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46화
* * *
도착한 아레스 길드.
이곳의 상황도 비슷하게 흘러갔다.
굳이 차이점이 있다면 첩자의 숫자가 좀 많았던 것 정도.
특히나, 그중 한 놈의 정체가 의외였다.
“아까 그녀석, 길드의 간부였던가. 꽤 유명했던 헌터였지.”
여태껏 봤던 배신자 중에 제일 거물이군.
놓여있는 커피잔을 심드렁하게 들어올렸다.
거의 다 마신 나와 다르게, 강준하 앞의 찻잔은 그대로다.
상황은 마무리 되었지만 아직도 머리가 복잡한 듯 하다.
“……맞습니다. S랭크 각성자로, 국내 랭커이기도 합니다.”
관심 없는 자는 기억하지 않는 나조차 알고 있는 녀석이었다.
아레스 길드의 초창기 멤버와 다름없는 헌터였으니.
특히나 그는 강준하가 자리를 비울 때 믿고 맡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길드원이었다.
“……죄송합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긴 말은 없었다.
배신감과 이제야 발견했다는 안도감.
모든 감정을 담은 복잡한 웃음이 모든 걸 보여 준다.
“그나마 진 님과 관련된 일은 다른 자에게 맡기지 않고, 대부분 제가 처리했기에 다행입니다. 정보 누출이라고 해봤자 아레스 길드에 관련된 것일 테니까요.”
나름의 방비는 해 두었던 건가.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아레스 길드가 동네 구멍가게도 아니고, 길드를 운영하며 생긴 비밀이 한두 개도 아닐 터.
까딱하다간 그것들이 모조리 폭로될 수도 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정도로 쓰러질 길드가 아니니까요.”
내 염려를 읽은 강준하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한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빛이 날카로웠다.
‘길드에 피바람이 불겠군.’
배신자는 이미 밝혀졌지만, 그들과 연관된 자들은 아직 존재한다.
아마 강준하는 이번 기회에 아레스를 한차례 정리할 생각인 듯했다.
“그나저나, 그놈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말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건 이런 것일까.
낮게 깔린 목소리가 꽤나 스산하다.
아직 그대로 두었다면, 본인이 직접 처리할 생각으로 보인다.
“일단은 모조리 변화하는 공간에 넣어 놓고, 나중에 살펴볼 생각이었다만.”
“제게 넘겨 주십시오. 제 손으로 제거하겠습니다.”
예상한 것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 대답이 들려온다.
이놈과도 제법 오래 붙어 다녔더니, 생각이 술술 읽힐 지경이다.
나는 피식 웃고 대답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언의 거절 표시였다.
“[다음은 협회인가요?]”
소파에서 뒹굴던 아렐리아가 재빨리 일어난다.
그 와중에 얼굴에는 급격하게 화색이 돈다.
잠자코 입 다물고 있던 게 지루했던 모양이다.
“……감히 진 님의 정보를 캐내려던 자입니다.”
싱글벙글한 그녀와 반대로 강준하의 표정은 여전히 심각하다.
내 말이라면 이유도 묻지 않고 따르던 그답지 않다.
“굳이 스스로의 손에 피를 묻힐 필요는 없지.”
그렇다고 내 손에 피를 묻힐 생각도 없지만.
나에게는 정령왕이라는 쓸모 있는 존재들이 있다.
운이 좋아 아직 살아 있을 수도 있겠지만, 글쎄.
아직 미쳐 있는 엘라임에게 걸린다면 뼈도 추리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포기하지 않은 건가.
이번만큼은 꽤나 질기다.
“아렐리아. 아쿠아볼 마법 시전해 봐. 작은 걸로.”
“[네? 갑자기 그런 장난같은 마법은 왜……]”
“저녀석에게-”
촤아아아악!!!!!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물세례가 쏟아진다.
내 의도보다 과한 마법에, 그는 금세 잔뜩 젖은 쥐새끼 같은 모습이 되었다.
“[휴, 스트레스가 다 풀리네.]”
강준하가 물방울을 뚝뚝 흘리며 멍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동공은 세차게 흔들린다.
살기등등하던 아까와는 정반대의 눈빛이다.
어쨌든 결과는 만족할 만했다.
확실히 제정신은 차린 듯했으니.
