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18화
내 손에 들려 있던 마족이 입가에 피를 흘리며 고개를 푹 숙인다.
순식간에 절명한 것이다.
아무리 나라도 기세만으로 누군가를 죽일 수는 없다.
‘대체 누구지?’
아무렴 이 난장판이 났는데, 인간 쪽도 가만히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렇지, 하필 이 타이밍이라니.
아쉬운 마음을 숨긴 채 마족이었던 것을 내려놓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열 명 남짓했던 마족은 모두 보이지 않는다.
오직 나를 둘러싸고 있는 기사들만 시야에 가득하다.
날카로운 무기의 끝은 내 쪽을 겨누고 있는 채였다.
“모두 경계를 늦추지 말라! 저자는 평범한 마족이 아니라, 마왕이야!!”
“제기랄, 마왕이라니…… 우리 힘으로 버틸 수나 있는 겁니까…….”
‘귀찮게 되었군.’
아마 마족과의 대화를 들어버린 듯하다.
그들의 눈빛에는 분노와 두려움이 섞여 있다.
애써 나를 적대하지만, 온 몸은 사시나무처럼 떨린다.
분명 그들은 나를 겁내고는 있었다.
그렇기에 드는 당연한 의구심 하나.
왜 도망치지 않는가.
마족도 간신히 상대하는 그들이다.
내가 가만히 있는 틈에 조금이라도 도망가는 게 좋을 텐데.
물론 내가 공격할 마음은 없다지만 그건 나만의 생각일 뿐.
말해 주지도 않았는데 그들이 알 턱이없다.
“마법사님!! 여기입니다!!”
그때, 기사들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뒷편에서는 로브를 쓴 누군가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드디어 이 전쟁도 끝이 나는 건가……? 저분이라면 가능할지도 몰라”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 마왕을 처치할 수 있겠습니까?”
“아까 마족을 한 번에 처치한 것 못 봤나? 다 그분이 만들어 주신 마법 스크롤 덕분이잖아. 하물며 직접 마법을 쓰신다면…….”
힘 꽤나 쓰는 마법사인가.
가만히 있다가는 원치 않는 전투가 벌어질 듯했다.
‘그냥 몸을 빼내는 건…… 무리겠고.’
소드마스터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와 비슷한 경지의 기사들이 몇 있다.
마법사까지 합류한다면 그냥 무시하고 지나칠 정도는 못될 터.
분명 추적한답시고 난리칠 게 분명했다.
아무래도 기절이라도 시키고 가야할 듯했다.
검집 채로 한 놈씩 두들기려는 그때였다.
“……이 기운은……정말로 마왕이군요.”
나직한 목소리는 익히 아는 자의 것이었다.
고개를 돌려 소리가 들린 방향을 쳐다보았다.
얼굴을 감춘 로브 사이로, 미처 감추지 못한 은색의 머리카락 몇 가닥이 시선을 잡아 끈다.
“……헤르멘?”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지??”
헤르멘이 얼빠진 소리로 되묻는다.
금방이라도 전투가 벌어질 것 같았던 분위기가 묘하게 변했다.
기사들은 멍청한 얼굴로 헤르멘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마법사님의 성함은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니었어……?”
“어떻게 마왕이 저분을 알지??”
간신히 겨누고 있던 무기마저 내린 채, 그들은 이상하게 굴러가는 상황에 어쩔 줄을 몰라 한다.
그리고 그보다 더 당황한 건 헤르멘이었다.
“잠깐, 마기도 마기인데…… 이건…….”
그는 로브를 걷어 올리고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당혹으로 가득 찬 은빛 눈동자와 마주한 순간.
여기서 보여서는 안 되는 시스템 메시지가 그와 내 사이를 가로막는다.
[<영혼을 건 우정의 맹약>은 드래곤 헤르멘과 플레이어의 영혼을 통해 엮여 있습니다.]
[드래곤 헤르멘이 당신의 내면에 있는 영혼을 꿰뚫어봅니다.]
……나를 알아본다고?
손등에 약간의 고통이 느껴진다.
황급히 살펴보니 은빛 문양이 드러나 있었다.
분명 마왕이 된 직후부터 보이지 않던 것이지만, 그와 마주친 것이 영향을 발휘한 듯했다.
