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32화
어느정도 정령의 샘과 가까워졌다 생각했을쯤.
순식간에 주변의 풍경이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그리곤 먼지가 뿌옇게 일더니, 새로운 모습을 만들기위해 꿈틀거린다.
‘자, 어떤 곳이냐. 뭐든 상관없으니 빨리 나오기나 해라.’
집채만 한 몬스터일까, 아니면 끔찍한 지옥일까.
무엇이든 상관은 없었다.
내가 벨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을 테니.
[<인스턴트 던전 - 행복의 꿈>에 진입했습니다.]
곧 환영 마법이 모든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내 앞에 펼쳐진 풍경은 내 상상과는 달랐다.
“드디어 모든 게 끝났어!”
와아아-
‘……지구?’
익숙한 거리는 분명 협회 주변의 광장이었다.
그것도 축제와 다름없는 분위기로, 사람들은 모두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에서 예상한 공포나 슬픔 따위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이게 다 헌터님들 덕분이에요!”
“속보입니다. <검은 탑> 99층이 클리어되었습니다! 지구 멸망은-“
탑이 모조리 공략되었다고?
지금까지 들어본 소리 중 제일 개소리였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자는 주변에 오직 나뿐인 듯, 모두 지금의 상황을 만끽하고 있었다.
“형님, 여기서 뭐 하십니까? 빨리 협회로 가시죠!”
“맞습니다. 오늘 파티의 주역은 진 님밖에 없으니까요.”
옆에 있던 강준하와 박민호가 내 등을 떠민다.
우선 상황을 잠자코 지켜보기 위해 그들이 원하는 장소로 향했다.
멀지 않은 협회에는 화려한 만찬이 펼쳐져 있다.
마치 파티라도 벌어진 듯이.
“진 헌터님이 오셨습니다! 자, 이쪽으로 오시죠.”
“여태껏 크게 다치거나 죽은 사람도 없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이게 모두 용병왕님 덕분입니다. 이제는 평화의 시대이니, 즐기시는 일밖에 없겠군요.”
아, 그런 건가.
생각보다 얼토당토않은 게 튀어나와 버렸다.
‘행복의 환상이라니.’
함정이라는 게 이렇게 말랑한 정신계 마법일줄은 몰랐는데.
나는 차가운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방에는 기쁨에 겨워 떠들어 대는 자들밖에 없다.
오직 나만이 입을 다문 채 가만히 있을 뿐이다.
‘그래도 환상 치고는 애썼는걸.’
주변에 놓인 테이블을 만져보았다.
차가운 대리석의 촉감도, 그 위에 놓인 음식들의 먹음직스러운 냄새도 그럴싸하다.
이뿐만 아니라, 분명 헌터들의 정신을 뒤흔들어 놓는 마법도 함께일 것이다.
마치 여기가 정말 현실처럼 느껴, 나갈 생각 따윈 절대 하지 않게끔.
그리고 평생 이 안에 갇혀 행복한 꿈만 꾸겠지.
‘그런데 왜 나는 멀쩡한 거지?’
분명 렌이 용언까지 사용하며 만든 공간이다.
하지만 나는 이곳이 분명한 환상 속임을 알고 있다.
원래라면 잠시라도 착각하고, 그 뒤에 이상함을 느껴야 할 텐데.
지금도 주변에는 황금빛 힘이 나를 에워싸고 있었다.
[강력한 힘(상태 이상:혼란)이 정신에 침투합니다!]
[드래곤 헤르멘의 기운이 힘을 막아냅니다.]
드래곤의 기운?
설마 전에 마탑에서 그의 힘을 일부분 흡수했던 것이 작용한 건가.
아직까지도 내 마력에는 드래곤의 마나가 섞여 있으니.
‘용언이 통하지 않는 몸이 된 거군.’
하기사, 아무리 용언이라도 같은 드래곤끼리는 무용지물과 다름없지.
앞으로도 유용하게 쓸 만한 힘을 얻게 된 것 같다.
“진 님, 와인이나 샴페인 한잔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이건 어떻습니까?”