“[저 재수 없는 놈 좀 보세요. 이제야 어울리는 꼴이 되었군요.]”
아렐리아는 발랄한 날갯짓으로 나에게 날아온다.
표정은 앓던 이를 뽑은 것마냥 상쾌하기 그지없다.
“……진 님?”
그는 여전히 물을 닦을 생각도 못 한 채,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어지간히 당황한 모양이었다.
“그래. 그렇게 눈에 살기 좀 집어넣어. 한 길드의 길드장이란 놈이 그렇게 감정에 휘둘려서 어쩌겠다는 거냐.”
“그건……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네 심정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야. 다만 지금은 머리를 비울 필요가 있겠군.”
가볍게 핀잔을 주며 인벤토리를 열었다.
다행히 언제 넣어 놓은 지도 모르는 수건 하나가 눈에 띄었다.
바로 던져 주자, 그는 엉거주춤하게 두 손으로 받아들었다.
“협회에 가려는데, 너도 함께해라. 어차피 길드에 있어봤자 생각만 어수선할 테니.”
“……예. 알겠습니다.”
그는 쓰게 웃으며 몸을 닦았다.
그러다 멈칫하며 시선을 내리깐다.
눈은 완전히 젖어 있는 셔츠에 향해 있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복장을 갈아입어야겠군요.”
아무리 비싼 명품 브랜드여도 셔츠에 방수 기능 따위가 있을 리 없다.
도저히 안 되겠는지 강준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러자 가는 걸음마다 물 자국이 길게 이어진다.
아렐리아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찢어질 듯 입가를 끌어올렸다.
* * *
사전 약속 없이 다짜고짜 방문한 협회지만, 막아서는 자는 없었다.
정확히는 모두 정신없이 일하느라 우리를 신경 쓰지 못한다는 표현이 맞았다.
협회의 분위기는 순조롭게 망해가고 있었다.
아마도 며칠 동안 연이어 터진 사건 탓이리라.
심지어 대부분은 해결되지도 못한 것들.
당분간 <검은 탑> 이야기는 쏙 들어갈 듯싶다.
“박신우 지부장 상태가 말이 아니겠군요.”
사방에서 협회 직원들이 서류뭉치를 들고 뛰어다닌다.
모두 눈 밑은 시꺼멓다.
아마 혈관에는 피 대신에 커피가 흐르고 있을 터였다.
“잠시 뒤면 상태가 더 개판이 되겠지.”
이곳에서 여유 있는 것은 오직 우리뿐이다.
강준하마저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심정으로 이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배신자에 대한 생각은 잠깐 잊은 듯하다.
역시 마음이 복잡할 때에는, 나보다 고통스러워하는 남에게 눈을 돌리는 게 좋다.
그래야 본인의 힘듦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니.
“멀쩡한 지역이 무너져 내렸는데, 이유조차 모른다라…….”
바쁜 인파를 헤치고 지나가다 보니, 어느새 박신우의 사무실 앞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찰나.
제법 흥미로운 대화 주제가 오가기에 나도 모르게 멈춰 버렸다.
“[으음…… 마왕님이 부숴 버린 곳에 대해 말하는 거, 맞죠?]”
아렐리아가 나를 조심스럽게 올려다본다.
전쟁과 파괴를 좋아하는 마족의 눈에도 좀 과한 느낌이었던가.
표정은 꽤나 복잡미묘했다.
“그게…… 아마 화영을 데려간 자들이 흔적을 지우기 위함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희가 처음으로 포위했던 곳부터, 그 주변이 전부 사라졌…… 아니, 파괴되었으니까요.”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헌터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건 인간의 능력 범위를 벗어났습니다. 중국이 어떤 비밀의 조직과 손을 잡은 게 아닐까요?”
“지금 그런 섣부른 추측 따위들을 말할 때라 생각합니까??”
문밖으로도 들릴 만큼 큰 대화 소리가 오간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목소리만으로도 그들의 당황스러움이 느껴질 정도였다.
“협회도 난리군요. 뉴스 속보 보셨습니까? 진 님께서 조사하시던 지역이 폐허가 되었다는군요. 아마 그들의 짓인 것 같은데, 파괴력을 보아하니 거의 괴물-”
“그거 내가 한 일이다.”
