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03화
한동안 묘한 침묵이 이어진다.
잠자코 기다리는데, 그녀가 대뜸 소리를 질렀다.
“망할 개×끼!! 김상수 놈!! 뇌까지 근육으로 꽉 차 버린 단세포 같은 놈!!”
워낙 쌓인 게 많은지 신연주는 육두문자만 지껄인다.
세상 순수하게 생긴 그녀지만 나는 딱히 동요하지 않았다.
‘그동안 숨겨 온 노력이 가상하군.’
평상시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지만 가끔 성깔 나온다 싶긴 했다.
아마도 이게 그녀의 본모습이겠지.
거기에 더해 에밀리의 상황과 김상수라는 개노답까지.
지금의 그녀는 달리는 폭주 기관차와도 같았다.
“마탑장이란 놈이 미쳐 가지고, 하필 거기는 왜 처 기어들어 가서……!!”
생각보다 욕설이 찰지다.
재미 삼아 잠자코 지켜보는데, 옆에서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으…….”
고개를 돌려 보니 에밀리였다.
그녀는 눈을 느리게 꿈뻑거린다.
곧 정신을 차린 듯 나와 마주친 눈에는 당혹이 가득하다.
“당신…… 누구?”
“에밀리!! 괜찮아? 이제 정신이 좀 들어?”
신연주는 하던 욕질을 끊고 에밀리에게 다급히 다가간다.
나를 보고 경계하던 그녀는 그제야 긴장을 푼다.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진 헌터님이 없다면 정말…… 죽었을 거야.”
“……진 헌터라고? 그 용병왕?”
그녀는 내 방향으로 시선을 돌린다.
미간까지 찌푸리며 나를 보려 애를 쓴다.
하지만 여전히 회색빛 눈동자는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리고 있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건가.”
“저를 살려 주셨다고요. 감사합니다. 그래도 소문으로만 듣던 용병왕을 볼 수 없는 건 아쉽네요.”
그녀는 쓰게 웃으며 얼굴을 떨군다.
그걸 보는 신연주의 얼굴은 점점 창백하게 질려 갔다.
“……독 때문인 거야?”
“아마도. 언젠가 돌아올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겠지.”
신연주는 눈물을 참으며 입술을 깨문다.
슬퍼할 사람은 따로 있기에 애써 참는 눈치였다.
“신연주 헌터야 그렇다 치더라도…… 넌 영국 마탑 소속인 것 같은데,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 거지.”
“아…… 그게…….”
에밀리는 난감한 듯 살짝 웃어 보인다.
내가 외부인이어서 그런 것일까.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제가 말씀드릴게요! 그건 다 이 망할 김상수 마탑장 때문이에요.”
“엄밀히 말하자면 마탑 본부의 문제긴 한데…….”
“그래도 마탑장 놈이 다짜고짜 본부에 가지 않았다면 없을 일이었어!”
김상수라면 오히려 피해자가 아닌가.
의아했지만 이미 분노한 신연주에게 김상수는 이미 죽일 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김상수는 납치되었다 들었는데.”
“헉! 그것까지 알고 계세요? 맞아요, 이 3살 먹은 어린애 같은 마탑장님이 납치되었죠!”
“처음에 방문하신 건 그저 본부 마탑장인 에드워드에게 따지러 온 거였죠.”
“그거 자체가 문제야! 왜 말도 없이 혼자 일을 치는 거야??”
또다시 그녀는 울분에 차 소리를 지른다.
그 모습을 떨떠름한 얼굴로 내려다보았다.
눈이 마주치고, 그녀는 뻘쭘한 듯 말을 멈춘다.
“……죄송해요. 너무 화가 나서 그만…….”
“제가 설명해 드릴게요. 본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본부 마탑장이 무언가 꾸미고 있는 듯해요. 그리고 김상수 마탑장님은 그걸 알아차리고 잡힌 상태고요.”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쓸어 간 마석이 한두 개도 아니고, 전쟁을 벌여도 이상하지 않다.
마석들이 담고 있는 마나들은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니다.
지금 사 간 것만 해도, 힘으로 따지면 핵폭탄 몇십 개쯤은 우스운 숫자였다.
