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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117화 (117/200)

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17화

‘뭐지? 이 미친 시스템이 고장나기라도 했나?’

또 두드려 패야 정신을 차리려는 건가.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데, 방금전의 마족이 곁에 슬쩍 다가왔다.

“저…… 그런데, 서부 공작님은 어쩌시겠습니까?”

“어쩌겠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그게……아르모데스 공작님이 마왕님의 소환 명령을 거부했습니다. 아스티란 공격을 멈추지 않겠다면서요.”

“……뭐?”

이게 무슨 개소리지.

어쩐지, 퀘스트 완료가 안 되더라니.

마왕의 명령을 거부할 정도로 간이 배밖으로 튀어나온 마족이 있을 줄은 몰랐다.

“일단 자세한 건 직접 설명하겠다며, 통신 수정구를 보내왔습니다. 여기…….”

그는 붉은빛 비단에 감싸인 수정구를 내밀었다.

짜증을 숨기지 못하고 받아들자, 마족은 황급히 눈치를 보며 밖으로 빠져나간다.

계속 대기하고 있던 시중들도 마찬가지.

이 공간에는 오직 나와 말없는 수정 구슬만 남았다.

‘아르모데스, 대체 무슨 꿍꿍이지.’

처음부터 수상한 놈이긴 했다.

번질한 낯짝하며, 은근슬쩍 나를 재보기까지 하던 모습까지.

어디 하나 마음에 드는 점이 없었는 놈이다.

그때는 그저 내가 인간이기에 그러나 보다 싶어 대충 넘어갔다.

나중에 정말로 기어오르면 철저히 밟아 주리라 기약하며.

하나, 지금의 나는 과거의 마왕 역할이다.

그가 마왕의 명령을 대놓고 무시하는 것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겉모습도 그렇고, 나는 지금 마족일 텐데.’

투명한 구슬에는 내 모습이 비쳐 보인다.

분명 얼굴은 똑같지만, 다른 것은 조금씩 달랐다.

머리 위에 달린 뿔과 마족에게 흔히 보이는 붉은 눈동자.

분명 인간이 아닌 마족의 외형이었다.

지금 내 몸 안에 끓고 있는 기운도 분명한 마기였다.

아마도 마왕의 역할을 받으면서 종족도 잠시 변화한 것이리라.

‘분명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겠군.’

대놓고 배째라는 놈이다.

결국 진짜로 배를 째서라도 그 속내를 알아볼 수 밖에.

[제 수정구가 제대로 도착했나 보군요.]

이런저런 생각을 할 때였다.

갑자기 아티팩트가 빛나더니, 수정구에 내가 아닌 아르모데스의 모습이 비친다.

몇백 년 전의 과거지만 그 능글맞은 모습은 비슷했다.

“아르모데스. 내 명령을 거부한 이유가 뭐지? 마계로 돌아오라고 했을 텐데.”

[하하하하!!!명령이라니!]

한참을 웃던 아르모데스가 웃음을 뚝 멈춘다.

얼굴은 냉혹하리 만큼 차가웠다.

[이번대 마왕은 정말 제멋대로군. 모처럼 마음에 드는 말을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취소라?]

이놈이 진짜 미치기라도 한 건가.

존댓말도 어느새 사라졌다.

제멋대로인 마족임을 감안하더라도, 이상한 행동이었다.

[감히 내게 명령을 내릴 자는 아무도 없다. 그것이 마왕이라도. 이번만큼은 마왕의 권능을 들먹이기에 어쩔 수 없었지만, 한번 더 시도한다면…… 그 알량한 자리도 빼앗아 주지.]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응시한다.

눈동자에는 포식자의 사나움이 넘실거린다.

약자는 그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기절할 정도로 광포한 시선이었다.

‘감히, 건방지게.’

하지만 그건 가뜩이나 심기가 불편한 나를 건드리는 일에 불과했다.

나 역시 차갑게 식은 눈으로 그를 마주했다.

그러자 그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다시 싱긋 웃어 보인다.

[평소답지 않군요. 뭐, 명령을 왜 취소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잠자코 기다리십시오. 내가 몸소 인간들을 멸망시키고 가겠으니. 그게 마왕인 당신이 원하는 바 아니겠습니까?]

그 말을 끝으로 통신이 끊어진다.

