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30화
그녀는 무언가 결심한듯, 서서히 나를 향해 움직인다.
길드원들은 서채아를 서둘러 만류했다.
“길드장님!! 안 된다니까요!!!”
절박함마저 느껴지지만, 쓸데없는 짓이었다.
거침없는 발걸음과 표정은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나와 그녀 사이를 아무도 방해할 수 없다는 듯이.
‘응? 눈동자 색깔이…….’
아주 찰나의 시간.
차가운 눈동자에 얼핏 찬란한 금빛 기운이 어른거린다.
곧 사라지긴 했지만, 착각이라 치부하기엔 너무나 선명했다.
분명 언젠가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는데.
그래. 서채아를 발견했을 때였던가.
지금처럼 눈을 처음 마주하는 순간에 겪었던 일이었다.
“……최근 깨어나지 못하는 동안, 계속 꿈을 꿨어요.”
이게 무슨 소리지?
기껏 여기까지 와서 내뱉는 소리가 꿈타령이라니.
순간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내 옆의 강준하도 마찬가지인지, 오늘 본 중 제일 표정이 딱딱했다.
“미친 여자군요.”
냉철한 평가가 이어진다.
차갑지만, 정확했다.
“진 헌터님을 만나는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꿈이라기에는 너무 선명했어요.”
분명 우리가 본인 대화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잘 느껴질 텐데.
그러거나 말거나, 뜻 모를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생각보다 뻔뻔한 성격이었던가.
“더이상 들을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만. 그만 일어나시죠.”
나는 작게 끄덕이며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어차피 주변도 서서히 정리가 되어 가는 상태.
화영을 비롯해 대부분의 중국 헌터들은 이미 어디론가 끌려갔다.
더이상 여기 있을 필요는 없었다.
“오랜만에 아레스 길드로 가시겠습니까?”
“그래. 할 이야기도 있고.”
“꿈에서의 저는 황금빛 머리카락을 가진 소년의 모습이었어요. 당신은 저를 렌이라고 불렀고.”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
나는 벽 방향으로 그녀를 밀어붙였다.
쾅!!!!!
그녀의 등 뒤, 대리석 벽이 큰 균열과 함께 쪼개진다.
하지만 서채아의 눈빛은 잔잔했다.
조금의 고통도 느끼지 못한다는 듯이.
“진님!!!!”
“길드장님!!!”
사방에서 경악에 찬 고함소리가 들린다.
아직 빠져나가지 않은 헌터들도 많았기에, 순식간에 이목이 쏠린다.
그러나 선뜻 다가오는 자들은 없었다.
강준하조차도.
“너,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그때 주변에는 분명 아무도 없었어.”
목격자가 있을 리가 없다.
그날 게이트 안에는 나와 렌뿐.
서채아는 그 당시에도 혼수 상태였다.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 상황.
‘꿈?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부여잡은 한쪽 어깨가 한손에 들어온다.
작고 가녀리다.
검을 쥐는 자의 몸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만큼.
하지만 나를 올려다보는 눈빛은 그 무엇보다 단단했다.
“……정말이었군요. 그건 꿈이 아니었어요.”
내내 표정 없던 그녀의 얼굴에 약간의 다급함이 묻어난다.
“제 꿈이 모두 사실이었다면, 이럴 때가 아닙니다. 당장 헌터들에게 위험을 알려야-”
[지구에 정령계와 연결된 게이트가 생성됩니다.]
[특히, 니시크라메 대륙과 연결된 아프리카 대륙에 돌발 게이트가 더 자주 생깁니다.]
그때, 뜬금없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른다.
돌발 게이트야 자주 있는 일이라지만 하필 정령계라니.
대륙들과 연결된 공간이 아니니, 게이트 등급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갈 터.
전 세계는 큰 혼란에 휩싸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은 서채아가 하던 말과 묘하게 맞아 떨어지고 있었다.
“이미 늦었군요.”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으르렁거리듯 내뱉은 말에, 그녀의 표정이 굳어진다.
어딘가 혼란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저 본 대로 말하는 것뿐.”
그저 보았다라.
간결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이제야 서서히 맞춰지는 퍼즐 조각들.
‘블랙 마켓이 하던 실험. 렌의 기운을 서채아에게 심는 작업이었던건가.’
하지만 실험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마무리 도중 난입해버린 나와 강준하로 인해서.
그런데도 그녀는 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렌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 해야 할 말이 많은 것 같은데.”
서채하가 협조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입을 열지않는 자가 말을 하게 하는 방법은 많았으니.
험악한 내 기운을 읽었는지, 그녀가 작게 동요한다.
“그럼 조용한 곳으로 가야겠군. 따라와.”
아레스 길드는 못 가겠는데.
적절한 장소를 떠올리는 도중, 이상한 기운이 감지된다.
그게 무엇인지 느끼기도 전에 몸을 피하려는 순간.
몸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우우웅-
[A급 돌발 게이트가 생성되었습니다!]
순식간에 바뀐 풍경은 외딴 해변가.
하지만 반짝이는 햇빛과 파도에 부서지는 모래 따위는 없는 곳이었다.
콰릉-!!!!
당장이라도 나를 삼킬 듯 파도가 일렁인다.
어두침침한 하늘 탓에 바다의 색은 검디 검었다.
“관광하기 좋은 해변은 아닌데.”
“……그런가요.”