하지만 그게 들킨다고 납치까지 갈 일인가.
같은 소속인 데다 한국 지부의 마탑장이기까지 한 김상수다.
입막음치고는 처사가 지나치게 과했다.
결국 알 수 있는 것은 단 하나였다.
“김상수가 알았을 때 결사반대할 만한 계획이겠군.”
혹은 마탑 전체일지도 모르지.
본인들이 생각해도 찔리는 일이니 강수를 둔 것이다.
이미 엮여 있는 자들도 제정신일 거라는 기대는 버렸다.
“저도 무엇인지 알지 못해요. 김상수 마탑장님을 구출하려는 순간 들켜 버렸거든요. 하필 마탑장이 직접 지키고 있을 줄은…….”
엄밀히 말하자면 그들이 김상수를 가둬 놔 봤자 얻을 수 있는 건 없다.
얻기는커녕 들킬 경우 전 세계적으로 지탄을 받을 터.
어찌 저찌 변명한다 하더라도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다.
영원히 숨길 수 있는 진실은 없으니.
‘그걸 감수하고 숨길만 한 일이라.’
이 정도면 드래곤이 개입했을 만한 여지도 있다.
점차 마탑에 대해 궁금증이 차올랐다.
“그나저나 납치라…….”
“제가 봤을 때는 구속구로 모든 마나가 봉인된 상태였어요.”
무언가 쓸모가 있긴 하니 가둬 놨을 터.
하지만 김상수가 가지고 있는 거라고는 근육과 마나뿐이다.
‘잠깐, 마나?’
마석 역시 많은 마나를 가지고 있는 물건들.
그리고 김상수도 살아 있는 마나통으로는 훌륭하다.
하지만 납치까지 한 놈들이 그의 사정을 봐 가며 마력을 짜낼 리는 없다.
“김상수, 곧 죽겠군.”
무심하게 툭 내뱉은 말에 신연주가 동요한다.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는지 상당히 당황하는 모습이다.
“죽…… 죽는다고요? 설마요…….”
신나게 욕할 땐 언제고 불안한 듯 눈동자를 굴린다.
아무리 그래도 정이라는 게 있는 걸까.
하기사 여기까지 그를 찾으러 왔을 정도면 알 만했다.
“아냐…… 납치하기까지 한 놈들인데 무슨 짓을 할지는 모르지. 이래서는 안 되겠어…….”
그녀는 중얼거리더니 몇 개 없는 짐을 인벤토리에 던져 넣는다.
‘혼자서라도 마탑에 갈 생각인가.’
“너는 이제 안전한 곳으로 텔레포트 해. 아, 지하 감옥 위치 좀 알 수 있어?”
“지하 입구는 단 하나뿐이야. 너도 몇 번 방문해서 알고 있는 곳이고. 근데 그건 왜 물어봐? 설마, 지금 혼자 가려고?”
“……어쩔 수 없잖아.”
내 예상대로 그녀는 마탑을 홀로 뒤집어 놓을 계획인 듯했다.
평소 모습이라면 신중하게 접근할 신연주다.
하지만 어지간히 혼란스러운지 깊은 생각은 하지 못하는 듯했다.
다른 건 몰라도, 실행력 하나는 감탄스러울 정도.
“하지만…….”
에밀리는 말꼬리를 흐리며 내 쪽을 쳐다본다.
얼굴만 봐도 생각을 알 수 있었다.
이건 명백히 도움을 요청하는 표정이다.
나는 무표정으로 그녀와 시선을 맞닥트렸다.
“그러지 마. 진 헌터님은 우리와 상관없는 사람이야.”
“그래도 이 정도면 도움을 요청해도…….”
“마탑의 일은 마법사들끼리 해결하는 게 맞아.”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긴 했다.
에드워드라는 마탑장의 구린 꿍꿍이만 아니었다면.
어차피 여기까지 온 이상, 그녀를 사지에 던져 놓고 구경만 할 생각은 없었다.
“나도 가지.”
“……네?? 진 헌터님이요? 원래 이런 일에는 끼어들고 싶지 않아 하시잖아요?”
