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50화
릴리스가 나를 발견하고 눈에 띄게 밝아진다.
함께 있던 마르바스도 마기를 황급히 집어넣으며 나를 돌아본다.
그들의 전투는 자연스레 멈춰 버렸다.
“인간 주제에 상당히 강하더군요. 완전히 제압하기는 힘들어 애먹던 참이랍니다.”
그녀는 곧게 뻗은 눈썹을 살짝 찌푸린다.
하지만 겸손한 말과는 달리 곤혹스러운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 명이라면 모를까, 아무리 헌터가 강한들 마계의 공작 둘을 한꺼번에 상대할 수는 없는 일.
그나마 여태 버틴 것도 마족들이 마음껏 힘을 쓸 수 있는 마계가 아니라 가능했을 것이다.
“용병왕!!!!”
‘아직도 제법 팔팔한데.’
장 로티에르가 발악하듯 소리지른다.
한가하게 잡담이나 떠드는 우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저놈도 한패였나.
팔에는 드래곤 문양이 아직도 선명하다.
10위권의 월드 랭커 중에는 유일한 렌의 수하였다.
“이 개자식!! 그분의 일을 방해하다니!! 네가 이렇게 일을 벌리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말이 많군.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아렐리아가 크게 분노하며 앞으로 나선다.
“감히 마왕님께…….”
“되었다.”
가볍게 그녀를 막아선 뒤 주위를 훑었다.
이미 폐허로 변한 곳이라 적당한 물체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휘익- 쿵!
돌덩어리가 날아간다.
말이 좋아 돌이지, 사실상 집채만 한 바위였다.
마나를 담진 않았지만 내 육체적인 능력은 이미 인간의 범주를 넘은 것.
거의 비행기 속도와 비슷했다.
“크악!!!”
피할 틈은 당연히 없었다.
그는 냅다 날라온 바위에 고스란히 얻어맞고 쓰러진다.
“뭔 저만한 바위가 날아가는데 보이지도 않냐…….”
주변에 구경하던 헌터들이 술렁인다.
얼굴은 본인이 얻어맞은 것마냥 일그러져 있었다.
‘이놈밖에 남지 않았다 했지.’
모든 배신자들은 제압된 상태.
제일 강한 헌터만 남은 셈이다.
마지막을 장식할 만한 상대로는 충분했다.
“<마신의 가호>.”
가진 스킬 중 제일 쓸 만한 것을 사용했다.
동시에 온 몸에 힘이 꿈틀거린다.
스킬의 효과로 버서커 상태가 되는 탓에 눈에는 핏발이 섰다.
‘역시 이상태로는 이성을 유지하기가 힘들군.’
모든걸 파괴하고 싶은 기분이 앞선다.
사용할 때마다 느낀 거지만, 마신이 내려줄 만한 스킬다웠다.
아마 마음껏 날뛰어 줄 내 모습을 기대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스스로에게 질 수는 없는 노릇.
나는 간신히 정신을 부여잡았다.
“……괴물.”
누군가 조용히 중얼거린다.
심상치 않은 기운에 헌터들이 주춤거린다.
슬그머니 뒤로 물러서는 자들도 많았다.
거의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허억…….”
장 로티에르는 이제 거의 선채로 기절할 기세이다.
지나친 두려움에 발은 그대로 못박은 듯 고정되어 있다.
“렌을 따른다고?”
폭렬의 페르아렌에 강력한 마력이 감긴다.
자연스레 주변은 마나의 폭풍이 휘몰아친다.
파괴적인 힘은 서서히 응축된다.
슬슬 쏟아내지 않고서는 버티기 힘들어 질 정도였다.
“마왕니임! 여기를 모조리 날려버릴 셈이세요!? <다크 배리어>!!”
“허억!! 다들 배리어 마법 사용하고 최대한 멀어져!!”
주변에는 마법사들로 인해 각종 보호 마법이 겹겹이 쌓인다.
황급히 도망가는 자들도 더러 존재했다.
하지만 호기심을 숨길 수는 없는지 시선은 우리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마…… 맞…… 나는 그분의 종…….”
“그럼 지금 죽어도 외롭지는 않겠군.”
우우우우우웅-
검이 금방이라도 터질듯이 크게 진동한다.
손아귀에 더욱 힘을 주었다.
분명 가벼운 재질임에도 태산을 들고 있는 무게감이 느껴진다.
“어차피 곧 그놈도 뒤따라 갈 테니까.”
검이 내질러진다.
