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43화
“빈손으로 돌아오긴 좀 그래서.”
기념품을 들고 온 것마냥 말하자, 그녀는 바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냥 어디다 묻어 버리고 오시지……]”
물론 평소라면 야산에 파묻고도 남았다.
이들에게 더이상 뜯어낼 물건도, 정보도 없는 듯했으니.
하지만 지금만큼은 상황이 조금 달랐다.
“그냥 렌의 수하들이 아니라, 첩자더군. 그것도 헌터 협회에서 일하는 직원이었고.”
이들은 나중에 박신우 지부장에게 보낼 생각이었다.
리본이라도 묶어 포장하면 더 좋을 테고.
믿었던 동료가 사실은 적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모르긴 몰라도, 기꺼이 시간내 구경할 정도는 될 것이다.
“[예?? 협회요? 그쪽은 여태껏 잠잠했었는데……]”
“딱히 이상할 건 아니지.”
무려 마탑 본부까지 뒤흔들어 놓던 조직이다.
다른 길드에도 사람을 심어 놨으리라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심지어 협회만큼 군침도는 곳도 없을 터.
아마도 이런 놈이 몇 명이나 있겠지.
“그래도 의외인 건, 정신 지배를 받은 흔적이 없다는 건데…….”
“[아무리 드래곤이라도, 그런 용언을 함부로 남발할 수는 없으니까요.]”
“맞는 말이야. 렌을 자의적으로 따르더군.”
하나. 무얼 위해서?
그의 모든 행동은 헌터들에게 해를 끼치기 위한 것들.
<검은 탑>에 오르는 자들을 방해한다면, 지구가 멸망할 거라는건 빤하다.
눈이 돌아갈 만큼 대단한 보상도 결국 쓸모가 없어질 텐데.
“[대체 뭐 하자는 수작일까요.]”
여태껏 이들에 대해 의문을 품지는 않았었다.
이 드넓은 세상에 미친놈이 한둘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어떻게 된 조직인지, 파헤쳐도 계속 넝쿨째 끌려 나온다.
이제는 얼마만큼 있는지 궁금할 정도.
“점점 재밌어지는데…….”
“[이들을 찾아낼 생각이시군요?]”
아렐리아가 눈치 빠르게 예상해 온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놈을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그렇다면 손발부터 끊어 놓는 수밖에.”
이미 이도윤을 주축으로, 수상쩍은 동태를 보이는 길드를 조사해 놓으라고 한 상태였다.
하나 전 세계를 뒤져볼 수는 없겠지.
그렇다면 가까운데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터였다.
“문제는 어떻게 모조리 찾아내느냐. 이것인가.”
일단 의심 가는 놈부터 쥐어 팰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우선 잠자코 머리를 굴려보았다.
제 발로 걸어온다면 참 좋겠……잠깐.
‘걸어올 수도 있겠는데?’
이놈들이 세상 태평하게 중얼거리던 말들이 떠오른다.
여기서 무작정 결계 쳐 놓고 기다리던 이유기도 했던, 그 말.
“그래, 그랬지. 아직 도와줄 조력자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하더군.”
조력자라.
지금도 화영을 추적하는 랭커들을 따돌리려면, 분명 이놈들처럼 어중이떠중이는 아닐 터.
그 정도라면 조직에서도 한자리 차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우선 온다는 놈을 기다리는 게 좋겠군. 이들로 위장까지 하면 더 좋고. 아렐리아, 할 수 있나?”
“[마왕님. 제 주특기가 환영 마법인 거 잊으셨어요? 드래곤이 아닌 이상,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거예요.]”
그녀가 바람 빠진 풍선마냥, 허탈하게 중얼거린다.
물론 이미 알고는 있었다.
하나, 그녀가 환영 마법을 사용하는 건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러고보니 주로 잡일만 시켰던가.’
보통 아렐리아가 하는 일이라곤 텔레포트 따위였다.
여러모로 재능 낭비나 다름없는 사용이었다.
