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07화
‘여기보다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나.’
하지만 주변을 둘러봐도 문은커녕, 그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마법으로 숨겨 놨을 가능성이 컸다.
“아렐리아, 지하로 통하는 문이 있는지 찾아봐.”
“[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아렐리아가 여기저기 연구실을 헤집어 놓기 시작한다.
그때, 부서진 철문 쪽에서 작은 침음이 들려온다.
“헉……!!!”
때마침 도착한 신연주가 경악에 차 입을 틀어막는다.
보자마자 이 상황이 어떤 난장판인지 파악한 듯하다.
고위 마법사인 그녀이기에, 이 상황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도 이상했다.
“어떻게 이런 짓을…….”
그녀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한다.
눈가는 이미 붉게 물들어 촉촉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눈물은 맺혀만 있을 뿐, 절대 떨어지지 않았다.
“이자는…… 마탑의 간부군요.”
그녀가 이를 갈며 다가온다.
말투가 북부의 설원보다 차갑다.
죽은 자를 잘 아는 듯, 얼굴은 배신감으로 물든다.
“너구리 놈을 찾아봐야 알겠네요. 여기 말고도 분명 다른 실험장이 있을 거예요.”
“이미 찾고 있는 중이야. 그런데, 저건 어쩔 셈인가.”
나는 턱짓으로 마석을 가리켰다.
거대한 마석은 마치 폭발할 듯 크게 진동하고 있었다.
척 봐도 심상치 않은 기세였다.
“마법의 시전자가 죽어 버려서, 너무 불안정한 상태에요. 텔레포트를 시전할 수도 없고…… 마나가 닿으면 바로 터져 버릴 수도 있어요.”
그녀의 낯빛이 급격하게 어두워진다.
마석이 아니라 사실상 폭탄이 되어 버린 상황.
많은 마나가 담긴 만큼, 터진다면 이 일대는 결코 무사하지 못할 터였다.
모르긴 몰라도 핵 몇 개쯤은 우스운 수준이리라.
“마나가 너무 많은데다 혼탁하고요. 대체 저걸 어쩌지…….”
터트리기도, 사용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라는 건가.
내가 생각해도 저건 계륵이다.
마탑놈들이 저딴 마나로 무엇을 하려 했는지 궁금할 정도다.
담겨진 마나는 많다지만, 저건 정제되지 않은 석유와 비슷하다.
그것도 지금은 주변에 잔뜩 불이 붙어 있는 상태였다.
언제 마나가 폭주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우선 위층으로 가신 대마법사님께 맡겨야겠어요.”
그녀는 그럴싸한 해결책을 내놓는다.
당연히 헤르멘이라면 방법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시간인가.'
그냥 두고 가기엔 어지간히 찜찜한 물건이었다.
“[마왕님~ 저 근처에 마법으로 숨겨진 문이 있더라고요~]”
약간의 고민을 하는 중, 아렐리아가 칭찬해 달라는 듯 날아왔다.
경쾌한 날갯짓 탓에 배 부분이 유난히 출렁거린다.
요새 많이 먹더니, 결국 살이 쪄 버린 걸까.
식단 조절이라도 시켜야 하나 싶을 그때.
머릿속에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내용물은 저래도, 지금 아렐리아는 드래곤의 몸이지. 그럼 내구성을 기대해 봐도 된다는 소린가.'
눈을 가늘게 뜨고 아렐리아 쪽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글거린다.
하지만 내 시선은 자연스레 얼굴이 아니라 그 밑을 향하고 있었다.
그걸 눈치챈 그녀가 소리를 꽥 질러댔다.
“[아니, 마왕니이임!?어딜 보시는 거예요???]”
이제야 그녀는 부랴부랴 배를 가리려 애쓴다.
그래봤자 짧은 앞발로 가려지기는커녕, 오히려 강조하듯 얹어져 있을 뿐이다.
“아렐리아, 저걸 먹을 수 있나?”
“[먹다니요? 여기에 먹는 게 어디 있다고……]”
그녀는 고개를 갸웃 거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점점 황당하다는 듯 입이 떡하고 벌어진다.
“[마석…… 말하시는 거예요? 아니죠? 에이, 설마??]”
설마설마하던 그녀는 이제 거의 미치려고 한다.
