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31화
이미 이런 사실까지 알고 있었던 건가.
다른 것들까지 추궁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별로 없었다.
“정령계 연결된 문이 문제라면 그걸 클리어하면 되겠군. 서채아, 그곳의 위치는?”
나는 우선 제일 중요한 정보부터 캐물었다.
당연히 서채아라면 그 정도는 알고 있을 터.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생각을 읽을 수 없는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문다.
“…말할 수 없습니다.”
“모르는 게 아니라, 하지 못한다라…….”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지도 않을 텐데.
나는 한쪽 입꼬리를 비틀어 웃었다.
그에 박민호의 울상인 얼굴이 당황으로 물든다.
“혀…… 형님? 제발 참으세요! 서채아 길드장, 빨리 말하는 게 좋을 겁니다!! 형님이 이 상황에서 저렇게 웃으신다는 건-”
쿠웅-
내가 뿜어낸 마력이 휘몰아친다.
바닥난 인내심만큼이나 거친 기운이었다.
“큭!!”
제일 가까이에 있던 박민호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납작 엎드린다.
주변에서 우리의 눈치만 보고 있던 헌터들도 마찬가지.
모두 압도적인 힘에 벌벌 떨며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정말…… 말할…… 수…….”
“나는 지금 권유를 하고 있는 게 아니야.”
그리고 배려라는 걸 하는 사람도 아니고.
중얼거리는 내 말에 박민호가 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아무 말이라도 하라는 듯이.
‘감히 누구 앞에서……’
아까부터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서채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대충 넘기고 있었을 뿐.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 당장 끌고 가 관련된 내용들을 모조리 불게 했을 것이다.
그것이 폭력을 동반하는 것이라도 상관은 없다.
다른 것도 아니고 렌에 관련된 정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릴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
“하…… 지만…… 그곳은…… 으윽!!”
기운을 버티지 못한 그녀가 주저앉는다.
그럼에도 꿋꿋이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수상할 정도였다.
왈칵-
서채아는 결국 입에서 검붉은 피를 왈칵 토해 냈다.
나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인벤토리에서 무기를 꺼내들었다.
그녀의 목에 들이댄 검은 날카롭게 번쩍거린다.
단순한 협박은 아니었다.
끝까지 입을 다문다면, 정말로 팔다리 하나쯤은 베어 낼 생각이었다.
“길드장님!!!”
멀리서 나비 길드의 부길드장이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른다.
다른 헌터들의 시선들도 좋지 않았다.
헌터간의 공격은 일반적인 죄보다 더 무겁다.
이미 나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저 지금은 서채아의 입을 열게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안…… 돼요!! 그곳에 가면 분명 당신이 위험에 빠질 거라고요!!”
그녀의 말에 나는 잠시 멈칫했다.
……지금 내 안위를 신경 쓴다고?
분명 나와 몇 번 마주친 것 외에는 관련도 없는 자인데.
“내가 여태껏 다닌 곳 중에 위험하지 않은 장소는 없었다. 그리고, 그걸 네가 신경 쓸 이유는 없을 텐데. 왜 나를 걱정하는 거지.”
“그건…… 맞지만…….”
본인조차 당황했는지 그녀의 눈동자는 거칠게 흔들린다.
“……이게 걱정한다는 감정인가…….”
나는 그녀의 목덜미를 내려다보았다.
핏물이 흐르던 검은 이제 흠뻑 젖어 원래의 빛을 잃은 상태.
하지만 아픔조차 느껴지지 않는지, 그녀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얼굴이다.
“......이상하게 당신을 보면 감정이라는 것을 하나씩 알아가는 기분이에요.”
이게 무슨 개소리지.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에는 진심이 담겨있었다.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그녀를 보니, 점점 어이가 없어진다.
“네 이상한 놀이에 어울릴 시간은 없다. 지금 그 구멍이란 곳으로 빠져나간 헌터들이 몇 명이나 되는지 아는가? 나비 길드원들도 몇 사라진 거 같은데. 하다못해 나를 말고 그들을 걱정해 보지 그래.”
