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41화
“여기서 서쪽 방향으로 총 여섯인가. 멀지는 않군.”
여러 명의 기운이 한꺼번에 느껴지는 곳은, 단 한 곳뿐.
특히 한 명이 유난히 약해 빠졌다.
아마도 화영이겠지.
그는 마신의 분노로 스탯을 잃은 상태이니.
위치도 알아냈겠다, 당장 이동하려던 찰나.
‘……무언가 이상한데.’
무려 헌터 전용 감옥을 습격한 자들이다.
협회의 감시망을 과감히 뚫었으니, 그들의 힘은 분명 강력할 터.
그러나 느껴지는 기운은 미약하다.
마치 신출내기 헌터들의 그것처럼.
“[예? 주변에요? 그럴 리가……]”
아렐리아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묻는다.
그리곤 본인도 확인하려는지, 집중하는 얼굴이 되었다.
“기운이 약해. 네가 파악하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물론 마왕님이 느끼신 게 맞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고위 마법사인 제가 조금도 느끼지 못할 리가 없어요.]”
상당히 자신감 넘치는 말투였다.
다른 자라면 주제 파악도 못한다 비웃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말대로, 아렐리아는 마계에서도 한손에 꼽히는 강자.
공작 자리도 내기 따위로 거저 얻게 아니다.
“설마 누군가에 의해 가려진 건가.”
“[네. 아마도요. 그것도 제 눈을 피할 수 있을 정도면, 무시못할 적이에요.]”
하나가 신경 쓰이니, 나머지 이상한 점들도 거슬리기 시작한다.
심지어 그들은 한 장소에 멈춰 있는 상태.
빠르게 이동하고 있을 거라던 협회의 말과는 다르다.
무언가 다른 계획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일단 몸을 숨기고 지켜봐야겠군.”
“[네. 혹시 모르니 기척을 숨기는 마법도 사용할게요. <하이드>]”
그녀가 사용한 은신 마법이 몸을 감싼다.
왠만한 헌터는 감지조차 못할 만큼, 강력한 마법이었다.
나는 바로 아렐리아를 잡아들고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향했다.
‘이쯤일 텐데……’
그렇게 십여 분 정도 지났을까.
슬슬 기운은 가까워지는데, 도통 적의 모습이 나타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같은 장소를 맴도는 기분이었다.
“공간을 분리하는 마법인 것 같은데.”
“[꽤 강력한 마법이군요. 이러니 제가 기운을 느끼지 못했나 봐요.]”
“하지만 아렐리아 너라면, 파훼할 수 있겠지?”
“[당연한 말씀을.]”
그녀는 활기차게 대답한후, 앞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는 짧은 앞발을 커다란 나무에 턱하고 얹었다.
우웅-
잠시 후, 아렐리아의 마기가 몸에서 빠져나온다.
검은 마력은 서서히 나무를 옥죄이듯 퍼져 나갔다.
“[으음??]”
몇 분간 집중하던 그녀가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린다.
목소리에서는 약간의 당황마저 묻어난다.
큰소리 떵떵치던 방금과는 천지 차이였다.
“잘 안 되는 건가.”
“[아뇨. 분명 마법의 수준은 높지만…… 이정도면 저보다는 한수 아래예요. 그런데, 마법에 담긴 마나가 이상한데요.]”
“마나가 이상하다니? 혹시 마기를 쓰는 마족이라 그런건가.”
“[비슷해요. 하지만 마족뿐 아니라, 인간조차 이걸 풀 수 없을 거예요.]”
이게 무슨 개소리지.
그럼 천족쯤은 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사실 화영은 천족의 끄나풀이었나,라는 생각을 할 때쯤이었다.
“[드래곤의 힘이에요.]”
“……뭐?”
“[너무 조금 섞여있어 본인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그자에게 힘을 빌린 것 같군요.]”
드래곤이라.
여기서 아렐리아가 그자라고 칭할 만한 놈은, 딱 한 놈밖에 없었다.
“렌 이 새끼가…….”
그러고보니 타이밍도 그럴싸하다.
화영이 잡혀가자마자 생긴 정령계의 구멍이라니.
이건 작정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만약 정보를 알려줄 서채아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이 시간쯤이면 그가 원하는 바를 이루고도 남았겠군.’
그놈의 생각과 시각을 공유한다라.
