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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119화 (119/200)

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19화

김상수는 입을 벌린 채 그대로 굳어 버린다.

이삼 분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한참을 그렇게 서 있기만 하던 그가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아니……지금 아스티란의 위협이랍시고 마족과 전쟁 중인데…….”

“당연히 내가 내린 명령은 아니야. 아마 과거에 있던 마왕의 명령이겠지.”

“그렇겠죠…… 잠깐, 보통 마족들은 마왕의 말을 철저히 따르는 걸로 알고 있는데……진 헌터님이 마왕이시니, 일이 쉬워지겠군요? 그깟 명령, 취소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나 역시 이미 시도했던 것이고.

그의 말대로 보통의 마족들이라면 당연한 일.

하지만 아르모데스, 그자는 평범한 마족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놈이었다.

그걸 모르는 김상수는 해맑게 웃어 보인다.

빨리 끝내고 쉬고 싶은 듯 보였다.

‘어차피 탑에서 나가 봤자 지금보다 더 힘들 텐데.’

아직 그에게는 그림자의 탑 소속의 마법사로서 만들어야 할 스크롤이 몇백 장은 남아있다.

크레아시론이 같이 노가다를 뛸 후임 들어왔다며 어찌나 좋아하던지.

탑에서 나오면 바로 작업할 수 있게 연구실을 빠르게 만들어 놓는다고 엄포까지 놓았었다.

아마도 공략대에 참여하지 않은 신연주는 이미 굴려지고 있지 않을까.

“설마 마족들이 후퇴한 게, 진 헌터님이 명령하신 겁니까? 아스티란을 위협에서 구했으니, 퀘스트도 끝나겠군요?”

그는 내 생각을 짐작조차 못한 채 행복 회로를 신나게 돌리고 있었다.

“글쎄. 그보다는 일이 조금 복잡해진 것 같은데.”

나는 지금 상황에 대해 말을 꺼냈다.

그리고 아르모데스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까지도.

이야기를 마무리하자, 심각하게 듣던 그가 금세 곤란한 얼굴이 되었다.

“지금 전투 중인 곳이 한두 군데도 아닌지라, 아르모데스라는 마족의 위치를 특정할 순 없겠군요.”

“돌아다니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겠고.”

“그건 아닐 겁니다. 대륙의 동쪽부터 천천히 전선이 밀려오고 있거든요. 다른 곳은 마족을 봤다는 목격담조차 없습니다.”

나름대로 신중하게 뭉쳐서 행동한다는 건가.

하기사, 이 넓은 대륙을 아르모데스의 권속들만으로 파괴하긴 힘들 것이다.

아무리 마족이 강하다지만 그의 수하는 수천 남짓.

각개전투하다 쓸데없이 전력을 소모하는 일은 피하려는 걸로 보였다.

“그나마 다행이군. 무턱대고 그저 그런 전투는 제외해도 된다. 그의 힘은 무시못할 수준일 테니까.”

요정을 찾을 때처럼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이미 그건 아스티란에 도착한 직후부터 시도해 보았다.

결과는 실패였다.

그의 기운은커녕, 대륙에 있는 마족들조차 느낄 수 없었다.

아마도 아르모데스가 나를 피할 어떠한 방도를 찾은 거겠지.

‘결국 발품을 팔아야 한다는 소리인데.’

나보다 먼저 활동했던 헌터들이라면 알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김상수의 얼굴은 좋지 못했다.

“저만으로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선 차은진 헌터에게 가 보죠. 그녀라면 알고 있을 겁니다. 다행히 시작 지점이 저와 같은 왕국의 수도여서 본거지가 가깝습니다.”

“차은진이면……천상 길드의 간부말인가?”

그녀라면 몇 번 마주쳐서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왜 지금 상황에서 그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건지 의아하다.

차라리 홍현민을 찾는 게 나을 텐데.

모험가 길드의 수장으로 활동했다던 그라면 분명 지금도 같은 역할일 터.

온 대륙의 떠도는 그들이라면 온갖 잡다한 일과 소문을 다루고 있을 것이다.

“네. 저처럼 후방에서 활동하는지라 아마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겁니다. 미리 말하지 않고 가는 거라 좀 불안하긴 해도요. 일단 바로 가시죠.”

일단 의문을 뒤로하고 김상수를 따라 나섰다.

그의 말대로 멀지는 않은지 걸어가려는 계획으로 보였다.

한 십 분쯤 걸었을까.

그는 웬 좁은 골목으로 들어간다.

한낮임에도 어두침침한 게, 치안이 꽤나 나빠 보이는 장소였다.

주변에는 부랑자와 거지들로 가득하다.

“……여기에 차은진이 있다고?”

가까운 사이는 아니지만, 그녀가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것만은 잘 안다.

차은진의 화려한 외모와 꾸밈새는 장미를 그대로 녹여 낸 듯한 느낌이니.

한마디로, 쓰레기통과 같은 이 뒷골목과는 전혀 인연이 없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예. 아마 이 근처일 텐데…….”