“[이 두명으로 보이게 하면 되는 거죠? 그 정도야 쉽죠.]”
그녀는 재빨리 본래의 모습으로 변한다.
오랜만에 보는 칠흑 같은 머리카락을 보며, 나는 다른 일을 위해 랭커 채널을 열었다.
[진우주최고최강위대한형님: 이 산에 있는 거 맞나요? 아무리 넓은 곳이라지만, 샅샅이 뒤져도 없는데요.]
[언제나야근철야: 벌써 몇시간이나 지났습니다. 다른 곳으로 향한 건 아닐까요?]
[가을하늘: ……아닐 겁니다. 산 말고도 근처에도 넓게 수색하고 있으니, 부디 각자의 위치에서 조금만 더 수고해 주시길 바랍니다.]
역시나 헌터들은 아직도 우왕좌왕하는 중이었다.
그래도 이곳을 포기할 수는 없는지, 차마 장소를 옮기지는 못한 채였고.
‘그래선 안 되지.’
곧 올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나는 오랜만에 채널에 말을 적을 준비를 했다.
“[마왕님, 뭘 할 생각이세요?]”
아렐리아가 협회 직원들이 입고 있던 로브를 벗겨내다, 갑자기 내 쪽을 바라본다.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으니 궁금한 모양이었다.
"바람잡이.”
“[네??]”
우선 박민호부터 시작해 볼까.
내 말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을 놈이니.
* * *
“……로브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요.”
분명 아렐리아의 말투지만, 굵직한 목소리가 낯설다.
로브사이로 슬그머니 보이는 뾰로통한 표정의 사내 얼굴은 더더욱.
“아렐리아. 말투.”
“네, 네…… 가볍게, 반말. 하지만 곧 올 적에게는 공손히. 맞죠?”
그녀와 나는 방금전의 결계에 들어온 상태였다.
내 손에 들려 있는 금빛 막대기 덕분이었다.
[위대한 힘의 지팡이[SSS급]: 위대한 존재의 힘을 일부분 빌릴 수 있는 지팡이. 단, 강대한 힘이 하찮은 도구에 담기는 바람에 사용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 (남은 시간: 16시간 36분) *해당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파괴됩니다.]
비록 1회용에 가깝지만, 그게 어디인가.
드래곤의 기운을 가진 자만 들어갈 수 있는 결계며, 용아병까지.
이건 일반적인 인간이 다룰 수 있는 능력은 아니다.
“화영을 납치하려 꽤 많은 준비를 했나 본대.”
“그러게요. 쉽게 만들어낼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니까요.”
갑자기 누워 있던 화영이 벌떡 일어난다.
마치 산책 가자고 말하자마자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마냥, 신속하고 정확했다.
심지어 눈을 가리는 안대가 무색할 만큼, 고개를 돌리고 있는 방향은 정확히 내 쪽을 향해 있었다.
“주인님. 저 말입니까?”
‘이놈이고 저놈이고. 연기 솜씨는 다들 형편없군.’
미간이 절로 구겨진다.
나는 다시금 3류 연기자들에게 경고했다.
“화영. 내가 정신을 차리지 못한 척하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 놈이 입을 열어?”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 누워있겠습니다.”
“아렐리아. 너도 마찬가지다. 반말하라 계속 말했을 텐데.”
“하지만 고쳐지지 않는걸요! 위대한 마왕님께 어떻게 반말을 해요…….”
아렐리아가 안절부절못하며 대답한다.
9서클 마법은 펑펑 날리는 고위마법사가 고작 반말은 못하다니.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럼 너도 웬만하면 입을 다물어. 대화는 주로 내가 할 테니.”
“차라리 그게 낫겠군요. 알겠어요.”
결연한 얼굴로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던 그때.
공간 저편에서 황금빛 결계가 조금 흔들린다.
드디어 기다리던 손님인가.