“그들은 그저 같은 단체의 소속일 뿐. 그리고 차원계의 구멍은 점점 사라질 테니, 이 이상의 피해는 없을 겁니다.”
책임감이 없어도 너무 없는 거 아닌가.
한 길드의 수장이라는 자의 입에서 나온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본능적으로 그녀를 죽여도 원하는 정보는 얻을 수 없다는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감정을 못 느낀다더니, 이정도였나.’
“실망이군. 앞으로 내 눈에 띄지 마라.”
이런 자들에게는 그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는다.
죄의식도, 손발톱을 뽑아내는 고통도 그저 시간낭비일 뿐.
나는 기운을 거두고 바로 뒤를 돌았다.
지금 이 상황은 협회에서 서둘러 파악하고 있을 터.
우선 그들에게 찾아가 볼 생각이었다.
“잠깐!!!!”
몇 걸음 떼었을까.
뒤에서 서채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리자, 그녀는 금방이라도 부서져 내릴 듯 위태한 얼굴이었다.
“눈에 띄지 말라니? 그런 말은 하지 말아 주세요.”
기어이 미치기라도 한 것인가.
그녀는 내가 마지막 동아줄이라도 되는양, 간절히 매달린다.
“위치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내 옷깃을 살며시 붙잡은 부여잡은 손이 덜덜 떨린다.
대체 뭐 하자는 수작인 거지.
목에 칼을 들이밀어도 덤덤했던 것에 비하면 황당할 정도였다.
이런 손쉬운 방법이 있다면 진작 써먹었을 것을.
“통로가 있는 장소는 이집트예요. 정확한 위치는 모르나, 그 근처는 알아요. 텔레포트로 이동할 수 있는 좌표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내가 말없이 가만히 있자, 그녀는 얼른 좌표를 적어 내민다.
‘일단 정령계니 뭐니 하는 말은 여태껏 맞아떨어지긴 했지만…….’
설마하니 거짓말이진 않겠지.
차갑게 서채아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조마조마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잘못된 장소가 아니라 장담할 수 있나?”
“확실합니다. 하지만, 입구에 그가 파놓은 함정이 있어요. 아주 강력하고 위험하죠.”
“함정?”
“……종류는 몰라요. 환상을 보여주는 정신계 마법 종류라는 것밖에.”
그래서 나를 말렸다는 건가.
원래도 동행할 생각이었지만, 이쯤 되면 그녀를 놓고 갈 수는 없었다.
같이 간다면 확실히 편한 일이 많을 테니.
“그럼, 바로 출발하지. 너도 따라와.”
“저도……네. 알겠습니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장거리 텔레포트 스크롤을 꺼냈다.
서채아가 도망가지 못하게 팔목을 단단히 부여잡은 채였다.
“형님…… 저도 함께 가면 안 되겠습니까?”
그때, 박민호가 슬며시 말을 꺼낸다.
귓구멍이 막히기라도 했던가.
지금까지 대화를 들었다면 이런 소리를 할 수는 없을 텐데.
“위험하다는 말, 못들었나?”
“그러니 더더욱 저를 데려가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도윤이도 걱정되고, 형님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습니다.”
“제 몸 하나 간수하지 못하는 놈이.”
그의 진실된 마음이 잘 느껴진다.
하지만 렌이 대놓고 파놓은 함정에 데려갈 수는 없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내가 키워 낸 인력을 이렇게 잃을 수는 없지. 다들 무사히 데려올 테니 걱정 말고 있어라.”
“……예.”
박민호는 입술을 강하게 깨문다.
저런 자괴감이 그를 더 성장시킬 수도 있을 테니, 위로의 말까지 할 필요는 없다.
고개를 푹 숙인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스크롤을 주저없이 찢었다.
* * *
도착하자마자 타는 듯한 열기가 느껴진다.
발에는 고운 모래가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다.
끝도 알 수 없는 거대한 사막.
