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10화
캉-!!
배리어는 산산조각 나고, 검은 그의 심장께를 정확히 스친다.
하나 몸에 부딪쳤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소리가 들려왔다.
보기에도 멀쩡하긴 했다.
하나, 그 내부는 엉망진창이 되었을 것이다.
“큭……!”
바닥에 떨어진 그가 헐떡이며 나를 노려본다.
입에는 가느다란 핏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느긋하게 구경했다.
‘제아무리 드래곤이라도 이정도 고통이라면 느끼긴 하나보군.'
하지만 너무 쉽다.
분명 나보다 강한 상대임이 분명할 텐데도.
아까부터 느꼈지만, 그는 방어만 할 뿐이다.
짐작 가는 이유는 있었다.
“드래곤은 세계의 율법을 어기기 힘들다지.”
“역시, 그걸 아는가.”
그는 입가를 닦으며 쓰게 웃는다.
“항상 직접 손쓰지 않고 움직이는데, 모를 리가.”
“그래. 하지만…… 아예 방도가 없는 건 아니다.”
나를 쏘아보던 그가 갑자기 마나를 끌어올린다.
당장이라도 방출될 듯 넘실대는 강한 힘에, 나 역시 남은 마나를 몸 전체에 둘렀다.
설마 공격이라도 할 셈인가.
하지만 뿜어진 마나는 내 방향이 아닌 공중으로 쏘아진다.
[절대적인 용언이 그 힘을 발휘합니다.]
[게이트가 유지에 필요한 마나를 흡수합니다. 대상자:진]
“……용언?”
시스템 메시지가 보이자마자 온몸의 마나가 빠져나간다.
그 속도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웬만한 헌터는 십 분 내로 미라처럼 말라 버릴 정도였다.
잠시 주춤하는 사이.
그가 여태껏 보지 못한 속도로 나에게 훅하고 다가온다.
나는 가볍게 뻗어지는 손목을 부여잡았다.
당장 부러뜨리려는 찰나.
얼핏 걷어진 소매 사이로 거뭇한 색이 보인다.
‘팔이 검게 물든 건가. 갑자기 왜?’
시꺼먼 색은 보기만 해도 음습한 기운이 가득하다.
재빨리 그의 팔을 감싼 옷을 찢었다.
“대체 뭘……!!”
렌은 기겁하고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내 악력에 붙잡힌 손을 부들거릴 뿐, 거리를 좁히지 못한다.
대충 무시한 채 팔을 훑어보았다.
손등을 완전히 뒤덮고 팔꿈치까지 올라가고 있는 검은 부분이 보인다.
마치 생명이 있다고 착각할 만큼, 꿈틀거리고 있었다.
[스킬:강렬한 직감이 발동합니다.-알 수 없는 강대한 힘이 느껴집니다-]
갑자기 시스템 메시지의 경고음이 들려온다.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재빨리 팔을 놓고 몸을 피했다.
쿵-!!
황금빛 마나와 함께 큰 굉음이 울린다.
내가 방금까지 있던 자리는 깊게 패여 있었다.
“……이걸 어떻게 피했지? 빠져나가는 마나에 몸을 지탱할 수도 없을 텐데.”
그는 질린 듯한 얼굴로 나를 노려본다.
검은 손은 숨기듯 뒤로 감춘 채였다.
“아, 마나 말인가.”
나는 피식 웃으면서 검을 휙 돌렸다.
여유로운 내 모습에 그는 입술을 깨문다.
“보다시피 가진 마나가 많아서. 이 정도쯤이야.”
사실상 가진 마나를 모두 빼앗겨도 상관없다.
목숨을 유지할 정도로 약간만 있으면 충분했다.
마나를 사용하며 전투하는 건 그저 내 귀찮음에서 비롯된 것뿐.
‘뭐, 편리하긴 하니까.’
하나 전사의 강함은 마력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동안 단련한 육체는 이미 그 자체가 무기나 다름없었다.
