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98화
이런 걸 주는 시스템의 정신머리가 의심될 정도다.
물론 어느 정도 제한이 있는 것 같았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간신히 부여잡았다.
“지부장님, 각국에서 전화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방송국에서도요! 빨리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야 주위를 둘러보니 난장판이다.
황급히 밖으로 뛰어나가는 헌터, 큰 소리로 통화를 하는 헌터.
모두 각양각색의 행동을 취하고 있다.
그래도 공통점은 있었다.
하나같이 기쁨의 미소를 띠고 있다는 점이었다.
“진 님, 대체 어디서 그런 랜덤 상자를 얻으신 겁니까?”
“클리어권이라니…… 시스템이 미친 건가요?”
강준하와 이도윤도 다급히 달려와 나에게 설명을 요구한다.
나를 에워싼 헌터들도 같은 마음인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설명해 줄 이유도, 방법도 없다.
어차피 회의는 이미 망해 버린 상태.
나는 바로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밖을 향해 나섰다.
모두들 떠나가는 나를 보곤 있지만 차마 붙잡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내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을 뿐.
* * *
회의가 끝난 후 며칠 뒤.
당연히 1랭크 채널을 비롯해 전 세계 뉴스는 난리가 났다.
공략하지 않고도 25층까지 클리어돼 버린 한국의 <검은 탑>.
각국의 헌터 협회들과 길드들은 망연자실한 상태라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과의 격차를 좁히기가 힘든 현 상황에서, 단숨에 20층 중반까지 돌파한 한국의 공략 속도는 더 이상 그들이 넘보기 불가능한 수준이다.
[아스티란짱짱: 게이트 가지 말 걸……. 나도 회의 참석할걸!!]
[영원: 그러게 오시지 그러셨습니까. 저희는 좋은 구경 했습니다.]
[마탑대표: 연주 님, 마탑 제 연구실 마법사들 어디 갔어요? 연구실뿐 아니라 마탑에 마법사 자체가 없네.]
[마법최고: 오늘 갑자기 다들 당일 연차 쓰던데요. 이런 날은 출근하면 안 된다나 뭐라나…….]
[홍: 밖도 난리임. 무슨 축제 벌어진 줄.]
랭커들도 공짜로 얻어진 지금의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각국의 협회에 연락해야 하는 박신우는 그렇지 못하겠지만.
“[탑 공략하신다더니 당분간은 쉬시겠네요?]”
소파에 나른하게 기대어 창밖을 구경하고 있는데, 아렐리아가 날아와 곁에 앉는다.
연신 싱글벙글 웃고 있는 채였다.
“그동안 골드 드래곤의 흔적이라도 알 수 있으면 좋겠는데.”
“[대놓고 활동하진 않을 테니 찾긴 힘들겠죠. 폴리모프가 가능한 드래곤들은 골치 아픈 존재들이니까요. 특히나 지금처럼 마왕님이 추적하고 있다는 걸 안다면 더더욱요.]”
“어차피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했어. 뭐, 그동안 쉬고 있으면 되겠지. 요새는 타 차원의 이종족들도 이상하게 잠잠하고…….”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나중엔…… 응? 전화 걸려 오는데요?]”
그녀는 어디론가 황급하게 날아간다.
곧 돌아온 아렐라이의 주둥이에는 어딘가 던져뒀던 핸드폰이 물려 있었다.
확인해 보니 발신자는 이도윤이었다.
[진 님, 저희 길드로 와 주실 수 있으십니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지금 바로 가면 되나?”
[네, 그래 주시면…… 뭐? 누가 왔다고??]
갑자기 놀란 듯한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급하게 전화를 끊었는지 기다려도 다시금 돌아오는 말은 없었다.
평소 예의 차리느냐고 먼저 통화를 중단하는 법이 없는 이도윤이다.
이번은 확실히 그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뭐, 길드일 텐데 무슨 일이야 있겠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밖을 나섰다.
빠르게 차를 몰고 가니 금세 그림자 길드에 도착했다.
요새 떠오르는 길드답게, 여전히 1층 로비부터 길드원들과 방문객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이상하게 오늘따라 느낌이 다르다.
“윽……!? 진 헌터님이 벌써 오셨어!! 빨리 길드장님께 말씀드려!”
“내가 그래서 좀 나중에 연락드리자 했는데……!!”
