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47화
“일단 그건 그렇고. 여기에 온 중요한 목적은 따로 있다.”
어차피 나만 모른 채 넘어가면 되는 일이다.
목격자는 오직 나와 아렐리아뿐.
그리고 나는 이 일을 동네방네 떠벌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정말 이참에 강준하 말대로 건물이라도 지어야겠군.’
돈이야 차고 넘친다.
마지막 남은 양심의 조각이라도 지키기 위해서, 그 정도는 전혀 아깝지 않았다.
“이 일보다 중요한 목적이라니요?”
“잠깐 이걸 보겠나.”
박신우는 의아해하며 나를 쳐다본다.
내가 아티팩트를 들이미는 순간까지도 비슷했다.
차마 말은 못하지만, 마치 반지 자랑이라도 하러 왔냐는 표정이었다.
우우웅-
반지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이미 몇 번이나 봐온 것처럼, 금빛 기운이 순식간에 박신우를 향해 쏘아져 나간다.
자연스레 그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이게 대체…….”
그 역시 마나를 사용하는 헌터.
남의 기운이 흡수되는 것은 헌터라면 모두 꺼릴 만한 일이었다.
상대가 내가 아니었다면 당장 검을 꺼내들었을 터였다.
‘역시 박신우는 아니었군.’
그의 몸에 드래곤의 표식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미 들었던 사실이다.
하지만 막상 확인하니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시점에 박신우는 그나마 믿고 말할 만한 자였다.
“화영은 중국에서 데려간 게 아니야. 차라리 그게 더 나을 만큼, 거대한 조직에서 납치한 거지. 그리고 이건 그들을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을 드러내게 하는 아티팩트다.”
“잠깐, 그걸 지금 저에게 사용하신다는 것은…….”
그의 눈빛이 점차 가라앉는다.
그러더니 무언가를 고민하는듯, 한참을 말없이 입술만 깨물었다.
“……협회에 그 조직원들이 있다는 겁니까.”
역시 눈치가 빠르다.
힘만 쓸 줄 알지 머리는 장식으로만 사용하는 헌터들과는 달랐다.
“제길…… 감옥을 관리하던 직원들도 첩자였겠군요. 행방이 묘연해 이상하게 생각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는 재빨리 전화기를 집어든다.
그리곤 바로 어딘가에 연락을 취했다.
“죄송한 부탁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협회 직원들을 모두 소집했으니, 그들도 검사해 주십시오.”
“그야 당연하지. 다만, 그들만 하면 안 될 것 같은데.”
“예?? 설마 그 말씀은…….”
“협회 직원들뿐이 아니다. 그림자 길드와 아레스 길드에도 첩자가 있더군.”
덜컹-
그가 정리하던 특제 스테미너 포션이 떨어진다.
하지만 줍는 시늉조차 없다.
떨리는 눈이 나와 강준하를 번갈아 쳐다본다.
낯빛은 지나치게 창백했다.
“진 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곧 알려질 사실이겠지만, 저희 길드의 이윤재도 가담했더군요.”
“예?? 이윤재 헌터라면 아레스의 초창기 멤버…….”
그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한다.
사태의 심각성이 보통이 아님을 깨달은 탓이었다.
그렇게 침묵이 유지되고.
한참을 고민하던 박신우가 드디어 입을 떼었다.
“그동안의 진 헌터님의 행적부터 <예언>까지…… 상상하지 못할 일들이 많았습니다. 이제 와서 진 헌터님을 신뢰하지 않을 이유도 없을 겁니다.”
그의 시선이 정면을 향한다.
큰 결심이라도 한듯 눈동자에는 굳은 의지가 새겨져 있었다.
“믿겠습니다. 국내, 아니. 헌터계의 미래는 당신에게 달려 있는 것 같군요.”
무거운 말이다.
한편으론 개소리에 가까웠다.
내 주변인이라면 모를까, 모두를 지킬 생각은 없었다.
“멍청한 소리. 거기까진 책임질 생각은 없다.”
단번에 그의 말을 일갈했다.
세상을 평화롭게 지켜 내겠다는 속 편한 소리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소리였다.