전혀 예상치 못했는지 신연주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동안 몇 번 마주쳤기에 나를 파악하고 있는 걸까.
아주 정확한 판단이었다.
“이번 일은 흥미가 좀 생기는군.”
“……하긴, 마탑장의 납치라니. 전대미문의 사건이긴 하죠.”
그녀는 곧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만반의 준비를 하려는지 스테미너 포션까지 마신 신연주.
곧 눈을 번뜩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럼, 가시죠.”
“잠깐. 무작정 들이닥칠 생각은 아니겠지?”
“어차피 마탑에는 강한 결계가 몇 겹이나 있어요. 들키지 않는 건 매우 어려워요.”
“어렵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소리는 아니잖나.”
“몰래 들어가면 좋을 테지만…… 저는 그 정도 고위 마법사는 아니에요.”
그녀는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7서클이나 되는 마법사이니 어느 정도 자신감에 차도 될 텐데.
독 마법도 그렇고, 연이은 능력 부족에 허탈함마저 느끼는 듯했다.
“방법이 있나요?”
에밀리가 내 생각을 눈치챈 듯 진지하게 물어 온다.
내가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닐 거라 생각한 것이다.
“있기야 하지.”
영 찝찝하긴 하다.
하지만 지금은 고위 마법사가 필요한 상태.
그것도 9서클인 아렐리아보다 더 강력한 마법사가 필요하다.
그들과 말하는 와중에도 내 머릿속에는 한 명의 생각뿐이다.
한 명이라고 해야 할지, 한 마리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손목에 은빛으로 번뜩이는 문장을 쳐다보았다.
“잠깐 밖에 나가서 아는 마법사 좀 불러오지. 기다리고 있어.”
“예? 아는 마법사요??”
“그 정도 마법사가 존재할 리가……. 아니, 랭킹에 이름을 올리지도 않고 은둔하는 마법사라면 가능할지도.”
어리둥절한 그들을 두고 동굴 밖으로 나섰다.
날은 여전히 따스하고, 싱그러운 풀냄새가 주위를 맴돈다.
지금의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평화였다.
“[마왕님, 끝나셨나요? 왜 밖으로 나오셨어요?]”
주위를 맴돌던 아렐리아가 나를 보고 날아왔다.
“그 녀석을 부르려면 넓은 장소가 필요할 테니까.”
“[그 녀석이라니요? ……설마??]”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댄다.
경악한 입은 헤, 하고 벌어진 상태였다.
“[그냥 마족 마법사들을 부르시면 안 돼요!?]”
“될 리가.”
“[그치만……!!]”
어지간히 끔찍한지 퍼덕이던 날갯짓도 멈춘다.
헤르멘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건 알았다지만 이 정도인지는 몰랐는데.
같이 지낸 시간도 꽤 되지만 여전히 그녀의 마음은 알 수가 없다.
“물러서. 다칠지도 모르니.”
“[……알겠어요.]”
그녀는 군말 없이 비켜선다.
나를 더 이상 말리지는 않지만 뚱한 얼굴은 그대로였다.
아렐리아가 멀리 떨어진 것을 보고 시선을 손등으로 옮겼다.
햇빛을 비추니 은색의 문양이 더 빛을 내는 듯하다.
“헤르멘, 듣고 있다면 대답해.”
문양을 몇 차례 문질렀다.
전에 그가 설명해 주었던 통신 방법이다.
동화 속 마법의 램프가 생각나긴 했지만 좀 다르긴 하다.
세 가지 소원밖에 들어주지 않는 지니보다는 드래곤의 능력이 더 뛰어날 테니.
[이게 얼마 만인지……!! 내 소중한 친우! 정말 오랜만이군!! 드디어 나를 불렀나?]
몇 초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답은 재깍 돌아왔다.
듣기만 해도 신이 난 목소리였다.
“그래. 이곳에서 해 줘야 할 일이 생겼다, 친구여.”
쿵-!!
내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눈앞에는 반짝이는 은빛의 존재가 나타났다.
높은 나무들로 가득한 숲이지만 간신히 가려질 만한 덩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