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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122화 (122/200)

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22화

“……역시 저따위는 당신께 조금도 도움되지 않겠죠.”

아렐리아가 음울하게 중얼거린다.

과거에 대체 어떤 일들을 겪었기에 이정도로 자존감이 낮단 말인가.

아무리 몇백 년 전 과거라지만, 항상 당당하던 모습의 아렐리아만 봐왔기에 낯설기까지 하다.

“저런, 무슨 일이기에 꼬마 숙녀분이 이렇게 기죽어 있을까.”

때마침 들어온 차은진이 부드럽게 웃으며 다가온다.

손에는 어린아이가 입을 만한 옷가지 몇 개가 들려 있는 채였다.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우선 씻기고 와도 될까요? 상처도 치료하고요.”

그녀는 잔뜩 의기소침해 있는 아렐리아를 향해 눈짓한다.

회색빛의 꼬질한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뭐, 마계에 갈땐 가더라도 이정도는 상관없겠지.

허락의 의미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서야 그녀는 싱글거리며 아렐리아의 손을 붙잡고 방을 나섰다.

나 역시 자리를 뜨려는데, 이번에는 김상수가 들이닥친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얼굴은 허옇게 질려 있는 상태였다.

“진 헌터님?? 이제 오셨군요!! 홍현민 길드장 몰골이 장난 아니던데 대체 무슨 일이 있던…… 아니, 이게 아니지. 큰일났습니다!”

“……큰일이라고? 자리는 잠깐 비운 것 같은데.”

“말씀하신대로 정보를 모으고 있는데, 여기에 온 헌터들 행방이 묘연합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몇몇이 납치를 당했다는데……혹시 마족의 짓 아닐까요?”

“뭐? 결국 아르모데스가 일을 친 건가?”

내 얼굴도 김상수와 마찬가지로 굳어 버렸다.

헌터가 납치라니.

바로 그 자리에서 죽임 당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것도 잠시일 터였다.

당연히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을 테니.

‘왜지? 지금은 영혼을 모으느라 바쁠 텐데.’

이미 아르모데스의 계획은 모두 간파한 상태다.

그리고 그 계획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것도.

그런 시점에서, 그자가 납치까지 할 여유가 있던가.

그것도 헌터만 쏙 모아서.

생각할수록 의아했다.

“혹시 그 마족들이 검붉은 구슬을 들고 있다거나 하진 않았고?”

“그게…… 목격자들에 의하면 마족이 아닙니다.”

“심지어 마족이 아니다?”

“하지만 더 심각한 일입니다. 대륙에 현자로도 유명한 마법사가 하나 있었는데, 그자의 짓이더군요. 계속 인간의 편에 있던 자인데…… 어제부터 마족과 결탁했다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허…….”

……미친.

헤르멘의 짓이었나.

대륙에 있는 헌터들을 내게 데려오라고 하긴 했다.

그래도 그렇지, 납치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쓰라 하진 않았는데.

“현자 본인도 어떤 마족에게 납치당했다던데, 무언가 정신 개조 마법이라도 당한 것이 아닐까요? 젠장, 그 정도 마법사라면 웬만한 마법에 당하진 않을 텐데. 대체 얼마나 강한 상대란 말인지…….”

“……됐다. 신경 쓰지 마.”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심지어 마왕이라는 소문까지 있습니다! 마왕은 진 헌터님이 여기 계시니 당연히 아닐 테고, 아르모데스라는 마족이 뒤에 있는 것 아닐까요?”

김상수는 말도 안 된다는 듯 길길이 날뛴다.

설명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행동이 더 빠르겠지.

나는 굳이 대꾸하지 않고 손등을 쳐다보았다.

은빛의 문양은 여전히 신비롭게 번쩍거리고 있었다.

“헤르멘. 시킨 일은?”

[아, 내 친우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슬슬 연락하려 했는데. 아직 열댓 명밖에 모으지 못했지만, 곧 마무리 될 거야. 기대하라고.]

듣기만해도 헤르멘의 목소리는 신이 나 있었다.

마치 내게 도움되는 일을 하는게 좋다는 듯이.

[이것도 은근 재밌더군. 하나씩 모으는 쾌감이 있어. 그리고, 다들 내가 마왕과 손잡았다고 비명 지르지 뭔가. 정말 재밌지 않나? 그래서 나도 컨셉을 어둠의 마법사로 잡고 연기하는 중일세. 항상 선의 마법사로 활동했는데, 이런 유희는 처음이야. 하하하!]

이따위 소문이 난 데에는 이유가 따로 있긴 했나.

온 대륙이 놀랄 만도 했다.

“저…… 대체 누구와 연락하고 계시는 겁니까?”

잠자코 있던 김상수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질문해왔다.

“손님 맞을 준비나 해.”

