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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129화 (129/200)

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29화

공포로 가득했던 소란은 멎었다.

오히려 지금은 쥐 죽은 듯 고요하기만 할 뿐.

모두들 나와 화영을 멍하니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래, 계약을 하고 싶다고.”

“마…… 왕?”

“불러 놓고 왜 아무 말도 없는 거지?”

기껏 그 난리법석을 떨어 놓고 말이야.

미소를 띄운 채 너스레를 떨자, 그의 선이 고운 얼굴에 점점 금이 가는 착각이 든다.

그 모습이 어찌나 위태로워 보이는지.

금세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부서져 버릴 것만 같았다.

“우리는 마왕을 소환했는데…… 용병왕이…….”

“……어떻게 이런…… 설마 실패한 건가……?”

소환 의식을 진행했던 흑마법사들도 비슷한 반응이다.

중국의 헌터들은 넋이 나간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니야, 의식은 실패한걸 거야. 그래. 그렇고 말고.”

화영은 계속 현실을 부정한다.

이쯤에서 지금 본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인지시킬 필요성이 있었다.

나는 내가 가진 마력의 일부분을 마기로 변화시켰다.

곧 당장이라도 무언가를 파괴하고 싶은 충동과 함께, 짙은 검은색의 기운이 넘실거린다.

“마…… 마기…….”

“허억……정말 용병왕이 마왕이란 말인가…….”

확연하게 보이는 마기에, 흑마법사들은 천천히 주저앉는다.

덜덜 떨리는 몸은 그들의 공포를 대변하기에 충분했다.

어느새 주변에 제대로 서 있는 자는 오직 한 명.

화영뿐이었다.

‘그러고보니 월드 랭킹 3위였나.’

미국의 영웅이라 불리는 월드 랭킹 2위의 길리안이 떠오른다.

그럭저럭 쓸 만한 힘을 가진 헌터였던걸로 기억한다.

그래.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라면, 이정도는 버텨 줘야지.

나는 점점 짙은 미소와 함께 마기를 증폭시켰다.

“크윽…… 용…… 병왕…….”

그가 시뻘건 눈으로 나를 노려본다.

겉으로는 꽤 참을 만해 보였다.

‘괜한 배짱을 부리는군.’

애써 참고 있지만, 입가에는 가느다란 핏줄기가 흐른다.

분명 지금쯤 내장은 진탕이 난 상태일 터.

그는 오직 정신력만으로 버티고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호칭을 달리 해야지. 지금은 마왕으로 자리에 선 것 아니던가.”

직접 부르기까지 해놓고 모른 채 할 셈인가.

아니면 정말로 모를 만큼 멍청한 건지.

나는 비아냥거리며 마기를 조금씩 줄였다.

“……마왕?? 네가 마왕이라고!? 말도 안되는 소리!!!”

이제 버틸 만해졌는지 그가 재빨리 무기를 꺼내든다.

그나마도 부들거리는 게, 제대로 힘을 주긴 힘들어 보였지만.

그래도 그 기세만은 상당했다.

“죽…… 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찔러 들어오는 검.

푸른빛의 검기가 섞여 있는 채였다.

마지막 마력을 짜내 쓰는지, 꽤나 강력하다.

하지만 그 알량한 힘은 내게 지푸라기와 비슷하게 느껴질 뿐.

‘역시, 덤벼드는가. 예상대로군.’

캉!!!

가볍게 그의 검을 잡아들었다.

손에는 금속의 차가움이 서늘하게 느껴진다.

“너무 계획대로 따라와 줘서 고마울 지경이군.”

“……무슨……!?”

와드득-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검은 순식간에 잘게 조각나 바닥에 떨어져버렸다.

화영은 그저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만 본다.

그리고 그때.

띠링-

그와 내 사이를 시스템 메시지가 막아서 듯 떠올랐다.

[소환자의 선제 공격으로, 계약을 더이상 진행할 수 없습니다.]

[신성한 마계의 계약을 파기한 소환자들에게 마신의 분노가 내립니다.]

쿠웅-

화영과 쓰러져 있는 흑마법사들에게 섬짓한 마기가 쏘아져 내린다.