나는 바로 들고 있던 수정구를 던져버렸다.

와장창-!!

‘결국 아스티란 침공은 계속 하겠다는 건가.’

좋게 말해도 꼭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놈들은 하나쯤 있다.

그럼 직접 찾아가는 수 밖에.

굳이 후회할 일을 사서 하는 녀석에게 본때를 보여주리라 마음먹었다.

“크흠. 마왕님, 수정구가…….”

수정구 깨지는 소리에 나갔던 마족이 다시 들어왔다.

그는 산산조각난 잔해를 보며 내 눈치를 연신 살핀다.

“서부 공작님이 그러시는 것, 한두번도 아니지 않습니까?”

“한두 번도 아니다…… 라?”

자연스레 손아귀에 힘이 들어간다.

쥐고 있던 의자의 손잡이가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그에 마족이 흠칫 놀라며 무릎을 꿇는다.

“온 마족을 통틀어 제일 오래 살아오신 분 아니십니까. 마계에서 제일 강하다는 그 힘은 말할 것도 없고요. 마왕님뿐 아니라 다른 마왕에게도 마찬가지였지 않습니까? 그러니 노여움을 푸시지요.”

처음 듣는 말이었다.

생각해보니, 다른 공작에 대해서는 잘 떠들어대던 아렐리아가 아르모데스는 입에도 담지 않던 것이 기억난다.

그와 마주쳤을 때도 그저 피하려고만 했을 뿐이었고.

설마 그게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었나.

마왕도 가볍게 무시하는 자이니, 공작인 그녀는 더 말할 것도 없었을 터였다.

‘그런데, 그토록 강한 자가 어째서 마왕의 자리에는 욕심이 없을까.’

물론 마왕을 한다고 좋은 점은 없겠지.

월급이 나오는 자리도 아니고.

나라도 그런 귀찮기만 한 일은 사양이다.

그래도 모든 마족이 선망하는 명예로운 자리라 알고 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생각할수록 아르모데스라는 마족 자체에 의구심이 생긴다.

모든 것이 의문 투성이었다.

‘일단 때려눕혀 놓고 물어보면 되겠지.’

마음을 먹었으면, 행동은 빠를수록 좋다.

분명 그를 찾아내는 것도 한 세월일 테니까.

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발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지하의 대륙 이동 게이트였다.

전에 마왕성을 돌아다녔을 때 발견했던, 아스티란과 마계를 잇는 문이다.

고대부터 있었던 것이라는데 마족들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소환을 받은 것이 아니라면, 마족은 마계 밖에서는 힘을 크게 쓸 수 없으니.

‘아마 지금은 나도 마족이니 영향받을 수 밖에 없겠지. 그래도 지금은 그걸 감수할 수 밖에 없다.’

도착한 지하실에는 검은 마나가 일렁이는 차원문이 놓여져 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문에 발을 들였다.

진득한 마기가 몸을 스치고 지나간다.

어지러울 만큼 농도가 짙은 힘에 익숙해질 때쯤.

갑작스레 시스템 메시지가 울려온다.

[왕은 타 차원에서 힘을 5할밖에 쓸 수 없습니다.]

‘젠장, 반절밖에 쓰지 못한다고?’

생각보다 더 강한 제약에,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진다.

그 와중에 눈에 띄인 건 ‘왕’ 이라는 단어.

아마도 마왕을 포함한 6차원 계의 왕을 말하는 거겠지.

대충 알고 있긴 했지만, 비로소 확실해진다.

종족들의 왕들은 시스템에 의해 타 차원에서는 힘을 쓸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러니 인간들을 눈꼴 시려 하면서도 직접 내려오진 못하는 거고.

‘그래도 이건 좀…….’

점점 몸에 있던 마기가 빠져나간다.

그때였다.

귓가에 경고음이 들려왔다.

동시에 조금씩 잃어 가던 힘이 다시금 차오르기 시작했다.

[오류! 해당 마왕은 인간의 영혼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인 왕은 힘의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진다.

혹시나 싶어 마기를 움직여보았다.

칠흑과도 같은 기운은 마계에서처럼 자연스레 내 의지에 따라 이동한다.

'흐음. 이곳에서도 모든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건가.'

주변을 살피며 맴도는 기운을 다시금 갈무리했다.

