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13화
“……이도하?”
여전히 고급 브랜드의 정장을 주름 하나 없이 걸친 모습이었다.
그 역시 나를 발견했는지 흠칫한다.
동공은 세차게 떨리고 있었다.
“크흠, 큼…… 진 헌터…… 님.”
본능적으로 쫄아 붙었는지 그는 어깨를 움츠린다.
말투는 제법 공손하기까지 했다.
역시 사람은 몇 대 맞아야 정신을 차리는 법인가.
자연스레 나에게 부러졌던 발목에 시선이 간다.
‘왼쪽이던가, 오른쪽이던가.’
잠시 고민하는 사이 그가 슬그머니 왼쪽 발을 뒤로 숨긴다.
“왜…… 그렇게 보시는지……”
그는 몸 전체를 덜덜 떨며 공포스러워한다.
멀쩡해 보이니 한 번 더 부러져 보자, 라는 의도로 보였을까.
잔뜩 기 죽은 그 모습에 피식 웃었다.
이도하의 낯빛은 점점 더 안 좋아진다.
“됐다. 그나저나 여긴 왜 온 거지?”
굳이 정확한 대답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전에 봤던 이도하라면 당연히 대충 얼버무릴 거라 생각했다.
그와 나의 관계는 포장하려 해도, 절대 좋은 인연은 아니었으니.
하지만 그는 사방을 훑으며 눈치를 본다.
“음, 그게 말입니다…….”
아마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는 듯했다.
복도가 텅 비어 있음을 확인하고, 그는 간신히 입을 뗀다.
“마탑과 사업을 시도한 게 알려져서…… 그걸 해명하러 가는 길입니다. 그들과 어떤 관계였는지, 그런 것들 말입니다.”
확실히 그의 태도는 전보다 누그러져 있었다.
의아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데, 이도하는 재차 내 눈치를 본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던가.
잠자코 기다리자 그는 대뜸 고개를 숙인다.
“저, 정말 감사합니다.”
“……뭐지?”
“만약 제 사업이 계속 진행되었다면…… 이 정도에서 끝나지 않았을 겁니다. 마탑 이야기는 이미 들었습니다. 끔찍한 일을 꾸미고 있었다고요. 하마터면 한호의 돈이 영국을 무너뜨리는 데 일조할 뻔했습니다.”
고개를 든 그의 얼굴이 창백하다.
상상만해도 끔찍하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기까지 했다.
“사실상 전쟁 자금과 다를 바가 없죠. 설마, 이걸 이미 알고 계셨던 겁니까?”
그는 은근 기대하듯 물어온다.
혼자 무언가 큰 오해를 하는 듯 보였다.
어이없는 눈초리로 쳐다보아도 소용은 없었다.
이미 그는 나를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
“그랬군요. 그러고보니 이제야 이해가 갑니다. 이도하도 결국 한호의 식구. 그를 아낀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한호가 괜한 구설수에 오르는 것을 미리 방지하신 거겠고.”
이도하는 연신 중얼거린다.
마치 추리소설 속 탐정이라도 된 듯, 혼자 이런저런 추측을 해 대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저도 도움받게 된 셈입니다. 그래서, 전부터 이렇게 직접 뵙고 인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는 다시금 고개를 꾸벅 숙였다.
떨떠름하게 쳐다보자 그는 오히려 눈을 빛낸다.
“과연. 이 정도는 당연하단 겁니까.”
묘한 기시감이 든다.
생각해 보니 이도윤도 이런 느낌이었다.
멋대로 오해하고, 추측하고.
사촌이지만 그 모습은 둘이 꼭 닮아 있었다.
‘역시 피는 못 속이나.’
“이도하 부사장님, 거기서 뭐 하십니까? 시간이 다 되어도 안 오시기에 이상하다 싶었습니다만.”
복도 끝에서 박신우가 당혹스러운 소리가 들린다.
이도하의 약속 상대는 박신우였나.
하도 안 오니 몸소 찾으러 나서는 참으로 보였다.
박신우의 구두 굽 소리가 복도에 울리고, 그제서야 그는 퍼뜩 정신을 차린다.
“일단 인사는 이정도로 하고, 나중에 직접 찾아 뵙겠습니다. 보답은 그때 드릴 수 있겠군요.”
“날 찾아온다고?”
헛웃음을 삼키고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지금 농담하는 건가.
