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51화
“혹시 그 수인족과 정말 아는 사이이십니까?”
통화 내용을 듣고 있던 이도윤이 눈에 띄게 당황한다.
말투에는 약간의 걱정도 섞여 있었다.
“아는 사이긴 하다만, 한 번만 마주친 사이지.”
“정말 다행입니다. 유럽의 귀환자들은 수인족들을 정말 싫어하거든요. 지금은 어쩔 수 없지만, 가능한 빠르게 돌려보내세요. 데리고 있다간 귀찮은 일에 휘말리실 겁니다.”
친한 사이일까 봐 염려했나.
확실히 수인계는 다른 차원계과 상황이 조금 달랐다.
다른 대륙도 침략을 받은 건 마찬가지만, 그쪽은 더 상황이 심각했다고 들었다.
왕국들은 물론이고 작은 마을도 전쟁에서 피해갈 수 없었다고 했던가.
아마 바르시엔 대륙 출신의 유럽 귀환자들의 복수심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완전히 대륙이 파괴되었다고 했던가. 자업자득이지.”
“……그건 맞지만요.”
바르시엔 대륙에 머무르던 수인족은 거의 노예로 부려졌다.
대우는 당연히 형편없는 수준.
수왕이 인간에게 복수하겠다 날뛰었던 것도 이해가 될 정도였다.
‘<예언>이 없어도 그들이 멸망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모두가 쉬쉬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진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수인족에 대한 차별이 전쟁의 시발점이었다는 것.
실제로 타차원의 귀환자들은 유럽의 귀환자들을 껄끄러워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같은 피해자라며 편들어 주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으니.
“어쨌든 헌터들이 진 님을 눈치보고 있는 상황이라지만, 노리는 자가 많을…… 아, 왔나 보군요.”
재차 강조하던 이도윤이 통신구를 물끄러미 본다.
길드에 도착했다는 연락인 듯했다.
사무실을 정리하고 한 십여 분쯤 지났을까.
문이 벌컥 열리고 몇명이 우르르 들어온다.
“너희 정말 그자의 수하들이 맞아?? 수상한데??”
여전히 앳된 목소리가 날카롭게 울린다.
잔뜩 경계하는 느낌이었다.
오면서도 난리를 쳐 놨는지, 강준하와 아레스 길드원들의 낯빛이 어둡다.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아레스 길드원들은 황급히 문을 닫고 돌아간다.
걸음은 터덜거리는게, 어지간히도 지친 모습이었다.
“진 님. 데리고 왔습니다.”
“진 님? 정말 그분이라고??”
로브를 쓴 소년이 황급히 주위를 둘러본다.
그러더니 곧 소파에 앉은 나를 발견하고 재빠르게 뛰어왔다.
“스승님!!!”
……뭐?
순간 얼어붙은 듯한 정적이 사무실을 감싼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 발치에 꿇어앉는다.
“스승님, 파렌이 인사드립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잘못 들은 게 아니었나.
그놈의 스승이라는 미친 단어가 정확히 내 귀에 파고든다.
가출하려는 이성을 부여잡고 그를 면밀히 살펴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어이없게도 신뢰가 가득하다.
정말로 내가 스승이라 굳게 믿기라도 하는 것마냥.
“난 너 같은 제자 둔 적 없다만.”
“예? 하지만 분명 그때…….”
미간을 찌푸린 채 그때의 기억을 회상했다.
그러고보니 비슷한 소리를 들었던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건 일방적인 요청에 불과했을 뿐.
나는 결단코 털 달린 귀 따위가 달린 제자를 허락한 적이 없었다.
“그래. 그런 말을 했었지. 허나 내가 승낙한다고 하지는 않았다.”
“그렇긴 했죠…… 하지만 사자족이 한번 마음먹은 일을 무를 수는 없는 법. 저는 스승님을 포기할 생각이 없습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줄 수 있으십니까?”
“내 제자가 된다 해도 나만큼 강해지기는 어려울 텐데. 잘 알고 있지 않나? 고작 스승의 자리 따위에 연연하는 이유를 모르겠군.”
“……제발 부탁입니다.”
이제 그는 애원하기 시작한다.
