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00화
이영수의 집에 찾아가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를 맞이했다.
이미 이도하에 대한 일련의 사건은 들었는지 낯빛은 어두웠다.
그렇다고 나를 탓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그저 손자의 어리석음에 마음 아파하는 노인의 얼굴일 뿐.
“무례를 참아 주셨다 들었소. 이렇게 또 한번 은혜를 입는구려.”
“또 한번이라. 다행히 전의 일을 잊고 있진 않았군.”
“죽는 날까지 잊지 못할 것이오.”
그는 싱긋 웃으며 나에게 차를 권한다.
창문 밖에는 잘 가꿔진 저택의 정원이 보인다.
그곳에 놓인 의자에는 이도윤과 박민호가 마주 보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분위기는 화기애애하다.
“보아하니 못난 손자 이야기를 하러 온 것은 아닐 터. 원하는 바가 있소?”
날카롭게 눈을 빛내는 이영수.
그는 목적이 있는 방문임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나에게 은혜를 갚는다고 했던 말, 기억나나?”
“목숨과 한호를 빚졌으니 당연한 일이오.”
“지금 그걸 받을 때가 온 것 같군.”
그는 무거운 침음을 흘린다.
허나 당황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그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일 뿐.
“원하는 게 무엇이오.”
“지금 한호 물산의 부회장이 이도하의 아버지이지. 그리고 이도하도 그곳에서 한자리 하고 있는 것 같고.”
“혹, 도윤이에게 그 자리를 이어받게 하려는 거요? 하지만 아무리 당신이어도 우리의 일에 관여할 수는 없소. 차라리 재물을 요구하시오.”
회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한호의 계열사는 여러 개이지만 그중 이도하가 있는 한호 물산은 꽤 알짜배기 사업.
그리고 그곳은 그룹 전체를 이어받을 후계자를 위한 자리이다.
그렇기에 딱 잘라 말하는 거겠지.
이 정도는 나도 잘 알고 있기에 딱히 기분이 상하진 않는다.
굳이 이도윤에게 한호에서 그 정도 영향을 끼치라 할 생각도 없었다.
“비슷하게 맞췄지만 달라. 이도윤을 딱히 그런 자리에 밀어 넣고 싶지도 않고. 핏줄이니 잘 알 텐데. 저 녀석이 그런 딱딱한 자리에 어울리는 스타일은 아니잖나.”
“……제법 잘 꿰뚫어 보는구려.”
그는 창밖으로 시선을 던진다.
이도윤은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소리 내서 웃고 있다.
그걸 보는 회장은 씁쓸한 미소를 보인다.
“내 손자지만 심성이 여리고 고운 아이지.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다지만 유난히 아픈 손가락이기도 하고. 가족사 때문에 각성 전에는 항상 죽은 듯 살았었는데…… 사실 이번에 길드장이란 걸 한다기에 엄청나게 놀랐다오. 그런 걸 하겠다고 나서는 성격은 아니니.”
내 생각도 비슷했다.
이도윤은 기본적으로 착한 성격이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기도 하고.
그렇기에 그림자 길드의 분위기가 그토록 밝을 수밖에 없다.
길드의 분위기는 길드장을 따라가는 법이니.
하지만 길드장이라면 모를까, 일반 사기업이라면 결코 장점이 되지 않는다.
저 녀석이라면 닳고 닳은 정치성 공작에 금방 나가떨어지겠지.
“나름대로 잘해 가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군.”
“그렇소? 일부러 기본적인 조사 외에는 하지 않았소. 허나 내 귀에도 소식이 들려올 정도라면 대단하긴 하지. 연금술사로 이루어진 팀이라고 했나. 이건 선물받은 물건인데, 요새는 그곳의 물건이 아주 마음에 쏙 든다오.”
테이블에 턱 올려지는 노란빛의 액체.
그림자 길드에서 최근 내놓은 특제 스테미너 포션이다.
마시는 즉시 피로감을 떨쳐 버릴 수 있어 인기가 많다고 들었다.
심지어 짙은 색을 보아하니 시중에 풀린 것들보다 원액에 가까운 상태.
저 정도면 쓰러진 소도 일으킬 수 있을 정도겠지.
민간요법인 낙지 따위를 먹이는 방법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
“몇 번 마시다 최근에는 사내에 비치해 놓고 있다오.”
생각보다 이도윤이 사업 수완이 뛰어나긴 한가.
회장의 마음에 들게 해 고정 납품처를 만들기까지 하다니.
물론 그 정도로 깊게 생각하진 않았겠지만.
