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45화
“[어…… 음. 사고는 사고고. 일단 축하드려요?]”
한참 말이 없던 아렐리아가 조심스레 입을 뗀다.
아마 제 딴에는 분위기를 돌리려 노력한 모양이었다.
콰르륵!
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거의 지진이 멎은 이 시점에도 집채만 한 돌덩이 몇개가 굴러 떨어지고 있었으니까.
전쟁터도 이곳에 비하면 멀쩡해 보일 지경이다.
파괴의 신이 다녀갔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풍경에 점점 그녀의 얼굴에는 ‘낭패'라는 단어가 쓰여 진다.
“……대체 뭐가.”
“[적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만한 전체 공격 스킬이 없다며 불만스러워 하셨잖아요? 이거라면 드래곤 브레스보다 더 파괴력이 높을 거예요! 아니, 사실상 이정도면 웬만한 중급신 정도는……]”
아렐리아는 빠르게 말하며, 상황을 포장하려 애쓴다.
사실상 랩을 하는것과 다름없을 정도.
노력은 가상하다만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이건 도저히 써먹을 수 없는 스킬이다.
“적과 함께 나도 쓸려가게 생겼다만.”
물론 주변에 있을 동료들도 포함이다.
모두들 사이좋게 파묻히겠지.
그것도 산 채로.
“[그건……익!!]”
차마 아니라고는 못하겠는지 아렐리아가 이상한 소리를 낸다.
그리고 기어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대체 저 스킬은 뭔가요????? ]”
“정령왕 고유 스킬인 <정령신의 가호>. 자연 재해를 일으킨다더군.”
“[가호요?? 그딴 이름을 붙인 게 누구죠? 저건 가호가 아니라 재앙이에요!]”
꽤나 적절한 네이밍이다.
이건 양심이 있다면 가호라는 이름으로 불러서는 안 된다.
나를 지키기는커녕, 구덩이에 처박기 딱 좋은 스킬이니까.
“가진 마력의 전부를 사용하는 건 역시 너무 과했나.”
실험은 지진을 한 번 사용하는걸로 만족해야 할 듯하다.
남은 세 개의 자연 재해까지 구경했다간, 가뜩이나 좁아 터진 한국 영토가 더 줄어들 테니.
“[과하다는 표현도 부족한데요……]”
“뭐, 그래도 네 말처럼 좋은 전체 범위 스킬인 건 분명해.”
파괴력은 이정도면 충분하다.
아니, 오히려 넘쳐서 문제다.
그래도 그 정도야 조절하면 될 일.
우선은 목적을 이룬 것 자체에 만족하기로 했다.
“이만하면 된 것 같고…….”
이정도면 수하들이 아니라 드래곤 할아버지가 와도 흔적 따윈 못 찾는다.
결계가 있던 대지는 통째로 밑바닥에 처박혔으니.
“길드로 가지.”
이제는 인간을 정리할 때였다.
* * *
그림자 길드 건물 앞.
도착하자마자 이도윤과 박민호가 헐레벌떡 뛰어온다.
“형님!! 설마 화영을 찾으신 겁니까? 저는 아무리 뒤져봐도 흔적조차 못 찾겠던데요!”
“진 님. 말씀하신대로 마법사의 탑부터 안내 직원까지 모두 모아 놨습니다.”
“직원들은 대체 왜……?”
할 말들이 많은 표정이다.
우선 나는 하던 일을 마무리하기위해,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에 시선을 던졌다.
[강준하. 아레스길드 인원을 소집해 놔. 소속된 자라면, 짐꾼까지 모조리.]
[알겠습니다.]
답장은 즉시 왔다.
분명 이리저리 정신없을 텐데도.
‘아레스 길드도 곧 준비될 테고. 빠르게 그림자 길드부터 털어 볼까.’
“정령계에서 돌아오시자마자 이게 무슨 일입니까…….”
이도윤이 나를 안내하며 중얼거린다.
대체 무슨 영문인지 궁금해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끝끝내 이유는 묻지 않았다.