떨리는 눈동자에는 나에 대한 존경뿐 아니라 불안함이 얼핏 엿보인다.
힘이 고파 가르침을 청하는 모습이라고 보기엔, 어딘가 이상했다.
‘무언가 더 있군.’
절박함을 숨기지 못하는 그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몸을 둘러싼 로브는 물론이고 얼핏 드러난 손도 거칠기 짝이 없다.
수인족 왕자의 행색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내쫓을까요?”
강준하가 무심한 눈동자로 파렌을 흘깃 바라본다.
스스로 나가지 않겠다면 직접 멱살을 잡아 던져버릴 기세였다.
“아직. 고작 애송이 주제에 꿍꿍이를 숨기는 모습이 우스우니, 더 두고 보지.”
“꿍꿍이라고 할 것까지는…….”
녀석은 입술을 강하게 깨물며 고개를 푹 숙인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확실히 찔리는 구석이 있는 모습이었다.
“훌찌럭-”
순간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근원지는 이도윤이었다.
그는 벌게진 코와 눈시울로 연신 휴지를 뜯어대고 있었다.
‘설마 비슷한 신세처럼 여겨서 동정이라도 하는 건가.’
정말 가지가지 하는구나.
어이없는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강준하도 차갑게 식은 눈동자인 건 마찬가지.
반대로 파렌은 은근 감동받은 얼굴로 이도윤과 나를 번갈아 쳐다본다.
“마음 같아서는 내쫓고 싶지만, 훌쩍…… 말씀대로 뭔가 있는 것 같으니 이야기라도 한번, 킁!”
시선이 몰리자 그는 황급히 변명하듯 말을 내뱉는다.
하지만 결국 문장은 완벽히 끝나지 못했다.
“들어보는게 어떻겠, 에취!!!!!”
그가 쥐고 있던 휴지 뭉치가 파렌의 머리 위로 턱하고 떨어진다.
잠시 사무실에는 정적이 흘렀다.
“……고양이 알러지가 있어서.”
그래. 사자도 고양이과이긴 했지.
수인족도 그런 범주에 속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모두 나가.”
축객령을 내렸다.
정말로 파렌의 입을 열게 하기 위해서는 이대로는 안된다.
아무래도 둘만 있는 게 속내를 털어 내기는 좋다.
강준하와 이도윤이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특히나 이도윤의 발걸음은 날아갈 듯 성급했다.
어지간히 알러지가 심한지 거의 화생방 훈련을 버티는 얼굴이었다.
달칵-
조심스레 문이 닫힌다.
동시에 내 앞에 있던 파렌은 완전히 몸을 늘어트려버렸다.
“흐윽…….”
긴장이 풀리기라도 한 건가.
그는 앉은 채로 연신 숨만 몰아쉰다.
우선 가만히 말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
‘잠깐, 숨소리가……’
하얗게 질린 얼굴과 초점 없는 눈동자.
조금씩 올라오는 피비린내.
상태가 심상치 않다.
“크윽…….”
서둘러 로브를 벗겨 냈다.
정신을 잃어가는 중에도 고통스러운지 미약한 신음소리가 들린다.
복부에 두껍게 감겨 있는 붕대에서는 핏물이 스물거리며 올라온다.
‘공격을 받은 수인족의 왕자라…….’
지구는 도망쳐 온 것인가.
이제야 대충 짐작이 가기 시작한다.
“인벤토리.”
최상급 포션을 꺼내 그의 몸에 부었다.
상처는 순식간에 아문다.
이정도면 고비는 넘겼을 터.
역시나 잠시 후, 파렌의 눈이 서서히 멀쩡하게 돌아온다.
“……스승님?”
“그놈의 스승 소리는.”
“제발, 제발 도와주세요!!! 스승님밖에 없습니다!!”
“일단 들어보지. 최대한 자세히 설명해.”
제법 재밌는 상황이다.
왕자가 이 정도니, 수왕의 상태도 멀쩡하진 않으리라.
분명 수인계에는 큰 사건이 생겼을 것이다.
“……아버지, 아니 수왕께서 공격받았습니다. 왕좌를 노리신 삼촌의 짓입니다. 이제 수왕의 자리는 빈자리가 되었고요.”
