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21화
확실히 아르모데스에게는 최악의 상성인 무기이다.
천족들의 보물씩이나 되는 것이니.
하지만 이걸 마왕인 내가 사용한다라…….
천족들이 본다면 뒷목 잡고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다.
아니, 그전에 마족으로 몸으로 이걸 쥘 수나 있는 건가?
궁금함이 앞서 여전히 둥둥 떠 있는 검을 잡아들었다.
파지직-!!
“크윽…….”
역시나인가.
손에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겹다.
웬만한 육체적인 괴로움에 통달한 나조차도,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밀려 들어온다.
마신이 드디어 미치기라도 한 건가.
사용할 수도 없는 무기를 선물이랍시고 들이민 이유가 궁금할 지경이었다.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 당장 검을 내려놓으려는 그때였다.
[경고! 마족은 사용할 수 없는 무기입니다.]
[오류! 사용자에게서 인간의 영혼이 감지되었습니다.]
시스템의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고통은 순식간에 사그라든다.
아무런 느낌까지는 아니더라도, 고통이 그럭저럭 참을 수 있는 수준으로 내려왔다.
[호오, 혹시나 했지만 과연. 그대라면 지금이라도 사용할 수 있는 자격이 될 거라
생각했지. 어떤가? 내 선물은.]
천천히 눈앞의 성검을 훑어보았다.
손잡이까지도 백색인 검은 오백 미터 밖에서 봐도 성스러운 기운이 느껴질 정도다.
날카로운 검신에 뿔까지 달린 내 모습이 어색하게 비쳐 보인다.
마족과 성검이라니.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이걸 마신이 가지고 있던 것 역시 어울리지 않고.’
고개를 드니, 마신은 연신 뿌듯한 기색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칭찬이라도 해 주길 바라는 걸까.
하지만 나는 굳이 입을 열어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해 주지 않았다.
[마음에 안 드나? 꽤 힘겹게 얻은 건데.]
마신은 내 반응에 실망한 듯 중얼거린다.
당연히 어렵게 구하긴 했겠지.
설명부터 천신이 직접 만들었다고 적혀 있으니.
“……도움이 되긴 하겠군.”
대충 인사치레를 하고 인벤토리에 성검을 던져넣었다.
아까보다 들고 있는 게 어렵지는 않지만, 신성력을 끊임없이 발산하는 검은 꽤나
불쾌했다.
[그렇지? 천왕에게 주기 위해 만들었다며, 천신이 어찌나 자랑을 해대던지. 내가 훔쳐 간
뒤로도 한참 동안 청승맞게 궁상을 떨더군.]
마신은 굳이 궁금하지도 않았던 정보를 재밌다는 듯 떠벌거렸다.
튀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게, 여태껏 본 모습 중에 제일 신나 보였다.
[그대도 그 절망한 얼굴을 봤어야 했는데. 하하하!! ]
웃음소리가 어둠으로 가득 찬 공간을 가득 메웠다.
듣는 사람이 미소 지을 정도로 호쾌한 웃음이었다.
그 기쁨의 원인이 영 떨떠름한 것일지언정.
‘보아하니 필요에 의해 훔친 게 아니군.’
분명 천신을 엿 먹이겠다는 일념 하나로 벌인 일이리라.
성질이 그닥 좋아 보이진 않았지만, 이 정도였나.
그는 내 생각을 읽었는지 내 쪽을 돌아본다.
[물건은 언젠가 쓸모가 있는 법 아니던가. 이렇게라도 자기 주인을 찾아가니 좋군. 뭐,
그럼 내 몫의 일은 끝낸 것 같고……]
그의 말을 끝으로 공간이 점점 허물어진다.
마족이 되어서 그런지, 안락하게 느껴졌던 주변의 마기가 점점 흐려졌다.
[우리는 미래에서 다시 만나지.]
눈앞에는 아까 보았던 장소가 다시금 펼쳐진다.
목적은 이룰 만큼 이룬 것 같고 더 이상 이곳에 볼일은 없나.
