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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152화 (152/200)

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52화

그는 얼떨떨한 얼굴로 이마를 더듬는다.

“……다 된 겁니까?”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영혼이 담긴 구슬을 인벤토리에 던져 넣었다.

그걸 쳐다보는 파렌의 표정은 침울하다.

모든 게 끝나고 나서야 본인의 처지를 실감한 모양이었다.

“그래, 꼬마 계약자. 이제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군. 싫든 좋든 한 배를 탄 사이이니.”

“그건 상관없습니다만, 지금은 아닙니다. 우선 수인계로 가야 합니다. 왕좌의 도전자로 등록할 수 있는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 출발해도 아슬아슬하겠군요.”

“수인계에 가는 방법은? 쉽지는 않을 텐데. 그건 왕 고유의 권한이야.”

불가능하지는 않다지만, 방법은 까다로울 것이다.

타 차원계는 뒷간 드나들듯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차원문을 열 수 있는 왕이라면 모를까.

“괜찮습니다. 인간인 스승님이라면, 그리고 지금 상황이라면 가능합니다.”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어두웠던 얼굴은 어느새 지워진 상태.

큰 일을 앞두고 마음을 단단히 먹은 듯했다.

“다음 <검은 탑>은 수인계와 통하니까요.”

타이밍 한번 좋군.

그야말로 신이 도운 수준이다.

“아까 저를 데려왔던 스승님의 수하들도 데려가면 도움이 될 겁니다. 스승은 한 명뿐이지만, 동료는 몇 명이든 상관없으니까요.”

바라던 바였다.

그렇지 않아도 소규모 인원으로라도 <검은 탑>을 공략할 계획이었으니.

지금 어느정도 정리가 된 길드만 데려가도 충분히 도움이 될 것이다.

“동료라…… 너를 따르는 세력은 얼마나 있지?”

수왕을 공격할 정도면 상대측도 준비는 만만치 않을 터.

숫자는 많을수록 좋았다.

하지만 파렌의 표정은 다시금 점점 어두워진다.

“……없습니다.”

“개소리를 당당하게 하는군.”

어처구니가 없다.

왕자란 놈이 쥐뿔도 없을 줄이야.

거의 일면식도 없는 나를 찾아온 데에도 이런 이유가 어느정도 섞였을 것이다.

질게 뻔한 왕자를 따를 세력은 없을 테니까.

“……죄송합니다.”

그는 벌게진 얼굴로 시선을 내리깐다.

본인도 부끄러운 건 아는 듯했다.

어차피 기대조차 없었다.

파렌은 무일푼 거지 왕자나 다름없을 테니까.

하나 나와 그는 다르다.

나는 왕의 자리를 위해 모든 것이 준비된 사람이었다.

“준비할 게 아주 많겠군.”

벌컥-

문을 열었다.

밖에는 강준하와 이도윤이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향해 손을 까딱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자연스레 질문이 이어진다.

하지만 대답할 여유는 없었다.

파렌의 말에 따르면, 상황이 제법 긴박하긴 했으므로.

“설명은 나중에.”

몇 가지 처리할 사항을 일러주었다.

그들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흩어진다.

아마도 한두시간정도면 모든 준비가 끝날 터였다.

“이제 출발만 하면 되는 겁니까?”

“아직. 딱 하나가 남았지.”

그의 의아한 얼굴을 뒤로한 채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수신인은 박신우였다.

‘지금도 이리저리 정신없다 했었나.’

협회는 국내에서 현재 바쁜 걸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상태다.

듣기로는 연이은 철야로 몇명 쓰러지기도 했다고.

하지만 내 알 바는 아니었다.

[또 무슨 일로 연락을……]

핸드폰 너머로 긴 한숨소리가 들린다.

초췌한 모습이 그려질 정도로 지쳐 있는 목소리였다.

“<검은 탑>좀 가야겠는데. 지금 당장.”

잠잠하다.

통화가 끊겼나 싶어 확인해 보려는 찰나.