콰아앙-!!!

내가 도착한 곳은 거친 먼지로 가득 찬 폐허였다.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잔해를 살펴보았다.

모두 평범한 가정집의 집기들인걸 보니 작은 마을이었던 듯하다.

하지만, 지금은 싸움으로 가득한 전쟁터에 불과했다.

사방에서 피비린내와 매캐한 탄 내음이 진동을 한다.

가까이 가 보니 마족들과 인간들이 서로 싸우고 있었다.

대부분의 마족들은 마계로 돌아왔으니, 아마도 아르모데스의 수하들인 듯했다.

“아아악!!”

“빨리 피신하지 못한 마을 사람들을 찾아내!!”

“마족을 막기에도 벅찹니다!! 지원군은 대체 언제 오는 겁니…… 으악!!”

“미천한 인간들 같으니…….”

수많은 사람들이 마기에 휩싸여 무참히 쓰러진다.

간혹 대항하는 자들도 있지만, 약간의 시간 벌기에 불과했다.

전투 능력이 있는 기사든지, 바닥에 쓰러져 있는 민간인이든 상관은 없다.

마족들에게는 그저 허수아비와 다름없으니.

이건 전투가 아니다.

그저 일방적인 학살일 뿐.

‘아무리 과거라지만…….’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물론 지금 상황이 현재의 일은 아니다.

이건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일.

아스티란의 역사서 한편에나 쓰여 있을 사건이다.

하지만.

‘지금 내 눈 앞에 있으니 현실과 다름없어.’

막 쓰러져가는 여자와 눈이 마주친다.

공포에 질린 눈동자는 천천히 생기를 잃어 가고 있었다.

쾅-!!!

검을 뽑아 강하게 휘둘렀다.

칠흑같이 어두운 마기가 뿜어져 나간다.

마기를 정면에서 맞은 마족 두어 명이 순식간에 조각나버렸다.

“어…… 어?”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기사가 멍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목숨을 건졌다는 안심도 잠시.

그는 나를 훑더니 경악해 소리쳤다.

“마…… 마족???”

“마족이 다른 마족을 죽였어……?”

웅성거림이 커지자, 다른 마족 하나가 멀리서 다가왔다.

“이게 무슨 일……잠깐, 마왕님?”

나를 확인한 그가 재빨리 내 앞에 무릎을 꿇는다.

얼굴은 당혹으로 가득 차 있다.

“설마…… 이들을 마왕님이…… 이들을?”

그가 더듬거리면서 나를 올려다본다.

이게 어떻게 된 거냐는 듯,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이었다.

“내가 마계로 귀환하라는 명령을 했을 텐데.”

“명령을 어겼다고 죽인 겁니까?”

그는 날카로운 이를 드러낸다.

흉폭한 마기도 함께였다.

그러나 중급 마족 정도로 보이는 그 힘은 어설프게 느껴질 뿐.

표정 없는 얼굴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제서야 그는 겁을 먹고 힘을 감춘다.

“......저는 아르모데스님의 직속 수하. 그러니 마왕님보다는 그분의 명령을 우선시하겠습니다. 부디 이해해 주십시오.”

아르모데스가 뒤를 봐준다고 믿는걸까.

대답하는 꼴이 제법 뻔뻔해 보인다.

그래도 완전히 두려움을 없애지 못했는지, 눈동자는 잘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해는 개뿔.’

그런 게 가능했다면 내가 여기까지 몸소 오지도 않았을 터였다.

건방진 대답에 검을 들으려다, 다시 집어넣었다.

그래도 직속 수하라니 쓸모가 있겠지.

최소한 그가 있는 위치라도 알아 낼 수 있지 않을까.

보아하니 한두 대 쥐어 터지면 바로 불 듯했다.

“너, 아르모데스 위치는 알고 있나?”

“설마…… 그분을 해치려는건……”

그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경악한다.

내 의도를 바로 알아차린 것이다.

이래서 눈치 빠른 마족은 사절인데.

도망가려는 기색이기에 바로 멱살을 쥐어 들었다.

“어차피 순순히 불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마족놈들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고.”

“젠장!! 그런다고 내가 말할 것…….”

퍼억-

“컥!!!”

‘……응? 아직 손도 안 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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