텔레포트 스크롤을 사용하려다, 무심코 전쟁터를 돌아보았다.
그제서야 잊고 있던 게 생각난다.
‘아직 죽지는 않았겠지.’
다시 아수라장을 헤치고 들어갔다.
다행히 귀찮은 일은 없게끔, 홍현민은 아직도 그 위치에 있었다.
모습은 아까와는 정반대였지만.
“으아악!!!!!”
그는 여전히 몰려 들어오는 마족들에게 고전하고 있다.
이미 주변에는 같이 등을 맞댈 전우 하나 없다.
몇몇은 처치했어도, 홀로는 더 이상 무리일 것이다.
이 정도면 아슬아슬하게 타이밍이 얼추 맞춘 건가.
챙강-!!
마침 도착하자마자 그를 향해 공격이 날아온다.
가볍게 손날로 마기가 섞인 검을 쳐 냈다.
“흐아, 이제 살았네…….”
홍현민이 눈을 글썽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혹여나 다시 버리고 갈까, 잔뜩 기죽어 있었다.
내가 의도했던 것과 딱 맞아떨어졌다.
‘이 정도면 한동안은 잠잠하겠지.’
역시 버릇없는 데에는 매가 약인가.
그는 평소답지 않게 의기소침한 태도로 눈치를 본다.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인간 동료인가.”
흡족함을 숨기지 못하고 있는데, 마족이 천천히 다가온다.
자신의 공격을 쉽게 막아낸걸 봐서 그런지 잔뜩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마족이 불쾌한 시선으로 나를 훑는 것도 잠시.
내가 쓰고 있던 로브 틈으로 눈동자가 마주친다.
“마…… 마왕님??? 어떻게 여기에??”
“마왕이라고?????”
그리고 홍현민은 그보다 더 놀란다.
생각해 보니 아직 내 역할에 대해 말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우선,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었다.
퍼억-!!!
“컥!!”
앞에 있던 마족의 안면에 주먹을 날렸다.
동시에 그의 몸이 점점 흐려진다.
소멸까지는 아니더라도, 마계로 강제 귀환할 정도의 피해를 입은 탓이었다.
“주변에 다른 헌터는 없나?”
홍현민은 멍청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그의 뒷덜미를 잡고, 이곳으로 떠나오기 전 받았던 텔레포트 스크롤을 찢었다.
차은진이 있던 골목의 좌표가 새겨진 물건이었다.
“여긴 정보 길드……?”
길드의 낡은 건물 앞.
홍현민은 이미 와봤던 곳인지 익숙하게 문을 연다.
나 역시 따라 들어가려는 그때였다.
“썩 꺼져!! 재수 없게시리…….”
“여기가 아무리 인생 밑바닥만 오는 곳이어도, 너 따위가 발 디딜 장소는 아니야!!”
“퉷, 저 계집이랑 마주치면 하루 종일 재수가 없단말이지.”
골목 어딘가에서 적의에 가득 찬 힐난이 들려온다.
다툼이라도 있는 건가.
꼴에 영역 싸움이라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퍼억-!!
“꺄악!!!”
딱히 궁금증이 생기는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무시하기에는 들려오는 비명 소리가 어딘가 익숙하다.
‘뭐지? 여기는 과거라, 아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는데.’
심지어 소녀의 것임이 틀림없는 가녀린 목소리다.
도저히 나와 인연이 있을 만한 자는 아니었다.
의아한 마음에 골목으로 다가갔다.
“으흑…… 제발 음식만은 뺏지 말아 주세요…… 너무 오래 굶었단 말이에요…….”
그곳에는 부랑자 몇이 한 소녀를 핍박하고 있었다.
내 눈에도 그닥 보기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자연스레 눈살을 찌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빌어먹을, 더러운 피 주제에!!”
“아아악!!!”
그녀는 가녀린 체구를 덥수룩한 검은 머리카락으로 가리고 있었다.
입고 있는 누더기는 앞에 있는 부랑자들보다 더욱 낡았고, 드러난 피부에는 온갖 상처로
가득하다.
