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27화
당연히 화영의 솜씨는 아니었다.
그놈은 검을 다루는 근접계 헌터였으니까.
“상당히 솜씨가 좋은 흑마법사군요. 특히나 이렇게 섬세한 컨트롤은, 쉽게 흉내낼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고보니 중국의 유명 랭커 중 한 명이 흑마법사였다.
갑자기 그가 명함을 내밀 때 손목 사이에 빛나던 물체가 떠오른다.
간결한 형태의 팔찌였던가.
아마도 그게 흑마법이 담긴 아티팩트였겠지.
“마법의 종류는?”
“해를 가하는 종류는 아니군요. 그저 위치 추적 정도? 그나마도 이 주 뒤면 자연스레 사라집니다. 그리고 발동 즉시 마나를 움직일 수 없게 할 수는 있긴 한데…….”
그 정도면 생각보다 위험한 마법일터.
하지만 크레아시론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마법에 당한 자의 총마나양에 따라 유지 시간이 달라서요. 주인님 정도라면, 으음…… 대략 계산하자면 0.00231초 정도?”
……기껏 한다는 게 저 정도였나.
눈 한번 깜빡이는 게 더 느릴 정도다.
마법은 시작도 전에 이미 실패한 거나 다름없었다.
나는 기왕 온 김에, 크레아시론과 그림자 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한 삼십여 분쯤 지났을까.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진 님, 여기 계십니까?”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나를 길드로 불러낸 이도윤이었다.
“한참이 지나도 길드장실로 오지 않으시기에…….”
탑 공략 이후로는 처음 마주하는 자리던가.
오랜만에 보는 그는 반가움과 걱정을 섞인 얼굴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무슨 일로 날 불렀지? 목소리가 꽤 다급해 보이던데.”
“음, 그게 말입니다.”
이도윤이 문 뒤, 연구실을 바쁘게 움직이는 마법사들을 힐끗 바라본다.
행여라도 누군가 들을까 우려되는 눈치였다.
“자리를 옮기지.”
우리는 길드장실로 향했다.
도착하니, 박민호가 기다렸다는 듯 서류뭉치를 들고 맞이한다.
“형님!! 드디어 오셨군요! 한 달이나 공략하실지는 몰랐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저도 따라가는 건데요.”
“......그러게요. 어차피 저는 쫓아가지도 못할 공략대였으니, 민호가 가는 게 나았을지도.”
이도윤이 우울하게 중얼거린다.
시간이 꽤 지난 지금까지도 서러웠던가.
하기사, 처음 있는 탑 공략이라고 잔뜩 기대했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선연하다.
“귀환자가 아니라고 내쫓기다니…….”
“다음에 가면 되지 않겠어? 탑은 아직 많이 남았다고. 아, 형님. 이것부터 읽어 보시겠습니까?”
박민호가 그를 부드럽게 위로하며 나에게 종이 몇 장을 건넸다.
첫 장에는 그림자 길드-정보부 라는 생소한 단체명이 쓰여 있다.
내용을 읽어 보니 꼼꼼하게 길드들과 각종 동향이 조사되어 있었다.
내가 없던 사이에 놀진 않았었나보군.
시간 깨나 쏟았을 것 같은 정보들이었다.
“한달정도의 시간 치고는 정보량이 상당한데.”
“전에 골드 드래곤에 대해 조사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때부터 아레스 길드와 협력해서 꾸린 단체입니다. 도움을 많이 받았죠.”
“강준하 길드장님이 준비를 많이 해 두셨더군요. 또, 블랙 마켓에 워낙 별별 헌터들이 드나들다보니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강준하가 유난히도 바빠 보인다 싶었는데 그런 이유였나.
탑 공략에 길드 관리, 정체 모를 정보부까지.
몸이 두 개여도 부족할 정도일 터였다.
“그리고 마지막 장 보시면, 하나비 길드의 내용도 있습니다.”
“아, 그거…… 도윤아. 그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전부터 무슨 소리야?? 지금 현재 상황에서 제일 중요한 문제잖아!”
뜬금없이 하나비 길드?
내가 알기로는 그들은 대부분의 랭커들이 없어져, 중소 길드로 전락한 상태였다.
다시는 일어서지 못 할 정도로 힘이 많이 빠졌을 텐데.
심지어 이도윤과 박민호는 계속 관련 내용에 의견 다툼이 있었던지,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한다.