서채아는 여러모로 렌을 상대하는데 도움될 패였다.
앞으로 그녀를 자주 찾게 될 거라 생각하던쯤.
계속 집중하던 아렐리아가 다시금 입을 연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여긴 드래곤의 마나를 가진 자밖에 들어가지 못해요. 당연히 저는 불가능하지만……]”
아렐리아가 동그란 눈망울로 나를 쳐다본다.
묘하게 자랑스러워하는 느낌이다.
“나는 가능하겠군.”
“[맞아요. 그 도마뱀, 헤르멘의 마나를 받아들인 마왕님이라면 어렵지 않겠죠?]”
렌조차 이런 변수는 생각하지 못했겠지.
알게 된다면, 여러모로 엿먹은 기분일 것이다.
“[마법을 파훼할 필요까진 없겠군요. 마왕님 자체가 입장권이나 다름없으니까요. 아마 들어왔는지도 모를 거예요.]”
생각보다 일이 쉽게 돌아간다.
나는 바로 아렐리아가 짚고 있던 나무에 정신을 집중했다.
곧 주변의 마나가 하나씩 느껴진다.
그리고 이 공간을 분리하고 있는 힘 역시도.
‘확실히 드래곤의 힘이군.’
그 무엇으로도 부술 수 없는 단단한 자물쇠를 마주한 느낌이다.
하지만 헤르멘에게 받은 마력을 흘려 넣자, 금세 문이 열린다.
내 몸은 마치 빠져들어가듯, 그 안으로 향했다.
“[기다리고 있을게요. 다녀오세요~]”
순식간에 아렐리아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어느새 주변은 흔한 풀벌레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화영은…… 저기인가.’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 인기척이 들린다.
재빨리 나무 위로 올라가 그들을 살펴보았다.
로브쓴 놈 둘에, 검은 갑옷의 기사 셋.
그리고 단단히 묶여 있는 화영.
어딘가 이상한 조합이었다.
‘화영을 구출해 낸 게 아니라, 이건 마치…….’
도살장에 끌고가는 개새끼 느낌인데.
아닌 게 아니라, 그들이 화영을 대하는 태도가 남달랐다.
“크으으윽…….”
왜인지 모르겠지만, 화영은 눈에 안대가 씌워져 있다.
몸은 바닥에 대충 구겨져 있는 상태.
로브를 쓴 자들이 깔끔 떨며 천 쪼가리에 앉아있는 것과는 정반대였다.
심지어 옷은 더러운 진흙투성이다.
정말로 개처럼 질질 끌고 온 모양이었다.
‘물론 저따위 취급을 받아도 싼 놈이긴 하다만.’
나는 속으로 말을 삼킨 채, 그들이 있는 방향을 주시했다.
“멍청한 놈 같으니. 거기서 마왕을 소환하다니?”
“제 딴에는 완벽한 계획이라 생각했겠지. 용병왕이 마왕만 아니었다면.”
로브를 쓴 자들은 연신 주절거린다.
도저히 포위된 자들로는 보이지는 않는다.
긴장은커녕, 한가해 보이기까지 한 상태.
눈에 불을 키고 추적하고 있는 헌터들이 본다면, 억울함에 쌍욕을 날릴 정도였다.
‘밖에 쳐져 있는 결계를 단단히 믿고 있군.’
확실히 발상만은 인정해 줄 만한 것이었다.
드래곤의 마나로만 파훼할 수 있는 결계라니.
뚫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을 터였다.
물론, 나를 빼고.
“뭐, 그 덕분에 우리는 쓸 만한 몸을 얻었으니 잘된 거지. 스탯은 잃었다지만, 그분의 힘이라면 이정도는 상쇄하고도 남을 테고.”
“당연하지. 오히려 이렇게 약해져 우리가 납치할 수 있게 되었으니, 더할 나위 없는 기회지. 무려 월드 랭커였던 자의 몸이라니……정말 호박이 넝쿨째 굴러온 격이군.”
역시나 렌이 납치해 오라고 시킨 건가.
목적이 화영의 몸뚱이 그 자체라…….
‘서채아 때와 비슷한데.’
그녀 또한 실험체였지.
내가 마무리될 때쯤 구출해, 성공하지 못했지만.
한번 실패했으니 또다시 그 짓거리를 하려는 속셈으로 보인다.