오랜 시간 동안 괴롭힘을 받아 왔다는걸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저기 누가 있는데?”
누군가 한 명이 나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곧 그들은 적대적인 눈빛으로 날 쏘아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발걸음을 옮겨 소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검은 빵 한 덩어리를 소중한 듯 끌어안고, 계속 훌쩍거리고 있었다.
“흐흑…….”
나는 천천히 앞에서 자세를 낮춰 얼굴을 마주했다.
그제서야 눈물 젖은 모습이 자세히 보인다.
지저분하지만 상당한 미모임을 짐작할 수 있는 흰 얼굴과 이목구비.
그리고 라벤더를 닮은 보랏빛 눈동자.
아렐리아였다.
“어이, 입은 거 보아하니 좀 사는 집 같은데, 이런데 신경 쓰지 말고 가던 길이나-”
정신 못 차리고 시비를 거는 자를 쏘아 보았다.
들끓는 마기도 함께였다.
일반인인 그는 내 기세를 이기지 못하고 바로 거품을 물고 쓰러져 버렸다.
“뭐, 뭐…… 이게…….”
“제길, 도망쳐!!!”
다른 자들이 눈치 빠르게 골목을 빠져나간다.
동료랍시고 기절한 자는 버린 채였다.
‘대체 아렐리아가 왜 여기 있지? 심지어 이런 상태로.’
반마족이 사람들에게 받는 대접은 형편없다.
그렇다고 이렇게 괴롭힘 받을 정도도 아니다.
저따위 인간쓰레기들은 가볍게 누를 만한 힘들은 있었으니까.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그녀는 마기를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고…… 고맙습니다. 오랜만에 구한 식량을 빼앗길 뻔했어요.”
그녀는 여전히 울먹거리는 눈으로 나를 조심스럽게 바라본다.
보기만 해도 불쌍한 모습이, 내가 아는 아렐리아답지 않다.
그녀는 연신 감사 인사를 하며 머리를 숙였다.
“솔직히 누가 도와주신 적이 처음이라…… 어떻게 고마움을 표현하는지도 모르겠어요.”
한껏 어깨를 움츠린 그 모습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저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앗…….”
아렐리아는 황급히 배를 가린다.
부끄러운지 얼굴은 잔뜩 붉어진 채였다.
“……따라와. 먹을 것 정도는 줄 테니까.”
“네? 괜찮아요. 그런 폐를 끼칠 수는 없어요. 저는 빵도 가지고 있고……”
자랑스레 거무튀튀한 빵 덩어리를 내밀어진다.
보기만 해도 입맛 떨어지는 그 자태에, 나는 빵을 빼앗아 들었다.
그녀는 멍하니 그 모습만 바라보고만 있다.
나는 담담하게 돌인지 빵인지 모를 만큼 딱딱한 빵을 든 손에 힘을 주었다.
철도 가볍게 으스러트리는 힘에, 탄수화물 덩어리는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 흩날린다.
“이제 없군.”
“어…… 어…….”
울지도, 소리 지르지도 못하는 그녀를 덥썩 잡아들었다.
다시 골목을 빠져나와 도착한 곳은 원래의 목적지.
길드의 문을 열자 차은진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분명 홍현민 헌터와 함께 도착한 건 맞는데, 한참을 오지 않으시더니만. 그 소녀는
뭐죠?”
“오다 줏었다. 일단 응접실 좀 쓰지. 뭘 좀 먹여야겠으니.”
나는 바로 앞에 있는 안락한 분위기의 응접실에 들어갔다.
한가운데에 놓인 소파에 아렐리아를 앉히자, 잠자코 들려있던 그녀가 멍한 얼굴로
중얼거린다.
“어???”
인벤토리의 갖은 먹거리를 쏟아놓는 와중에도 그녀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그 와중에도 계속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가관이었다.
나는 놀라서 벌어진 입에 샌드위치 하나를 쑤셔 넣었다.