쿠데타 비슷한 건가.
그래서 나에게는 보호를 요청하러 온 것이고.
얼마나 다급했으면 한번밖에 보지 못한 나에게 왔을까 싶었지만, 생각보다 심심한 이유다.
‘남의 집안일에는 관심이 없는데.’
점점 표정이 심드렁해진다.
자연스레 파렌은 점점 조급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제가 왕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전통적으로 왕좌의 도전자들은 한 명의 스승과 함께할 수 있습니다. 분명 당신이라면 같은 도전자인 삼촌 정도는 충분히 상대하실 수 있으시겠죠.”
“고작 여기까지 와서 한다는 게 도움 요청이라고? 건방지건 둘째 치더라도 한심하군.”
나는 결국 미간을 구기고 말았다.
혼자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못하는 버러지였던가.
첫인상으로 판단하기에는 이정도로 염치없어 보이진 않았는데.
“큭…….”
험악한 기운이 내뿜어진다.
아물어 가던 그의 상처가 다시 왈칵, 피를 쏟아 낸다.
하지만 파렌의 눈동자는 여전히 단호한 의지로 빛나고 있었다.
“......아니요. 거래입니다.”
“호오? 거래라?”
이제 좀 흥미가 돋는다.
힘을 거두자, 그는 재빨리 말을 이어 했다.
“수왕은 사자족이 아니면 오를 수 없습니다. 다른 종족인 인간은 절대 왕이 될 수 없다는 소리입니다. 다만, 스승님의 경우에는 다르죠.”
‘거짓을 말하는 눈은 아니군.’
이제야 흥미가 생긴다.
더 설명하라는 눈치를 주었다.
그는 다시없을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제가 왕의 자리에 오른다면, 수왕의 자리를 넘겨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뜬금없이 파렌이 품 안을 뒤적거린다.
튀어나온 것은 작은 구슬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이지만, 보자마자 나는 그게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강력한 자의 영혼.
그것도 무려 왕의 영혼이었다.
“……이건 저희 아버지의 영혼이 담긴 구슬입니다.”
“이걸 주는 이유는?”
잠시 침묵이 이어진다.
그는 길게 심호흡을 하더니,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나는 수인족의 왕자 파렌. 정당한 왕좌의 계승자입니다. 마왕이여, 그대와 계약을 하러 왔습니다. 스승으로서 나를 왕좌로 끌어주십시오. 대가는 내가 차지하게 될 수왕의 자리입니다.”
“……하하하하!!!!!!”
재미있다.
최근 있던 일 중 단연 으뜸이었다.
찢어질 듯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마족과의 계약은 신성하고 절대적인 법. 일반적인 상식과 전통을 부실 수 없으니, 마신의 힘을 이용하겠다는 거겠군?”
아무리 타 종족이 수왕의 자리에 오를 수 없다 해도, 그곳에 마신이 관여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감히 신의 권능에 대항할 수는 없을 테니까.
이정도로 머리를 굴리다니.
칭찬해 줄 만했다.
그리고, 이 대담한 애송이의 편을 들어주고 싶어졌다.
“좋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의 긍정이었다.
파렌은 밝은 얼굴로 고개를 꾸벅 숙인다.
“정말 감사합니다!!”
“나중에 와서 뒤통수 친다면 꽤나 곤란해질 것이다.”
물론 내가 아닌, 파렌이.
숨겨진 뒷말을 파악한 그가 긴장한듯 침을 삼킨다.
“당연하죠. 일족의 구원자를 그리 대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구원자?”
내가 스승이 되는 일이 거기까지 연결된다는 건가.
뭐, 아무래도 상관없다.
나는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마신의 힘을 끌어올렸다.
길드장실이 칠흑같은 마기로 감싸인다.
일반적인 마기를 넘어선, 본연의 모습을 갖춘 순수한 힘이었다.
“나는 마계의 지배자인 마왕, 진. 수인족의 왕자 파렌이여. 그 계약을 받아들이지.”
파앗-
공간을 메우던 마기가 순식간에 파렌에게 흡수된다.
그의 이마에는 나만이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이 생겼다.
“잘 부탁하지, 내 첫 계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