“……그래. 인정하겠네. 고작 인간이라고 무시하고 있었어.”
그는 결심한 듯, 비틀거리는 자세를 바로 잡는다.
표정은 여전히 구겨져 있다.
무언가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다.
‘세계의 율법은 신경 쓰지 않고 공격하려는 건가.’
지금은 방어만 하고 있어 어렵지 않은 전투였다.
하나, 분명 그가 공격을 시작한다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이제부터는 나도 온 힘을 다해야 할지도 몰랐다.
가만히 그의 행동을 주시했다.
다시금 황금빛 마력이 크게 휘몰아친다.
물론 또다시 그걸 지켜봐 줄 기분은 아니었다.
나는 여기서 끝을 볼 생각으로 스킬을 사용했다.
“<마신의 가호>!”
<마신의 가호[L]:일주일에 한번, 마신의 가호를 부여받습니다. 스킬 발동 시 버서커 상태가 되며, 모든 능력치가 일시적으로 2배로 향상됩니다.>
일부러 아껴 두었던 스킬을 사용하자 폭발적인 힘이 나를 감싼다.
재빠르게 거리를 좁히고 그의 심장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검이 닿으려는 그때.
그가 당황한 얼굴로 간신히 팔을 올린다.
치명상은 피하려는 몸짓이었다.
서걱-!!
“크윽!!”
하지만 그의 검게 물든 팔은 완전히 베어져 버렸다.
완전히 막지 못해 심장 부근에도 상처가 남았다.
그의 옷은 피로 천천히 물들고 있었다.
“주인님!!”
그때, 멀리서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들린다.
그와 동시에 무언가 눈앞에 와르르 쏟아졌다.
에드워드의 마법이었다.
“께에엑-!!!”
허공에는 텔레포트의 마법진이 열려있다.
그곳에서 수백의 키메라가 허공에서 폭포수마냥 떨어지고 있었다.
본인들도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는 표정들이었다.
“젠장!!!”
빠르게 검을 휘둘러 시야를 가리는 키메라들을 베어 넘겼다.
한 번에 백여 마리에 가까운 키메라가 반토막이 난다.
하지만 그 몇 초 사이, 그는 본인의 해야 할 일을 끝냈다.
“……지금은 물러서지만 다음은 다를 걸세.”
그는 차원문을 열고 사라진다.
재빨리 따라 들어가려 했지만 문은 순식간에 닫혀 버렸다.
‘x발. 그새 도망을 쳐?’
드래곤은 자존심도 없단 말인가.
팔 한쪽을 베어 내긴 했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서 구시렁거릴 시간은 없었다.
지금도 게이트는 거머리마냥 내 마나를 흡수하고 있다.
아직은 기분만 나쁠 정도다.
하지만 확실한 건, 계속 있다간 기분이 나쁜 정도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헉, 헉……!!”
어딘가 몸을 숨기고 있던 에드워드가 멀리서 뛰어온다.
어느새 그 얄쌍한 수염이 가닥가닥 보일만큼 가까웠다.
그러나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주춤거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가 힘이 빠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것인지, 슬금거리며 다가온다.
얼굴에는 비열한 미소가 가득했다.
“허, 맞아. 게이트가 마나를 흡수한다고 했지.”
나에게만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가 아니었던가.
그가 겁도 없이 거리를 좁힌다.
당장이라도 공격할 듯 마나를 끌어올린 채였다.
경계하는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주인님이 직접 손을 쓸 수 없으니, 처리하라고 두고 가신 모양이군. 나에게 이런 기회를 주실-”
퍼억-!!!
나는 그의 머리통에 주먹을 휘둘렀다.
<마신의 가호>가 아직 효과를 발휘하고 있기에, 마력 한 점 실리지 않은 공격이여도 강력했다.
당연히 에드워드는 저 멀리 나가떨어진다.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걸 보니 단숨에 즉사한 듯했다.
“건방진 놈이……”
검조차도 필요 없었다.
저딴 놈에게 페르아렌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아까운 일이니.