“이번 실험은 좀 더 경계를 강화할 거라 했었지? 주인님이 직접 손을 쓰신다던데.”
“또다시 용병왕이 훼방 놓으면 안되니까.”
“젠장, 블랙마켓도 털리고 마탑까지. 대체 몇 번째인지.”
그들은 내가 묻지도 않은 계획에 대해 술술 털어놓는다.
어떻게 입을 열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게 어이없을 정도였다.
“아, 그러고 보니 두번째 약을 먹일 시간이군.”
한 명이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황금빛이 넘실거리는 물약병이다.
누가 봐도 렌의 힘이 미치고 있는 물건이었다.
“끄아악!!!”
“좀 잘 붙들어 봐!”
“빌어먹을. 처음보단 낫다지만, 여전히 짜증나네. 한 두어 번은 더 먹여야 잠잠해지겠어.”
한 명이 화영의 입을 강제로 벌렸다.
그와 동시에 다른 한 명이 물약을 흘려 넣는다.
괴로운 듯 발버둥치는 화영은 아랑곳하지 않는 듯하다.
“후…… 대체 지원군은 언제 오는 거야??”
“아무래도 밖에 헌터들이 많으니, 오래 걸리겠지.”
연신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말은커녕, 움직임 하나 없는 검은 기사들과 대비될 정도였다.
“연락도 안 되고, 미치겠군.”
“이정도면 하루는 지나야 하지 않을까.”
그 뒤로도 그들의 대화가 이어진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귀를 기울였지만, 이제 딱히 건질 만한 것은 없었다.
슬슬 잡담을 끊고 나서려는 그때였다.
‘잠깐, 어디서 본 놈인데.’
한 명이 더운지 머리를 감싼 로브를 슬그머니 벗는다.
드러난 얼굴이 어딘가 낯익다.
분명 헌터로 활동하는 자는 아니었다.
그렇다는건…….
‘허?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나는 몸을 감춰 주던 높은 나무에서 도약했다.
그들이 있는 바로 코앞까지.
쿵-
발을 디딘 땅이 움푹 패인다.
주변은 금세 흙먼지로 자욱해졌다.
“큭??뭐지????”
“지원군이 벌써 왔나?”
적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 건가.
여전히 태평한 소리였다.
나는 그들을 위해 친절히 먼지 속에서 걸어 나왔다.
“잠깐…… 설마…… 용, 용병왕!!?”
나를 알아본 자가 삿대질을 한다.
얼굴은 당황했는지 터질 듯 붉어져 있다.
“예의 없는 새끼. 감히 어디서 삿대질을.”
절로 인상이 구겨진다.
도대체 동방예의지국인 한국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저번에 이도하도 그렇고. 아주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구나.’
순식간에 그의 손가락 부여잡았다.
그리고 손아귀에 힘을 주자,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득-
“아악!!!”
“미, 미친……당장 공격해!!”
옆에 있던 놈이 주춤거리며 악을 지른다.
그의 말에 검은 기사들이 철컹 소리를 내며 다가온다.
전에 블랙 마켓에서 보았던 용아병이었다.
제법 쓸 만한 적수였다.
하나 이미 한 번 상대해 본 상대.
딱히 흥미는 생기지 않는다.
‘생명체가 아니니, 단숨에 가루로 만들어 버려야겠……응?’
당장이라도 공격해 올 것 같던 검은 기사들이 이상하다.
그들은 검만 들어올린 채, 그대로 멈춰버렸다.
마치 실이 끊어진 마리오네뜨 인형같았다.
“뭐 하는 거야!? 멍청한 놈들아!!!”
“크윽…… 뭐…… 뭐야…….”
잔뜩 당황한 목소리가 들린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금빛 막대기를 마법 소녀마냥 휘두르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의 눈물겨운 노력에도, 기사들은 묵묵부답이다.
‘고장난 건 아닌데. 명령을 듣지 않게 된 건가. 대체 왜?’
나는 그들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용아병, 드래곤의 명령을 받는 자들이라…….
설마.
갑자기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
나는 그 즉시 마나를 약간 흘리며 기사들에게 명령했다.
“저 두 명을 붙잡아라.”
밑져야 본전이다.
심지어 고작 말 한마디 내뱉는 건, 전혀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철컥-
“뭐, 뭐야!!!????”
……미친. 이게 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