“아……그래. 난 모르겠다. 형님이 잘 설명해 주시겠지.”
박민호는 결국 오리발을 내밀며 입을 다물었다.
대체 무슨 내용이기에 저런 반응이지.
일단 나는 잠자코 이도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혹시나 해서 조사한 겁니다만, 그때 마족을 소환하기 위한 재료들 기억하십니까?”
“영혼이 담긴 구슬들이었지.”
“네. 그런데 그때 사용된 건 한 개였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희생당한 사람들과 수가 맞지 않더군요. 그것도 몇 개나요. 분명 더 있을 거라 생각하고 샅샅이 뒤져 보려고 했습니다.”
이도윤의 낯이 어두워진다.
표정을 보니 찾지 못했던 모양이다.
“길드가 세워져 있던 곳, 지금은 폐허가 된 장소 말입니다. 중국의 길드에서 꽤 큰 돈을 주고 그 땅을 사들였더군요. 뭘 하는지 경계가 삼엄해, 들어갈 수조차 없었습니다.”
“……중국이??”
“네. 거절 못할 금액이라, 가뜩이나 재정 능력이 부족한 하나비는 냉큼 받아들였고요. 아마 그 지하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간부의 짓이겠죠.”
건물 바닥에 묻혀 있을, 하나비 길드의 물건들을 중국이 빼내 갔다는 건가.
하지만 서류에 적혀 있는 시기는 지금 시점에서도 한참 전.
이미 일이 터졌으려면 진즉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심지어 그 영혼들로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다.
그냥 거대한 힘을 가진 폭탄이거나, 또는 마족을 소환하는데 쓰이거나.
허나, 현재 마족과 인간의 계약은 내가 모조리 금지시켜 놓은 상태이다.
소환에 성공해 봤자 마족이 계약없이 돌아갈 테니, 분명 허튼 짓일 터.
“쓸모 없는 짓에 돈만 썼겠군. 걱정할 필요는 없어.”
“예? 하지만, 그때 엄청나게 강한 마족이 소환되었다고 들었는데요. 이정도면 마왕을 소환해도 이상하지 않을 양일 겁니다! 심지어 일본과는 다르게, 중국에는 이미 흑마법에 능통한 마법사가 많습니다!”
이도윤이 말도 안 된다는 듯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말이 길어질수록, 내 표정은 점점 묘하게 변할 수밖에 없었다.
“……걱정하고 있는 게 마왕인가?”
“네! 그때 마족에게도 상당한 부상을 입으셨다고 소문이 자자하지 않았습니까? 하물며 마왕입니다! 분명 위험한 일에 휘말리실 겁니다!”
이도윤의 얼굴이 삽시간에 어두워진다.
끔찍한 상상의 나래라도 펼치는 듯이.
‘이걸 박민호가 설명을…… 안 했군.’
박민호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터질 듯한 웃음을 참고 있었다.
“형님, 저는 계속 말렸습니다. 정말로요. 그리고……제 입으로 하기에는 너무 중요한 말 아닙니까?”
맞는 말이긴 했다.
내가 마왕이라는 사실을 떠벌리고 다닐 박민호였다면, 진즉에 동료로 받아들이지도 않았을 테고.
그는 보기보다 입이 무거운 편이었다.
특히나 나에 관련해서는.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도윤이 이지경이 될 때까지 가만 보고만 있었다니.
자연스레 그를 쳐다보는 눈빛에는 힐난이 섞인다.
“진짜입니다! 아침에 연락할 때도 형님을 부를 필요까지는 없다 했는걸요.”
박민호는 비굴한 얼굴로 눈치 빠르게 변명을 늘어놓았다.
“대체 무슨 말들을 하시는 겁니까? 심지어, 곧 있을 아시아 헌터 모임에 참가하는 중국 헌터들이 수상하다고요. 중국 쪽 참가 인원의 대부분이 흑마법사입니다!”
이도윤은 계속 억울한 얼굴로 호소한다.
본인은 심각한데, 우리는 그만큼 따라와 주지 않으니 답답해 보이기도 했다.
“……아마도 목적은 진 님일 거란 말입니다. 물론, 진 님의 힘을 걱정하는 것은 아닙니다만……혹시 모르니…….”
그는 염려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계속 열변을 토하던 것도 이런 이유겠지.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피식 웃어 버렸다.
