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09화
‘같은 편이 아니었나? 왜 자기들끼리 치고 박는 거지?’
“이만 죽어라. 외롭지 않게 김상수를 데리러 간 마법사도 곧 같이 보내 주지.”
“너 같은 놈이 마탑장이라니……!!”
”<포이즌 애로우>!!”
“아아악!”
막을 새도 없었다.
독에 당한 마법사는 얼굴이 꺼멓게 변해 쓰러져 버린다.
그는 죽은 자를 귀찮은 듯 힐긋 쳐다보았다.
“한호 그룹부터 시작해서, 도무지 계획처럼 되는 일이 없군.”
그는 긴 한숨을 쉰다.
곧 시체를 번쩍 들더니, 게이트 안으로 함께 들어갔다.
아마 증거인멸을 위함이리라.
지하 실험실에는 다시 키메라가 울부짖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이게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일까요.]”
잠자코 있던 아렐리아가 슬쩍 웃으며 말한다.
계속 터지는 이상한 일들에 재미를 느끼는 듯했다.
‘그건 내가 할 소리다.’
방금 게이트로 들어갔던 마법사들도 모조리 죽였겠지.
대의니 뭐니 했던 건 개소리고.
마탑놈들은 처음부터 장기말로 쓰일 용도였던 것이다.
[내 말 들리나? 왜 아직도 연락이-]
“헤르멘?”
그때, 여태껏 말이 없던 헤르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무언가 노이즈가 낀 듯, 부정확했다.
[드디어……! 친우여,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해!!]
“무슨 소리지?”
[그가 온 것 같아!! 억겁을 사는 드래곤, 렌!! 방금까지 마탑에 있는 것 같았어! 지금은 왠지 모르게 그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지만, 텔레포트를 사용한 것 같진 않고……젠장, 어디 간 거지?]
그 골드 드래곤이 여기에 왔다고?
나는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온 기감을 이용해 훑어보아도 흔적은 도저히 찾을 수 없다.
‘왔다면 분명 여기밖에 볼 일이 없을 텐데.’
있었지만, 감쪽같이 사라졌다라는 건가.
하지만 텔레포트는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
게이트 안쪽 뿐.
“짚이는 곳이 있군.”
[그래?? 잘됐어! 그럼 빨리 그곳에서 멀어져야 해!]
헤르멘은 여전히 다급하게 나에게 도망을 요구한다.
내 안위를 걱정하고 있는 듯 불안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나의 기분은 점점 들뜨기 시작한다.
“그놈이 여기 있단 말이지……”
그동안 어찌나 잘 도망다니던지, 꼬리조차 밟지 못했다.
계속 찾을 수 없을 거라고도 생각했고.
그런데 이런 곳에서 직접 마주할 줄은.
놈을 만날 생각에 흥분은 고조된다.
재빨리 그놈이 있으리라 생각되는 게이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끈적한 마나가 감싸고, 눈앞의 풍경이 순식간에 바뀐다.
한적한 초원과, 뜨거운 사막에 설원까지.
실력이 좋지 않은 재봉사의 솜씨마냥 얼기설기 얽힌 장소였다.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부서질 듯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하다.
그야말로 인공적인 냄새가 물씬 흐른다.
그리고 강대한 적의 향기도.
“[……마왕님?]”
쫓아온 아렐리아가 조심스럽게 나를 불러세운다.
항상 느긋하던 내 평소의 모습이 아니란 걸 눈치챈 것이다.
하지만 대답할 여유는 없었다.
일단 그가 있으리라 짐작되는 곳으로 향했다.
아렐리아가 차마 쫓아오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이정도면 몇천이 아니라, 만은 넘겠군.’
이동하는 곳곳에 수많은 키메라가 눈에 띈다.
김상수가 말한 것보다 더 많은 숫자였다.
정말 일반적인 게이트처럼, 몬스터가 있어야 하니 만든 걸까.