“[아니, 저걸 어떻게……말 이 되는……]”
“마석을 헤츨링에게 먹이시겠다고요?”
신연주의 반응 역시 그녀와 비슷했다.
둘은 멍하니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드래곤은 마나의 원천에서 태어나지 않던가. 강철도 씹어 먹는 육체인데, 마나라면 더 할 말이 없지.”
허투루 하는 소리는 아니었다.
세상 그 어떤 존재도 드래곤만큼 마나와 친밀하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저런 마나일지언정.
크기가 좀 있긴 해도 뱃속에 거의 아공간이 있는 그녀라면 가능하겠지.
하루 식사량을 보건데, 확실하다.
아렐리아는 흔들리는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하지만 단호한 의지를 읽었는지, 크게 한숨을 쉰다.
“[해 볼게요……]”
그제서야 그녀는 마지못해 마석에 다가간다.
커다란 마석 앞에 서니 그 몸이 더욱 작아 보였다.
삼키기는커녕, 마석을 한 입 베어물기도 버거워 보인다.
그러나 불가능하리라 생각하진 않았다.
지금 저 모습은 헤츨링의 본 모습이 아니었으니.
“괜찮을까요? 한 입에 삼키기 힘들 듯한데……”
신연주는 안타깝다는 듯 말한다.
외관은 작고 귀엽게 생긴지라, 염려가 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걱정도 잠시.
아렐리아의 몸이 빛에 휩싸여 점점 부풀어 오른다.
곧, 성체만큼은 아니지만 꽤 커진 블랙 드래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큰 이빨과 번쩍이는 발톱은 보기만 해도 위협적이다.
천장에 머리가 닿아 몸을 구부려야 할 정도였다.
“헉, 모습을 작게 변화시키고 다녔던 건가요?”
신연주가 경악하며 중얼거린다.
아렐리아에게 눈을 떼지 못한 채였다.
“크기가 크면, 아마 내가 데리고 다니지 않을 거란 계산이었겠지.”
드래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존재다.
갓 알에서 깨어났을 때야 그렇다 치더라도, 벌써 몇 달이 지났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아지만 한 크기에서 멈춰있다.
그게 폴리모프 마법임을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예쁨받고 싶다, 이건가요. 펫과 사이가 좋으시네요.”
신연주는 중얼거리며 계속 아렐리아를 구경한다.
그녀는 입을 크게 벌려 마석의 크기를 재보는 중 이었다.
“[으, 진짜 먹기 싫은데……]”
중얼거리는 목소리에서 불만이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입을 착실하게 마석에 가져다 대었다.
“[와압-]”
꿀꺽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마석이 한입에 사라진다.
통째로 삼켰는지, 그녀의 목구멍이 출렁거린다.
‘역시 가능하군.’
얼굴은 찌푸리고 있지만 크게 어려움은 없어 보인다.
마석이 터져도 드래곤의 뱃속이라면 괜찮겠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와, 진짜 돈 주고도 못 볼 구경이네요.”
신연주가 작게 감탄했다.
그건 나도 공감이었다.
하지만 굳이 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렐리아가 토라지면 정말 오래가니까.’
그녀가 삐지면 꼭 하는 행동이 있다.
내가 자고 일어날 때쯤, 머리맡에 죽은 비둘기나 참새 따위를 물어온다.
나름의 불만 표시였다.
그녀의 의도와는 달리, 그걸로 놀라진 않았다.
그동안 볼 꼴 못 볼 꼴 다 보았기에.
그래도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비둘기의 텅 빈 동공을 마주하는 건 사양하고 싶었다.
하지만 눈치 없는 신연주는 연신 박수를 친다.
그걸 쳐다보는 아렐리아의 얼굴은 당연히 곱지 않았다.
어느새 다시 작게 변신한 그녀가 내 곁으로 다가와 불퉁하게 속삭인다.
“[……저 인간, 죽여도 되나요?]”
아렐리아가 마족답게 살벌한 말을 뱉는다.
사실 이정도 참은 것도 많은 인내심을 발휘한 거겠지.
그래도 그러마, 하고 넘어가기엔 어폐가 있었다.
“될 리가. 그래도 나중에 실수인척 물어 버리는 건 봐주지.”
“[자꾸 저를 개나 고양이 취급하시는데……]”
그녀가 불퉁하게 쏘아붙인다.