그 황금빛 메마른 땅 중간에는 이질적인 공간이 있었다.
“......호수?”
“정령의 샘이에요. 저곳으로 들어가면 정령계가 나오죠.”
샘이라기에는 너무 큰데.
가까이 다가가니, 갑자기 서채아가 내 앞을 막아선다.
“이 이상은 안돼요. 제가 말한 함정이 있는 곳이에요. 이곳에 오게 될 헌터들을 위해 파놓은 것이죠.”
그 말에 나는 발걸음을 멈춰 섰다.
천천히 뜯어보아도, 별로 수상한 것은 없어 보이는 곳이다.
나는 이 앞의 공간에 마나를 읽으려 시도해보았다.
‘이걸 말하는 거군.’
평범해 보이는 마나의 흐름 중, 과연 거슬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
하지만 정말 미세한 티끌과도 비슷하다.
그저 착각이라 생각 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
역시 마법의 생물인 드래곤이라는 건가.
쾅-!!!
나는 마력을 잔뜩 담아 휘둘렀다.
그러나 모래 바닥에는 흠집조차 나지 않는다.
“어떤 방법을 써도 힘들 거예요. 용언도 섞여 있으니.”
한번 크게 당하더니, 온 힘을 다해 만든 건가.
그녀의 말대로 확실히 간단하게 파괴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여차하면 아렐리아를 부르려고 했건만.’
정신계 마법에 특출 난 그녀도, 용언에는 속수무책일 터.
결국 방도는 하나였다.
“직접 들어갈 수밖에 없겠군.”
“네? 들어간다니요?”
그녀는 나를 다급히 만류한다.
나는 여전히 내게 붙잡혀 있는 손목과 함께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용언이 섞였든 말든, 어찌되었든 본질은 정신계 마법에 불과해.’
그동안 겪어 본 정신계 마법이 한두개가 아니다.
그중에는 환상을 보여 주는 마법도 있었다.
환상의 종류는 각자 다르다지만, 보통 상대의 감정을 뒤흔들어 놓는 것들이 대부분.
기껏해야 형용할 수 없이 공포스러운 몬스터가 나온다거나, 괴상한 공간이 나오겠지.
당연스럽게도, 그 따위 것들은 별 위협스러운 환상이 아니다.
“장담하지. 너와 나에겐 영향을 끼치지 못해.”
“하지만, 정신계 마법은 개개인이 가진 강함으로는 이겨 낼 수 없어요.”
서채아의 주장이 맞긴 했다.
특히나 귀환자들은 죽음을 겪고 지구로 돌아오게 된 자들.
아마 왠만한 랭커들은 미쳐 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니 렌이 자신만만하게 함정이랍시고 설치해 놨을 테고.
“너,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나.”
“네? 그렇긴 하지만…….”
“나도 비슷하다. 그딴 건 이미 몇백 년 전에 잃어버렸지.”
그녀가 스스로를 괴물이라고 했던가.
그런 의미에서는 나 역시 괴물일지도 모른다.
가까운 사람들을 지키려는 의지는 있지만, 그것도 결국은 학습된 행동.
애써 사람다움을 잃지 않기 위한 마지막 발버둥에 가까웠다.
‘이것도 그녀가 알려 준 것이었지.’
이미 곁에 없는 자가 다시금 생각난다.
얼굴에는 씁쓸한 미소가 감돌았다.
“당신은 두려운 게 없나요?”
잠자코 따라오던 서채아가 조심스레 묻는다.
두려운 것이라.
지구가 멸망하는 일? 세상 모든 사람이 죽어 없어지는 일?
잠깐 허망해지긴 하겠지.
하지만 그런 것들이 나를 뒤흔들 수는 없다.
“……차라리 그런 걸 알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군.”
내 말을 끝으로 대화는 단절되었다.
그저 묵묵히 사각 거리는 모래 밟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여기서부터 시작점인가.’
점차 끈적한 마나가 몸에 달라붙는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앞을 향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