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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104화 (104/200)

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04화

“처음으로 날 불렀는데, 부탁까지 하다니!!”

헤르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에 놀란 새 떼가 퍼드득 하늘로 치솟는다.

이래서야 아무리 멀리 있는 마탑이라지만 순식간에 이상함을 느낄 것이었다.

“우선 폴리모프 하지.”

“아, 깜빡했군. 허나 또 나를 타고 이동할 생각이면 바로 말해 주게나.”

“절대 그럴 일은 없어.”

걸어가면 걸어갔지 그 탑승감을 다시 겪고 싶진 않았다.

어차피 속력이야 나와 엇비슷하니 장점이라곤 전혀 없었다.

“흠, 그런가? 아쉽군.”

그의 거대한 몸체가 천천히 줄어든다.

곧 익숙한, 아름다운 사내의 모습이 되었다.

반짝이는 은발은 여전히 길게 늘어트린 채였다.

헤르멘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싱글벙글하며 긴 머리를 한쪽으로 땋아 내렸다.

“정말 오랜만이야! 수호용으로 인간들과 지내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역시 친구를 보는 것만큼 좋지는 않군.”

헤르멘이 갑자기 당당히 팔짱을 꼈다.

높게 들어 올린 턱부터 콧대까지.

한껏 우쭐대는 모습이었다.

“저번에는 길 잃은 와이번 떼가 들이닥쳤지 뭔가. 하필 그게 시골의 마을이어서-”

그는 여태껏 한 일들에 대해 자랑스럽게 떠벌린다.

수호용의 임무를 대충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노력하기는 했었나.

“재밌게 지내는 모양이군.”

“내 평생 동안 이처럼 많은 인간과 어울린 적은 처음이야.”

“[여전히 정신머리 없는 드래곤이군요.]”

아렐리아가 뾰로퉁한 얼굴로 슬금 다가왔다.

자연스럽게 헤르멘의 시선은 밑바닥에 붙어 있는 그녀를 향한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의 표정이 점점 딱딱하게 굳어 간다.

“이건…… 헤츨링이지만 드래곤이 아니군.”

“[하여간 눈치 하나는 빨라 가지고.]”

헤츨링으로 변한 아렐리아의 모습은 처음이던가.

그는 낯선 모습에 경계를 숨기지 않았다.

“이건 아렐리아야. 전에도 많이 봤을 텐데.”

“그때 그 마족 공작 말인가. 영혼이 익숙하게 느껴지긴 하는군. 허나…….”

그는 아렐리아의 날개를 집어 들었다.

당연하게도 그녀는 버둥거리며 반항했다.

“[악!! 이거 놔!!]”

“원래 있던 드래곤의 영혼을 없앤 건가? 아니야, 그럴 수는 없지. 고작 마족이 고귀한 영혼을 소멸시키지는 못해.”

“[마왕님!! 이 미친 드래곤 좀 말려 주세요!]”

혹시 종족을 죽였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 모습을 날카롭게 쳐다보았다.

하지만 헤르멘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하다.

무언가 고심하는 것 같은데, 도통 그 속내를 짐작하기 힘들었다.

“드래곤의 영혼은 윤회의 굴레에 들어도 다시 드래곤으로 태어나는 법인데. 하지만 새로 태어났다는 드래곤 소식은 들어 본 적이 없고…….”

“[이 알에는 원래부터 영혼이 없었다고!!]”

그녀는 꽥 소리를 지른다.

어지간히 분노했는지 아렐리아는 서서히 마기를 끌어모은다.

이제는 말려야 할 때였다.

“그만 내려놓지. 아렐리아 말로는 영혼이 없는 빈 알이었다는데.”

“뭐? 영혼이 없다고?? ……그럴 리가…….”

“[그러니까 내가 여기 들어와 있지!!]”

놀란 듯 굳어 버린 헤르멘.

그의 손에서 재빨리 아렐리아를 뺏어 들었다.

그녀를 바닥에 내려놓는 순간에도 그는 여전히 멍하니 허공만 쳐다본다.

“[마왕님 친구만 아니었어도 한 방 먹여 주는 건데!!]”

그녀는 씨근덕거리며 발로 바닥을 찬다.

계속 쿵쾅거리는 게 어지간히 화가 나긴 한 모양.