“여기입니다. 휴가를 낸 길드원까지 불러왔습니다.”
벌컥-
확실히 대인원이다.
문을 열자마자 웅성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김상수를 비롯한 마법사부터 오랜만에 보는 김지연 등등.
익숙한 얼굴들이 나를 맞이했다.
“오늘 아이 학부모 상담날인데…….”
“전 가족여행 떠나려다 호출받았어요.”
예상처럼 어느 정도 불만 섞인 목소리들이었다.
하기사, 직장인에게 연차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인 법이다.
“대체 어떤 일이기에…….”
그래도 대부분은 심각한 표정으로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슬슬 보통 사안이 아님을 느낀 것이다.
“모두 조용.”
마나가 담긴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지하 공동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리고 등 뒤의 문에 눈짓을 하자, 눈치껏 아렐리아가 날아간다.
철컥-
“[빠져나가지 못하게 경계 마법도 사용했어요.]”
“텔레포트를 시도하는 자가 있다면 당장 막고.”
“[당연하죠!]”
봉쇄까지 하자, 길드원들은 숨소리 하나 내지 못한다.
분위기는 더욱 낮아져 소름 끼치는 정적이 흐른다.
“……형님? 정말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왜 저희에게도 말해 주지 않으시는건지…….”
박민호가 조심스럽게 속삭인다.
이쯤 되면 본인도 불안한 눈치였다.
이도윤 역시 마찬가지.
잔뜩 긴장하고 있는 것이 나에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확실히 해야 한다.’
지금 말해 줄 수는 없다.
지금 나자신을 제외하고는 믿을 놈은 한 명도 없었으니.
정말로 이 둘과 계속 함께하려면 필수적인 일이었다.
만약 두 놈 중 렌의 수하가 있다면……
그때는 차라리 죽여 달라 비는 게 좋을지도.
“[마왕님……]”
점차 표정이 굳어간다.
아렐리아가 안타까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대체 무슨 걱정을 하는건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오히려 지금 나는 어떤 놈이 첩자일까, 치밀어 오르는 호기심을 감추기 힘들다.
‘이런 경우가 한두 번도 아니고.’
그동안 스쳐간 첩자들이 떠오른다.
물론, 그 끝은 모두 비슷했다.
지구에서라고 다를 리는 없다.
“……그럼 시작하지.”
손가락에 느껴지는 차가운 금속.
그곳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우우웅-
순식간에 마나가 퍼져 나간다.
여전히 혼탁한 금빛 마력이었다.
찰나의 시간.
하지만 억겁과도 길게 느껴지는 몇 초가 흘렀다.
“응? 너 팔에 이게 뭐야? 원래부터 이런 문신이 있었나……?”
“……뭐? 무슨…… 헉!!!!”
약간의 소란이 일어난다.
주변의 사람들은 그저 의아해할 뿐이지만, 대답하는 자는 그렇지 않았다.
‘한 놈, 두 놈…… 총 두 명인가.’
그들의 얼굴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희게 질려간다.
지체할 시간은 없다.
나는 바로 <변화하는 공간의 문> 스킬을 사용했다.
“아렐리아. 저 새끼들 잡아다 넣어.”
“[넵~]”
아렐리아의 경쾌한 날갯짓 소리가 들린다.
곧 쿠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배신자 두 놈이 변화하는 공간으로 던져졌다.
“제, 제길!!! 용병왕!!!!!”
“정령왕들에게 안부 전해 주면 좋겠군.”
물론 낯선 인간을 보고도 멀쩡히 둘 정령왕들은 아니겠지만.
악을 지르던 그들을 향해 입매를 뒤틀어 웃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이 빠져나오려 발버둥치던 때.
문은 언제 열렸냐는 듯 사라졌다.
“두 명이라. 얼굴을 처음 보는걸 보니 최근에 들어온 놈들인가 보군. 그나마 튜토리얼을 함께했던 각성자들은 아니어서 다행인가.”