[……큭……]

서러움을 참는 듯한 박신우의 나직한 신음 소리가 이어졌다.

* * *

[<검은 탑> 61층에 입장하셨습니다.]

[61층부터 70층까지 연계 퀘스트 <수왕의 시험>이 진행됩니다.]

오랜만의 <검은 탑>이다.

이번에도 연계 퀘스트를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른다.

하지만 주변은 아직 한치 앞도 살필 수 없는 어둠으로 가득하다.

[현재 수왕의 자리가 공석입니다. <수왕의 시험>퀘스트를 진행할 수 없습니다.]

[수왕에 오르는 자가 생길때까지 <검은 탑> 61층을 봉쇄합니다.]

[오류! 해당 에피소드와 플레이어간의 관계성 확인 중……]

“어차피 저 수인족이 아니었다면 탑은 오를 수 없었겠군요.”

이도윤이 허리춤의 검을 매만지며 중얼거린다.

탑을 처음 공략하는 탓에, 잔뜩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 귀찮아질 뻔했군.”

차라리 잘된 일인 건가.

자칫하다간 시간을 날려먹을 뻔했다.

[도전자(사자족 왕자 파렌)과 진 플레이어가 제자-스승 관계로 정상적으로 등록되었습니다. 이후 퀘스트는 <수왕에 도전하는 자들>로 변경됩니다.]

[61~70층 퀘스트 <수왕에 도전하는 자들>: 쫓겨난 사자족의 왕자, 파렌이 수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도우세요.]

연달아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른다.

칠흑같던 어둠은 서서히 걷힌다.

곧 주변 풍경은 지평선까지 보이는 드넓은 평원으로 변했다.

“……다행히 제가 아는 장소로 도착했군요. 멀지 않은 곳에 왕궁이 있습니다.”

파렌은 씁쓸한 표정으로 한쪽을 쳐다본다.

시선의 끄트머리에는 많은 건물들이 모인 도시가 있었다.

한눈에 봐도 규모를 짐작하기 힘들만큼 커다란 곳이었다.

“텔레포트를 쓸까요?”

나를 따라온 신연주가 스태프를 들어올린다.

하지만 자신만만한 말투는 곧 의기소침하게 변했다.

“……다른 건 되는 것 같은데, 이동 마법만은 사용할 수가 없네요.”

“수인족의 수도 주변은 텔레포트가 불가능합니다. 걸어가시죠.”

다행히 거리는 그닥 멀지 않았다.

파렌은 왕궁이 있는 방향으로 앞장섰다.

뒤에는 몇명의 헌터들이 도란거리며 따라온다.

분위기는 꽤 화기애애하다.

점점 죽상이 되가는 파렌과는 정반대였다.

“그나저나 수왕의 자리를 이런 식으로 넘겨도 상관없겠나.”

이제는 자세한 설명을 들을 때였다.

나는 우선 내심 궁금했던 질문부터 던졌다.

“……전혀 상관없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그자-”

으득-

말하다 말고 이를 악무는 소리가 들린다.

생각만해도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듯 보였다.

‘대체 어떤 사연이기에?’

이정도면 아무리 남을 신경 쓰지 않는 나라도 관심이 생긴다.

왕좌는 그렇다 치더라도, 아비의 영혼을 나에게 넘기며 계약할 정도이다.

그 마음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아니, 제 삼촌이 수왕이 되는 것만 막을 수 있다면……뭐든 좋습니다. 악마에게 제 영혼을 넘길지언정.”

아무렴 한낱 악마보다는 마왕과의 계약이 낫겠지.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가.

“처음 일이 닥쳤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난 건, 아이러니하게도 스승님이었습니다. 여태껏 본 강자 중에서도 제일 으뜸인 분이시니까요. 마왕이라는 사실을 들은 뒤로는 더욱 확신했죠. 이건 다시없을 기회라는 것을.”

그는 묻지도 않은 정보를 술술 뱉는다.

말 한마디에는 분노와 좌절, 슬픔. 온갖 감정이 느껴졌다.