익숙한 길드원 몇 명이 나를 보자마자 어디론가 뛰어갔다.
허둥대는 뒷모습이 다급해 보인다.
어수선한 분위기 가운데, 한 길드원이 슬며시 다가왔다.
“하…… 하하. 진 헌터님 오셨습니까?”
“불러서 왔다만.”
“저…… 길드장님께 예상치 못한 손님이 찾아오셔서…….”
그 정도야 통화 내용으로 이미 짐작했다.
길드장 씩이나 되는 이도윤에게 손님이 하나둘도 아니고, 전혀 이상할 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을 보아하니 뭔가 엄청난 게 오긴 한 모양.
“길드장실 옆에 있는 대기실에서 기다리도록 하지.”
“앗……!! 진 헌터님!”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바로 걸음을 옮겼다.
나를 차마 붙잡지 못하는 길드원은 발만 동동 구른다.
“지금은 진짜 안 되는데…….”
오직 길드장과 측근만 올 수 있는 최상층부.
조용한 긴 복도를 따라가는데 인기척이 들린다.
역시나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박민호였다.
“오늘따라 단체로 약을 먹었나…….”
“형님?? 벌써 오시다니…… 아, 다 망했어…….”
내가 온 게 망하기까지 한 일인가.
미간을 찌푸리고 가만히 그를 쳐다보았다.
잠시간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그제야 그는 눈치를 보며 고개를 푹 떨군다.
“아니, 그게 아니라…… 후…….”
“대체 무슨 짓들을 하고 있기에. 내 인내심이 바닥나기 전에 말해야 할 거야.”
“……죄송합니다. 상황이 다 끝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근처에서 대기하기 위해 박민호와 함께 이동했다.
길드장실 바로 코앞을 지나가려는데, 큰 고함이 들린다.
무언가 싸우는 듯한 소리였다.
“손님이 아니라 불청객이었나.”
익숙한 이도윤의 목소리는 아니다.
그렇다면 찾아온 사람이 화를 내고 있다는 소리였다.
대체 한 길드의 수장인 그에게 저렇게까지 막대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누군지 생각해 보아도 떠오르는 사람은 딱히 없었다.
쾅-!!
“내 경고를 흘려듣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이도윤.”
굳게 닫혀 있던 문이 거칠게 열렸다.
그러곤 웬 사내가 묵직한 경고와 함께 밖을 나온다.
명품 정장을 맵시 좋게 차려입은 모습의 남자였다.
고집스럽게 다문 입과 날렵한 턱선은 이도윤과 닮아 있다.
“아무리 형님이셔도…… 아, 진 님…….”
하얗게 질린 얼굴의 이도윤이 따라 나온다.
나를 발견한 그는 잠깐 동안 화색이 돈다.
“……이 사람이 그 용병왕?”
이도윤이 형님이라고 부른 자는 나를 아래위로 훑는다.
삐딱하게 선 자세 하며 재수 없는 눈초리까지.
나를 아는 헌터라면 절대 할 수 없는 행동이다.
‘뭐 하는 새끼지.’
우선 이도윤이 아는 자이니 약간의 인내심을 발휘했다.
팔짱을 끼고 약간 작은 키의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당연히 내 시선은 곱지 않았다.
성격이 만만치 않은지 그는 욱하며 대들려 한다.
“이……!!”
“잠깐!! 형님, 그러시면 안 됩니다. 이분이 누군지 아십니까??”
“허?? 날 눈뜬장님 취급하는 거냐? 알다마다. 너와 할아버님이 요새 끼고도는 용병왕 아니신가. 요새 본가에 갈 때마다 우리 용병왕님, 진 님, 하는 소리가 귀에 박힐 정도야.”
“아시면 태도를 곱게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예의를 중요하게 여기시는 분입니다.”
“……뭐??”
그는 도저히 못 참겠는지 이도윤의 멱살을 대뜸 쥔다.
그래 봤자 헌터인 이도윤에게는 조금의 위협도 되지 않을 터였다.
나름대로 패악질을 부려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자 그는 인상을 찡그린다.
“어디서 낳아 온 놈인지도 모르는 너 따위가 날 가르치려 들다니……!”
카악, 퉤-!!
그는 손을 풀고 바닥에 침을 뱉는다.
무례한 태도에도 이도윤은 입술만 깨물고 있다.
그저 내 기분이 상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눈치만 살필 뿐.
