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15화
수많은 시선이 한꺼번에 몰린다.
각양각색의 헌터들이지만, 공통점은 있었다.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들.
그리고 떡 벌어진 입까지.
하나같이 웃음이 나올 정도로 멍청한 얼굴들이다.
“아니,이게…….”
“……허, 그림자 길드만 선택했다고?”
모두 허탈한 심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그중 제일 격렬한 반응은 역시나, 홍현민이었다.
“저……저……!!!말이 되는, 읍!!!”
“길드장님, 또 욕하시려 했죠? 입조심 부탁드립니다, 제에발…….”
“읍읍!!”
입이 틀어막힌 홍현민이 발버둥을 친다.
한 명가지고는 힘들었는지, 다른 자유길드의 간부들도 모조리 붙어 있는 상태였다.
꽤 재미난 구경거리였다.
하지만 한가롭게 구경할 시간은 없었다.
다들 제정신을 찾고 나면, 귀찮아질 게 뻔했으므로.
“경매도 끝났으니, 이만 가지.”
“용병왕, 어딜- 읍읍!!”
“아이고, 살펴가세요!”
아직도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자들을 헤치고 나왔다.
문을 닫고 빠져나오자, 굳건한 철문으로도 막아지지 않는 소음이 튀어나왔다.
“길드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잠자코 있던 이도윤이 조심스레 묻는다.
목소리는 한껏 들떠 있다.
다른 그림자 길드의 간부들도 마찬가지.
모두 흥분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앞으로 펼쳐질 행복한 미래를 꿈꾸고 있는 듯했다.
“오늘은 축하 파티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맞아요! 아까 5대 길드 간부들 얼굴 보셨어요? 솔직히 통쾌하더라고요.”
반짝이는 눈빛들이 나에게 쏠린다.
같이 축하주를 들자며 애원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기뻐하는 마음은 잘 알겠다만…….’
그 도도한 마법사들을 관리하려면 꽤나 벅찰 텐데.
특히나 신연주와 김상수는 더더욱.
빚을 갚겠다고 흔쾌히 받아들이긴 했지만, 아직 1년만 계약만 한 상태다.
이 이후는 그림자 길드의 행보에 따라 달려 있다.
앞으로 길드가 더욱 발전한다면 계약을 연장하겠다고는 했지만, 글쎄.
적어도 그들이 원하는 조건에 맞추려면, 5대 길드에 버금갈 정도는 되야 하지 않을까.
“제발 같이 가 주세요! 오늘의 주역은 진 헌터님이신걸요!”
“맞습니다. 진 님, 오늘만큼은 즐기시죠.”
그 사실을 잘 아는 이도윤마저 나를 붙잡는다.
하기사, 고생할 건 내가 아니라 이들이지.
그렇게 생각하니 살짝 마음이 동한다.
곧 <검은 탑>에 들어간다면 이런 분위기도 즐기지 못할 터.
못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이자, 들뜬 길드원들이 우르르 쫓아온다.
발걸음은 경쾌하기 짝이 없었다.
* * *
[영원:그림자 길드는 이번 탑 공략에 꼭 참여하셔야겠습니다.^^ 특히나 길드 소속 마법사분들은요.]
[도유:그렇지 않아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스티란짱짱:대체 얼마를 불렀길래 바로 수락한 거임? 나한테만 살짝 말해 줘 봐.]
[마법최고:그런건 아니에요. 그저 그림자 길드의 발전 가능성에 투자했을 뿐.]
[아스티란짱짱:장난? 그걸 누가 믿음. 용병왕이 협박이라도 한 거임???]
‘1랭크채널 반응이야 역시 뻔하군.’
소란은 며칠씩이나 계속되었다.
특히, 한호 그룹이 그림자 길드를 본격적으로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뒤는 더 심했다.
덕분에 뉴스와 기사들은 온통 그림자 길드에 대해 떠들어 대고 있었다.
“이도하 녀석, 이번엔 칼을 갈았나 본데.”
“저도 예상보다 투자 금액이 커서 놀랐습니다. 큰아버지까지 직접 거들겠다 나섰다더군요. 아마 도하형님이 직접 설득했겠죠.”
“쯧. 망하면 어쩌려고 저러는지. 뭐, 내 알 바 아니던가.”
“하하…… 아무리 마법사 쪽 길드를 따로 꾸렸다지만, 망하면 저희도 영향을 받긴 받을 텐데요…….”
이도윤이 상처받았다는 듯 짐짓 꾸며낸 얼굴은 한다.
그래 봤자 불쌍한 척하는 게 다 보일 정도다.
“그나저나 그림자 탑 길드가 뭐냐. 작명 센스도 이정도면 너무한 수준인데.”