“예?”

“헤르멘, 그만하고 내가 있는 곳으로 와.”

[응? 그대가 말한대로 아르모데스를 처치하려면 나머지 인간 동료도 필요하지 않나.]

“그만하면 충분해.”

[흠, 그러지.]

아쉬워하는 느낌은 있었으나, 긴 대답은 없었다.

오 분 정도 지났을까.

내 앞에 은빛 마나가 내려앉는다.

“이건…… 텔레포트 마법인데요. 말씀하신 손님입니까?”

“친우여, 드디어 전투의 준비가 되었는가?”

왠지 모르게 긴장한 심상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헤르멘이 등장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와는 다른 분위기와 함께.

‘콘셉트하고는…….’

긴 은빛의 머리카락과 눈부신 외향은 여전했다.

하지만 어딘가 음산해 보이는 검은 로브와 장신구들은 불길함을 자아낸다.

복장은 헤르멘의 흰 피부와 어우러져, 가뜩이나 창백한 얼굴이 더욱 혈색 없어 보인다.

그야말로 우는 아이도 그치게 할 만한, 흑마법사의 모습이었다.

“헌터들은?”

“모두 안전한 장소에 모아 놨지. 기다려 보게.”

그가 손가락을 한번 튕기자, 천장에 꽤 큰 마법진이 생긴다.

곧 상당한 마나가 공기를 감싸고.

“악!!”

“꺄아악!!!”

하늘에서 헌터들이 쏟아졌다.

* * *

헌터들에게 모든 걸 설명한 뒤.

한바탕 소란이 끝나자, 누구 하나라고 할 것 없이 모두들 긴 한숨을 내쉰다.

“하아…… 마왕이라니…… 저를 납치한 게 사실 진 헌터님이었다니…….”

“……좀 더 온건한 방법은 없었습니까.”

드래곤 납치범의 피해자 중 하나인 강준하가 우울하게 중얼거린다.

탑에 들어가기 전에 입었던 정장은 어디 가고, 온몸을 감싸는 갑옷을 두른 채였다.

듣자 하니 한 왕국의 기사단장으로 마족들과 전투 중, 급작스럽게 끌려온 모양이었다.

“마왕과 현자가 결탁하고 헌터들을 납치한다길래, 설마설마 했는데 저까지 당하고…… 얼마나 놀랐는 줄 몰라요.”

“저도요. 아, 이번엔 진짜 죽는구나 싶었는데…….”

모두 허탈한 얼굴이다.

그 와중에 헤르멘은 여전히 싱글거리며 찻잔만 기울이고 있었다.

남들이 불만 가지던 말던, 스스로는 뿌듯한 듯 보였다.

“뭐, 그래도 빠르게 모였으니 된 거지.”

나 역시도 그와 생각이 비슷했다.

언제 하나 둘 찾고, 그걸 기다리고 있단 말인가.

결과적으로는 만족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래도 설명정도는 해 주실 수 있으실 텐데…….”

“그동안 몸 성히 보호 받았으면 된 거 아냐? 불만도 많네.”

작게 궁시렁거리는 헌터에게, 어느새 치료받고 온 홍현민이 쏘아붙였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모두 어이없는 표정이 되어 버린다.

본인도 나서면 나섰지, 내 편을 들 성격이 아니기에 당연했다.

나조차도 순간 이자식이 왜 이러지 싶었으니까.

‘생각보다 효과가 크군. 조금 구른 게 아니라 염라대왕 얼굴 보기 직전이었나 본데.’

“뭘 다들 그렇게 봐? 맞는 말이잖아.”

그러거나 말거나, 홍현민은 여전히 싸가지 없는 말투로 대꾸할 뿐이다.

이제 헌터들은 나와 그를 번갈아가며 쳐다본다.

잠시 적막이 감돌던 중.

헌터들이 앉아있는 테이블 앞으로 찻잔이 하나씩 놓인다.

“저희가 위치를 파악하고 있는 나머지 헌터분들에게도 연락을 취했어요. 그동안 저희는 퀘스트를 마무리할 계획이나 짜고 있을까요?”

때마침 나타난 차은진이 대화의 주제를 돌린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긴 했는지, 다들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저…… 이거…….”

내 앞에도 달그락거리며 얼그레이 한잔이 놓인다.

찻잔을 들고 있는 손은 하얗고 작았다.

고개를 돌리자 낑낑거리고 있는 아렐리아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때요, 씻기고 나니 정말 예쁘죠?”

차은진이 뿌듯한 얼굴로 아렐리아의 옆에 나란히 섰다.

은근 자랑이라도 하는 모습이었다.

“어울리는 옷이 너무 많아서 고르기도 힘들었어요.”

그녀의 말에 아렐리아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작은 손으로는 연신 흰 원피스를 매만지고 있었다.

