확실히 제법이군.’
흉포한 기세가 넘실거린다.
전대 수왕과 비슷한 분위기다.
하나 그보다는 좀 더 정제되지 않은, 그야말로 날것의 힘이 느껴진다.
“감히 왕좌에 앉다니!”
“곧 내 것이 될 텐데, 순서야 중요치 않지.”
놈은 피식 웃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늘어뜨려진 새까만 머리카락이 마른 몸을 뒤덮는다.
그 모습이 사자족이라기 보다는, 늘씬한 표범에 가깝게 느껴진다.
“……시드란?”
우리에게 다가오던 그가 멈칫한다.
날카로운 눈빛이 완전히 맛이 가 버린 곰새끼와 파렌을 번갈아 보았다.
“아직 도전은 시작도 하지 않았거늘…….”
놈이 서서히 마력을 끌어올린다.
가뜩이나 포악한 기운이 더욱 거칠게 흔들렸다.
“으윽…….”
“내 수하를 건들고도 무사할 줄 알았나.”
마나는 그대로 꼬맹이에게 쏟아진다.
방문 선물이 마음에 차지 않았나.
기껏 챙겨왔는데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래도 사람 성의라는 것이 있는데, 이토록 손님 대접이 개차반일 줄이야.
예의라고는 눈 씻어도 찾아볼 수 없는 새끼였다.
“헉! 진 님, 파렌 왕자가……!”
지켜보던 헌터들이 호들갑을 떨기 시작한다.
나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저 정도로 죽지는 않는다만.”
그래도 내 계약자이니 챙기는 시늉이라도 해야겠지.
눈에는 눈, 마력에는 마력인가.
나 역시 마나를 끌어올려 쏟아 내었다.
우당탕!!!
“크윽!!!!”
볼썽사납게 그자가 바닥을 나뒹군다.
입가에는 작은 핏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잔뜩 구겨진 얼굴과는 다르게 몸은 곧장 일으킨다.
곧 찢어 죽일 듯한 시선이 나에게 쏘아졌다.
“……너는?”
“파렌의 스승이지.”
나는 파렌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래도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기에 다른 손으로 옆구리를 찔렀다.
“컥!!!”
너무 강하게 눌렀나.
상처는 또다시 아물지 못하고 약간의 피가 배어 나오기 시작한다.
파렌의 얼굴은 울상이 되었다.
자연스레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쯧. 계약 관계인 거 티 내나.’
웃어, 임마. 작게 소근거렸다.
그제서야 꼬맹이는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린다.
“네……! 맞습니다! 제 스승님이십니다!!”
흡족한 맞장구였다.
그러나 삼촌이라는 작자의 눈빛은 점점 짜게 식어간다.
마치 우연히 길을 가다 삥 뜯기는 조카를 마주친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