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16화
“다른 길드들은 벌써 도착해 있다고 합니다. 아마 저희가 제일 마지막일 겁니다.”
“또 기자들이니 뭐니 드글거리겠군.”
“세계 최초의 26층 공략이니까요. 한동안 탑에는 얼씬도 안 했기에 기대가 클 겁니다.”
다른 나라들은 아직도 10층 중반 정도라고 했던가.
한국과는 꽤 많은 차이가 있다.
하기사,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일인가.
이미 알고 있는 9대 미궁에, 공략권까지.
사실상 거저먹었던 적이 더 많았다.
그렇기에 한국의 헌터들은 이렇다할 공략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이번에는 다들 긴장 좀 하겠는데.’
아니나 다를까.
도착한 <검은 탑>주변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예전의 공략과는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항상 여유 넘치던 길드장들의 얼굴도 한껏 굳어 있다.
그 모습이 마치 전쟁터를 나가는 기사와도 비슷했다.
“진 헌터님,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재빨리 박신우가 다가온다.
목소리에서 조급함이 느껴지는 걸 보니 꽤 늦긴 한 모양이다.
몰려드는 기자들을 제치고, 나와 강준하는 대기하고 있는 헌터들에게 다가갔다.
“너무 늦길래 안 오시는 줄 알았습니다.”
천상의 이영우 길드장이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로 나를 반긴다.
그를 시작으로, 다른 자들도 하나 둘 반갑다는 듯 인사를 건네왔다.
“이번에도 잘 부탁드려요. 대체 뭐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어두웠던 얼굴들이 조금씩 풀려간다.
내가 오니 안심이 되는 듯한 눈치였다.
그때,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되는 목소리가 들린다.
“형님, 오셨습니까?”
“박민호? 넌 이도윤 대신에 길드일을 맡기로 하지 않았나.”
그는 내 말에 대답하는 대신, 시선을 근처로 던진다.
그곳에는 이도윤이 김상수와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의 하얗게 질린 얼굴로 봐서, 아마 위로라도 받고 있는 듯 보였다.
“너무 긴장하길래요. 위로차 왔죠. 겸사겸사 형님도 뵙고요.”
“쯧…… 이러고 있을 시간이 있던가? 처리할 일이 한두 개도 아닐 텐데.”
“하하하……잠깐만 봐주세요. 끝나면 바로 그림자 길드로 갈 예정입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이도윤에게 돌아갔다.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비치된 의자에 앉았다.
잠시 인벤토리라도 살펴볼까 하는데, 주변이 작게 웅성거린다.
소란의 진원지를 쳐다보자, 박신우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잠시 주목해 주십시오. 모두 도착한 듯하니 이제 탑 입성을 시작하려 합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서류를 들어올린다.
한 명 한 명을 훑으며 무언가 끄적이는걸 보니 헌터 명단이라도 되는 듯했다.
곧 체크가 끝난 박신우가 가라앉은 눈으로 주위를 쳐다본다.
“총 48명. 확인 완료되었습니다. 그럼 다들, 탑 입구로 향해 주십시오.”
말이 끝나자마자 헌터들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언제 떠들었냐는 듯 입을 다문 채였다.
침묵은 전염되는걸까.
공략대를 이끄는 협회 직원들도 조용하다.
오직 저벅거리는 발소리만 들릴 뿐.
'어지간히들 긴장되는가보군.'
특히나 이도윤의 얼굴은 이제 새파랗게 질려 있다.
한마디 하려는 순간, 어느새 탑의 입구에 도착했다.
박신우는 천천히 뒤를 돌아 우리를 응시한다.
“그럼, 26층 공략을 시작하겠습니다.”
양 옆에 대기하고 있던 직원들이 문의 손잡이에 손을 대었다.
소리 없이 열린 거대한 문.
그 앞에는 한치 앞도 살필 수 없는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부디 몸 조심히 다녀오시길.”
헌터들은 한 명씩 차례로 문 안쪽으로 사라진다.
박신우는 그들 하나하나와 눈을 마주한다.
마치 다시는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듯이.
