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06화
한참을 걸었다.
꽤 깊은 지하인지 계단은 걸어도 걸어도 끝이 나지 않는다.
심지어 밖과 마찬가지로 더럽게 조용했다.
“[하암~ 하품이 다 나오네요.]”
아렐리아도 지루한지 연신 하품을 해댄다.
이까짓 계단 따위 뛰어서 내려가도 되겠지만, 지금 마탑은 심상치 않은 상태.
우선은 샅샅이 훑으며 지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아마 곧 도착할 거예요. 이 끝에는 아마 지하 연구실이 있을 거고요.”
따분한 표정이 드러난 탓일까.
신연주가 슬쩍 내 눈치를 본다.
내가 무언가 사고라도 칠까, 조마조마한 심정이 슬쩍 엿보였다.
“그 말, 진짜이길 빌지.”
“아무렴 제가 진 헌터님께 거짓말을 할까요…….”
시무룩한 그녀의 말 뒤로 침묵이 이어진다.
다시금 발걸음을 이어 가는데, 무언가 이상한 기류가 느껴진다.
미약한 바람에 실려 온, 작은 마나 조각이었다.
“잠깐. 멈춰 봐.”
“네? 아무것도 없는데?”
중얼거리는 그녀를 무시한 채 계단의 끄트머리를 살펴보았다.
그곳에 있는 철문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보인다.
마나가 흘러나올 만한 장소는 저곳밖에 없다.
‘마나치고 기운이 좀 더럽군.’
일반적인 마나의 느낌이 아니다.
마치 여러 사람이 각기 가진 마나를 한군데 넣고 뒤섞어 버린 느낌.
“[마왕님, 이거…… 음, 맞죠?]”
아렐리아도 사뭇 진지하게 나와 같은 곳을 쳐다본다.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옆을 흘깃 보았다.
신연주는 아무렇지 않은 듯 보인다.
아직 그녀가 느낄 정도로 강렬한 마나는 아니긴 했다.
아무리 마법사라도 얼핏 느끼기 힘들 정도로 희미한 수준이다.
끽해야 이제 막 무언갈 시작하는 정도겠지.
하지만 좋지 않은 징조라는 것은 확실했다.
“생각보다 늦었는지도 모르겠는데. 신연주, 준비해.”
“예??? 벌써요? 일단 알겠어요……!”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대답했다.
스태프를 든 손에는 더욱 힘이 들어가고, 긴장감이 맴돈다.
허둥대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검을 꺼내들었다.
“그럼…… 지금 달려!!”
계단의 한 부분을 디뎠다.
발에 힘을 가하자 순식간에 주변의 풍경이 변한다.
“으아!!! 혼자 가시면 어떻게 해요……!!”
저 멀리서 신연주가 투정부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돌려보니 다급히 뛰어오고 있었다.
놓고 갈까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제 딴에는 열심히 노력한다지만, 육체적으로는 나약한 마법사다.
속도는 달팽이마냥 느렸다.
기다릴 여유는 없었다.
“버려야겠군.”
“[하여간, 저 짐덩어리……]”
아렐리아가 혀를 작게 차며 탐탁지 않은 얼굴로 중얼거린다.
어차피 데려오긴 했지만, 도움이 될 거라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두고 와도 쫓아올게 뻔했기에 악세서리마냥 달고 온 것 뿐.
나는 다시 앞에 놓인 단단한 철문에 시선을 집중했다.
쾅-!!!!
검에 마나를 담아 크게 휘둘렀다.
문은 순식간에 굉음을 내며 부서진다.
연구실이 존재한다던 내부는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뭐, 뭐야!! 갑자기 왜 문이 부서져??”
“설마 침입자인가!?”
“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넓은 지하실 바닥에는 가지런히 사람들이 누워 있다.
옷을 보니 영국 마탑 소속 마법사였다.
심지어 숫자 파악을 쉽게 하려는 속셈인지, 소름끼칠 정도로 잘 정렬된 채였다.