이런 우연이라면 모를까, 굳이 찾아가며 만날 사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하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진지했다.
“예. 한호의 사람은 빚을 지고는 못삽니다. 하물며 그게 은혜라면 몇 배로 갚아야 합니다.”
“이도하 부사장님?? 잠깐, 옆에는 진 헌터님…… 아니, 아직도 왜 여기에 계십니까?”
박신우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이제는 정말 떠나야 할 때라 생각했는지, 그가 내 앞에서 슬쩍 비켜선다.
그 와중에 속삭이듯 던진 한마디가 가관이다.
“이도윤, 그놈이 왜 당신을 따르는지는 잘 알겠군요. 그 자식은 마음에 안 들지만, 당신과 동료라니 조금 부럽긴 합니다.”
……저놈의 집구석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뿌듯한 얼굴의 놈에게 한마디 쏘아 주려다, 바로 그만두었다.
지금의 상태라면 내가 뭘 해도 혼자 북 치고 장구까지 칠 테니.
* * *
배에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눈을 떠 보니 역시나 아렐리아였다.
‘벌써 아침인가.’
창밖에는 포근한 햇빛이 비추고 있었다.
몸을 일으키자 아렐리아의 작은 몸뚱이가 데구르르 굴러간다.
“[마왕님, 요새 너무 안 놀아 주시는 거 아니에요? 곧 탑 공략 시작하시면 당분간 보지도 못할 텐데……]”
그녀는 불만스럽게 내 팔을 붙잡는다.
아침부터 뭘 주워 먹었는지, 두 손은 끈적했다.
“차라리 마계라도 가던지.”
“[네에? 너무 싫은데요!]”
언제부턴가 아렐리아가 들러붙는 게 더 심해진 거 같은데.
대충 무시한 채 나갈 준비를 했다.
기왕 잠에서 일찍 깬 것, 바로 그림자 길드에 가볼 생각이었다.
“[또 늦게나 오실 거죠?]”
아렐리아가 구시렁거리며 배웅을 나온다.
표정은 계속 뚱하기에, 둥그런 머리통을 한번 쓰다듬어주고 밖을 나섰다.
빠르게 차를 몰고 도착한 그림자 길드.
이른 아침이지만, 길드장실에는 역시 이도윤이 있었다.
최근 블랙 마켓의 지부를 늘린다더니 바쁜 모양이었다.
“아, 진 님. 오랜만입니다. 요즘 찾아 주시지 않으시더니, 마탑 쪽은 이제 해결되었나 보네요.”
그는 반갑게 맞이하며 재빨리 커피를 내온다.
그리고는 들고 있던 서류를 내팽개친 채 내 앞에 마주앉았다.
“어제 밤에 1랭크채널 보셨나요? <검은 탑>공략을 조만간 다시 재개할 거라던데. 진 님도 참여하신다고요?”
“벌써 소문 다 났나 보군. 그래서 혹시 마무리할 일이 있나 싶어 왔다.”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잘되었습니다. 마탑의 마법사들 말인데, 이번에 저희 길드에서도 몇 스카웃하려 합니다.”
이도윤은 빙긋 웃으며 마법사들 목록이 적힌 종이를 내밀었다.
고위 랭커들은 없지만 그래도 꽤 유명한 자들이 적혀 있다.
신상명세까지 정리한 것이, 나름대로 고심한 흔적이 드러난다.
‘딱히 이번 스카우트 전쟁에는 생각 없어 보였는데.’
하기사, 지금의 그림자 길드는 애매한 부분이 있다.
특히 전투력 부분에서는.
사실상 연금술사팀과 생산계열팀이 주된 길드원이고, 나머지는 그저그런 수준.
이도윤을 포함해 몇몇 전투 헌터가 있다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근접전투 쪽은 민호가 있어 다행입니다만, 아무래도 마법계열이 좀……”
“마법사들 몸값이 좀 높을 텐데. 자금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생기는 족족 블랙 마켓 쪽에 투자하고 있어서요.”
그는 민망한듯 웃는다.
지금으로선 딱히 별 방도가 없다는 듯이.
‘기껏해야 한두 명인가.’
지금의 그림자 길드는 마법사들에게 큰 메리트가 없다.
전력을 늘리는 것에는 나도 찬성이기에, 잠시 고민을 해 보았다.
아직 내 인벤토리에는 돈이 쌓여 있긴 하다.