그래도 운 하나만은 좋은 녀석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다음 일은 쉽겠군. 이곳에 온 목적은 하나야. 당신이 가진 한호 물산의 주식을 좀 나눠 받고 싶은데.”
“……주식을? 승계권에는 욕심이 없다 하지 않았소.”
그는 눈살을 찌푸린다.
이도윤을 밀어주려는 속셈으로 생각한 것이다.
“아니, 받는 건 나다.”
“……당신이? 돈이라면 차고 넘친다고 들었소만.”
“맞는 말이지만 많이는 필요 없고, 대주주가 될 조건 정도면 되겠군. 그걸로 해야 할 일이 있어서.”
회장은 의아해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더니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한다.
어느 정도여야 적당할지 가늠하고 있는 듯하다.
“이유는 묻지 않겠소. 양도세나 다른 것들은 내가 다 처리하겠소. 오랜 시일이 걸리진 않을 거요.”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는 싱긋 웃으며 나에게 악수를 해 왔다.
“앞으로 잘 부탁하겠소. 한호의 대주주님이시니.”
* * *
“……생각보다 많은데?”
“예? 할아버님께서 얼마나 주셨…… 허억……!!”
며칠이 지나고 내가 생각한 시기가 되었다.
모든 준비는 이미 끝마친 상태.
나는 집에서 이도윤과 함께 마지막 점검을 하는 중이었다.
“……제가 보유한 주식보다 많은 것 같네요.”
한호 회장의 목숨값이라는 것이 가볍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다고 이 정도까지 톡톡히 치러 줄지는 몰랐지만.
머리를 왁스로 스타일링 하고,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옷을 꺼냈다.
오랜만에 정장을 입으려니 목을 죄는 넥타이가 답답하다.
평소라면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겠지만 오늘은 좀 다르다.
사람이라면 시각적인 면에 휘둘리는 법.
보여지는 이미지에서 나오는 것들도 분명 존재한다.
오늘의 목적지는 한호 부회장이 비공개로 진행하는 모임.
대주주들을 몇 모아 모임을 한다고 들었다.
“아마 오늘 모임에서 이도하의 사업에 대해 넌지시 꺼낼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내가 그중 제일 많은 주식을 보유한 사람이겠고.”
그는 당연하단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유한 주식이 많을수록 발언권이 강해지는 것은 당연지사.
내 계획은 간단했다.
무식할 만큼 주식을 끌어모아, 대주주들의 모임에서 폭탄을 터트리는 것.
개인이 가진 돈으로 사업을 하겠다면 아무도 말릴 사람이 없다.
하지만 이건 이도하가 한호의 돈을 끌어다가 하는 일.
가서 이따위 사업은 말이 안 된다며 깽판을 칠 예정이었다.
“이 정도면 됐습니다.”
이도윤이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나처럼 제대로 격식을 차린 복장이다.
하지만 불편함 때문에 오만상을 찌푸린 나와 다르게 익숙한 듯 자연스럽다.
“[오, 마왕님. 이런 모습은 또…….]”
주변에서 기웃거리던 아렐리아가 감탄을 한다.
생각해 보니 항상 편한 차림이었기에 처음 보는 복장일 것이었다.
그녀는 어디선가 영상구를 꺼내와 연신 내 모습을 기록에 남긴다.
오랜만에 보는, 열정적인 모습이다.
제 몸보다 큰 구슬을 들고 연신 애쓰는 모습이 우스웠다.
“금방 다녀오마.”
“[아앗……! 아직 덜 찍었는데!!]”
밖을 나가니 검은 리무진 한 대가 서 있었다.
올라타니 이도윤이 서류 뭉탱이를 쥐여 준다.
블랙마켓과 이도하의 사업을 비교해 놓은 자료였다.
대충 읽고 있으니 그가 넌지시 말을 꺼낸다.
“그닥 어려울 건 없으실 겁니다. 말은 거의 제가 할 테니까요. 진 님께선 그냥 묵묵히 있으셔도 됩니다.”
그저 가오만 잡으면 되는 역할이었다.
무게감 있게 한 번씩 눈초리를 흘려 주면 더 좋고.
자주 하던 일이기에 어려울 것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박민호는?”
당연히 오늘 쫓아오겠다 난리 피울 줄 알았는데.
이런 자리는 어려워하지만 전에 보았던 이도하를 탐탁지 않아 했던 박민호다.
쩔쩔매는 그 꼴을 보고 싶어 해야 정상이었다.
“민호는 아침에 블랙마켓에 가 보겠다 급히 나갔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아쉬워하더군요.”