* * *
[아시아-대한민국 채널 <검은 탑> 26층에 모든 도전자가 입장했습니다. 곧 문이 닫힙니다.]
“20층이 넘어서 그런지 다르군요.”
강준하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이 공간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원래라면 바로 아스티란의 풍경이어야 할 텐데.’
발 밑마저 아득한 무저갱이다.
우주에 떠있다면 이런 기분일 듯하다.
쾅-
문이 닫히자 한줄기의 빛마저 사라졌다.
어둠은 더욱 묵직하게 내려앉는다.
그래도 희미한 빛덩어리들이 떠다니기에 헌터들의 얼굴은 어렴풋이 보였다.
“이상한 공간이네요.”
“대기실…… 같은 느낌이지 않습니까?”
다른 헌터들도 이리저리 살펴보느라 정신이 없다.
모두 어리둥절한 가운데.
알림음와 함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26~30층은 연계 퀘스트로 진행됩니다. 진행할 퀘스트 내용 산출 중……]
“연계 퀘스트래요! 이걸 공략하면 바로 31층까지 가는 건가?”
“너무 좋은데요??”
몇 명이 기쁜 듯 환호성을 지른다.
다른 자들도 비슷했다.
표정을 굳힌 사람은 오직 나뿐.
‘얼마나 거지같은 퀘스트기에…….’
시스템과 엮여 힘들었으면 힘들었지, 좋았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이건 분명히 개고생하는 퀘스트다.
심지어 더럽게 오래 갇혀 있을 것이 뻔했다.
[<퀘스트:뒤틀린 아스티란의 과거> 퀘스트가 선택되었습니다.]
[진행 자격이 없는 플레이어가 감지되었습니다.]
[귀환자가 아닌 도전자는 강제 퇴장됩니다.]
“……뭐??퇴장이라고???”
“이게 무슨……!”
역시나인가.
예상했던 나만 빼고 모두 당황했다.
“진 님, 저 10초 뒤에 퇴장당한다는데요…….”
첫 탑 공략에 기뻐했던 이도윤 역시 마찬가지.
그는 시무룩한 얼굴로 작별 인사를 했다.
“나가서 뵙겠습니다…….”
‘박민호로는 못미더웠는데 잘된 걸지도.’
잠시 뒤, 열 명에 가까운 헌터들이 사라졌다.
공간을 채우던 소란은 점차 잦아든다.
모두 할말조차 잃은 듯했다.
‘뭔 놈의 퀘스트를 자격까지 따져가면서 진행하려는 거지.’
퀘스트 이름이 아스티란의 과거라고 하니, 그와 관련된 사건이 펼쳐지는 건가.
그렇다면 아스티란과 연이 없는 각성자는 참가하지 못할 법도 했다.
[<퀘스트:뒤틀린 아스티란의 과거>에서는 플레이어마다 각자 역할을 맡아 진행하게 됩니다.]
[해당 역할은 귀환 직전의 행동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적절한 역할이 없을 경우, 비슷한 역할을 부여받습니다.]
[역할 산출 중…… 완료.]
[역할에 맞는 시작점 설정 중…… 완료.]
“시작 위치도 각자 다른가 보네.”
“그래도 만날 방법은 있겠죠. 그럼, 다들 건투를 빕니다.”
시스템 메시지를 끝으로, 헌터들은 하나 둘 빛에 휩싸였다.
거의 모든 헌터가 사라졌을 때쯤.
아직까지 옆에 있던 강준하가 조심스레 입을 연다.
“진 님, 아마 저는 기사단장으로, 진 님께서는 제 주군인 왕으로 역할을 부여받을 거라 예상되는데…… 귀환 직전의 행동이라는 것이…… 조금 걸리는군요.”
“……잠깐, 귀환 직전이면…….”
순간 그와 내 눈빛이 마주친다.
강준하가 다급히 말을 하려는 찰나, 그 역시 빛에 감싸여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마지막 남아 있던 나 역시도.
* * *
[<퀘스트:뒤틀린 아스티란의 과거>
1.이곳은 지구의 귀환자가 나타나기도 전, 약 600년 전의 과거의 아스티란입니다.