그러기에는 지나칠 만큼 많다.
게이트 중앙에 가까워질수록 그들은 마치 군단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여기일 텐데. 어디 있을까.’
어느새 내가 도착한 곳은 지옥 밑바닥처럼 붉은 대지.
가장 짙은 마나가 느껴지는 장소다.
분명 그는 이 근처에 있을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는 그때, 어딘가에서 에드워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목소리를 짚어 가며 멀리 떨어진 곳에 시선을 던졌다.
역시나 영국 마탑장과 금발의 소년이 그곳에 서 있었다.
“일은 어디까지 진행되었지?”
눈부신 금발의 렌은 마치 명화 속의 천사와 모습이 비슷하다.
아름다운 외관이야 드래곤들의 특징이라지만, 저자는 그 이상의 찬란함이 있었다.
하지만 겉껍데기 안에는 피부로도 느껴질 만큼 흉폭한 기세가 넘실거렸다.
‘과연…….’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강력한 적이었다.
다가가려는 그때,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불현듯 최근에 얻은 스킬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나는 바로 <강렬한 직감>을 사용했다.
[스킬:강렬한 직감-약점을 사용합니다]
[스킬의 레벨이 Lv.6이므로, 제한적인 정보를 얻습니다.]
[사용자보다 약간 강력한 상대입니다. 정확한 약점을 알 수 없습니다.]
[약점: 드래곤 하트, 불안정한 정신(소중한 자의 안위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단편적인 정보는 알려 준다던 스킬의 설명처럼, 무언가 정보가 툭 나오긴 했다.
도저히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았지만.
‘……드래곤 하트는 너무하지 않나.’
잠시 미간을 찡그렸다.
세 살 먹은 어린아이도 아는 드래곤의 약점이다.
당연한 걸 자랑스레 내뱉는 스킬에 어이가 없었다.
천천히 정보를 훑는데, 그 와중에 단어 하나가 거슬린다.
‘소중한 자의 안위?’
척 봐도 제정신이 아닌 놈이긴 했지만, 그게 남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니.
도저히 저 녀석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도 곰곰이 그 단어를 곱씹었다.
어찌되었든 약점이라니 써먹을 때가 오리라 믿으면서.
“주인님, 명령하신대로 모든 일을 진행했습니다. 마탑은 스러질 것이고, 계획은 곧 시작될 것입니다.”
“일처리가 깔끔하지는 못했군.”
“……죄송합니다. 블랙마켓을 무너트리진 못했습니다. 본디 주인님의 것이니, 돌려드려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요. 하지만 한 번 더 시도해 보겠습니다.”
“세 번의 기회는 없을 것이야.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니.”
“명심하겠습니다. 하지만 전쟁만큼은 다를 겁니다. 마석만 있다면 마무리되니까요. 이후에 저는 게이트에 숨어 지내며 영국 본토를 멸망시키겠습니다.”
에드워드의 입에서 전쟁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온다.
그제야 이 많은 키메라가 이해된다.
하기사, 동물원 따위를 만들 계획은 아니었겠지.
역겨운 모습의 키메라만 가득한 동물원이라면, 돈을 내는 게 아니라 돈을 받아야 할 지경일 테니.
물론 나라면 억만금을 줘도 가지 않을 것이었다.
“그래. 입구를 숨긴다면 아무리 그라도 찾지 못하겠지.”
“용병왕 말입니까? 아무리 강자라 해도 주인님께서 걱정하실 정도는…….”
역시 나를 신경 쓰고 있었던가.
그동안 방해한 건수만 한두 개가 아니긴 했다.
몰라주면 그건 그거 나름대로 서러울지도.
‘게이트의 용도는 그저 몸을 숨길 공간이었나. 겸사겸사 키메라도 그렇고.’
“[마왕님~ 여기 계셨네요. 왜 이렇게 걸음이 빠르신 거예요?]”
어느새 아렐리아가 도착해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숨이 찬지, 헥헥거리기까지 한다.