그 따위 일은 영웅 놀이나 하는 헌터들에게 맡기는 게 좋다.
“다시 한번 생각해 줄 수 없으십니까. 그 거대한 조직을 상대하는 건 당신밖에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박신우 지부장, 제정신이 아니군. 감히 어디서…….”
“[지금 이 하찮은 인간이 뭐라고 지껄이는 거죠?? 무슨 구원자를 맡겨 놓은 것 마냥……!!]”
뻔뻔한 소리에 신랄한 비판이 이어졌다.
특히 아렐리아는 미쳐 날뛰기 직전이다.
나는 한 명씩 눈을 마주하며 그들을 진정시켰다.
“……그 어떤 것보다 명예로운 일입니다.”
명예?
결국 실소를 터트렸다.
허울좋은 평판을 찾다 죽은 놈들이 한두 명도 아니고.
그딴게 밥 먹여 주지는 않는다.
제삿밥이라면 모를까.
“나는 내 길을 걸을 것이다. 배신자를 걸러 내는 것. 그 이상은 나에게 중요치 않다.“
“……그렇습니까. 죄송합니다.”
그나마 그 정도 양심은 있었나.
박신우는 순순히 사과의 말을 건네온다.
말뿐만은 아닌지 제법 미안한 표정이었다.
“그 뒤는 너와 길드들이 할 일이지. 국내 헌터들을 좀 믿어 보지 그래. 너 자신도 그렇고.”
헌터들이 죄다 겁쟁이는 아니다.
분명 어딘가에는 박신우의 말처럼 명예를 위해 움직이는 자들이 존재한다.
“잡소리는 그만하지. 당장 해야 할 일은 따로 있지 않나.”
“……첩자를 걸러 내는 일이죠.”
똑똑-
“지부장님. 시키신대로 협회 직원 모두 불러 놓았습니다. 긴급 텔레포트까지 사용해서, 지방에 내려가 있는 자들까지요.”
타이밍 좋게 소식이 들려왔다.
박신우는 바로 답변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인벤토리를 열었는지 어느새 그의 손에는 스테미너 포션이 들려 있었다.
“바로 가겠습니다. 기다리십시오.”
달칵-
병 따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린다.
그는 노란색의 액체를 단숨에 원샷했다.
어지간히 마셔댔는지, 분명 별다른 맛이 나지 않을 물약이지만 얼굴은 사약을 먹은 것마냥 찡그린 상태였다.
“아. 잠시후면 피곤해질 듯해서.”
미리 먹었다 이건가.
시선이 쏠리자 그가 변명하듯 중얼거린다.
“바로 모시겠습니다. 그럼, 모쪼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문을 열고 박신우를 따라 나섰다.
엘리베이터는 지하 깊숙이 내려간다.
도착하자마자 나는 익숙하게 <변화하는 공간의 문> 스킬을 사용했다.
아렐리아 역시 배신자들을 던져 넣을 준비를 마쳤다.
“강준하. 이번에는 숫자가 꽤 많아 보이니 준비해. 분명 도망을 시도할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아렐리아 너는 텔레포트 방해 마법을 시전하고.”
“[이미 오자마자 경계 결계까지 다 설치했어요~]”
꽤나 든든하다.
모든 준비는 마친 듯하다.
박신우에게 눈짓을 하자,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모두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십시오. 제가 다시 말할 때까지는 절대 움직여서는 안됩니다. 만약 그런 자가 있다면…….”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좌중을 훑는다.
분위기가 제법 매섭다.
자연스레 협회 직원들은 움찔하며 침을 삼켰다.
“길게 말은 안 하겠습니다. 한달 야근은 기본적으로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한, 한 달 야근? 그것도 기본으로? 와씨…….”
“사실상 죽이겠다고 말하는 거랑 뭐가 달라?”
“나 지금도 일주일째 철야 중인데, 한 달 더 하면 진짜로 쓰러질지도 몰라…….”
같잖은 협박이지만 효과는 훌륭했다.
모두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군다.
일사불란한 속도에 절로 박수가 나올 정도였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건 없다만.”