옆에서는 계속 이도윤과 박민호가 이것저것 음식을 들이민다.
평소라면 나도 흔쾌히 받아들여 잠시나마 분위기를 즐겼겠지.
그만큼 파티장은 떠들썩했다.
그 누구라도 함께 하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할 만큼.
“난 됐다.”
“네? 이거 형님이 즐기시는 빈티지 와인인데…….”
나는 그들을 무시한 채 주변을 훑으며 돌아다녔다.
환상에서 나가는 방법은 단 하나.
이 안에서 가장 이질적인 존재를 파괴하는 것이다.
하지만 주변에는 익숙한 헌터들뿐.
딱히 그럴싸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야 하나? 아니야. 분명 이 안에 있다.’
나를 협회 안으로 끌어들였으니, 이곳에 나를 혼란스럽게 할 자가 나타나야 한다.
적어도 이제 갱생했다며 친한 척하는 렌 정도는.
그리고 옥장판이나 정수기까지 판매하려 들면 더 완벽하겠고.
‘그건 좀 끔찍하군.’
기껏해야 이제 마법사는 때려치우고 검사의 길을 걷겠다는 김상수면 좋으련만.
이건 현실 가능성이 충분해서 안 되려나.
“여기 있었군요, 진.”
그때였다.
뒤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들린다.
그 익숙함에 나는 망부석처럼 굳어버렸다.
“같이 가자고 했는데, 왜 날 기다리지 않은 거예요? 너무해요.”
나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눈부신 백금발에 아름다운 얼굴이 나를 뾰로통하게 쳐다본다.
이곳에, 아니 그 어떤 곳에서도 있으면 안 되는 사람.
그리고 꿈에서 그리는 것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아리아?”
“네. 왜 그런 표정으로 바라봐요? 또 이상한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니죠?”
부드러운 주홍빛 눈동자가 나를 응시한다.
여전히 석양을 닮은, 따스한 색감이었다.
“도착하셨군요. 오실 때 불편한 점은 없으셨습니까.”
“아, 강준하 헌터님. 덕분이에요. 과할 정도였어요. 아스티란에서도 이런 친절은 못 받아 봤는데…….”
“이제는 지구에 정착하기로 하셨으니, 익숙해지셔야 할 겁니다. 진 님의 유일무이한 친구시니까요.”
“하하하! 그런가요? 진이 그렇게 이야기했나요? 전에는 친구는커녕, 원수 보듯 했는데. 진도 많이 변했네요.”
제기랄, 빌어먹을.
내뱉지 못하는 욕설들이 속을 맴돈다.
고작 행복의 환상이라고 치부했던가.
‘……렌. 아주 적절한 마법을 골랐군.’
아직도 아리아가 죽어가는 모습이 선명하다.
삶을 포기하기 직전, 그녀가 나를 구렁텅이에서 꺼내 준 그날도.
모든 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하…….”
“진? 괜찮아요?”
아리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그저 쓰게 웃으며 그 모습을 바라볼 뿐.
“다시 보게 될 날을 항상 바랐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는데.”
“이런 식이라니요?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요. 몸이 좋지 않은 건가요?”
그녀는 내가 열이라도 난다 생각하는지, 이마에 손을 얹는다.
나는 그 손을 차갑게 쳐 냈다.
“......진??”
“좋아. 렌. 괜찮은 마법이었어. 인정하지.”
그냥 행복의 환상이 아니라, 소중한 자를 보여 주는 환상이었던가.
꽤나 흥미로운 발상이었다.
‘하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던 것 같군.’
나는 바로 인벤토리에서 폭렬의 페르아렌을 꺼내들었다.
“형님? 왜 검을???”
이곳에서 가장 이질적인 존재.
그건 오직 아리아뿐.
내가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컥!!”
지체없이 검을 찔러 넣었다.
파티장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된다.
하지만 그 큰 소란은 내 귀에 전혀 들리지 않았다.
“진 님!!!!!이게 무슨……!!!”
손에는 진득한 핏물이 끊임없이 검을 타고 흐른다.
