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48화
“적…… 이라고요? 진심이십니까? 대놓고 진 헌터님을 언급하라니…… 그렇게는-”
예상대로 당황이 튀어나온다.
박신우의 성격은 고지식한 편이다.
납득하지 못할 만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점점 말이 느려지더니, 급기야 입을 다물었다.
무언가를 골똘히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사실 이보다 더 확실한 방법은 떠오르지 않는군요. 헌터들에게 권유같은건…… 씨알도 먹히지 않는 소리니까요.”
박신우는 꽤나 음산한 눈빛으로 중얼거린다.
이걸 인간 혐오……
아니, 헌터 혐오자라고 해야 하나.
그간 당한게 상당히 많아 보였다.
‘하긴, 당연한걸지도.’
헌터 중에는 별난 괴짜가 많다.
헌터계는 오직 힘의 논리로 굴러가는 세계이니 어쩔 수 없다고는 하나, 해도해도 너무한 놈들 천지였다.
그런 기본도 안 된 자식들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게 협회의 숙명.
아무리 부처같은 사람도 아수라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저도 주변 헌터들과 함께 분위기를 만들어 놓겠습니다. 심각한 사안이라고 미리 흘려 놓으면 더욱 좋을 겁니다.”
강준하도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꽤 괜찮은 생각이었다.
다른 바람잡이도 몇 풀어놓는다면 효과는 배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흔쾌히 호들갑 떨어줄 랭커가 많았다.
“그럼 친목회라는 명칭은 포기해야겠군요.”
박신우가 미련 넘치는 얼굴로 중얼거린다.
언제는 가제라고 우기더니.
가만히 두면 은근슬쩍 사용할 계획이었던 듯했다.
“그저 공표할 사항이 있다고만 둘러대.”
“이후 오를 <검은 탑>의 공략이나 <예언>에 대해 언급하라는 말씀이시군요.”
“비슷해. 하지만 협회의 공지가 아니라 개인적인 것에 가깝겠군.”
“……진 헌터님께서요?”
그가 의아한듯 되묻는다.
하지만 나는 굳이 대답해 주지 않았다.
그저 여유로운 미소를 보여 줄 뿐.
“기대해도 좋아.”
이번 기회에 헌터들에게 똑똑히 보여 줄 것이다.
본인들이 상대하고 있는 적의 진정한 정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들이 어떤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인지.
* * *
“[다녀오겠습니다…… 후아암.]”
아렐리아는 오늘도 반쯤 감긴 눈으로 인사를 건넨다.
항상 반질거리던 검은 비늘은 빛을 잃은 지 오래였다.
“그래. 곧 마무리 된다고 했던가?”
“[네에. 텔레포트 마법을 막는 마법진은 거의 다 새겼어요. 남은 건 공간 분할 마법인데…… 이건 9서클 이하의 도움을 받긴 힘드니, 저와 리치놈이 해야죠. 하여간 쓸모없는 인간 마법사들…..]”
“투덜거리는 걸 보니 아직 버틸 힘은 있나 보군.”
살짝 웃으며 동그란 머리통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가볍게 쓰다듬자, 그녀의 표정이 사르르 풀린다.
‘그래도 꽤 의외야. 조금 하다가 크레아시론에게 모조리 맡길 줄 알았는데.’
그녀는 며칠 뒤에 있을 모임의 장소에 마법진을 새겨 넣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크레아시론과 그림자 탑, 아레스 길드 소속의 마법사들도 마찬가지.
쓸 만한 고위 마법사는 총 출동한 상태였다.
“[월드 랭커들도 온다고 하셨잖아요? 고작 미천한 인간놈들이지만, 한두명도 아니고. 그 정도 되는 자들이 첩자일 경우 쉽게 가둬 놓긴 힘드니까요. 힘들어도 해야죠……]”
곧 비실거리는 검은 몸뚱이가 사라진다.
떠나간 그녀의 빈 자리를 보며, 나 역시 나설 준비를 했다.