대충 무시하고 다음 할 일을 위해 걸음을 옮겼다.
방금 전, 아렐리아가 숨겨진 공간이 있다고 했던 위치였다.
마법을 해제했는지 방금까지 보이지 않던 문의 모습이 드러나 있었다.
“아마 이곳이 마지막 장소겠지.”
내 말에 신연주가 긴장한 듯 침을 삼킨다.
작은 나무문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딱히 방어 결계는 없는지, 부드럽게 열린다.
“마탑의 수뇌가 있다면 여기겠군요. 그리고 김상수 마탑장도요.”
그녀는 그제서야 김상수에 대해 말을 꺼낸다.
잊고 있는 줄 알았는데, 생각은 하고 있었나.
하지만 이미 꽤나 시간이 흘렀다.
나는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마법사들에게 흘깃 시선을 던졌다.
그 역시 저런 꼴일지도 모른다.
“우선 가지.”
“……네.”
우리는 다시금 어두운 지하로 향했다.
* * *
컴컴한 지하 계단은 역시나 길었다.
그래도 속도를 냈기에 도착은 금방이었다.
“준비 되었나? 여차하면 숨어 있는 게 좋을 거야.”
검에는 눈이 없으니.
뒷말을 굳이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익숙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눈앞에는 여태껏 보았던 문 중에 제일 초라한 나무문이 있다.
보안 의식은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활짝 열려 있는 채였다.
그곳에서 풍겨오는 마나는 위층보다 더욱 지독했다.
점점 그 불쾌함을 참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빨리 끝내고 빠져 나가고 싶군.’
내부로 들어가려는 그때였다.
문 안쪽에서 큰 고함 소리가 들려온다.
“쉿.”
내부자들의 대화를 엿들을 기회였다.
입가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신연주가 눈치 빠르게 숨소리를 죽이며 귀를 기울인다.
“마석은 언제쯤 완성되는가!?고지가 코앞이거늘……!”
“조금만 기다리시죠, 마탑장님. 하루이틀 정도면 끝날 겁니다.”
“젠장, 이게 대체 무슨 고생인지. 한호의 그 놈이 일만 제대로 처리했어도, 마석을 구매할 여유는 충분해서 이런 번거로운 일은 필요치 않았을 텐데.”
“어차피 못 미더운 놈 이었습니다.그래도 혹시 몰라서 흡수 마석을 제작해 다행입니다.”
가만히 듣는데 뜬금없이 이도하가 튀어나온다.
마탑과 그가 손을 잡은 데에는 저런 연유가 있었던가.
실험에 필요한 마석을 있는 대로 긁어모으니, 돈이 부족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안 하던 사업을 일으킬 생각까지 했겠고.
그러고 보니 그동안 저들이 사용한 돈이 꽤 큰 거액이긴 했다.
그저 블랙마켓의 매출을 올려 주는 호구들이라 생각하고 넘어가긴 했지만.
“마탑은 이제 풍족해질 겁니다. 아니, 전 세계의 돈을 모두 끌어 모을 수 있겠죠.”
“……돈은 중요치 않아. 어디까지나 우린 인류의 발전을 위한다는 걸 잊지 마라.”
“그렇죠. 게이트를 만들어 내다니,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발상입니다. 역시 마탑장님을 따르길 잘했습니다."
‘……게이트를 만들었다라.’
인공 게이트라니,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다.
그 독특한 발상만은 칭찬해 줄 만하다.
하지만 신연주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고작 그런 걸 위해서……”
그녀의 몸은 잘게 떨리고 있었다.
작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에는 분노가 일렁인다.
당장 뛰어가려는 그녀의 어깨를 꾹 눌렀다.
“하지만 역시 실험을 하기엔 마나가 계속 부족해…… 이제 그놈이 필요할 때군.”
“한국 마탑장 말입니까? 당장 데려오겠습니다.”
김상수가 아직 살아 있었나.
다른 건 몰라도 명줄 하나는 길었다.
옆을 흘깃 보니, 신연주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진다.
“그래. 다른 마법사들은 나를 따라 게이트로 들어와.”
“네, 알겠습니다.”
여러 마법사들의 대답을 끝으로, 대화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발걸음 소리가 점점 멀어질 때쯤.
우리는 다시금 몸을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