그리고 그녀의 원망에 찬 눈빛이 나를 바라본다.
나는 그 주홍색 눈동자에서 조금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이따위 것에 흔들리기에는, 그동안 너무 많은 일이 지나가서 말이야.”
결국 아리아가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눈부신 백금발의 머리카락은 이미 검붉은 피로 흠뻑 젖어 있다.
나는 그 모습을 무뚝뚝하게 바라보았다.
우우웅-
마나가 소용돌이처럼 퍼져 나간다.
곧 내 눈 앞에는 모래에 파묻힌 거대한 마석이 모습을 드러낸다.
복잡한 마법진이 수십개나 겹쳐져 있는걸 보니, 아마도 환상 마법의 매개체인 모양이었다.
콰직-!!
들고 있던 검을 마석에 박아넣었다.
동시에, 안에 갇혀 있던 마나가 폭발할 듯 터져 나간다.
그곳에서 나온 황금색 빛가루는 내 시야를 가릴 것처럼 넓게 흩날렸다.
‘이제 끝인가.’
뜨거운 모래 바람이 느껴진다.
어느새 주위는 방금전의 사막으로 변해 있었다.
“무사히 돌아오셨군요.”
옆에는 서채아가 아까와 같은 모습으로 서있다.
내 예상처럼 큰 고난 없이 마법에서 벗어난 모양이었다.
“그래. 이제 남은 건 저것밖에 없군.”
나는 정면을 쳐다보았다.
그곳에 있는 정령의 샘은 여전히 출렁거리며 오색의 빛을 뿌리고 있었다.
“바로 들어가실 건가요?”
대답하지 않은 채 손목의 시계를 보았다.
정신계 마법에 빠져 있던 시간은 한 시간 정도.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정령계에 들어간 헌터들이 위험에 빠지기 충분한 정도였으니.
“지체할 여유는 없겠지.”
걸음을 움직여 바로 샘에 몸을 담궜다.
맑은 물 중앙 부분에는 정령계로 보이는 곳이 일렁인다.
첨벙-
소리를 들어보니 서채아 역시 들어온 모양이다.
정령계까지 따라올 셈인가.
혹시 몰라 정신계 마법에 같이 휩쓸리게까지 했는데, 불만 하나 없는 것도 이상했다.
‘함정도 파괴했고, 이만 돌아가도 상관없는데.’
의아한 마음에 고개를 돌리자, 그녀가 감정 없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길드원들을 걱정해 보라 하셨잖아요. 아직은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길드원들이 죽는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조금 이상해요. 그들을 구해 낼 거예요.”
이게 무슨 헛소리지.
그러고보니 아까 전, 협회에서 내가 나비 길드원들이 걱정되지 않냐는 소리를 하긴 했다.
하지만 큰 의미를 담아두고 있진 않아 보였는데.
“조금씩…… 감정들을 배워 보려고요.”
빤히 쳐다보자, 그녀는 눈을 내리깔며 중얼거린다.
갑자기 변한 서채아의 심정은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
‘SS랭크니 전투에 방해되지는 않겠지.’
걸리적거리지만 않는다면 나야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바로 숨을 참고 고개를 샘 안으로 들이밀었다.
몸은 천천히 사막의 열기가 녹아 난 미지근한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 * *
도착한 정령계는 익히 듣던 말들과는 다른 풍경이었다.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져 있을 거라더니.’
발이 닿는 지면에는 풀 한포기조차 없다.
저 멀리 보이는 물줄기는 오염되다 못해 검은색에 가까웠다.
차라리 아무것도 없는 이집트의 사막이 더 생기가 넘칠 지경이다.
정령계도 <타락>했을 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이정도라면 요정계보다 심한 수준이었다.
끼아아악-
곳곳에는 타락 때문에 미친 정령들이 텅 빈 동공으로 주변을 떠다닌다.
그 와중에 유난히 정령들이 몰려 있는 곳이 눈에 띄었다.
재빨리 다가가자, 역시 그곳에는 각국의 헌터들이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