‘제 주인이 도망간지도 모르고. 눈치 한번 더럽게 없군.’
바로 게이트를 빠져나갈 생각이었기에 어이가 없었다.
가만히 있었으면 목숨은 부지했을 것을.
영국의 헌터들에게 평생 쫓길 테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
하여간 눈치도, 운도 없는 자였다.
“크륵-”
발걸음을 옮기려는 그때였다.
에드워드가 가 버리니, 이제는 키메라가 나를 에워싼다.
수천에 가까운 수가 대지를 아득히 메우고 있었다.
저 멀리의 게이트의 출구도 그들에게 살짝 가려져 있다.
당장이라도 덤빌 듯한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눈을 흘겼다.
‘귀찮은데.’
물론 이런 귀찮은 일을 처리할 자는 따로 있었다.
“아렐리아.”
머리를 거칠게 쓸어올리고 나직이 말을 뱉었다.
부름이 끝나자마자 눈앞에 검은 마기가 휘몰아친다.
“[마왕님, 괜찮으신가요!???]”
마계에 갔던 아렐리아가 걱정스럽게 묻는다.
이윽고 내 몸에서 빠져나가는 마나를 느꼈는지, 그녀의 눈이 흔들린다.
“[마나가…… 어떻게……]”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그녀에게 눈짓을 했다.
마지못해 그녀는 나에게 고정되어있던 시선을 돌린다.
“신경 쓸 거 없다. 게이트는 나가면 그만일 테니.”
아렐리아는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곧, 준비가 된 듯 양 손에는 마기가 휘몰아친다.
콰앙-!!콰앙!!!
그녀의 손짓 몇 번에 키메라 수백 마리가 쓸려나간다.
눈앞에는 고속도로마냥 뻥 뚫린 길이 나있다.
시체조차 남지 않았기에, 발걸음을 옮기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쿵-!!!
계속해서 폭발음이 사방에서 들려온다.
그 소리를 배경음 삼으며 게이트 출구로 향했다.
‘슬슬 무시할 수준은 아니군.’
나에게 남은 마나는 1할가량.
이정도면 자연적인 회복으로도 꽤 오래 걸릴 터였다.
“친우여!!!괜찮은가??”
아렐리아를 뒤로한 채, 밖으로 나가자마자 헤르멘이 나를 맞이한다.
옆에는 있어야할 에밀리가 보이지 않는다.
신연주와 이미 마탑을 빠져나간 듯했다.
“다행히 무사한 것 같…… 잠깐, 마나가 왜 이렇게 적은건가?”
말해 줄 여유는 없었다.
바로 인벤토리에서 마나 회복물약을 왕창 꺼내 마셨다.
발밑에는 빈 유리병이 수없이 쌓여 간다.
하지만 빠져나가는 마나는 여전했다.
‘설마 게이트를 나가도 흡수는 계속 되는 건가.’
예상과는 달랐다.
내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간다.
물론 게이트가 언제까지나 마나를 흡수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끝은 지금으로선 짐작조차 불가능했다.
‘분명 방법이 있을 텐데.’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굴러다니는 마석, 그리고 몇 남은 키메라들.
저 정도로는 내 마나를 채울 수 없다.
“친우여…… 제발, 부탁이니 말 좀 해 보게……. 이러다 죽을지도 모른단 말일세!!”
말없이 계속 있자 헤르멘이 조심스레 다가온다.
젖어 있는 은빛 눈에는 걱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의 손이 조심스럽게 내 어깨에 얹어지는 그때였다.
[헤르멘의 친밀도가 상승합니다. <우정의 맹약> 숨겨진 효과가 드러납니다.]
[드래곤 헤르멘의 신뢰를 받는다면, 그 힘의 일부분을 빌려받을 수 있습니다.]
나는 바로 그의 손목을 덥석 부여잡았다.
헤르멘은 당황해 자연스럽게 손을 빼내려 한다.
하지만 나는 굴러 들어온 마나통을 차 버릴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