그렇지 않아도 밀폐된 지하실 안에는 작은 소음 하나 없이 불규칙적인 숨소리만 들려온다.
떠드는 자는 오직 열몇 명의 마법사 뿐.
이제야 마탑 전체가 조용했던 것이 이해가 간다.
‘아직 죽진 않았나. 하지만…….’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위에는 거대한 마석이 둥둥 떠 있는 상태.
그 안에는 방금까지 느꼈던 각양각색의 마나가 뒤엉켜있다.
여러 물감이 섞이면 색이 탁해지듯, 그 빛깔도 회색에 가까웠다.
‘마법사들의 마나를 저기로 모으고 있었군.’
그놈의 마석은 이제 지겨울 지경이다.
블랙마켓에서 쓸어간 것만으로는 부족했을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건 보기만 해도 불쾌한 마나 덩어리다.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진다.
“[역겹긴 해도, 인간들치고 재밌는 물건을 만들어 냈네요.]”
아렐리아가 코를 부여막으며 마석에 가까이 날아간다.
그 힘이 강력한 것은 맞기에, 흥미를 이겨내지 못한 듯하다.
“[저는 잠시 이것 좀 보고 있을게요.]”
아렐리아는 완전히 정신이 팔려 버렸다.
가끔 다큐멘터리나 사극에 집중했을 때와 반응이 비슷했다.
저럴 때에는 말을 걸어도 듣지 못한다.
그녀를 뒤로 하고, 나는 여전히 허둥대고 있는 마법사들의 곁에 다가갔다.
“탐지 마법이라도 사용해 봐!”
“벌써 해 봤는데…… 감지되는 것도 없는걸요!”
마법사 하나가 계속 고래고래 명령만 내리고 있다.
다른 자들과 다르게, 화려한 로브를 걸치고 있었다.
아마 이자가 이 장소의 우두머리일 터였다.
쿵-!!
“올리버!! 무슨……!? 왜…… 왜 다들 쓰러지는 거야!!”
다른 마법사들의 목덜미를 쳐 기절시켰다.
짧은 시간이 지나고, 열댓 명의 마법사가 바닥과 한 몸이 되었다.
남은 자는 오직 한 명.
“이게 대체…… 무슨…….”
“조용히.”
절망적인 얼굴의 마법사를 단단히 붙잡았다.
그는 마법을 사용할 시간도 없이, 반항마저 하지 못했다.
철컹-
"뭐…… 뭐야?"
인벤토리에서 꺼낸 검이 날카로운 금속의 소음을 내며 마법사를 위협한다.
겁에 질린 그의 목에 검을 가져다 대었다.
날카로운 칼날에 베여, 그놈의 대가리 받침대에는 길고 얇은 상처가 생긴다.
그곳에서 나온 붉은 핏물은 로브를 끊임없이 적시고 있었다.
“히…… 히익…….”
“조금만 움직여도 바로 그 목은 떨어질 거야. 조심하는 게 좋겠군. 나야 할 일을 덜어 준다면 고마울 따름이지만.”
“여…… 여기는 마탑 총괄 본부입니다!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습니까?”
“그 말, 돌려주고 싶군. 이따위 짓거리들을 벌여놓고도 무사할 성싶었나?”
그는 지레 찔린 듯 움찔한다.
본인도 마탑이 하고 있는 일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어 보인다.
“왜 마석에 힘을 담고 있는 거지? 저 정도 마석이라면 전쟁이라도 준비하는 건가.”
“전쟁이라니! 우리는 그런 야만적인 일은 하지 않……!”
다시금 검에 힘을 주었다.
실금 같던 상처가 점점 더 벌어진다.
고통이 강해지는 것도 당연지사.
마법사의 몸은 이제 사시나무마냥 떨리고 있었다.
눈에는 얼핏 눈물이 비쳐 보인다.
“그저…… 연구일 뿐입니다! 이건 모든 인간을 위한 일 이라고요!”
“그 모든 인간에는 이 마법사들이 포함되지 않는 것 같은데.”