순간 공기마저 멈춰버린 기분이 들었다.
콰아아아앙!!!!!!!!!!!!!!!!!!
쏟아진 마력.
버티지 못한 대지가 뒤틀린다.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힘이었다.
* * *
잠잠하다.
아니, 그보다는 쥐죽은 듯이 고요하다는 말이 어울리나.
헌터계는 당연하고 마치 세상 전부가 멈춰버린 기분이었다.
시끄러운 것들을 질색하는 나에게는 잘된 일이었다.
“역시 모아 놓고 싹 다 처리하길 잘했군.”
“……그, 조직 소탕이 문제가 아니라…… 아니, 아닙니다.”
앞에서 서류에 열중하던 이도윤이 주춤거린다.
말을 꺼냈으면 똑바로 마무리를 지어야지 왜 멈춘단 말인가.
그를 향해 인상을 찡그리자 죄송합니다, 하는 작은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아무래도 모두 겁을 먹은 모양입니다. 보통 일이 아니니 당연하죠.”
“헌터란 놈들은 모두 겁쟁인가 보군. 아무리 골드 드래곤이라지만 손발은 잘라 놨으니 당분간은 수 쓸 도리도 없을 텐데.”
온갖 잡일을 처리하고 정보까지 날라 주던 수하들이 하루아침에 증발했다.
렌이 직접 나서는 것도 한계는 있을 터.
상황은 이제 정 반대로 뒤집어졌다.
아무리 영겁의 드래곤이니 뭐니 해도, 지금만큼은 손가락 빨며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연히 그 정도는 알 거라 생각했는데.’
의아하다.
오히려 감당 못할 적이라 판단한건가.
“……골드 드래곤이 아닙니다.”
“뭐?”
“큼……헌터들이 공포에 떠는 건 진 님 때문입니다.”
이도윤이 조심스레 나를 쳐다본다.
명백히 내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었다.
“어이가 없군.”
나를 가로막는 자들을 처치하겠다는 거였지, 그냥 모조리 쓸어버리겠다는 소리는 아니었는데.
그만한 담력들로 무슨 헌터질을 하겠다는건지.
이래서야 나중에 침략해올 다른 종족들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할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이 랭킹1위이지, 그동안 진 님의 실력을 직접 목격한 자들은 별로 없었으니까요. 특히나 아스티란 출신이 아닌 귀환자들요. 헌터들은 이제야 알게된 겁니다. 하늘 위에 또다른 하늘이 있다는 것을.”
그걸 눈앞에 들이밀어야 믿는 멍청이들이었나.
자연스레 언짢은 표정이 되자, 이도윤은 재빨리 화제를 돌린다.
“그래도 헌터 협회에서는 조만간 <검은 탑>공략을 재개하겠다며 미리 언질을 주었습니다. 가능한 빨리요. 그럼 이런 분위기도 곧 끝이겠죠.”
가능한 빠른 시일이라.
딱히 신뢰가 생기지는 않는다.
국내 길드들의 어수선한 내부의 사정들이 정리가 되려면 일주일도 부족할 테니.
‘차라리 상황이 괜찮은 길드만 데리고 가는 게 나으려나.’
어차피 많은 수는 필요 없다.
적당히 파티다운 구색만 맞춘다면 그걸로 끝.
나머지 변수들은 내가 처리한다면 문제는 없을 터였다.
‘그림자와 아레스 길드는 이미 정리가 된 상태고……몇 군데만 더 있으면 될 텐데.’
앉은자리에서 상황을 알아 보기위해서는 랭커 채널만큼 편한 게 없다.
나는 오랜만에 채널의 대화를 훑어보았다.
최근에 거의 정전 상태이지만, 그래도 쓸 만한 정보는 간혹 올라오고 있었다.
[가을하늘: 안정화가 된 길드들은 협회에 말씀 부탁드립니다. 최근 게이트도 부쩍 늘어난지라,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언제나야근철야: 확실히 저희 아레스와 몇몇 길드만으로는 힘드네요.]
[혜라:주몽 길드도 조만간 합류할게요. 며칠만 있으면 될 것 같네요. 그나저나 다른 나라들은 저희보다 난리라죠? 국내 5대 길드는 피해가 덜해서 그나마 다행이에요.]
[초코짱: ……우리는 길드장이 죽었는데.]
[혜라: 흡……죄송합니다.]
[초코짱: 뭐, 죄송할 것까지야. 그래도 그런 놈이라는게 이제야 밝혀져서 다행임. 나는 친하지도 않았고. 다들 비슷한 생각일듯.]
