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99화
차 한잔 마실 시간이 지났을 때쯤, 그제야 이도윤이 들어왔다.
그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피곤해 보였다.
박민호는 정반대의 밝은 얼굴로 의자에 털썩 앉는다.
“그놈은 병원에 보낸 뒤 나머지 정리하고 왔습니다. 형님, 많이 기다리셨죠?”
“알아서 기어가게 둘 것이지.”
“뭐, 한호 쪽에 입막음도 했고요. 약간의 협박도 했으니 이제는 기어오르지 못할 겁니다.”
그는 웃으며 그새 내려온 커피를 내민다.
느긋하게 마시고 있는데 이도윤은 잔뜩 지친 얼굴로 맞은편 의자에 앉는다.
“손속에 자비가 없다고는 들었지만 정말로 머뭇거림이 없으시더군요.”
이도윤의 눈동자에는 약간의 공포도 담겨 있다.
이미 튜토리얼에서 신나게 날뛰고 온 놈이 뭐라고 하는 건지.
그때 처치한 자들이 40명이 넘을 텐데.
어이없는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저는 실제 전투는 해 보지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그곳에서는 죽어도 그저 탈락할 뿐이고요.”
내 눈빛을 읽었는지 그가 눈치 빠르게 대답해 온다.
그러면서 찻잔을 쥐는 손은 약간의 떨림이 있었다.
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그는 따듯한 심성만큼 유약한 기질이 있었다.
“도윤이가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이해하시죠. 보통의 각성자들도 비슷할 겁니다. 게이트 몇 번 돌면 괜찮아집니다.”
하기사 전투는커녕 싸울 일도 별로 없는 일반인들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
튜토리얼이라고 해 봤자 현실과는 조금 다른 감각이다.
고통마저도 크게 느껴지지 않는 곳이니 아직은 저러는 게 당연하다 생각되었다.
“그런 면에서는 귀환자와는 확실히 다르겠군.”
“귀환자들이야…… 말할 것도 없죠.”
박민호는 그렇게 말하며 쓰게 웃는다.
그가 아스티란에서 머무른 시간은 십여 년 남짓.
그동안 저 둥글둥글해 보이는 녀석의 손에 묻힌 피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잠시 우울함이 감돌자 이도윤이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듯 주제를 돌렸다.
“방금 전 제 사촌 형님 말입니다만, 헌터들을 위한 사업을 하려고 하는 것 같더군요.”
“이도하 말인가? 그 전에도 관련 사업 몇 개 말아먹었던 걸로 안다만.”
그에 대해서는 헌터들의 커뮤니티에서 몇 번 떠드는 것을 보았었다.
물론 헌터들 반응은 좋지 않았다.
헌터도 아닌 놈이 돈에 미쳐서 발을 담그려 한다고 조소하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이번에는 정말 크게 진행하려는 듯합니다. 백부님의 힘까지 빌려서요. 아마 마지막이니만큼 온갖 시도를 하겠죠.”
“그래 봤자 뭘 할 수 있겠어.”
“그게…… 블랙마켓과 비슷한 일을 하려고 준비하는 걸로 보입니다.”
이도윤은 제법 진지하게 말을 했다.
아무리 신중한 성격이라지만 말이 되지 않는 것은 잘 알 텐데.
그 반응에 피식 웃었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이걸 말씀드리려 했는데…… 블랙마켓 쪽의 손님들이 심상치 않습니다. 마탑 소속의 헌터들 말입니다.”
“마탑이?”
“그동안 판매하던 물건을 갑자기 거둬 가더군요. 블랙마켓이 아니면 그만한 물건을 팔 만한 판매처도 없을 텐데.”
“도윤이 말도 그렇고, 요새 마탑의 헌터들이 마석을 종류별로 쓸어갑니다. 점차 수량을 늘려 가더니 이제는 헌터들이 내놓자마자 족족이요.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확실히 그들의 동향이 이상하긴 했다.
마탑은 블랙마켓의 큰 손들이다.
평소에도 자주 오가며 온갖 재료들을 구매해 갔다.
하지만 그게 특정 물건이었던 적은 없었다.
하물며 마나가 가득 담겨 있는 마석들이라니.
그만한 마나가 필요하다면 뭔가 거대한 실험이라도 벌이는 것일까.
마석은 원체 쓰이는 곳이 많은지라 지금으로선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이도하가 블랙마켓에서 그들과 어울리는 걸 몇 번 봤습니다. 가면을 쓰긴 했지만 그 걸음걸이며 말투, 모를 수가 없죠. 혹시나 해서 오늘 떠봤더니 맞는 것 같더군요.”
“블랙마켓과 비슷한 사업을 하려는데, 마탑까지 연관이 있다라…….”