“오셨습니까.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이미 밖에는 강준하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 역시 초췌한 몰골이 비슷하다.
아니, 아마 주변에서 일을 준비하는 모든 자들이 그렇겠지.
모두 큰 행사를 위해 힘쓰는 중이었다.
달칵-
강준하와 함께 도착한 곳은 협회의 지하 회의실.
여러가지 보안 마법을 뚫어야 도착할 수 있는 비밀 장소였다.
“참여하는 헌터들 목록은 확정되지 않은 겁니까?”
“잠시만요. 국내는 빠지는 자가 없지만, 몇몇 해외 국가 같은 경우에는 아직도 고민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월드 랭커는 최소 500위까지 참여해야 합니다. 다른 미끼를 던져 보죠.”
이미 회의실 안에는 수십 명의 헌터와 협회 직원들로 가득하다.
첩자가 아니되, 신뢰할 만한 자들로 꾸린 정예였다.
“형님. 이미 참여하겠다 밝힌 자가 상당합니다. 이만하면 되지 않을까요?”
“축구장 하나는 채워야지. 많을수록 좋다.”
“맞는 말입니다. 전세계의 첩자를 밝혀낼 기회는 이번이 유일하니까요.”
거의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연이어 터진 사건에 정신없을 만했지만, 국내 헌터계는 생각보다 빠르게 잠잠해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더 큰 사건으로 덮어 버린 것에 가까웠지만.
폭풍 전야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던가.
세상의 이목은 사흘 뒤 있을 행사에 쏠려 있다.
각 나라에서 <검은 탑>공략도 잠시 멈췄다 하니, 얼마나 많은 관심이 쏟아지는지 상상하지 못할 정도였다.
“일단 길리안에게는 따로 내가 연락해 뒀다. 미국의 랭커들과 동행한다 확답을 줬고.”
“진 헌터님께서요? 어쩐지 월드 랭커 채널이 술렁거린다 더군요.”
“생각보다 흔쾌히 받아들이더군.”
사실 2위인 길리안과 헌터 강국인 미국 헌터들이 온다면 게임은 끝난 거나 마찬가지.
오히려 자리 더 없냐며 나서는 통에, 의아할 정도였다.
“S급 게이트 공략에 참여한 보람이 있군요.”
“영국에서는 에밀리가 마탑 대표로 인원을 모으고 있대요. 저도 인연이 있는 마법사들에게는 다 언질해 놓은 상태고요.”
“……저희 나비 길드도 최근 각성자들까지 남기지 않고 끌어모았어요. 물론 길드원들에겐 자세히 말하지 않았고, 명령에 가까웠지만요.”
꽤나 순탄한 과정이었다.
여기 모인 자들은 하나같이 헌터계에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자들.
함께하니 막히는 일은 없었다.
무엇보다도 내 협박이 제대로 먹힌 것이 제일 컸겠지만.
“앞으로의 미래가 기대되는군요.”
“확실히 전과 같아질 수는 없겠죠. 대체 몇명의 월드 랭커가 첩자로 밝혀질지……”
이번 일은 분명 헌터계에 큰 타격을 줄 것이다.
하지만 렌은 점점 더 헌터들에게 손을 뻗치고 있다.
이제는 본인의 <타락>조차 아랑곳하지도 않는 느낌이고.
가만 두면 별별 미친 사건들을 끌고 올 터.
<검은 탑>을 안심하고 오르려면, 이정도는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과정이었다.
“네. 그의 수하들을 제거하면 더 나은 세상이 오겠죠.”
“그리고 복수도요.”
신연주의 말이 끝나자 사방에서 눈을 빛낸다.
모두 작던 크던 렌에게 빚을 진 자들이었다.
“그래, 복수.”
원래 때린 놈은 발 뻗고 자도, 맞은 놈은 그러지 못하는 법이다.
나라면 아예 기어오르지도 못하게 손썼을 것을.