나는 바닥에 있는 마법사들을 흘깃 쳐다보았다.
이미 많은 마나를 빼앗긴 탓인지 모두 안색이 창백하다.
“커억-!!”
때마침 누워 있던 한 명이 피를 뱉어 냈다.
목숨을 잃진 않았지만, 얼핏 보니 마나 회로에 문제가 생긴 듯했다.
아마도 심장 주위를 고리처럼 둘러져 있는 서클이 산산조각 났겠지.
저만한 양의 마나를 억지로 짜내니 당연했다.
“그건…….”
그가 말꼬리를 흐린다.
이쯤 되면 본인도 더 이상 변명이 없을 것이다.
의도가 어쨌든 간에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와 버렸다.
저 마법사를 포함한 대부분의 자들도 마찬가지다.
저들은 더 이상 마법사로서 살아갈 수 없다.
“한 번 부서진 서클의 고리는 돌아올 수 없다는 것, 마법사인 니놈이 모를 리없지."
“하지만 대의……대의를 위해서라면…….”
마법사의 눈알이 번들거린다.
큰일을 도모하려면 이정도 희생은 불가피하다 말하려는 속셈인가.
차라리 스스로의 이익을 부르짖지, 한다는 소리가 꼴랑 대의라니.
그 위선에 피식 웃음이 새어나온다.
‘성군은 못되겠군.’
나라를 맡긴다면 금세 망하게 할 놈이었다.
이미 마탑 하나 정도는 가볍게 말아먹었으니, 더 못할 일도 없겠지.
그나저나 연구라.
저 정도로 거대한 마석을 도구를 사용할 연구가 무엇이 있을까.
심지어 저것 하나만 있지도 않을 터.
“슬슬 무슨 연구를 하고 있었는지, 불어야 할 때라고 생각하지 않나?”
“컥!!!”
뿌득-
그의 어깨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뼈가 부러지는 느낌이 든다.
“큭……!! 연구는…… 마탑장님과 부마탑장님이 시키신 일입니다. 당신도 들어보신다면, 정말로 인류를 위하는 일임을 알 수 있을 거라고요!!”
말 못하겠다 배짱부리기 전에 미리 협박한 효과가 있었다.
그는 긴 서두와 함께 재빨리 다음 말을 꺼낸다.
“지금의 시스템, 너무 강압적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게이트…… 를…….”
말꼬리를 흐리며 그는 입을 다문다.
술술 잘 불고 있다가 멈춘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번에는 팔이라도 부러트려야 하나.
자세를 바꾸고 그의 앞에 섰을 때였다.
“게…… 이트…….”
“말을 왜 쳐 하다 말…… 잠깐!”
그가 눈을 크게 뜬 채, 고장 난 기계처럼 멈춰 버렸다.
낯빛은 거무죽죽하게 변해 간다.
입에는 녹색 거품이 부글거리며 올라온다.
독에 당한 자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젠장, 여기서 죽으면 안 되지!”
내 간곡한 부탁에도 소용은 없었다.
그의 몸이 서서히 옆으로 기울어진다.
우우웅-
그가 마법의 시전자였는지, 천장의 마석이 천천히 빛을 잃는다.
실처럼 이어져 있던 마나의 줄기들은 모두 끊어졌다.
하지만 마법사들의 안색은 여전히 창백하다.
아마 정신을 차리는 데에도 꽤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들은 그야말로 간신히 목숨만 건진 상태였다.
“[이미 죽었어요…… 비밀을 발설하면 중독되는 마법이 걸려 있었나 봐요.]”
아렐리아가 소란에 황급히 다가왔다.
제때 마법을 해제하지 못해 미안한지, 연신 내 눈치만 본다.
“어쩔 수 없지.”
어차피 중간 관리자격인 이놈이 많은걸 알고 있을 리가 없다.
자세한건 최소 부마탑장 정도는 되어야겠지.
나는 시선을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아까부터 계속, 여기와 비슷한 마나가 풍겨오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