“아까 그 소녀 맞죠? 확실히 다르군요.”

나야 본래의 모습을 알기에 딱히 이상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김상수는 확실히 놀란 표정이었다.

“놀리지 마세요…… 그나저나, 이런 좋은 옷은 처음 입어 봐요.”

너저분했던 검은 머리카락은 양갈래로 가지런히 땋여 있다.

덕분에 그녀의 쑥스러워하는 표정이 더욱 잘 드러났다.

“이 여자애는 누구죠?”

“진 헌터님이 데려오신 건가요? 여기에는 어쩐 일로……?”

확실히 그녀는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존재였다.

시커먼 헌터들 사이에 있기에 더더욱.

자연스레 이야기의 주제는 아렐리아로 향한다.

“마족이군요.”

강준하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전부터 느꼈지만, 그는 세상 만사가 무심해 보이는 성격 치곤 꽤나 세심하다.

“예??? 마족요? 그게 정말입니까?”

“혹시 퀘스트에 연관되었거나…….”

순식간에 헌터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따스했던 시선은 이제 분석이라도 하듯 냉철해진다.

수십 쌍의 눈동자를 마주한 아렐리아는 허옇게 질린 얼굴로 내 곁으로 더욱 다가왔다.

마치 내가 유일한 구원자라도 되는 듯이.

“그런 건 아니지만, 신경 쓰지 마라. 어차피 곧 마계로 돌려보낼 거니까.”

아무렇지 않게 말하자 다들 그러려니 하는 눈치다.

엄밀히 따지자면, 더이상 놀랄 기운도 없어 보였다는 게 정확했지만.

“하긴 마왕인 진 헌터님도 있는데 마족 소녀 하나쯤이야…….”

“방금 하던 이야기나 마저하지. 아르모데스가 있는 곳을 대충 파악했다고 들었는데.”

“네. 이미 말씀드린대로 예상되는 장소는 몇 군데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삼엄한 경계가 이뤄지는 곳이 있어요. 그자는 분명히 그곳에 있을거예요. 다른 헌터들이 도착하면 바로 다같이 출발하죠.”

“좋은 생각입니다. 진 헌터님의 말에 의하면 조금 시간이 있을 겁니다. 아직 원하는 수의 영혼을 채우지 못했을 테니, 모든 준비를 철저히 하고 떠나는 게-”

띠링-!

그때였다.

익숙한 시스템 메시지가 들려왔다.

모두 하던 말도 멈추고 정면의 메시지를 심각한 얼굴로 응시한다.

[<퀘스트:뒤틀린 아스티란의 과거>가 갱신되었습니다.]

[아르모데스가 불안전한 준비 상태로 악신 각성에 돌입합니다.]

[그의 힘을 나눠받은 마족들이 광분에 휩싸입니다.]

[아스티란 대륙 전체가 위험에 빠졌습니다! 사람들을 지켜내고, 몰려드는 마족을 막아 내세요!]

[아스티란 멸망도: 29%]

“……준비할 시간은 없겠군요.”

콰앙-!!!

그와 동시에 우리가 머물고 있던 장소에 마법이 떨어진다.

다친 자는 없었으나, 가뜩이나 낡아빠진 건물을 폭삭 무너뜨리는 데에는 충분했다.

“아아악!!!!”

“젠장, 어느새 여기까지??”

폐허가 된 건물의 자재들 사이로 엉망이 된 거리가 보인다.

동부에만 있던 마족들은 왕궁 중앙까지 침범한 상태.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다.

“다들 함께 움직여. 나는 아르모데스부터 찾겠다. 그리고…… 혹시 그자를 발견하면 당장 도망쳐라. 너희가 상대할 수 없는 적일 테니.”

“윽…… 알겠습니다.”

자존심이 상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내가 시키는대로 하는 게 이로울 거다.

무턱대고 덤볐다간 희생만 커질 테니까.

헌터들이 수긍하고 각자의 무기를 쥐고 적진으로 향했다.

“크르륵…….”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나 역시 떠나려는 그때였다.

두 눈이 붉게 물들고 핏발마저 서있는 마족 하나가 다가온다.

이성을 잃은, 완벽한 광전사의 모습이었다.

본래보다 증가했을 힘도 힘이지만, 고통조차 느끼지 못할 테니 까다로운 상태일 터.

서겅-

“크아아악!!!”

하지만 내게 큰 문제는 아니었다.

날벌레가 강해져 봤자 조금 더 귀찮아질 뿐이니까.

‘아르모데스를 찾는 걱정은 덜었나.’

멀리서도 보이는 검붉은 기운.

아마 그놈은 저곳에서 반신이 될 준비를 하고 있겠지.

몸을 움직이려는데, 뒤에서 푹 하고 검이 박히는 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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