“……다 왔군요. 여기부터는 저희 수도입니다. 왕궁이 있는 곳이죠.”

이야기를 하던 중,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파렌은 굳게 닫혀 있는 성문 앞에 선다.

얼굴을 가리던 로브는 치워 버린 채였다.

“멈춰!! 신분을 밝…… 잠깐, 파렌 왕자님????”

양 옆에 서있던 경비병들이 그를 알아보고 당황한다.

그리고 서둘러 다가오더니, 뒤따라오던 헌터들을 흘깃 쳐다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안절부절못하는 모양새였다.

“대체 왜 돌아오셨습니까??”

타박하는 말투다.

일개 경비병이 왕자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안에는 걱정이 가득하다.

그 마음을 읽은 파렌이 쓰게 웃어 보인다.

“수인족의 왕자인 내가 어딜 간단 말이냐.”

“……도망치셨어야지요. 아주 멀리.”

경비병들은 파렌에게 말을 하면서도 연신 주변을 살핀다.

혹여나 누가 볼까 염려하는 느낌이었다.

“동료들을 데려온 걸 보니, 왕좌에 도전하실 생각이십니까?”

“당연히. 그건 왕족의 권리이다.”

“……분명 패배할 겁니다. 그리고 죽게 되겠지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멀리 떠나세요. 차라리 목숨을 부지하는 편이 좋습니다.”

“절대 그리하지는 않을 것이다.”

도망가라. 포기하라.

끝없는 권유가 쏟아진다.

하지만 파렌은 단호했다.

“절대 안 됩니다!! 다시 한번 생각-”

“아니, 이게 누구신가. 우리 왕자님이 아니던가.”

“……제길…… 늦었군요.”

어디선가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듣기만해도 재수가 없어지는 말투였다.

그에 경비원들은 뒤로 물러나며 표정을 무뚝뚝하게 고친다.

하지만 눈에는 숨길 수 없는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진즉 꼬리를 내리고 도망간 줄 알았는데?”

높은 성벽에서 커다란 인영이 뛰어내린다.

덩치에 맞지 않는 가벼운 착지였다.

누군지는 몰라도 상당한 강자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시드란.”

“주제 파악은 좀 하는 줄 알았더니, 내 오판이었군. 꼴에 도전자랍시고 동료들도 모아오고. 그런데…….”

곰을 닮은 놈이 우리를 슬쩍 훑어본다.

전부 로브를 쓰고 있는 탓에, 정체를 알아볼 수는 없을 터.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순식간에 판단을 내린다.

그야말로 성급한 행동이었다.

“분명 별 볼 일 없는 작자들이겠군. 심지어 몇 명 되지도 않고. 하긴, 쫓겨난 왕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 봤자 이정도가 최선인가.”

얼굴에는 비웃는 미소가 가득하다.

당연히 공략대는 얼이 나가버렸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대충 봐도 ‘이 미친 곰새끼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말 조심하십시오. 그런 소리를 들을 분들이 아닙니다.”

“크하하하!!!!!!!!! 말 조심하라? 재밌군! 정말 재밌어!!”

파렌은 우리 눈치를 살피며 발끈한다.

그러나 제대로 미쳐버린 놈에게 그런 소리가 통할 리가 만무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한가지.

나는 시드란이라는 놈의 앞으로 다가갔다.

“오호? 꼴에 자존심을 세우려는 건가.”

상황 판단이 안 되는 건가.

어이가 없을 정도로 여유롭다.

우두둑-

말없이 손을 풀었다.

그에 뒤에 있던 헌터들이 움찔거린다.

“하…… 결국 이렇게 되네요.”

“이정도면 많이 참은 거지.”

수근거리는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그제서야 내 행동을 짐작한 파렌이 다급하게 나를 말리려 했다.

“잠깐, 안 됩니다!!! 시드란은 삼촌의 수하-”

퍼억-!!!!! 쿠당탕-

“꿱!!!!!!!!!!”

“……수하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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