같이 끌려들어온 서채아가 대답하듯 중얼거린다.
다른 자들은 없었다.
게이트 안에는 오직 둘뿐이다.
덕분에 대화할 장소가 생겼으니, 잘된 건가.
우선 나는 그녀와 함께 그나마 조용한 곳으로 향했다.
“앉아.”
바다가 보이는 절벽 위.
우리는 적절한 바위에 하나씩 걸터앉았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거친 바람에 나부낀다.
시선은 시커먼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로 향해 있었다.
“바다는 처음 와 봐요.”
“꽤나 감상적이군.”
여기서 지금 할 말은 아닐 텐데.
한참을 가만히 있다, 그녀가 뜬금없는 말을 내뱉는다.
나비 길드에서 감금이라도 당했던 건가.
“감상적이라…… 글쎄요. 감정이란 걸 못 느낀 지 오래라. 아마 몸이 이렇게 되면서 생긴 부작용이겠죠.”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상의를 약간 들춘다.
복부에는 일자로 길게 이어진 상처가 있었다.
수술한 흔적인가.
아마 블랙 마켓의 실험으로 얻은 것일 터였다.
“심장이 없으니까요.”
계속 놀라운 말이 이어진다.
하지만 그 사실을 말하는 서채아의 얼굴은 담담하다.
슬픔과 괴로움, 그 어떤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감정을 모른다는 그녀의 말처럼.
“……저는 괴물인 건가요.”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녀 역시 굳이 답을 요구한 말은 아닌지, 다시 자리에 앉는다.
“렌이라는 소년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더군요. 본인이 괴물이라고.”
“생각도 공유하는 건가.”
“꿈이니까요. 내가 렌이 되는 꿈. 모든걸 느낄 수 있죠. 그를 매일같이 파먹는 지독한 슬픔과 상실감마저도.”
그런걸 느끼는 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슬픔은커녕, 조금의 감정조차 없는듯 내내 차가운 모습이었다.
마치 내 앞의 서채아처럼.
“그래서 방금 전의 게이트도 미리 알 수 있었던 것이고.”
“네. 영국 마탑의 일을 통해 인공 게이트를 만드는 방법도 알아냈는데, 그저 정령계와 연결하는 건 쉽죠. 물론 예상보다 부작용이 많지만…… 오히려 잘된 일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부작용이라는 게 무엇일까.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정령계와 연결되었다는 게이트의 파괴겠지.
정확히 어느 위치에 열린 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녀라면 알 것이다.
철컹-
갑작스레 그녀는 인벤토리에서 무기를 꺼내든다.
아까부터 슬금거리며 몰려드는 정령들이 거슬리는 듯했다.
바다는 이제 우리가 서있는 절벽의 바로 아래까지 차오른 상황.
그 모습을 보며 나 역시 마력을 끌어모았다.
쾅!!!쿠웅-!!!!
나와 그녀는 동시에 공격을 시작했다
사방에서 검기가 휘둘러진다.
공간까지 베어 버릴 듯한 힘에 물의 정령들은 순식간에 난도질이 난다.
“우선은 나가서 확인해 봐야겠군. 너도 따라오도록 해라.”
“예. 정말로 빨리 나가 보셔야 할 겁니다.”
“[크르륵……]”
보스몬스터인 상급 물의 정령이 나타난다.
거대한 덩치는 그야말로 집채만 한 파도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그걸 쳐다보는 우리 둘은 태평하기만 했다.
촤악!!
서채아가 검을 길게 뻗는다.
군더더기 없이 매끄러운 공격이었다.
쿵-
[보스 몬스터가 처치되었습니다!]
“……아마 밖은 이미 난리가 났을 테니까요.”
[A급 돌발 게이트가 클리어 되었습니다.]
그녀의 영문모를 소리와 출구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나 역시 가만히 서 있다 밖을 향했다.
“안 돼!!!!”
“빌어먹을, 대체 어디로 간 거지!? 협회에서는 아무 정보도 모른다고 하나???”
……이런 의미였나.
분명 화려했던 호텔 연회장.
지금은 난장판으로 변해 버렸다.
설명을 요구하기에는, 다들 정신이 없는 상황.
인상을 찌푸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형님!!!”
그때 박민호가 나를 보자마자 다급히 뛰어온다.
얼굴에는 얼핏 눈물자국 같은 것이 보였다.
“형님이 게이트로 가신 뒤로, 갑자기 웬 시커먼 구멍 같은 것들이 생기더니……!!”
그는 횡설수설하며 말을 더듬는다.
그리곤 크게 놀랐는지 결국 내 앞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구멍이…… 크흑, 도윤이가…….”
나는 천천히 무릎을 굽혔다.
그와 눈을 마주할 수 있도록.
“박민호, 정신차려.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그러니 제대로 말해.”
“흐읍…….”
그는 잠시 심호흡을 한다.
곧 흔들리는 눈동자가 제대로 돌아왔다.
“도윤이가…… 어떤 구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강준하 길드장부터, 다른 헌터들까지요. 랭커 채널을 보니 거의 수백 명이 넘는 숫자라고 합니다.”
“......뭐?”
“정령계와 연결되며 생긴 부작용이에요. 하나의 문을 만들려고 했던 당초 계획과는 달리, 여러 개가 만들어졌죠. 다만, 그도 그걸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잠자코 있던 서채아가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