이내 나는 웃음기를 바로 거두고 짐짓 심각한 얼굴로 이도윤을 마주보았다.
“아시아 헌터 모임이라면, 일주일 뒤에 있는 행사였나.”
“에! 그러니까 가능한 참가하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탑 공략을 마치자마자, 협회에서 모임을 개최한 이유는 많았다.
표면적으로는 <검은 탑> 40층을 클리어한 기념 행사다.
그리고 아시아권 헌터들이 공략할 다음 층들에 대한 설명을 위한 자리였고.
‘겸사겸사 친목도 다지려는 것 같던데…….’
이래서야 친목은커녕, 혼란만 가득하겠는데.
확실히 아시아권 헌터 전체가 모이는 행사는 일을 치르기 좋은 자리였다.
나뿐만 아니라 월드 랭커 몇쯤은 간편히 처리할 수 있을 테니.
“마왕을 소환하려한다라. 그럼 더더욱 가야겠군.”
“아…… 설마, 헌터들을 위험에서 구하기 위함인가요? 당연히 진 님이 가신다면 도움이 되겠지만…….”
어차피 소환당할 거, 내 발로 당당하게 간다는 뜻인데.
하지만 이도윤은 감동한듯 눈동자를 반짝인다.
또 무언가 오해가 쌓이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렇죠, 형님이라면 반드시 가셔야죠. 물론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박민호는 내 말을 정확히 알아듣고 맞장구친다.
눈빛이며 목소리를 보아하니, 반드시 갈 셈인지 결연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런 재미난 구경거리를 놓칠 수는 없겠다는 거겠지.
“민호까지…… 다들 이렇게까지 헌터들의 위험에 신경 쓰시다니. 저도 가겠습니다. 만반의 준비를 해야겠죠.”
그의 오해는 점점 더 깊어졌다.
그걸 보는 박민호는 결국 못 참겠는지 뛰쳐나가 버렸다.
* * *
일주일 뒤.
아시아 헌터들의 모임이 있는 날이다.
박민호는 아침부터 나를 찾아와 있었다.
“드디어…… 오늘이군요. 형님, 너무 기대됩니다.”
그는 말처럼 흥분을 참지 못하겠는지, 눈을 반짝인다.
옆에서 박민호를 지켜보는 아렐리아는 내내 뚱한 얼굴이다.
그가 어지간히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멍청한 인간놈들……그리고 저놈도요. 구경거리를 놓치지 못하겠는 마음은 알겠다만, 여기까지 쫓아오다니. 저걸 확……]”
“저 헤츨링, 또 저에 대해서 궁시렁거리는것 같은데, 맞습니까?”
몇 번이나 물린 전적이 있는 그가 눈치 빠르게 물어왔다.
이미 몸은 그녀가 누워있는 방석에서 슬금슬금 멀어지고 있었다.
좋은 시도였다.
……물론, 한참은 부족했지만.
콱!!
“아악!!!!!!”
“[그 천박한 냄새 풍기지 말고, 빨리 안 꺼져!??]”
박민호는 기어이 피를 보고 말았다.
쯧. 가뜩이나 요새 아렐리아의 감정기복이 심상치 않은데, 거기에 불을 지펴 버렸나.
“[감히 나와 마왕님의 집에 찾아오다니!]”
내 집은 맞지만 본인 집은 아닐 텐데.
월세조차 내지 않는 그녀가 뻔뻔한 태도로 와락 성을 낸다.
‘충성심이 과해진 것 같은데……뭐, 가만 냅두면 잠잠해지려나.’
탑에 나온 뒤, 그녀는 과거 기억 중 일부분을 되찾은 상태다.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적어도 첫만남 정도는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한동안은 울며불며 매달리는 바람에 며칠은 집에서 그녀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최근에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혼자 히죽히죽 웃기까지.
‘울다가 웃다가…… 대체 뭔지.’
나조차도 요즘 그녀의 마음은 통 종잡을 수가 없었다.
“아렐리아, 곧 나갈 테니 그만둬.”
한번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것일까.
그녀는 또다시 입을 크게 벌리다 멈칫한다.
“[……다녀오세요.]”
그녀는 툴툴거리더니 얌전히 본인의 방석으로 돌아간다.
곧 낮잠이라도 자려는 듯, 서서히 눈을 감는 아렐리아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