[홍: 나는 그 새끼 그럴 줄 알았다니까??하여간 더럽게 음흉해가지고.]
[초코짱: 알기는 뭘 알았다고……솔직히 영원 그놈이 보기에는 멀쩡했잖아.]
[홍: 어지간히 사람 볼 줄 모르네. 우리 길드를 봐. 첩자가 단 한 명도 없었잖아? 이게 다 내 안목이 뛰어나다는 소리지.]
[세하세하: 아니, 길드장님 여기서 또…… 진짜 면목이 없습니다, 랭커님들……]
그러고보니 자유 길드가 있었지.
그쪽에서는 놀랍게도 렌의 수하가 한 명도 없었다.
홍현민 본인은 자신이 길드원들을 심사숙고해서 뽑은 덕이라며 떵떵거린다지만, 글쎄.
내가 볼 때에는 뒷걸음치다 얻어걸린 격이었다.
“탑 공략은 아레스와 그림자길드, 그리고 자유 길드면 충분하겠군.”
“……홍현민 길드장을 데려갈 생각입니까? 나비 길드는요?”
“정신없겠지. 서채아가 또 앓아 눕지 않았나. 아무래도 그녀와 연결되어 있는 렌도 이번일로 적잖이 타격 입었을 테니까.”
“그건 그렇지만…….”
이도윤은 계속 난색을 표한다.
아무래도 홍현민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긴 국내 헌터 바닥에서 그놈을 좋아하는 자는 거의 없다.
어지간히 재앙의 주둥이여야 말이지.
“그러고보니 홍현민 길드장은 진 님께는 요새 깍듯했죠. 같이 가면 큰 트러블은 없겠군요. 진 님의 눈치는 볼 테니.”
“그래. 그리고 모험가 관련 스킬이 많으니, 길을 찾거나 던전을 파악하는 데에는 그놈만 한 헌터가 없……응?”
계속 말을 이어하며 과거 내용을 훑어보던 때였다.
갑자기 대화가 최근 것으로 갱신되더니, 랭커 채널에 신경 쓰이는 말이 오간다.
나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아스티란짱짱: 이거 뭐임? 왠 어린 수인족 하나가 용병왕을 찾는다면서 사람들한테 물어보는데? 일단은 용병왕이랑 아는 사이 같아서 공격하려다 참음.]
[마탑대표: 다 좋은데 뜬금없이 공격은 좀……]
[아스티란짱짱: 내가 아니어도 수인족 차원과 연결된 대륙 출신이 발견하면 바로 죽였을걸. 원한이 어마어마할텐데. 그나마 한국땅이라 다행…… 아니, 일단 이거부터 다들 보셈.]
[아스티란짱짱: <첨부: 사진>. 이거 보임?]
[홍: 살다살다 명동 한복판에 수인족 돌아다니는 꼴은 처음 보네.]
내가 아는 수인족이 한둘은 아니라지만, 어린 놈이라면 달랐다.
올라온 사진을 보기도 전에 머릿속에 한 인물이 떠오른다.
‘수인족 왕자였던가…… 블랙 마켓에 납치당해서 간신히 구출 당한 놈이 지구를 또 왔다고?’
바로 첨부되어 있는 사진을 열었다.
잔뜩 낡은 로브를 푹 눌러쓴 형체가 제일 먼저 눈에 띄인다.
그리고 그 사이로 살짝 튀어나온 꼬리와 밀빛 머리카락.
확실히 내가 아는 수인족 꼬맹이가 맞았다.
“진님, 혹시 랭커 채널 보고 계십니까?”
이도윤도 채널을 확인했는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동시에 울리는 휴대폰 전화.
예상대로 사진 속 인물을 알아본 강준하였다.
[진님, 랭커 채널-]
“봤다. 그놈이 확실해.”
[무슨 일인지는 확인해 봐야 알 것 같습니다. 우선 아레스 길드원 몇명을 바로 보냈습니다.]
“좋군. 찾으면 바로 그림자 길드로 찾아와.”
[알겠습니다. 잠시 뒤 뵙겠습니다.]
역시나 강준하는 상황판단이 빨랐다.
나는 더이상 말이 없는 랭커 채널을 닫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대체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온 거지. 분명 보통일은 아니다.’
그냥 넘기기엔 그 꼬질한 모습이 신경 쓰인다.
심지어 경매장에서 발견했을 때보다 더 고생을 많이 겪은 모양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