나는 낯선 자를 경계하려는 용아병을 말리며, 나타난 자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시킨대로 잘 숨어 있었나 보군. 헌터들이 다른 곳을 수색하기 시작했어. 수고했다.”
내 예상대로였다.
협회 직원은 아랫사람이었던듯, 그는 자연스럽게 우리를 하대한다.
이정도라면 잔챙이는 확실히 아닐 터였다.
“실험체는?”
말없이 화영을 포박하고 있는 줄을 건네자, 그는 만족한듯 이상한 웃음을 흘린다.
그리고 그는 끼고 있던 반지를 들이민다.
내가 들고 있는 막대기와 비슷하게, 황금빛 기운이 감도는 물건이었다.
“너희를 데리고 떠나기 전에, 잠시 확인 좀 해야겠어. 다들 평소처럼 눈을 감아라.”
그렇지. 이런 게 없다면 말이 안되지.
반지는 아마도 조직원을 가려내는 아티팩트인 모양이었다.
나는 우선 잠자코 눈을 감았다.
곧 렌의 힘으로 생각되는, 기분 나쁘게 끈적한 마나가 나를 휘감는다.
정확한 위치는 팔뚝 부근이었다.
“……응?”
몇 초 뒤.
그는 손을 이리저리 휘두른다.
목소리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왜 문양이 떠오르지 않지????”
문양이라.
꽤나 고리타분한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나.
나는 바로 반지를 끼고 있는 그의 손목을 부여잡았다.
“뭐, 뭐 하는……!!”
“왜냐고?”
으드득-
“아악!!!!!”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잡혀 있던 그의 손목이 기괴한 방향으로 꺾인다.
“그야, 네가 찾던 사람이 아닌가 보지.”
입꼬리를 비틀어 웃었다.
순식간에 그의 눈동자가 공포에 젖어간다.
“적인가!? 말도 안 돼!! 대체 어떻게 이곳의 결계를 뚫은 거지?”
애써 뚫을 필요까지 있나.
활짝 열려 있는 문을 들어가는 것만큼 쉬웠는데.
나는 말없이 그의 손가락에 걸려있는 반지를 잡아챘다.
“젠장!! <헬파이어>!”
“감히 어딜.”
퍼엉-!!!
마법이 코 앞에서 쏘아져 나온다.
손바닥에 마나를 감싸 마주대자, 타오르던 불덩이가 굉음과 함께 터져 나갔다.
“미친……컥!!”
쾅!!!!!
나와 그 사이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다.
그는 금세 시커먼 숯덩이가 되어 버렸다.
“죽어 버렸는데요? 뭔가 물어보시려던 것 아니었나요?”
잠자코 지켜보던 아렐리아가 슬그머니 다가온다.
어느새 환영 마법은 풀려, 본래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한 채였다.
“이까짓거 좀 막아섰다고 본인 마법에 죽을지는 몰랐지.”
어이가 없는 최후였다.
그가 있던 자리에는 잿더미에 파묻힌 황금색 반지만 남아있었다.
“음…… 보통 마법사라면, 눈 앞에서 폭발하는 헬파이어를 피할 수는 없죠. 방어 마법을 사용할 새도 없었으니까요.”
그녀가 당연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한다.
‘뭐, 어쩔 수 없나.’
이미 죽어 버린 놈을 부활시킬 수도 없고.
일단 제일 큰 목적은 이뤘으니, 후회는 없었다.
나는 우선 검댕이가 묻은 반지를 주워들었다.
[위대한 힘의 반지[L급]: 마나를 불어넣는 즉시 반지와 공명하는 문양을 나타내게 한다. 많은 양의 마나를 불어넣을수록 범위는 넓어진다.]
“물건은 제대로군.”
제일 중요한 준비는 완료되었다.
이제 남은 건 대체 어떤 놈이 첩자였는지 밝혀 내는 일뿐.
“헌터계가 시끌벅적해지겠는데.”
앞으로 벌어질 파티가 꽤나 기대된다.
나는 슬쩍 웃으며 손가락에 반지를 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