그는 점점 차오르는 내 의구심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비슷비슷해 보이는 판자집들을 훑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아, 여기군요.”

똑똑-

김상수는 그중 제일 낡은 건물의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린다.

잠시후, 인기척이 들리고 작은 구멍으로 손 하나가 대뜸 뻗어 나온다.

상처 가득한 손은 특이하게도 새끼 손가락이 없었다.

그는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품 안을 뒤적인다.

출입세라도 받는 곳인가 싶어 빤히 쳐다보았지만, 나온 건 고작 거무튀튀한 동전 한 닢.

형태를 보아하니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화폐도 아니었다.

하지만 손 위에 올리자 정답이라는양 문이 열렸다.

“위층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다행히 있군요.”

김상수는 싱긋 웃으며 위로 향했다.

후줄근한 겉과 다르게 꽤 깔끔한 복도를 지나, 제일 깊숙한 공간에 도착한다.

그곳의 문을 여니 그곳에는 정말로 차은진이 있었다.

“김상수 헌터……그리고 진 헌터님? 그동안 대륙을 이 잡듯이 뒤져도 머리카락 하나 찾지 못했는데, 직접 이곳까지 찾아와 주시다니요.”

그녀는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그 와중에 지구에서와 똑같이 지독하게 화려한 외양이 돋보였다.

“차은진이 정보 길드의 길드장 역할이었나.”

이제야 나를 여기까지 이끈 이유가 이해가 간다.

정보 길드에 몸담았다던 귀환자가 있다고 알고는 있었지만, 그게 차은진일 줄이야.

의외였다.

천상 길드에서처럼 어디서 책사나 하다 귀환했을 거라 예상했는데.

뭐, 결국 머리 쓰는 일이니 직업으로 따지자면 비슷한 건가.

“맞아요. 하지만 저희는 일반적인 정보 길드와 조금 다른 게…….”

그녀는 슬쩍 웃으며 길쭉한 소파에 앉는다.

함께 놓여있는 테이블 위에는 서류들이 어지러이 흩뿌려져 있었다.

그녀가 그것들을 정리하려는 듯 한쪽으로 치웠다.

그러자 종이 밑에 깔려 있던 단도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사무실에는 어울리지 않는, 시퍼렇게 날이 세워진 물건이었다.

“암살 길드로도 활동하고 있답니다. 으음, 어디까지나 부업이지만요.”

차은진은 아무렇지 않게 말하며 단도를 인벤토리에 던져 넣는다.

아름다운 얼굴에는 여전히 화사한 미소가 띄워진 채였다.

아마 저 껍데기에 속아 넘어가 죽음을 맞이한 자들도 상당수이리라.

암살자의 관상이 딱히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저건 정도가 심했다.

‘하여간 천상 길드 종자들은……’

저런 인간들만 모아놓은 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이영우 그놈도 마찬가지.

하나같이 겉과 속이 따로 노는 놈들이다.

“자아, 그래서 어떤 정보가 필요하신가요? 분명 진 헌터님이라면, 이 퀘스트를 금새 클리어할 만한 계획이 있으시겠죠."

내가 슬슬 불신의 눈초리로 바라보자, 그녀는 재빨리 화제를 전환하며 말한다.

“확실히 그럴 겁니다. 우선 진 헌터님의 역할부터 말씀드려야 이야기가 빠를 텐데…….”

잠자코 있던 김상수가 나를 흘끗 바라본다.

본인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러니, 직접 밝혀 달라 하는 것이리라.

어차피 숨길 생각은 없었기에 빠르게 로브를 벗었다.

“어머…… 마족?”

그녀 역시 드러난 내 모습에 당황을 숨기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흔들리던 눈동자에는 호기심이 가득 찬다.

“정확히는 마족이 아니라, 마왕이다.”

“마왕이라……그거 정말 놀랍네요. 그럼 귀환전에 마왕을 하셨던 건가요? 저는 대륙을 통치했던 대제였다 들었는데요.”

“헉, 그게 정말입니까??? 그러고보니 마지막 행동과 관련이 있다고 했으니…….”

차은진의 궁금증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마왕임을 알렸던 김상수까지 저럴 줄이야.

“마왕을 처치하고 귀환했다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마왕??”

반응을 보아하니 정말로 지금 눈치챈 듯했다.

어이없다는 얼굴로 빤히 쳐다보자, 그는 내 생각을 읽었는지 억울한 표정이 되었다.

“아까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거기까지 생각이 닿지 않아서…….”

“머리 깨나 굴린다는 마법사가 그 정도 파악이 안 되서야 같이 일을 할 수나 있겠나.”

탐탁치 않은 얼굴로 그를 쏘아붙였다.

그러자 차은진이 웃으며 나를 부드럽게 만류한다.

“마법사들은 마법에서나 천재적이죠. 다른 쪽으로 머리 쓰는 일은 약하다는 것, 이미 유명하지 않나요. 진 헌터님이 이해하세요. 지금이라도 깨달으셨잖아요?”

김상수가 그녀를 감동적인 얼굴로 바라본다.