“……나의 친우?”
그의 잘게 떨리는 목소리는 아주 작았다.
하지만 그 내용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뭐!!!???”
“친구, 친구라니???? 우리를 구원해 주실 마법사님이 마왕과 친구???”
“내 귀가…… 귀가 잘못되었나…….”
사방은 덜그럭 거리는 소음으로 가득하다.
손에 힘이 풀린 기사들이 무기를 떨어뜨리는 소리였다.
심지어 허탈한 얼굴로 주저앉는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기억이 없는데……아니. 그럴 리가 없어. 이건 분명 영혼을 건 맹약이니 틀림없어…….”
헤르멘은 멍청하게 중얼거린다.
모두가 정신없는 상황.
이때다 싶어 재빨리 기사들 사이에서 벗어났다.
몸을 공중으로 날리려는 그때.
여전히 어리둥절한 헤르멘과 눈이 마주쳤다.
‘지금의 아스티란에 대해 깊이 관여하고 있는 듯하니, 정보원으로 쓸 만하겠지.’
생각을 정리한 즉시 그를 덥석 집어들었다.
어깨에 묵직한 무게감과 함께 로브가 벗겨져 그의 은색 머리카락이 나부낀다.
“마왕이 마법사님을 납치한다!!!!!!”
‘마왕이 공주 납치한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마법사는 좀 색다른데.’
그와 동시에 누군가 경악해 소리쳤다.
그제서야 상황파악이 된 듯, 소란은 점점 커져간다.
나는 계속 대지를 박차고 나아갔다.
한참을 달리자 인적 드문 숲이 나타났다.
“후…… 이쯤이면 되겠지.”
나무 둥치에 내내 메고 있던 헤르멘을 던져 놓았다.
그는 여전히 얼떨떨한 얼굴이다.
“마왕이…… 내 친구??”
헤르멘은 계속 같은 말만 반복한다.
오면서 어디에 머리라도 박았나.
입을 헤 벌리고 있는 게 멍청해 보일 정도였다.
“헤르멘, 정신차려. 물어볼 게 한가득이니.”
언제까지 이럴 셈인지.
여전히 멍한 헤르멘의 시선이 내 손등의 문양에 닿는다.
“진짜네…….”
그는 눈을 질끈 감더니 심호흡을 한다.
하긴, 약간의 시간은 필요하겠지.
미래의 친구를 과거에서 마주치는 일이다.
지금의 그로서는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를 법도 했다.
“그……친우, 아니, 마왕이여?”
헤르멘은 나를 향해 조심스럽게 입을 뗀다.
그 와중에 호칭을 정하지 못했는지 버벅거리는 모습이 가관이었다.
“친우라고 불러도 된다. 넌 항상 그렇게 날 불러왔으니.”
“그랬나…… 아마도 그건 다른 시간축의 나겠지.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그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표정이다.
묻고 싶은 게 한가득인 듯했다.
나 역시 질문할 게 있었으나, 우선은 그의 궁금증을 풀어 주기로 마음먹었다.
“어지간히 상황 파악하기 힘든 것 같은데, 뭐든 물어봐.”
“음…….”
그는 잠깐 눈을 굴리더니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일단은, 내가 마왕과 친구를…… 그것도 영혼의 맹약을 할 정도일지는 몰랐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마족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
헤르멘이 의아할 만도 하다.
그의 관심사는 오직 인간뿐.
그리고 그런 인간을 허구한날 침략해대는 마족을 혐오했다.
“너, 내 영혼을 볼 수 있지 않나?”
시스템 메시지에 의하면 그가 내 영혼을 꿰뚫어 보았다고 했다.
그럼 내가 인간인 것도 알 수 있지 않을까.
혹시나 해서 묻자, 그는 눈을 가늘게 뜬다.
투명한 은빛 눈동자의 내 모습이 비치고, 천천히 나를 훑던 그의 눈이 점점 커져간다.
“……인간의 영혼? 하지만…… 겉은 분명 마족인데…….”
“뭐, 그런 사정이 있었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자세히 설명하려 했으나, 이상하게 입이 열리지 않는다.
무언가 시스템의 힘이 영향을 끼치는 게 분명했다.
“그런가…… 그나저나 인간인 친구를 갖는 게 내 소원이었는데. 다른 나는 그 소원을 이뤘나 보군.”