2.아스티란의 주민들은 플레이어들을 원래 있던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대할 것입니다.
3.<뒤틀린 아스티란의 과거>에서 진행된 일들은 현재 아스티란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단, 특별한 사건의 경우 미약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새하얀 빛이 사라지고, 눈 앞에는 주의사항 같은 시스템 메시지가 떠있었다.
길게 써 있지만 결국 요약하자면 간단했다.
몇백 년 전 과거 아스티란에서 각자의 할 일을 하라는 것.
시스템 메시지를 대충 닫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널찍한 로비에 깔린 붉은 융단이며, 거대한 검은빛 왕좌가 나를 반긴다.
익숙한 공간이었다.
그래도 과거랍시고 마지막에 봤던 마왕성과는 조금 다르긴 했지만.
[당신의 역할은 ‘마왕’입니다.]
[<퀘스트:뒤틀린 아스티란의 과거>: 아스티란을 멸망시키려는 위협을 막아 내세요.]
‘역시 이런 결과인가.’
귀환 직전 행동이라는 말이 영 찝찝하다 싶더니.
그래도 오히려 잘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마왕이니, 아스티란을 침공하지 말라는 명령만 내리면 되겠지.
예상보다 퀘스트가 금방 끝날 듯했다.
“거기, 너.”
생각을 정리하고 주변에 있던 마족 하나를 불러세웠다.
그는 잔뜩 겁먹은 얼굴로 나에게 다가온다.
그 태도를 보아하니 나를 마왕으로 인지하고 있기는 한 모양.
정확히는 현재의 내가 아닌, 몇백 년 전 과거의 마왕이겠지만.
그래도 시스템의 말대로, 딱히 이질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네, 마왕님. 하명하시옵소서.”
“인간계로 내려간 마족들을 모조리 불러와.”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스티란을 공격하는 일은 그만두겠다.”
“하지만…… 그건 마왕님께서 직접 내리신 명령이지 않았습니까?”
그는 경악하며 말을 더듬는다.
도무지 내 명령이 이해가 가지 않는 듯했다.
‘마왕이 인간계 침공을 명령한 설정인가.’
그럼 되돌리기도 더 쉽겠지.
지금의 마왕은 나니까.
“…… 진심이십니까?”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니, 그제서야 그는 빠르게 사라진다.
이제는 기다리는 일 밖에 남지 않은 건가.
자연스럽게 마왕의 왕좌에 걸터앉았다.
* * *
“말씀하신대로 모두 불러왔습니다.”
몇시간이 지나고, 텅 비어 있던 공간이 마족들로 가득 찼다.
방금까지 전투하다 왔는지 상처입은 자들도 더러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공격을 그만두시겠다니요?”
한 마족이 의아하게 물어온다.
다른 마족들 역시 맞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내린 명령을 내가 거두겠다는데, 문제라도 있나?”
“……그래도…….”
“적잖이 불만 있어 보이는데…….”
나는 감추고 있던 마력을 강하게 방출했다.
삽시간에 진득한 마나가 공기 중에 내려앉는다.
그 맹렬한 힘에 마족들은 움찔하며 황급히 고개를 떨궜다.
“죄송합니다. 불만 있는 건 아닙니다. 당연히 마왕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마족들을 다루는 건 확실히 편했다.
오직 힘을 숭상하고 강자를 맹목적으로 따르니.
조금 비슷해 보이면 얄짤 없이 기어오르는 건 단점이긴 했지만.
어차피 이정도는 그저 마력을 방출하기만 해도 될 터였다.
“그럼 가 보도록. 인간계는 얼씬도 하지 말고.”
“예…….”
내 말이 끝나자 썰물처럼 마족들이 빠져나간다.
이만하면 퀘스트도 곧 끝나지 않을까.
한시간도 안 되서 공략을 마치다니.
이정도면 만족할 만한 성과였다.
나는 눈 앞에 떠오를 시스템 메시지를 잠자코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완료 메시지는커녕, 아무런 알림도 없이 잠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