자신의 편을 들어줬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모습은 내 헛웃음을 나오게 할 뿐이었다.

‘은근슬쩍 돌려서 욕한 거라 생각하지는 않나.’

나긋한 목소리며, 말투까지도 곱긴 했다.

그래도 예쁘게 말한다고 욕이 아니게 되는 건 아닐 텐데.

그녀를 쳐다보자, 들켰냐는 듯 작게 윙크를 한다.

우리끼리 비밀로 하자는 눈빛이었다.

“그럼 다시 주제로 돌아오죠. 진 헌터님이 마왕을 처치했는데 지금 마왕의 역할이라…… 그렇다면, 예상되는 바는 딱 하나네요. 마왕을 처치한 자가…… 마왕이 되었다는 것.”

그녀가 눈치 빠르게 상황을 정리한다.

꽤 담담하게 말투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목소리에는 약간의 떨림이 느껴진다.

‘결국 알리게 되는군.’

여태껏 숨겨왔지만, 언젠가 들킬 거라 생각하긴 했었다.

예상한 타이밍이 이때쯤은 아니었지만.

하지만 퀘스트에서 마왕 역할을 맡는 순간부터, 이러한 일은 예견되어 있었다.

이미 밝히리라 마음먹은 지도 오래기에 나는 순순히 인정헀다.

“정확해. 나는 귀환 직전에 마왕을 계승받았다.”

“솔직히 많이 놀랍네요. 그나저나 마족들이 떠들어대던 이야기가 농담인 줄 알았는데, 정말이었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냥 퀘스트 스토리상 설정인 줄 알았는데…… 인간이 각 차원계의 왕이 될 거라는 <예언>이 진짜였을 줄은.”

“아무리 퀘스트라지만 여기는 아스티란의 과거니까요. 역사서를 보면 이맘때쯤 마족의 침공이 실제 있었던 일이기도 하고요. 아마 각국의 헌터들이 다른 차원계의 침략을 받아 귀환하게 된 것도 같은 이유겠죠.”

그들은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린다.

내용을 듣자 하니 이제 헌터들도 <예언>을 인지한 모양이었다.

“일단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우선 지금 큰 전투가 벌어지는 장소가 어디지? 그것도 아주 강한 마족이 있는 곳 말이야.”

“강한 마족말인가요. 더 찾아봐야겠지만……. 제가 알고 있는 두세곳이 있긴 해요. 특히 지금 제일 빠르게 밀리고 있는 전선은 이곳이죠.”

그녀는 놓여 있던 지도에서 한 부분을 가르켰다.

대륙 중심에서 제일 먼 왕국 중 하나였다.

“그럼 나는 우선 그곳에 가 봐야겠어. 김상수, 텔레포트를 준비해.”

“예? 혼자 가십니까?”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내가 말한 아르모데스에 관련된 정보를 모조리 수집해.”

헤르멘에게도 헌터를 비롯해 수상한 일이 있다면 바로 알리라고 했지만, 뿌려 놓은 씨앗은 많을수록 좋다.

내 말에 그들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곧 김상수가 텔레포트 마법을 영창하고, 작은 마법진이 발 밑에 새겨졌다.

“아, 그런데 그곳에는 이미 가 있는 헌터가 있어요. 진 헌터님도 잘 아는 분이죠.”

곧 펼쳐질 마법을 기다리는데, 차은진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한다.

구해내기라도 하라는 건가.

하지만 그녀의 얼굴을 보아하니 그런 건 아닌 듯했다.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저희도 퀘스트를 위해 열심히 노력할게요.”

약간의 웃음소리와 함께 흰 빛이 나를 감싼다.

적막하던 공기도 잠시.

주변은 날카로운 비명소리로 가득한 전쟁터로 변했다.

콰아앙-!!!

텔레포트 좌표를 전장의 중앙으로 잡았는지, 오자마자 마법이 날아온다.

가볍게 피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 전사들 사이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젠장, 이쪽부터 처치해!!”

“길드장님, 적이 너무 많습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너덜거리는 갑옷을 입고 있는 홍현민이었다.

온 몸에는 지쳐 보이는 기색이 가득하다.

지금도 간신히 몰려드는 마족들을 하나씩 상대하는 중이었다.

물끄러미 바라보자, 그 역시 나와 눈이 마주친다.

“적……!? 아니, 그 검은…… 설마 용병왕??”

그가 내가 들고 있던 페르아렌을 알아보고 화들짝 놀란다.

그 와중에 이제 살았다 싶었는지 얼굴은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전투 중에 딴데 정신 팔 여력도 있고. 아직 살 만한가보군.’

“이제 전투도 마무리 되…… 어!? 잠깐!!! 어디 가는……???”

저놈은 아직 더 굴러봐야 한다.

보아하니 주변에 저 녀석을 죽일 정도의 적은 없었다.

나는 힘겹게 적을 상대하는 그를 무시하고 강력한 마기가 느껴지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악!! 용병왕!!! 아니!!! 진 헌터님!!!!”

거의 울부짖는 듯한 그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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