그때였다.
렌의 고개가 확 하고 돌아갔다.
그와 동시에, 파충류 특유의 가느다란 동공과 시선을 마주한다.
“침입자가 있었나.”
“[아악!!]”
그가 다가온 건 순식간이었다.
아렐리아의 몸통은 렌의 손에 덜렁 들려있다.
투명화는 어느새 풀린 채였다.
“블랙의 헤츨링이라, 최근 알에서 깬 동족은 없을 터인데. 잠깐, 영혼이…….”
그의 무감각한 눈이 분노로 휩싸인다.
순간 나조차 오싹할 정도의 힘이 느껴졌다.
‘오랜만인데, 이런 힘.’
그의 강력함과는 별개로, 내 입가는 올라가고 있었다.
잊고 있던 호승심이 깨어나는 기분이다.
“손버릇이-”
나는 인벤토리에서 검을 꺼내 크게 휘둘렀다.
짧지만 깔끔한 검격이었다.
쾅-!!!!!!
쏟아져 나간 마력이 찢어질 듯한 굉음을 내었다.
몸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힘이었다.
그에 공기마저 뜨겁게 달아오른다.
“-좋지 않은 것 같은데.”
말보다는 행동이 빨랐기에, 그는 공격을 완전히 피하지 못한 상태였다.
렌은 너덜거리는 손목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고통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그대도 있었군.”
“[크윽……!]”
아렐리아가 바닥에 나뒹굴며 떨어져 나온다.
얼굴에는 자존심 상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녀는 차마 압도적인 힘에 덤비지도 못하며 주춤거린다.
“[이자는…… 설마……]”
“아렐리아, 넌 돌아가 있어.”
“[예??하지만!!]”
경악하는 그녀에게 강제로 마계로 돌려보냈다.
렌은 다급하게 손을 휘두르지만, 귀환을 막진 못했다.
“어디서 찾은 헤츨링의 육신이지.”
그는 차갑게 나를 쏘아본다.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려 애쓰는 모양새였다.
동족에 애착이 있는 자라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무언가 이상했다.
“블랙마켓에서 구매했다고 하면, 믿을 건가?”
빈정거리는 내 말투에 그는 입을 다문다.
제대로 된 대답은 듣기 힘들 거라 생각한 듯하다.
“이제야 그 귀한 얼굴 좀 제대로 보는군.”
나는 여전히 웃음을 감추지 못한 채,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동안 별의별 사건사고를 일으킨 렌이다.
그 흔적조차 찾지 못했는데, 드디어 여기서 만나다니.
약간의 감동마저 느껴진다.
‘집나간 고양이라도 찾은 기분인데.’
그것도 집에 불지르고 나간 고양이라면 이런 기분일까.
그 역시 비슷한 마음인지, 나를 빤히 쳐다본다.
잠시 서로의 시선이 얽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들고 있던 검을 허공에 그었다.
터질 듯한 마력이 검의 궤적을 따라 튀어나간다.
콰아앙-!!!
그는 크게 몸을 움직여 자리에서 벗어난다.
예상했던 바였다.
이동할 수 있는 모든 범위를 따라, 계속해서 무기를 휘둘렀다.
콰앙–!! 쾅-!!!
사방을 메운 검의 길은 조금의 틈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는 잠시 입술을 깨물더니 결국 허공으로 몸을 띄운다.
공격이 닿지 않는 유일한 퇴로였다.
소년의 마른 몸이 머리 위로 올라간 그때.
나는 내가 만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지금!’
공중에서는 몸을 움직이기 힘들다.
그제야 내 의도를 알아차린 그의 얼굴에 낭패가 서린다.
마력을 응축해 검에 쏟아부었다.
찰나의 시간.
그는 무언의 영창으로 방어 마법을 시도한다.
하지만 배리어 역시 속수무책으로 빠르게 베어 오는 공격을 막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