그도 깊게 생각하지 않는지 싱긋 웃는다.
이제서야 편안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대가 이렇게 마족의 껍데기를 쓴 것도, 여기에 온 이유와 맞닿아 있겠지?”
그는 지혜의 종족인 드래곤답게 모든 상황을 어느정도 이해한 듯했다.
눈치 빠른 그의 모습이 만족스럽다.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헤르멘은 답하듯 더욱 환한 미소를 보인다.
“목적을 말해 주게. 내 힘이 닿는 한 돕지. 지금까지는 큰 힘을 쓰진 못했지만, 영혼의 맹약이 맺어진 그대의 일에는 드래곤 본연의 힘도 낼 수 있겠지.”
바라던 바였다.
이렇게 쉽게 거들겠다 나설지는 몰랐는데.
그의 호구력은 과거에도 여전했던 것 같다.
“아르모데스를 찾아야 될 듯한데.”
“그자라면 마계의 공작이군. 그대는 이 전쟁을 끝낼 생각인가?”
“그래. 그게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인 것 같고.”
“흠……”
그는 잠깐 난처한듯 입을 다문다.
딱 보니 헤르멘도 아르모데스의 위치는 모르는 것 같았다.
“내가 알기로 그는 수하만 내세울 뿐, 몸소 나서지 않아. 차라리 다른 마족들이라면 쉬웠을 텐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아 미안하군. 정보를 모아보겠지만 좀 걸릴 듯한데.”
역시나인가.
그럼 직접 발로 뛰어야 한단 소린데…….
누군가 제대로 아는 자가 없을까.
곰곰이 머리를 굴리다 퍼뜩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일단, 나처럼 여기에 온 헌터들부터 찾지.”
남의 과거사야 궁금하지도 않아 굳이 찾아 듣진 않았지만.
그래도 귀에 들리는 소문은 있다.
‘분명 정보 길드에 몸담았던 귀환자도 있었지.’
나도 그랬지만, 귀환자들은 그럭저럭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던 편이었다.
그들이라면 분명 알고 있는 게 있을 것이다.
“헌터……?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노력해 보겠네.”
* * *
헤르멘과 나는 우선 주변의 왕국으로 향했다.
내가 마왕이 된 것처럼, 헌터들도 무언가 역할을 부여 받았다.
특히나 제일 확실한 건 김상수다.
그라면 당연히 마탑장의 역할일 터였다.
“손님이라니…… 잠깐, 진 헌터님?????”
역시나 찾아간 마탑에는 김상수가 있었다.
바쁘게 마법진을 그려 대던 그는 경악한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아니, 여태껏 어디 있다 오셨습니까?”
“거의 바로 찾아왔다만.”
“예? 제가 여기 온 지도 거의 한달…… 맞다. 헌터들이 아스티란에서 퀘스트를 시작한 시점은 모두 달랐지……아마 진 헌터님이 제일 마지막으로 소환된 거겠군요.”
예상치 못한 정보가 훅하고 들어온다.
빌어먹을 시스템이 또 이상한 수를 쓴 건가.
시점이 제각각이라니.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진다.
그는 내 언짢은 기분을 읽었는지, 지금의 상황을 빠르게 정리해 설명한다.
“다행히 아직 다들 무사합니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난리도 아니었습니다만. 이상하게 마족들이 모두 돌아가더군요. 아마 재정비를 하고 총공격을 해올 것 같습니다.”
그의 표정이 어둡게 변한다.
아마 그때가 오면 지금처럼 쉽게 마족을 막아 내지 못할 거라 생각한 듯 했다.
‘그럴 일은 절대 없겠지만.’
“그나저나…… 진 헌터님은 당연히 왕의 역할을 부여받을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왕국을 뒤져보았지만 없더군요. 혹시 다른 역할을 받으신 겁니까?”
그런 시도까지 했었나.
하지만 나를 찾지 못할 만도 했다.
왕은 왕이지만, 좀 다른 왕이었으니.
나는 정체를 감추기 위해 쓰고 있던 로브를 벗었다.
“아니, 눈 색이…… 잠깐, 뿔……????”
“마왕이다.”
“예?????”
“지금 내 역할이 마왕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