마신의 분노라는 명칭답게, 그 기운은 스산하기 그지없다.

“……커억!!!!”

“크악!!!!”

[소환자들은 보유 스탯의 90퍼센트를 영구히 잃습니다.]

결국 안간힘을 쓰던 화영은 바닥을 뒹군다.

각혈로 온 몸은 피투성이였다.

나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마기를 거두었다.

“스…… 스탯이…….”

그도 시스템 메시지를 보았는지, 얼굴은 절망으로 물든다.

강자로 군림하던 그는 이제 한낱 D랭크 헌터만도 못할 터.

아마 죽는 게 낫다 생각될 정도겠지.

“쯧. 그러게 왜 되지도 않는 오기를 부려서.”

마족 소환과 계약은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니다.

말이 계약이지 이건 <명예의 제전>과 함께 고대부터 내려온 의식의 일종.

마신에게 바치는 제사와 다름없다.

‘요즘 마족들이 소원을 들어준다는 동화 속 요정 취급을 받긴 하지.’

하지만 마족의 성정이 어디 가겠는가.

감히 선빵을 치는데, 하하호호 웃으며 계약을 해 줄 마족은 없다.

그리고 오늘은 어떤 계약일까 흐뭇하게 지켜보는 마신은 더더욱 짜증이 나겠지.

모르긴 몰라도, 마신은 기대하던 콘서트장에서 티켓 찢기고 내쫓긴 기분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신의 분노가 내리는 것도 당연했다.

물론, 미처 거기까지 계산하지는 못했겠지만.

“……끝난 겁니까?”

누군가 숨막힐 듯한 정적을 깨뜨렸다.

잠자코 지켜보던 헌터들은 나에게 모여들었다.

“감히 이런 일을 꾸미다니…… 젠장, 하마터면 몰살당할 뻔했습니다.”

헌터들의 분노가 바닥에 누워있는 자들에게 향했다.

그 와중에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그들을, 헌터 몇이 노골적으로 바라본다.

당장이라도 한 대 치고 싶다는 표정이었다.

“진 헌터님께는 어떤 감사의 말씀을 드려도 부족하지만, 역시 손 놓고 구경만 해서 아쉽군요.”

한 명이 이를 갈며 말한다.

분이 사그라들지 않는 모양이다.

“글쎄. 아직 남아 있는 게 있지 않나.”

나는 턱짓으로 문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빠져나가지 못한 중국의 마법사들이 아직도 우두커니 서있다.

당장이라도 불을 뿜을 듯한 헌터들의 시선을 받자, 그들은 크게 당황해 움찔거린다.

“큭……!”

“맞다. 저자식들……!!”

헌터들을 가둬 두려 사용했던 마법이 그들조차 막아 버린 듯했다.

대체 얼마나 강력한 마법을 사용했던 건지.

보아하니 실패할 가능성은 조금도 염두해 놓지 않았던걸로 보인다.

‘덕분에 나는 좋은 구경거리가 더 생겼지만.’

멍청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딱 맞는건가.

자신감 하나만은 인정해줄만 했다.

“당장 잡아!!!”

“으…… 으악!!!”

순식간에 헌터들이 문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든다.

마치 성난 황소 떼와 같은 모습이었다.

“이 자식들, 언젠가 사고칠 줄 알았어!!”

“앗! 죽이면 안돼요!! ”

퍼억-!!!!

“아악!!!”

“아씨, 피 튀잖아요!”

마법사들은 그야말로 비 오는 날 먼지나게 뚜드려 맞았다.

얼굴은 퉁퉁 부어 찐빵처럼 변한 지 이미 오래.

무기마저 빼고 주먹질을 하는 통에, 그들은 온몸이 멍 투성이다.

그래도 그들은 용케도 빈 곳을 찾아 구타를 멈추지 않았다.

뭐, 사이좋게 손잡고 황천길로 향할 뻔했으니 당연한 건가.

“저희까지 나설 필요는 없겠네요.”

“어차피 중간부터는 신경도 안 썼잖아요. 마왕 소환? 솔직히 웃음 터질 뻔했어요.”

“대단하네요. 전 고개 숙이고 몰래 웃었습니다.”