하지만 그놈은 여전히 건들거리며 주둥이를 나불거린다.
“어이, 용병왕 씨. 나는 무식한 헌터들과는 달라서 떠받들어 줄 생각 전혀 없어. 이도윤도 그렇지만 그쪽도 요새 거슬리…… 아아악!!”
삿대질을 하고 있던 그의 손가락을 쥐었다.
약간의 힘을 주자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크아아악!!”
“……보통 민간인은 건들지 않는다만.”
헌터도 아니고, 연약하기가 짝이 없는 일반인들.
이미 스스로의 강함이 어느 정도인지 알기에 손을 대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그들을 대하는 건 오우거가 솜인형을 만지는 것과 비슷했으니까.
“그렇다고 내 앞에서 감히 건방을 떠는 놈을 그냥 두지도 않지.”
“으…… 큭!! 내가 누군지 알고!! 죽고 싶어!?”
“죽는다라…….”
나는 줄곧 눌러 왔던 마력을 약간 개방했다.
이 정도만 해도 일반인은커녕 웬만한 헌터들도 공포에 질리기 충분했다.
역시나 그는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털썩 주저앉았다.
고급스러운 바지는 축축하게 젖어 가고 있었다.
“흐, 흐어…….”
“진짜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놈이 말이 많군.”
저런 놈 따위야 마나를 쓰지 않고도 죽일 수 있다.
팔다리 하나쯤은 불구로 만들어 줄 생각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바닥을 기는 몰골이 우습기 짝이 없다.
기세등등할 때는 언제고, 마치 하찮은 벌레와도 같은 모양이다.
이미 모든 전의를 잃어버린 그를 보며 피식 웃었다.
“잠시, 잠시만요!! 진 님, 제발……!!”
그때 나와 그 사이를 이도윤이 가로막는다.
미간을 꿈틀거리자 그는 재빨리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제 사촌 형님입니다! 제발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내가 그런 것에 연연하는 사람으로 보였나.”
“물론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벌이라면 제가 받겠으니……!!”
이도윤은 이마마저 땅에 붙인 채 벌벌 떤다.
저런 놈이라도 핏줄이라는 건가.
가족 하나 없는 나로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다.
‘사촌이라면 한호의 이도하인가.’
평소라면 관심없겠지만 하도 뉴스에서 떠들어 대서 잘 알고 있다.
한호 그룹의 후계자의 하나뿐인 아들, 이도하.
저놈은 재벌가의 망나니로 유명했다.
사고 치고 다니는 것이 한둘이 아니라 한호에서도 거의 손 놓고 있는 상태.
과연, 저따위 행동이라면 가는 곳마다 사건 사고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제발, 제발 부탁입니다…….”
불쌍할 만큼 이도윤의 어깨가 떨린다.
그의 모습이 유난히도 작아 보인다.
평소 친하게 지내 왔던지라, 어쩔 수 없이 그간의 정에 이끌린다.
나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뱉었다.
“……알겠다. 이번만큼은 아량을 베풀지.”
“정…… 정말이십니까?”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는 눈물을 글썽이며 연신 감사하다는 소리를 한다.
나는 이미 기절한 지 오래인 이도하에게 다가갔다.
콰직-!!
“아아악!!”
발목 부분을 밟자 정신을 잃고 있던 이도하가 깨어났다.
고통에 이기지 못한 비명 소리에 복도가 떠나갈 듯하다.
저 멀리 있던 사람들 몇 명이 눈치채고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진…… 진 님??”
이도윤이 경악 어린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그저 넘어가는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계속 잠자코 구경하던 박민호는 달랐다.
당연한 일이라는 듯 조금의 당황도 내비치지 않는다.
“역시…….”
이 정도면 후유증도 없이 깨끗하게 나을 상처였다.
뼈가 완전히 으스러져서 힐러의 도움을 받아도 오래 걸리겠지만.
완전히 마무리를 하고서야 길드장실에 들어갔다.
뒤에 남은 이도윤과 박민호가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아량을…… 베푼다고 하시지 않으셨어?”
“이 정도면 형님께는 큰 아량이야. 요새는 좀 성격이 유해지셔서 남의 부탁도 잘 들어주시니까. 평소였으면 팔다리 하나는 기본으로 자르셨을 거야.”
“아무리 그래도 이건…….”
“뭐, 죽지도 않았잖아?”
그 말을 뒤로 복도에는 침묵만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