눈에는 독기가 가득 올라와 있었다.

“그랬다간 너도 무사하지 못할 텐데.”

심드렁하게 말하자 그녀는 뚱한 얼굴이 되었다.

“[강한 자와 싸우다 죽는다면 그것 또한 즐거운 일이에요! 잊으셨나 본데, 저 역시 마족이라고요.]”

잊지는 않았다만.

생각해 보니 마족들의 성정은 원래 저 모양 저 꼴이다.

싸움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나서는 건 나 역시 종종 봐 온 모습이다.

“미안하군. 순간 당황했어. 생각지도 못해서 그만……. 뭐, 오래 살지도 않은 데다 드래곤들과의 교류마저 없었으니 내가 모르는 일도 있겠지.”

헤르멘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순순히 사과한 그는 멋쩍은 듯 웃어 보인다.

“친우의 수하에게 무례를 저질렀군.”

그가 고개까지 숙여 보인다.

아렐리아는 잠시 당황하더니 고개를 한쪽으로 획 돌린다.

명백하게 삐친 상태였다.

“받아들이는 속도가 빠르군.”

지나치게 깨끗한 사과다.

오히려 내가 의아할 정도였다.

‘길길이 날뛸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영혼이 없다 해도 같은 종족인 드래곤의 몸이다.

그걸 사용하는 게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뭐, 남의 기분이야 알 바 아니긴 했지만.

“어째서 영혼이 없는 상태인지는 모르겠으나 부화한다 해도 죽었을 터. 그리고 드래곤의 정체성은 몸체가 아니라 영혼에서 나오는 법이야.”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한다.

요약하자면 이깟 몸뚱이, 아무래도 좋다는 소리였다.

복잡할 줄 알았던 일이 생각보다 깔끔하게 끝이 났다.

“그나저나, 나 때문에 시간을 많이 끌어 버렸네. 도움받을 일이 있다고 했었지 않았나.”

“그랬지. 아마 너에겐 어려울 일은 아니겠군.”

“어려워도 상관없어. 내 친구의 부탁이라면 무엇이든.”

헤르멘은 화사하게 웃는다.

등쳐 먹기 딱 좋을 만큼 해맑은 미소였다.

“……너는 내가 친구인 걸 다행이라 여겨.”

저놈은 보증을 서 달래도 흔쾌히 받아들이겠지.

그나마 착한 축에 속하는 나였기에 망정이지 다른 사람 같았으면 바로 한탕 했을 것이었다.

농담처럼 한 말에 그는 바로 더욱 진한 미소를 짓는다.

“나야 항상 다행이고 행운이라 여기고 있지, 친우여.”

그는 호구같이 헤실헤실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모르게 순간 돈 좀 빌려 달라 할 뻔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바로 목적을 떠올렸다.

“고위 마법사들이 펼쳐 놓은 마법 결계를 파훼해야 해. 듣기로는 이중, 삼중으로 보안된 곳이라더군.”

“파훼라? 고작 그런 일이라면 그대도 쉬이 할 수 있지 않은가?”

“쉽긴 하지. 단순한 파훼라면.”

그깟 마법진 따위 몇 번 후리면 바로 파괴되겠지.

마법진이 아니라 마탑 전체를 무너트릴 수도 있다.

그의 말대로 쉽다 못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몰래 해야 한다면 그건 말이 달랐다.

“내가 손대면 파훼가 아니라 파괴가 되겠지. 마법진을 적당히 부수는 방법 따윈 모르니.”

“그럼 몰래 잠입이라도 하려는 셈인가?”

그는 눈치 빠르게 물어 온다.

하지만 여전히 어리둥절한 모습이다.

“그런 걸 선호하는지는 몰랐다만. 뭐, 상관없겠지.”

“지하까지 숨어들어 가야 해. 가능한 인기척을 줄일 수 있나?”

“당연히.”

그는 무언가 중얼거린다.

알아들을 수 없는 걸 보니 마법이 아니라 용언이라도 사용하는 듯했다.

‘용언을 쓰는 건 꽤 힘에 부치는 일로 알고 있는데.’

용언은 아무리 드래곤이라지만 남발할 수는 없다.

만약 그게 가능했다면 골드 드래곤은 순식간에 세계를 지배하고도 남았다.

강한 힘에는 어느 정도 제약도 따르는 법이다.