“아직은 추측이지만요.”
“형님, 마탑이 한호의 재력과 함께한다면 위협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당분간 수수료를 감면하는 것만으로도 몇몇의 헌터는 혹할 테니까요. 보아하니 마탑의 물건을 판매하는 것도 그곳과 전속 계약을 하려는 속셈인가 본데…… 상황이 어려워질 듯합니다.”
박민호가 상황을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내 생각도 마찬가지.
이도윤은 조심스럽게 말하지만 모든 정황이 그들이 손을 잡았다는 걸 알려 준다.
한호의 망나니인 이도하지만 나름대로 재벌가의 일원이다.
당연히 돈이라면 차고 넘칠 테고.
거기에 수상한 짓을 하고 있는 마탑까지.
“이 새끼들이 남의 밥상에 재를 뿌리려고 해?”
블랙마켓은 이제 간신히 내가 투자한 금액을 넘어서고 있었다.
드디어 뿌린 씨앗에 싹이 나려는 참이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걸려 오는 태클이라니.
만들던 가전제품 따위나 만들지 이건 동네 떡볶이 장사를 방해하려고 프랜차이즈 여는 꼴이 아닌가.
그것도 레시피까지 똑같이 베껴서.
나 같은 서민의 돈을 털어 가려는 대기업의 횡포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이래서 대기업 놈들은……!”
“……죄송합니다.”
대기업 놈 중 하나인 이도윤이 재깍 사과를 해 온다.
그 얼굴은 진심 어린 미안함으로 가득하다.
“일단 한국 마탑이라도 찾아가 봐야겠어.”
“마탑의 로브를 걸치고 있긴 했지만 한국 헌터들 같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그래도 같은 소속인데 뭔가 아는 게 조금이라도 있겠지.”
그래도 말없이 갔다가는 허탕 칠 게 분명했다.
연락처는 모르기에 우선 1랭크 채널을 열었다.
보지 않은 건 잠시지만 여전히 수다쟁이들은 말이 많았다.
밀려 있는 글을 쭉 보는데 난리가 나 있었다.
[마탑대표: 마탑 이 새끼들, 진짜 미쳤나!!]
[홍: 힘법사 또 왜 저래? 한두 번도 아니라지만.]
[마법최고: 원래 말하면 안 되겠지만 이 정도는 상관없겠죠. 마탑 본부에서 갑자기 있는 마석까지 다 긁어서 보내라고 했어요.]
[마탑대표: 본부만 실험하는 줄 아나?? 이 세상 마법은 다 지들 거야??]
[초코짱: 그렇지 않아도 계속 한국 지부만 지원 줄여 가는 중 아니었음?]
[마법최고: 그러니까요. 혹시나 해서 다른 나라들에 있는 마탑에도 물어봤더니 한국에서만 유독 심한 물량을 요구했더라고요. 아마 이번에 <검은 탑> 25층까지 클리어된 게 큰 영향을 준거겠죠.]
[초코짱: 한국 마법사들만 강해지는 게 불만이라고 했던가. 질투심 미쳤네.]
[홍: 덕분에 힘법사는 미치기 일보 직전이고~]
[마법최고: ……마탑장님, 갑자기 조용한데…… 혹시 이상한 짓 하시려는 거 아니겠죠?? 저 올라가 볼게요!! 아직 실험실에 계시죠??]
[초코짱: ㅋㅋㅋㅋㅋ 전부터 영국 마탑 너구리 수염에 불 질러 놓는다더니 진짜 간 거 아님?]
[초코맛아이스크림: 안 본 사이에 개꿀잼이네. 팝콘 준비했습니다.]
[영원: 설마 마탑장님께서 그러시겠어요? 협회에 보고도 안 하고 갑자기 출국할 리가 없죠. ^^]
[홍: 저 양반 마법보다 주먹부터 튀어 나가는 거 한두 번도 아니고. 가능성은 충분하지 않아?]
[마법최고: 마탑장님…….]
[초코짱: 진짜 갔나 본데!?]
[마법최고: 비상용 대륙 간 텔레포트 마법진 사용하셨다고…….]
[초코짱: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홍: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가을하늘: 제발 랭커분들 해외로 출국하실 때 신고 좀 해 주십시오. 이렇게 가시면 비상사태란 말입니다.]
[홍: 똥줄 타는 국가 공무원 어서 오고.]
1랭크 채널에는 랭커들이 웃고 떠드는 내용으로 즐비했다.
부탑장인 신연주만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게 뻔했다.
이래서야 방문은커녕 연락도 못하게 생겼다.
미리 보길 잘했지, 이 상황에서 마탑을 무작정 찾아간다면 문전박대당해도 할 말 없는 상황.