하지만, 계속 사비를 털어서 길드를 지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도윤도 아마 반기지 않을 테고.
“마법사가 더 생긴다면 게이트도 지금보다는 많이 돌 수 있을 겁니다. 아티팩트 제작 퀄리티도 좋아질 테고요. 빚을 지더라도 최대한 많이 끌어올 생각입니다.”
미래를 위해서 나쁘지 않은 선택이긴 했다.
그래도 한계는 있을 터.
‘흠, 빚이라…….’
그의 말에 어제일이 생각난다.
이도하가 분명 나에게 ‘빚’을 갚는다 했었지.
계속 사업을 말아먹긴 했어도, 그는 엄연히 한호의 사람.
별다른 지원을 받지 못하는 이도윤보다는 사정도 훨씬 나았다.
제 2의 블랙 마켓이 멍청한 사업도 시도할 만큼.
“이도하를 끌어들여 투자받는 건?”
“예? 저희 사촌 형님 말씀이십니까?? 개인적인 감정도 그렇고, 솔직히 저희 길드에 그 정도 메리트는 없습니다.”
“마탑 마법사 몇 데려와 일한다고 하면 되겠지. 그들로 나오는 이익 창출이야…… 뭐, 대충 꾸며 내. 헌터도 아닌 자가 뭘 알겠나.”
“도하형님이 넘어오게 끔이라…… 말씀대로 그럴싸하게 보일 정도면 충분하겠군요.”
이도윤이 장난스럽게 씨익 웃어 보인다.
태도에는 자신감이 묻어난다.
순간 처음보는 모습이라 꽤 낯설게 느껴졌다.
‘예전에는 좀 더 주눅 들어 있던 것 같은데.’
특히나 이도하에 대해서는.
그래도 지금의 얼굴이 훨씬 나은 건 확실하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형님은 절 매우, 아니 엄청나게 싫어하시는지라…… 괜찮을까요?”
“날 들먹이면 아마 분명 넘어올 거다.”
“네? 오히려 꺼려하실 것 같은데…….”
그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날 쳐다본다.
아마 전에 사건을 떠올린 듯하다.
발목까지 부러트렸으니 당연할 수 밖에.
하지만 내 당당한 태도에 표정을 바꾼다.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겠거니, 하는 눈치였다.
“일단 알겠습니다. 그래도 던질 만한 큰 미끼는 필요할 듯한데…….”
이도윤의 걱정도 이해가 된다.
좀 더 괜찮게 포장하면 할수록 덥썩 물 테니.
그래도 그건 전혀 걱정이 없다.
아직 내 계획에는 설명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제일 하이라이트지.’
똑똑-
“진 헌터님, 1층 로비에 마법사분들이 찾아오셨습니다. 미리 선약되어 있다 말하시던데요.”
때마침 문 밖에서 비서가 노크를 해 온다.
슬슬 점심시간이니 어제 약속했던 신연주와 김상수겠지.
“예? 마법사들과 약속을 잡으셨었나요? 전 나갈까요?”
이도윤은 당황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자연스러운 그 태도에 순간 어이가 없어졌다.
내 집처럼 쓰고 있지만, 여기는 엄연히 그림자 길드의 길드장실이다.
본인이 길드장인데 대체 어딜 간단말인가.
심지어 이제부터 있을 일에는 그가 꼭 필요했다.
“아니, 앉아 있어. 너도 들어야하는 이야기니.”
“제가 필요합니까?”
그가 의아하게 되묻는다.
그러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어리벙벙한 모습이 압권이다.
아까의 자신감 넘치던 모습과는 정반대였다.
‘마법사들과 대화할 때에는 달라야 할 텐데.’
믿음직스럽지 않지만, 그간의 행동을 봐서 한 번의 기회는 주기로 결심했다.
아마 조금만 말해도 의도 정도는 간파할 수 있겠지.
이도윤은 절대 멍청한 놈이 아니니까.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입을 열었다.
“방금 미끼가 필요하다 했지.”
“네, 그랬었죠.”
“단언컨대, 내가 지금 준비한 미끼만큼 묵직한 건 없을 거다.”
말이 끝나자마자 그의 입이 점점 벌어진다.
단 한마디.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점점 이도윤의 눈빛이 확신으로 차오른다.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그 머릿속이 훤하다.
나는 피식 웃으며 남아 있는 커피를 마저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