하물며 그게 세계의 관조자라 불리는 드래곤이라면 더더욱.

“용언, 이렇게 사용해도 괜찮은 건가?”

“음? 날 걱정해 주는 건가, 친구?”

그는 준비를 다 마쳤는지 은빛 구슬 몇 개를 들고 있었다.

아마 용언의 힘이 담긴 것일 터였다.

“일반적으로는 안 된다지만 친우의 맹약을 맺은 그대의 일이라면 다르지. 세계의 일에 크게 관여는 못해도 이 정도는 괜찮아.”

나는 손등의 은빛 문양을 새삼스럽게 바라보았다.

귀찮음을 무릅쓰고 그를 불러낼 값어치는 충분했다.

“우선 이것 받게. 아렐리아, 자네도.”

그는 손바닥에 조그마한 구슬을 놓아주었다.

힘이 뭉쳐진 아티팩트와 비슷했다.

곧바로 확인하자 과연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른다.

[정제된 숨죽임[L급]: 드래곤이 단 하나뿐인 친구를 위해 기꺼이 용언을 사용해 만들었습니다. 복용 시 투명해지며 3시간 동안 기척을 완전히 숨길 수 있습니다. * 같은 복용자끼리는 서로 볼 수 있습니다.]

마탑에 몰래 잠입하려 사용하기엔 아까울 물건이었다.

몇 개 더 만들어 달라 하고 싶을 정도.

“생각보다 쓸 만한데.”

“나름 효과를 고심해서 만들었지.”

그는 뿌듯한 듯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물건이 아니라 헤르멘이 쓸 만하다고 한 소리였지만.

굳이 그걸 정정해 주지는 않았다.

“그럼 동굴에 있는 자들도 마저 부르는 게 좋겠지. 일부러 개수를 맞춰 만들었으니.”

그것까지 알고 있었나.

하기사 전설 속 동물씩이나 되는 존재가 이 정도도 몰라서야 곤란했다.

옆을 보니 아렐리아는 둥그런 구슬을 들고 요리조리 살펴보고 있다.

그녀에게 슬쩍 눈길을 주자 바로 내 의도를 알아차린다.

“[다녀올게요!]”

“잠입은 이만하면 되었고…… 남은 건 마법진의 파훼인가? 인간의 마법진은 처음이라 시간이 오래 걸릴 지도 모르겠는데.”

“걱정 마라. 대충 들어 보니 그들이 잘 안다 하더군.”

“그래? 그나마 다행이군. 마나 회로만 잘 읊어 준다면야 쉽지.”

에밀리는 아직도 시력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던가.

본인의 마탑이니 신연주보다는 잘 알겠지만 두고 가는 게 맞을 듯했다.

한국의 짐 덩어리들도 놓고 왔는데, 여기서 다시금 늘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마왕님! 데려왔어요~]”

“지인분을 데려오신다더니…… 정말 빠르시네요.”

경쾌한 아렐리아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신연주는 에밀리를 부축하며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꽤 오랜 시간 동굴에 있던 탓인지 그녀는 눈을 찌푸린다.

‘그러고 보니 정체는 숨기는 것이 좋겠군.’

아스티란도 비슷하지만 지구는 상황이 더 특별하다.

게이트에서 조금씩 나오는 드래곤의 부산물들은 높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하물며 살아 있는 드래곤이라.

그야말로 헌터들에게는 살아 있는 로또와 다름없다.

그전에 모조리 몰살당하겠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불나방처럼 달려들 것이 뻔했다.

“드래곤이라는 걸 밝혀도 상관은 없다지만, 그래도 가능한 귀찮은 일은 피해 줬으면 하는데.”

조용히 속삭이자 헤르멘은 싱그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대가 불편하다면 당연히. 맡겨만 주시게나.”

그는 대답과 동시에 기운을 줄인다.

드래곤 특유의 위압감은 천천히 사라졌다.

겉으로 봐서는 평범한 고위 마법사였다.

“이분이 그 마법……. 헉…… ×친, 왜 이렇게 잘생겼어…….”

그냥 마법사가 아니라 잘생긴 고위 마법사였나.

순간 신연주의 입에서 격렬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약간의 욕설은 덤이었다.

한번 욕지거리를 터 버리니 이제는 주체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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