한국의 헌터들은 멀찍이 떨어져 그들을 구경했다.

분노는커녕, 나처럼 흥미진진한 표정이다.

지금껏 일부러 말을 아낀 탓에 대화는 끊이질 않는다.

“……진 님이 마왕이셨나요……미리 알려 주시지…….”

피식 웃으며 지켜보는데 이도윤이 말을 건네온다.

못내 서운한지, 잔뜩 의기소침한 태도였다.

“큭큭. 그래서 내가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잖아. 그정도면 눈치 챌 줄 알았는데.”

“윽, 박민호……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더니, 너마저 날 속여??”

“너도 블랙 마켓에 대해 말 안 했었잖아. 비긴걸로 하자.”

“이게 그거랑 같아? 아니, 그러고보니 저번주부터 나만 보면 실실 웃던 게 이거였어??”

이도윤과 박민호가 투닥거리기 시작한다.

급기야 말다툼은 거세져,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매를 걷어붙인다.

당장 주먹다짐이라도 할 셈으로 보였다.

역시 애들은 싸우면서 친해지는 건가.

‘오늘따라 구경거리가 많군.’

약간의 거리를 벌리고 적당한 의자를 찾아 앉았다.

그러자 멀찍이서 구경하던 강준하가 다가온다.

“......어리군요.”

그도 나와 비슷한 감상을 내뱉었다.

눈빛을 보아하니 못마땅해 죽을 지경인 것 같았다.

“진 님을 따르는 자들이 저 정도 눈치도, 예의도 없다니.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그림자 길드는 다시 한번 재고해 주십시오. 아레스 길드만으로 충분할 겁니다.”

또 이 소리인가.

강준하는 시간이 날때마다 비슷한 말을 해왔다.

이도윤과 박민호가 어지간히도 마음에 차지 않는 모양이었다.

‘사실상 성격이 상극이라, 함께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용하지.’

그의 결벽증적인 성격을 잘 알기에, 대충 타일러 주었다.

“이미 발 걸친 것도 많고, 이제 와서 발을 뺄 수는 없다는 걸 잘 알지 않나. 점점 더 나아지겠지.”

맞는 말이라 생각했는지 강준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표정은 여전히 좋지 않았지만.

“......그리고 또 하나.”

그가 갑자기 내 등 뒤를 응시한다.

눈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아까부터 느꼈지만, 서채아 길드장의 시선이 불쾌하군요. 알고 계셨습니까?”

“서채아가?”

강준하가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녀는 나비 길드원들 중심에서 무뚝뚝하게 있을 뿐.

그들은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듯, 심각해 보이기까지 했다.

“딱히 나를 보고 있지는 않은 것 같은데. 착각한 거겠지.”

“절대 아닙니다. 집중하는 시간은 짧았지만, 틈이 날때마다 진 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횟수로는 27번, 시간으로는 10분이 넘습니다.”

……그걸 세고 있었다고?

농담하는 건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강준하는 사뭇 진지하다.

‘그래. 농담과는 담 쌓고 사는 놈이었지.’

이쯤 되면 믿지 않을 수가 없다.

의심의 눈초리로 그녀를 살펴보았다.

그저 대화를 나눈다 생각했지만, 주의 깊게 살펴보니 분위기가 이상하다.

“절대 안됩니다! 그때도 온갖 소문이 다 났는데, 지금은 보는 눈이 더 많습니다!”

“길드장님, 아니 채아야. 대체 왜 이러는 거야??”

급기야 길드원들은 그녀의 팔을 황급히 부여잡는다.

무언가 사고치기 직전에 뜯어말리는 기색이었다.

“......놔.”

그녀가 크게 팔을 휘두른다.

그에 매달려 있던 길드원 두어 명이 저 멀리 나가떨어진다.

쿠당탕!!

주변에 있던 의자에 부딪혀, 꽤나 큰 소리가 났다.

저 정도면 어디 한군데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아 보인다.

걱정하는 자들에게 하는 행동 치고는 과한 행동이었다.

“길드원들에게 좀 차갑군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준하가 미간을 찡그린다.

나 역시 동의하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서채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시선은 오롯이 나에게 꽂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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