오히려 나에게는 잘된 일이다.
이만한 자들이 발벗고 나서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렌은 이미 너무나 많은 씨앗들을 뿌려 놓았다.
그리고 이제 그것들을 거둘 때가 왔다.
* * *
밖은 이미 인산인해다.
거대한 연설 장소 뒤편.
준비를 마친 자들이 긴장한 눈빛으로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제 시작이군.”
“모든 초대객이 도착했다는군요. 한 명도 빠짐없이.”
“마법은?”
“신호만 주시면 바로 발동하겠습니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결계예요. 렌 본인이 와도 조금은 애먹을 정도로요.]”
아렐리아가 뿌듯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조금 과장이 섞였음을 감안해도, 상당히 자신만만한 태도였다.
아마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는 자는 없으리라.
“그럼 각자 위치로 흩어져. 문양이 떠오르는 즉시 나눠준 봉인 아티팩트를 사용하고.”
“그리고 진 헌터님이 열어 주신 문에 집어넣으면 되겠죠?”
“그래. 제압할 수 없는 강자가 있다면 바로 포기해. 내가 직접 상대할 테니.”
이번엔 대체 몇 명이나 나올까.
수천 명?
그중에 월드 랭커급은 얼마나 존재할런지.
숨길 수 없는 기대감으로 온몸의 마나가 날뛴다.
“큭…… 진 님. 아직은 아닙니다.”
나도 모르게 마력을 내뿜었던가.
강준하를 비롯한 헌터들이 몸을 바들거리며 떨고 있었다.
황급히 기운을 거두자, 그제서야 모두 작은 한숨을 내쉰다.
“……준비는 완벽하게 된 걸로 알겠습니다. 개최사도 끝나가니, 이제 저와 함께 나가시죠.”
짝짝짝-
박수소리가 멎어간다.
곧 표면적인 주최자인 협회장이 안으로 들어왔다.
최근 연이은 해외 출장 탓에 얼굴에는 피로한 기색이 가득했다.
“제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대체 무슨 일을 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잘되길 바랍니다.”
김동식은 지쳤다며 자리를 떴다.
이어서 우리가 밖으로 나가자, 수만 명의 시선이 쏠린다.
웅성거리는 소란은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우선 제가 <예언>부터 말하겠습니다.”
박신우의 서론이 시작되었다.
이미 알음알음 알고 있는 자들도 있었지만, 정확한 내용은 모르는 상태.
때문에 다들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그의 말에 귀 기울였다.
“-합니다. 이상으로 이 내용은 마치겠습니다. 또한 이어서, 진 헌터님의 말씀이 있겠습니다.”
이제 내 차례인가.
느긋하게 걸어 나와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분위기는 이제 절정에 이르러,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수만 명이나 모인 장소라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다.
‘하늘도 맑고. 배신자 처단하기 딱 좋은 날씨군.’
하나 그전에 헌터들에게 경고 하나쯤은 괜찮겠지.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요새 남은 차원계의 왕이 된다며 설치는 놈들이 있는 모양인데…….”
딱!
손가락을 가볍게 퉁겼다.
이미 준비시켜 놨기에, 속속들이 위압감 넘치는 존재들이 등장한다.
쿠웅-
“헉…….”
“저게 다…….”
요정족 티타니아, 바람의 정령족 실피드.
그리고 3명의 마계 공작들까지.
각자의 마력들이 뒤섞여 멀리 있는 헌터들에게까지 퍼져 나간다.
“왕이시여.”
한 명 한 명의 위세가 대단하다.
자연스레 강력한 기운에 짓눌린 사람들의 표정이 하얗게 질려 갔다.
‘이정도도 감당하지 못하면서 왕은 개뿔.’
“나는 모든 차원계의 왕이 될 생각이다. 그리고 그걸 방해하려는 자는…….”
꿀꺽
침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긴 정적 속에서, 나는 그들을 향해 입매를 비틀어 보였다.
“모조리 죽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