“아닙니다. 유대력이 강한 길드와는 다르게 협회는 모두 공무원이나 다름없으니까요. 오늘 일을 밖에 가지고 나가 떠들지도 모릅니다.”
하긴.
어림잡아 봐도 이곳의 인원은 천여명.
전부를 입 단속 시키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뭐,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인원수가 많으니 마나도 충분히 필요하다.
곧 금빛 기운이 번쩍이며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그와 동시에 옷 밖으로도 선명히 문양들이 떠오른다.
‘총 오십여 명인가. 역시 협회가 제일 많았군.’
아무렴 길드보다는 헌터 협회의 정보가 써먹기는 좋을 터.
이정도면 예상한 범주였다.
“잡아와.”
나는 그들을 향해 턱짓을 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아렐리아와 강준하가 뛰쳐나간다.
“잠깐, 강준하 헌터?? 이게 뭐 하는-웁!!!”
“으아악-!!”
상황은 금세 정리되었다.
변화하는 공간의 문을 닫자, 박신우는 착잡한 표정으로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를 낸다.
“……이제 끝났습니다. 모두 돌아가셔도 됩니다. 물론 오늘 일은 누설하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잠깐, 내 주변에도 셋이나 사라졌어…….”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협회 직원은 웅성거리며 크게 동요하고 있었다.
할 일이 태산이겠지만, 차마 발걸음도 떼지 못했다.
하지만 박신우는 그들을 위해 꾸며 내는 말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눈을 질끈 감고 뒤돌아 갈 뿐.
“다시 제 사무실로 돌아가시죠.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는 일언반구 없이 우리를 이끈다.
숙연한 분위기가 퍼져 나간다.
강준하 역시 표정이 어둡기는 마찬가지다.
아마도 박신우에게서 방금 전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으리라.
타악-
사무실의 문이 완전히 닫힌다.
박신우는 한참 창밖을 바라보다, 어렵사리 입을 떼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진 헌터님. 덕분에 이제나마 사람을 걸러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적의 수하가 신입 사원부터 타 도시의 지부장까지 있더군요. 그리고 그중에서는…… 일급 비밀만 관리하는 직원도 있었습니다.”
박신우의 머리가 나를 향해 숙여진다.
몸은 배신감으로 잘게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그는 곧 침착을 되찾고 본래의 차가운 모습이 되었다.
“협회는 끝났으니, 다음은 길드들이겠군요. 5대 길드는 물론이고 어느정도 규모가 있는 중소 길드까지 불러내려면 일이 클 텐데……다행히 계속 생각하던 바가 있습니다.“
원상복귀가 빨라도 너무 빠르다.
나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다.
‘아무렇지 않은 것 같진 않은데.’
무뚝뚝한 얼굴 사이의 눈동자는 여전히 혼란스러움을 담고 있다.
설마 일에 집중해 이겨 내려는 건가.
본인 딴에는 나름대로의 타개책을 찾은 듯 보였다.
“협회의 계획은?”
나야 일이 빠르게 진행되면 아무래도 좋았다.
그는 생각하던 수준이 아니라 준비까지 하고 있었는지, 어디선가 문서 몇 장을 꺼내 온다.
[한국 헌터 단합회<가제>]
뭐지.
이 말랑한 이름은.
어처구니가 없어진다.
흰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했다.
“최근 국내 헌터계의 상황이 좋진 않았죠. <예언>도 그렇고, 여러모로 헌터들의 협력과 도모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우스갯소리 같은 단합회를 준비했고.”
“……제목에 보시다시피, 가제입니다.”
“뭐, 그건 그렇고. 다만 문제는 분명 빠지는 길드도 있을 거라는 것인데.”
“맞습니다. 아무래도 강제성은 없으니…….”
박신우는 난감한듯 시선을 내리깐다.
나름대로 고심하는 눈치였다.
‘이게 그렇게까지 고민할 일이던가.’
쉬운 방법이 있는데 굳이 돌아갈 필요는 없겠지
나는 그에게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헌터들에게 전해. 나와 적이 되고 싶은 자라면 빠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