“……김상수 헌터, 영국 갔나 본데요?”
박민호 역시 밀린 채널 글들을 읽었는지 어이없는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하필 이 타이밍일 게 뭐란 말인가.
인상을 구기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협회에서도 난리겠군요. 가뜩이나 랭커들은 출국할 때 절차가 까다로운데 이렇게 가 버리다니……. 그것도 SS랭크가요.”
“그 국제 협약 말이지.”
오늘날의 헌터들은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재앙이다.
그 힘이 강할수록 일거수일투족 면밀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다.
건물 한두 개쯤이야 쉽게 부술 수 있는 자들이니.
내가 전에 일본에 갔을 때도, 처음에는 협회에 보고하지 않고 떠난 것이 문제가 되었다.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고 난 뒤에는 흐지부지되었지만.
“원래 랭커가 해외에 갈 때는 해당 나라에 이민을 가게 될까 걱정하는 것이지만 지금은 좀 다르겠군요.”
“저 꼴을 보고서 이민을 상상하는 자들은 없겠지.”
어느새 새로 놓인 커피 잔을 들고 피식 웃었다.
이렇게 된 상황이지만 내가 생각해도 웃긴 일이긴 했다.
앞으로 김상수가 얼마나 날뛸지 약간의 기대가 될 정도였다.
“그건 그렇고, 마탑이 이렇게 되었으니 결국 직접 조사할 수밖에 없겠군요. 시일이 좀 걸릴 듯합니다.”
“시간이 많지 않을 텐데.”
이미 드러내고 일을 벌이는 자들이다.
마켓 사업은 준비가 완료되었다고 봐도 무방한 상태였다.
그걸 잘 아는 이도윤은 얼굴을 굳힌다.
“그래도 뾰족한 수는 없습니다.”
마탑은 언제 조사하며 그 뒤로 마켓에 대한 건 언제 밝혀낼는지.
그는 경쟁사의 시작부터 차근차근 알아 가려 하고 있었다.
정공법을 즐기는 이도윤답다.
“어쩔 수 없다. 마탑 쪽은 포기한다.”
“예? 하지만…….”
“형님, 다른 방도라도 있으신가요?”
“그깟 경쟁사, 시작도 못하게 하면 되겠지.”
제일 간단한 방법이다.
이도하에게 아무리 마탑의 도움이 있다지만 결국 한호의 재력이 필요한 상태.
그 자금줄을 막는다면 힘도 못 쓰고 꼬꾸라질 것이 분명했다.
개인 자금도 어느 정도 있겠지만, 글쎄.
블랙마켓을 꾸리는 데도 수천억은 가볍게 투자했다.
그 정도 금액을 이도하가 갖고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혹시……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하신다거나…….”
“항상 하던 대로 하실 겁니까? 연장 챙길까요?”
박민호가 음흉한 미소를 짓는다.
그 모습은 뒷골목 깡패와 다를 바가 없었다.
‘전엔 나름 순수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 이렇게 됐지.’
아마 용병대에 들어간 이후부터였나.
거친 놈들밖에 없는 곳이라 당연한 수순이긴 했다.
괜히 애 하나 버려 놓은 것 같아 입맛이 쓰게 느껴진다.
“그쪽은 헌터도 아닌 일반인이지 않나. 헌터들의 해결 방법은 쓰지 않겠다.”
시간을 보니 아직 해가 지지도 않은 때이다.
이 정도면 아무리 뒷방 늙은이라도 깨어 있겠지.
나는 곧바로 핸드폰을 들어 한호의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할아버님께는 갑자기 왜……?”
“가만히 있어 봐라.”
이도윤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얼굴이다.
곧 이영수의 목소리가 들리고, 용건을 간단히 말했다.
그는 갑작스럽게 찾아간다는 나의 말에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도윤, 너 한호의 주식 좀 갖고 있지?”
그는 내 말에 더더욱 영문 모를 표정을 짓는다.
얼떨떨한 목소리로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당연히요.”
“잘됐군. 그리고 오늘부터 이걸로 그놈 계열사 주식 좀 대량으로 구입해. 내 계좌를 터 줄 테니.”
나는 인벤토리를 열어 온갖 금괴와 보석을 꺼내 늘어놓았다.
마왕성 보물 창고에서 가져왔던 재물들이었다.
“대…… 량이요?”
“형님, 설마…….”
그제야 그들은 경악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내 계획을 어느 정도 눈치챈 것이다.
“그래. 대주주 좀 되어 보자고.”
헌터에게는 헌터들의 방식이, 일반인에게는 일반인의 방식이 있는 법.
그리고 사업가에게는 사업가들의 방식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