“블랙마켓에? 지금 상황에선 별다를 일도 없을 텐데.”
“오늘 마탑 소속의 마법사들이 왔다 합니다. 동향을 살펴본다 갔습니다.”
박민호에게 블랙마켓에 대해 알려 주는 건 좋은 선택이었다.
요새는 제 일처럼 나서는 게, 나름의 재미를 붙인 듯했다.
그렇지 않아도 보안 때문에 사람 하나 쓰는 것도 힘든 곳이다.
믿을 만한 사람이 늘어나면 더더욱 내가 신경 쓸 일이 없어지겠지.
이도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벌써 목적지에 도착했다.
리무진이 부드럽게 정차하고, 먼저 나간 이도윤이 문을 열고 기다린다.
“여기인가.”
고개를 들어 보아도 그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높은 건물.
한호의 본사 역할을 하는 곳이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직원 몇 명이 뛰쳐나온다.
“도련님, 오셨습니까. 모임에 참여하신다고는 들었습니다만…… 이도하 도련님도 오늘 참석하실 텐데,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얼핏 들으면 그를 걱정하는 말투이다.
이도하와 이도윤의 사이는 이미 그들에게도 유명한 상태인 듯 관계를 잘 알고 있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 안에는 뼈가 섞여 있었다.
네깟 게 와 봤자 뭘 하겠냐는, 비웃음이 느껴진다.
옆을 슬쩍 보자 이도윤은 덤덤하게 서 있었다.
“더욱 잘된 일입니다.”
“크흠…… 그렇습니까? 우선 안내하겠습니다. 제일 마지막으로 오셨으니 서두르셔야 합니다.”
그는 이도윤의 반응에 당황한다.
평소와는 다른 태도였을까.
안내하는 와중에도 뒤를 흘깃거리며 의구심을 숨기지 못했다.
“여기입니다. 바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늦었다는 말처럼 이미 몇 개의 자리를 제외한 나머지는 가득 차 있었다.
사방에 검은 양복을 갖춰 입은 중년의 남자들뿐이다.
일반적인 주주총회가 아니기에 분위기는 나름대로 화기애애했다.
문을 열고 나타난 날 보자마자 표정이 싹 굳긴 했지만.
“너…… 너……!! 혼자 오는 것이 아니었나??”
한쪽 발에 깁스를 한 이도하가 우리를 보자마자 삿대질을 한다.
그 손가락에도 붕대가 칭칭 감겨 있다.
‘이미 한번 다쳐 봤을 텐데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린 건지.’
미간을 꿈틀거리며 검지 손가락 쪽에 시선을 던졌다.
그러자 그는 흠칫 놀라며 슬며시 손을 등 뒤로 숨긴다.
두 번 부러지기는 싫어 보였다.
“큼. 도련님, 우선 자리에 앉으시죠.”
옆에 있던 비서가 가볍게 주의를 준다.
그제야 이도하는 당황을 숨기고 씩씩거리며 자리에 앉는다.
하지만 이미 깐깐해 보이는 대주주들은 얼굴이 굳어 있었다.
애써 표정을 숨기려 했지만 저딴 놈이 계열사 사장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못마땅해 보였다.
“반갑습니다. 헌터계의 유명하신 분이 대주주이신지는 미처 몰랐습니다.”
“용병왕이라고 했던가.”
“이런 곳에 올 자는 아니지 않나.”
그들은 자신들끼리 수군거린다.
진작부터 서로 잘 아는 사이로 보였다.
그런 자리에 뜬금없이 내가 끼어든 것이 당혹스러워 보인다.
“설마 최근에 대주주로 이름 올린 김진, 그게 당신? 동명이인 정도로 생각했는데…….”
“잘 아는군. 그럼 이제 시작 좀 해 볼까.”
나는 이도윤과 함께 비어 있는 자리에 앉았다.
나른하게 의자에 기대어 앉아 다리부터 꼬았다.
눈살을 찌푸리거나 말거나, 대뜸 할 말부터 했다.
“이도하가 한다는 그 사업, 그거에 대해 내가 할 말이 아주 많을 것 같은데.”
이미 아는 사항인지 한차례 소란이 일어난다.
이도윤은 모두에게 준비해 온 자료를 나눠 주었다.
간략하게 정리된 서류는 대충 봐도 이 사업이 망할 거라 말해 주고 있었다.
“여기, 헌터 없으면 내 말을 듣지. 그건 손대서는 안 되는 사업이야.”
돈과 목숨이 아깝다면 말이지.
나는 뒷말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