“급하게 길드 창설을 신청하다 보니…….”
어쭙잖은 변명을 하는 그를 향해 작게 혀를 찼다.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게 목적임은 알겠는데, 마탑의 짝퉁 느낌은 어쩔 수 없었다.
그가 부랴부랴 설립한 ‘그림자 탑' 길드.
그곳은 그림자 길드에서 마법사들만을 위해 분리한 길드였다.
굳이 말하자면 본사와 자회사정도의 상관 관계라고 해야 하나.
한호의 돈은 받아먹고 싶지만, 휘둘림은 받기 싫어하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사실 투자는 그림자 탑만 받으면 되었으니.
“길드장은 언제까지 비워 놓을 셈이지?”
“글쎄요. 김상수 마법사님이 맡아 주셨으면 좋겠지만, 이제는 그런 일은 하기 싫다 진절머리를 치시는 바람에…….”
“계속 크레아시론이 임시 길드장을 할 수는 없을 텐데.”
“……아무래도 그렇겠죠. 워낙 정체가…… 흠흠.”
그는 크레아시론을 생각하고 있는지, 얼굴이 살짝 굳어간다.
크레아시론이 리치라는걸 아는 순간부터 저 모양이었다.
이도윤의 성격상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거겠지.
흑마법사가 되는 과정은 도덕적인 것과 거리가 많이 멀었으니.
‘그래도 믿고 맡길 자가 크레아시론밖에 없으니, 당분간은 도리가 없나.’
현재 크레아시론은 인간형 골렘을 내세워 길드장 역할을 하고 있다.
골렘은 김지연과의 합작품으로, 겉으로 보기엔 그럭저럭 그럴싸한 모습이었다.
듣기로는 약간의 감각도 공유할 수 있다고.
‘조종에는 꽤 애먹는 것 같지만 괜찮아지겠지.’
처음에는 골렘까지 내세우는 크레아시론을 못 미더워하는 자도 많았다.
대부분 얼마나 켕기는 게 많으면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냐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이틀뿐.
크레아시론과 거래했던 박신우가 그의 신원을 보증한다며 나섰다.
[이걸로 <검은 탑>공략법을 써 주신 빚은 없는 겁니다.]
[고작 이걸로?]
[미등록 헌터를 협회가 직접 보증하는 일입니다. 말이 미등록 헌터지, 사실상 범죄자나 다름없는 것. 잘 아실 거라 믿습니다. 전례가 없는 일이니 이정도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만.]
확실히 협회의 영향력은 강했다.
이제는 외려 베일에 쌓인 고서클 마법사라며 열광할 정도였으니.
‘은근 크레아시론을 추종하는 무리도 생겨나는 것 같던데. 뭐, 길드장의 인기가 많아서 나쁠건 없겠지.’
나로서는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다.
의심하며 헐뜯을 때는 언제고.
수상함과 신비함은 종이 한 장 차이인가.
“그래도 리…… 크흠, 셔서 그런지. 일 속도는 정말 빠르더군요. 그런데, 정말 24시간 일하셔도 되나요? 정신적으로는 피곤해 보이던데.”
“이미 익숙해서 괜찮을 거야.”
설마 죽기야 하겠는가.
그리고 공장 돌리는 일보다는, 서류 업무가 낫겠지.
나에게 몸과 정신을 다 바치겠다 했으니 이 정도쯤은 흔쾌히 할 것이다.
불만을 가져도 상관은 없다.
물리적인 충격 몇 번이면 열심히 하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할 테니.
“덕분에 저희는 편해서 좋지만요.”
“그럼 된 거지. 그리고 남까지 신경 쓸 여유가 있던가? 탑에 가려면 처리해 놓고 갈 일이 한두 개가 아닐 텐데.”
“블랙마켓은 이제 안정세고, 길드들이 좀 걸리긴 합니다만…… 적당히 마무리해 놓았습니다. 크게 걱정하실 일은 없을 듯합니다.”
“그것 말고.”
내 말에 이도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손가락으로 직접 그를 가리키니, 그제야 작은 감탄사가 나온다.
“아, 저 말씀이십니까? 이미 모든 물품은 인벤토리에 넣어 놨습니다.”
그는 싱글벙글하며 준비된 물건들을 줄줄 읊는다.
세심한 성격만큼이나 종류는 많았다.
“아티팩트는 이만하면 충분하겠지요? 그리고 음식은-”
이번 <검은 탑> 26층은 이도윤도 함께 하기로 했다.
사실 나로서는 초보자나 다름없는 그가 못미덥다.
게이트는 몇 번 들어간 모양이지만, 탑은 다르다.