그제서야 그녀의 시선이 제대로 돌아왔다.
“잘…… 잘 먹겠습니다.”
그렇게 십몇 분.
한참을 오물거리더니, 그녀의 얼굴이 점점 보기 좋게 변한다.
이만하면 적당히 배는 채운 듯 보인다.
나는 달달한 디저트에 열중하고 있는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너, 왜 여기서 고생하고 있는 거지. 그것도 반마족이.”
“우물…… 음? 어떻게 아셨어요……? 혹시 마족이신가요?”
“대충 비슷해.”
아렐리아는 순간 알 수 없는 얼굴을 한다.
그리움과 슬픔, 온갖 감정이 묻어 있는 표정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는 갈 곳이 없어서…….”
“차라리 마계에 가지 그랬나.”
여기보단 나았을 것이다.
차별을 하긴 해도, 마족들은 기본적으로 덤벼들지 않는 이상 자신보다 약한 자는 괴롭히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시하는 거지만.
“……저도 그러고 싶지만 가는 방법을 몰라요. 살면서 본 마족도 당신이 처음인걸요.”
그녀는 처연한 얼굴로 중얼거린다.
마치 잔뜩 비 맞은 작은 새처럼.
더러운 행색과 맞물려, 그 모습이 더욱 초라하다.
쉽게 동정을 주는 성격은 아니라지만, 아렐리아는 거의 매일 붙어 지내는 수하.
자연스레 마음 한구석에 묘한 감정이 생긴다.
‘어차피 미래에는 언젠가 갈 마계. 조금 미리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걱정 마라, 아렐리아. 마계는 내가 보내 주지.”
“예? 그게 정말이신가요?? 그런데…… 아렐리아라니요? 혹시 절 부르시는 건가요?”
그녀는 어리둥절하게 스스로를 가리켰다.
본인의 이름도 알지 못하다니.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인상을 찌푸리자, 그녀는 작게 움찔한다.
괴롭혀 버린 건가.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네 이름, 아렐리아가 아니던가.”
“……그런 건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어요. 어머니도 저를 아가, 이렇게 부르셨거든요.
지금은 야, 너라던지. 아니면 더러운 반마족……”
“여태껏 이름이 없었다고?”
내가 쓰게 웃자, 그녀는 눈치 없이 나를 따라 헤실거리며 따라 웃는다.
“네. 그런데 아렐리아라는 이름은 참 예쁘네요. 누구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저도 이름을 가지게 된다면 그런 이름이고 싶어요.”
“가지고 싶으면 네가 가져.”
“예??”
“어차피 네가 아니면 주인이 없는 이름이다.”
그녀의 울먹거리는 눈은 이제 당황으로 가득하다.
“……농담이시죠?”
머뭇거리는 질문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저 흔들리는 시선만 응시할 뿐.
그제서야 그녀는 내가 진지하게 임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하얗던 얼굴이 붉어지는 건 순식간.
그녀는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몸을 배배 꼬았다.
“……좋아요. 아렐리아…… 정말 마음에 들어요.”
한참을 그렇게 본인의 이름을 중얼거리더니, 그녀가 나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인다.
“먹을 것도 주시고, 마계에도 데려다 주신다 하셨는데 이름까지…….어떻게 이 은혜를
갚죠? 혹시 제가 할 일이 있을까요?”
“흠……. 글쎄.”
미래라면 어차피 뼈 빠지게 일할 텐데, 굳이 지금부터 고생할 필요는 없지.
애초에 저 빼빼 마른 몸으로 뭐라도 하겠는가.
마계에서 힘을 얻는 마족이 그곳 땅 한번 밟아 보지 못했기에, 몸 안에 내재된 마기도
지금은 미약하기 짝이 없었다.
'일단 마계로 보내야겠군. 거기라면 적어도 굶지는 않을 테니. 마기도 점점 잘 다룰 수 있게 되겠고.'
나는 스킬창을 열어 마계와 통하는 차원의 문을 열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 시선을 오해했는지 순식간에 얼굴이 어두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