더 다행인 건 나와 가까운 자들이 렌의 수하가 아닌 것이고.
그래도 생각보다 배신자의 수가 적었다.
“이만 해산해도 좋다.”
내 말에도 돌아오는 말은 없다.
모두 두 눈을 크게 뜬 채 쳐다만 보고 있을 뿐.
아까보다 더 고요한 적막이 내려앉고 있었다.
“……형님? 대체 무얼 하신 겁니까…..?”
“진 님???”
간신히 정신을 차린 이도윤과 박민호가 질문해온다.
나는 주변에 아직 남아있는 길드원들을 힐끗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제서야 그들은 눈치채고 조용히 나를 따라온다.
“화영을 납치한 자들이 렌의 수하더군. 도중에 이러저러한 일들 있긴 했다만…… 그건 천천히 설명하지. 중요한 건, 내가 그 조직원들을 가려낼 아티팩트를 얻었다는 것이니까.”
정확히는 강탈한 셈인가.
과정이야 어쨌든 결과는 훌륭했으니 상관없다.
“그리고 방금은 아티팩크를 사용해 그의 수하들을 찾아내신 거고요.”
“정확해.”
“그럼 방금 그놈들이 잠입해 있던 첩자란 말입니까??”
드러난 진실에 이도윤은 사색이 된다.
눈빛은 분노로 일렁거리고 있었다.
하기사, 그들은 길드장인 이도윤이 뽑았을 터.
배신감에 사무치는 것도 이해가 갔다.
“특별한 아티팩트에만 드러나는 문양이라…… 확실히 알아차리기 힘들겠군요.”
“잠깐. 그런데 저희에게 미리 이야기하지 않으셨다는 것은…….”
박민호가 말꼬리를 흘린다.
침묵하던 두 명은 시선을 교환하더니, 나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설마 저희를 믿지 못하셨습니까? 신중한 건 물론 좋습니다. 그래도 그렇지……아니, 솔직히 한번쯤은 의심하는 게 당연하긴 하지만요…….”
“형님!! 도윤이라면 모를까, 저는 용병대에서도 배신당했다며 누명까지 쓰고 한번 죽었는데요! 설마 제가 또 그러겠습니까?”
그들은 계속 억울하다며 아우성이다.
그 와중에 직접적으로 서운하다는 단어를 말하진 않았다.
“어쩔 수 없으셨다는 건 잘 압니다…… 그래도…….”
결국 이도윤은 고개를 푹 떨군다.
지금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역효과일 터.
나는 계속 말없이 쫓아오던 아렐리아에게 눈짓했다.
“[다음은 어딘가요?]”
“아레스 길드.”
그녀는 바로 대답없이 마나를 끌어올린다.
마법이 시동되기 직전.
그들은 다시 놀란 얼굴로 다급히 질문해온다.
“그림자 길드만 확인하려는 게 아니셨습니까?”
“그래. 우선 가까운 곳부터 시작해, 국내 길드들을 살펴볼 생각이다. 적어도 5대 길드나 협회만큼은.”
“……그럼 강준하 길드장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배신자를 걸러내는 일이다.
오히려 내 주변인일수록, 일은 확실히 처리해야했다.
“형님…….”
박민호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한다.
나를 쳐다보는 눈빛에는 심란함이 가득 차 있다.
순간 어이가 없어진다.
이도윤도 그렇고, 또다시 무슨 이상한 오해를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헌터라는 놈들이 하나같이 감수성이 풍부하기는.’
그러나 이 상황을 풀어낼 시간이 없다.
그들이 알아차리기 전에 모든 일을 마무리해야 하니까.
심드렁하게 아렐리아에게 손짓을 했다.
준비해 놓았던 텔레포트 마법진이 즉시 발 밑에 떠오른다.
이동할 준비를 하는 나에게, 박민호는 기어코 눈물을 보이고 만다.
마치 죽으러 떠나는 기분.
결국 나는 텔레포트 직전, 참아왔던 말 한마디를 내뱉고 말았다.
“……염병들 하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