“……역시 진 님이십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 지역 풍경이 마음에 들지 않던 차였습니다. 새로 꾸며 보죠. 이참에 아레스 길드에서 땅을 사들여 개발이라도 하겠습니다.“
받아치는 솜씨가 수준급이다.
항상 심각하리만큼 딱딱한 녀석인데, 언제 이런 농담을 배운 거지.
이래서 사람은 사회생활을 해 봐야 한다는 건가.
실소를 터트리며 옆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그의 얼굴은 사뭇 진지하다.
“리조트를 만들까요? 아니면 골프장? 둘 다여도 좋겠군요.”
……진심이었나.
강준하는 여러 의미로 한결같은 자였다.
“우선 들어가지.”
이 상황에서 노크는 사치나 다름없다.
바로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협회장님이 중국에 항의차 가셨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죠.”
“항의? 그들에게 그런 게 먹힐 것 같습니까?”
대화는 점차 과열되고 있었다.
우리는 안중에도 없는 탓에, 주위를 환기할 만한 것이 필요할 듯했다.
하지만 근처를 살펴보았지만 마땅한 것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어깨에 메고 있던 아렐리아를 그들에게 던졌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꾸엑!!!]”
퍽-!!
날아간 드래곤은 정확히 박신우의 얼굴에 안착한다.
잠시 사무실에는 정적이 흐른다.
시선은 모두 나에게 모인 상태였다.
“[……마왕니이임……?]”
숨 막힐 듯한 침묵을 제일 먼저 깬 것은 아렐리아였다.
그녀는 바닥에서 일어나지도 못한 채 넋 나간 부랑자마냥 주저앉아 있었다.
그 처참한 몰골에 강준하는 은근히 입매를 뒤틀며 만족스러워한다.
자연스레 아렐리아가 욱하고 한마디 하려는 차였다.
“[저……!!!!]”
“……진 헌터님. 그리고 강준하 길드장님까지.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죄송하지만 바쁘니 며칠 뒤에 찾아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박신우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말한다.
하지만 예의 바른 말투와 다르게, 그 안에는 명백한 축객령을 담고 있었다.
“글쎄. 내가 지금 돌아가면 상황이 더 안 좋아질 텐데. 장담하지.”
자신만만한 내 태도에 그는 흠칫 놀란다.
괜히 하는 말이 아니라는걸 깨달은 것이다.
“그럼 잠깐 시간을 내보겠습니다. 모두 이만 돌아가고, 쓸 만한 정보를 알아내면 바로 보고 올리십시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협회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나간다.
마치 썰물이 빠지듯 순식간이었다.
“화영에 대한 일입니까? 놓치셨다 들었습니다만. 혹여 다른 아는 것이 있으신지.”
박신우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소파에 앉는다.
마주 앉은 테이블 너머로 수많은 노란병이 보인다.
그림자 길드의 특제 스테미너 드링크들의 흔적이었다.
“……보시다시피 저희 협회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그는 작게 한숨을 쉬며 빈 병들은 쓰레기통으로 하나씩 던져넣는다.
너저분한 테이블도 조금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본인이 생각해도 부끄러운 모습이라 생각한 듯했다.
“대충 들어서 안다. 아무도 화영을 찾지 못했다고.”
“네. 그리고 헌터들이 추적하던 부근이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대체 어떤 자들의 행동인지 모르겠군요. 하다못해 그 목적조차도요.”
말이 끝나자, 강준하가 나를 흘깃 쳐다본다.
어쩌실 생각이냐는 말이 들려오는 듯하다.
하지만 여기서 동요하는 자는 삼류다.
나는 일류답게 모른 척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복구가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레스와 그림자 길드에서 최대한 지원하지. 재정적인 것도 아낌없이.”
“그게 정말이십니까? 감사한 말씀입니다만, 어째서…….”
“고향이 그 부근이라서 말이야. 괜찮은 풍경들이 많았는데, 그렇게 되서 안타까운 일이야.“
“……고……향. 말입니까?”
박신우가 고장 난 로봇마냥 삐걱거린다.
표정을 보아하니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너무 막 지른 말이었나.
하지만 고향이 별거던가.
앞으로 내가 그곳을 고향으로 여기면 되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