정말 뭐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니.
하지만 언제까지 온실 속의 화초일 수는 없는 법.
그런 의미에서 이번 공략은 좋은 기회가 되겠지.
“-그리고 음료도 종류별로 챙겨봤습니다.”
그도 그걸 잘 아는지, 들뜬 기색이었다.
하지만 쓰잘데기 없는 물품까지 챙겼다는 말에 결국 나는 한마디 뱉고 말았다.
“……소풍 가냐?”
이럴 때에는 그의 꼼꼼함이 좋지만은 않았다.
* * *
“[이놈의 <검은 탑>…… 따라갈 수도 없고, 답답하네요.]”
오늘은 <검은 탑> 26층을 오르는 날.
그걸 잘 아는 아렐리아가 어김없이 한탄한다.
집에만 얌전히 있어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싫은 거겠지.
“그러게 마계에 돌아가래도.”
“[……거긴 도저히 정이 가질 않아요. 인간들 기준으로 따지자면, 저에겐 회사인걸요.]”
제법 인간계 문화에 익숙해진 아렐리아가 그럴듯한 비교를 한다.
하기사, 아렐리아의 성에 있을 때도 다들 그녀를 어려워할 뿐.
마음 붙일 구석은 없어 보였다.
그러고보니 다른 공작들과의 관계도 좋지만은 않았던가.
대놓고 무시하진 않지만, 서로 데면데면한 느낌은 있었다.
그저 같은 상사를 둔, 직장 동료를 대하는 정도라고 해야 하나.
‘그럼 나는 주말에도 회사에 출근하라고 한 상사가 되는 건가.’
뭐, 그래도 세상에는 이런저런 직장 상사가 있는 법이니.
나같은 상사 하나쯤은 있어도 되겠지.
“[태어난 곳도 아스티란이니, 마계에 애정 가지기는 힘들다고요.]”
내 표정을 다른 의미로 이해했는지, 그녀가 변명하듯 중얼거린다.
“반마족인건 알았다만. 대륙에서 태어났나?”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생각해보니 그녀와 개인적인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다.
같이 지낸 기간도 꽤 될 터인데.
새삼 아렐리아의 과거사가 궁금해진다.
“[어머니가 인간이셨으니까요. 좋은 분이셨죠.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인간계 생활도 그럭저럭 괜찮았어요. 물론 혼자 남겨진 뒤로는…… 조금 힘들었지만.]”
그녀는 쓰게 웃으며 말꼬리를 흐린다.
항상 밝은 모습이었던 아렐리아기에, 슬퍼 보이는 그 눈빛이 낯설다.
“[대륙에서 홀로 몇백 년을 떠돌아다녔거든요. 마계에 가는 방법을 몰랐으니까.]”
좋은 기억은 아니었겠지.
나 역시 아스티란에서 반마족이 받는 취급은 잘 안다.
아마도 살아있는 재앙정도로 불리지 않았을까.
“그래도 용케 찾아가서 공작까지 되었군.”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요. 마계로 가는 입구를 찾은 것도…… 응?]”
아렐리아가 갑자기 멈칫한다.
그러면서 고개를 연신 갸웃거리기는데,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고보니 대륙에서 마계로 넘어가기까지가 기억이 안 나네요. 이상하네……]”
“그전의 기억도 있다면서?”
“[그러게요. 대륙에서 있었던 일은 똑똑히 기억하는데, 중간 기억은 너무 희미해요. 너무 충격적인 일이라 잊었나?]”
떠오르지 않는 기억에 그녀는 머리를 쥐어짠다.
급기야 끙끙거리는 소리까지 낸다.
인상을 팍 찡그린 그녀를 구경하는데, 문 밖에서 작은 노크소리가 들렸다.
“진 님, 이만 탑으로 출발하셔야 합니다.”
노크의 주인공은 강준하였다.
나를 데리러 오기로 했기에 직접 집까지 찾아온 듯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그 와중에도 아렐리아는 여전히 똥 씹은 얼굴이다.
그 모습이 우스워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에 얹었다.
작은 온기 느끼니, 괴로워하던 그녀가 그제야 표정을 푼다.
그래도 여전히 아리송한 얼굴이었다.
“[그러고보니 이 느낌도 익숙해요. 누군가 이렇게 해줬던 것 같기도 한데……어머니는 분명 아니고. 뭘까요, 정말.]”
그녀의 머리를 나말고도 쓰다듬을 사람이 또 있던가.
저래 뵈도 아렐리아는 마계의 공작이다.
당장 손목이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의아하긴 했지만, 여기서 노닥거릴 시간은 없었다.
나는 바로 그녀와 작별을 인사를 하고 집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