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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96화 (96/200)

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96화

지금 이 미친 길드장들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협회에서 랭커들을 모아 놓고 여는 회의이다.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은 성질의 것일 터였다.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자 그제야 그들은 내 눈치를 보며 일어설 준비를 한다.

“어차피 길게 할 회의인데, 이 정도는 괜찮을 겁니다. 앞에는 현 상황에 대한 소리들이나 하고 있을 테니까요.”

“늦은 놈들 변명치곤 긴데.”

“흠흠…… 아레스 길드장님 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우선 출발해야 하는 시간이긴 하니 저희는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강준하와 이도윤이 사무실을 떠났다.

하지만 여전히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랭커 한 놈이 더 남아 있다.

그를 향해 흘깃 시선을 던졌다.

그러자 박민호는 느긋하게 주변을 치우며 말했다.

“저는 기왕 지각한 김에 형님과 함께 가겠습니다.”

“쓸데없이 당당하기는.”

“초반에는 의례적인 말이나 할 텐데요, 뭘. 그리고 형님과 가면 어느 누가 잔소리하겠습니까?”

그는 활짝 웃으며 옷매무새를 정리한다.

알코올 냄새가 아직도 지독하지만 얼핏 보면 멀끔했다.

‘이놈 주량이 그렇게 쎄진 못할 텐데.’

그동안 무수히 많은 술잔을 기울여 본 나는 잘 알았다.

말짱한 척은 하고 있지만 아직 술기운이 사라질 시간은 아니었다.

특히나 박민호는 숙취가 심한 타입이었다.

의아한 마음을 숨기고 우선 박민호와 함께 밖을 나섰다.

하지만 역시나는 역시나.

엘리베이터를 탑승하자 그의 낯색이 급격하게 나빠진다.

좁고 답답한 곳에 있으니 술기운이 확 올라오는 것이다.

상태를 물어보려는 그때 박민호가 자진 납세를 시도했다.

“……형님, 저는 참여 못할 것 같습니다……. 갑자기 숙취가…….”

그는 헛구역질을 하며 입을 틀어막는다.

방금까지 술을 때려 부은 상태니 이상할 것도 없었다.

“죄송…… 우웁…….”

한심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본인도 민망하기는 한지 차마 시선을 마주치지 못한다.

연신 몸을 배배 꼬던 박민호는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마자 어디론가 뛰어갔다.

“나중에 뵙겠습…… 우욱!!”

목적지는 화장실이었다.

‘뭐, 어차피 회의에 도움될 놈도 아니니.’

냉정하게 말하자면 박민호는 그럴싸한 명함 하나 없는 헌터다.

굳이 따라간다는 걸 말리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끌고 갈 필요는 더더욱 없다.

신경 쓰지 않고 발걸음을 마저 옮겼다.

막 정문을 나서려는 때였다.

“진 헌터님!!”

가벼운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김지연이 있었다.

영원한 잠의 해독약을 제작하는 작업은 모두 끝났다 들었는데, 과연 얼굴이 전보다 밝았다.

마음속의 짐을 덜어 낸 것이 나에게까지 느껴질 만큼, 환한 미소가 눈에 띈다.

그래도 여전히 연구에 몰두하는지 흰 가운은 온갖 액체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저를 여기에 처박아 두신 뒤로 처음 뵙네요!”

그녀의 말속에는 뼈가 있었다.

본인은 스스로 눈치채지 못했는지 여전히 해맑았지만.

“잘 지냈나? 그런데 내가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밖을 보니 이도윤이 준비해 놓은 운전기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눈치를 주자 그녀는 허둥대며 무언가를 꺼냈다.

“아, 길게 시간 끌지 않을게요. 그렇지 않아도 이걸 택배로 보낼 예정이었는데…… 마침 잘된 것 같아서.”

그녀가 준비한 것은 커다란 상자였다.

그 안에는 알록달록 형형색색의 물약들이 가득하다.

아마도 아렐리아를 토할 뻔하게 만들었던 연금술의 연장선인 듯했다.

대뜸 건네기에 얼떨결에 그것들을 받아 들었다.

“또 이런 쓰레기를…….”

어차피 사용하기도 난감한 물약임이 분명했다.

나도 모르게 본심을 내뱉자 그녀는 울상이 되어 버린다.

“그래도 이번 연금술부터는 제가 참여해서 괜찮을 거예요. 그리고 진 님과 아시는 사이인 그분도 같이 작업하셨고요. 시중에 나와 있지도 않은 신기한 물약들이 많을 테니 한번 봐주기라도 하세요.”

버릴 종량제 봉투도 같이 달라 말하려 했지만 그녀는 간단한 인사와 함께 도망가 버렸다.

남은 것은 나와 오색찬란한 쓰레기뿐.

크레아시론의 도움을 받아 물건을 만들었다지만 연금 조 특유의 실력이 어디 가진 않을 터.

보나 마나 쓸 만한 물약들은 아닐 것이었다.

주변에 버릴 곳이 없나 둘러보았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다.

인상을 구기고 인벤토리에 대충 던져 넣었다.

“협회로 가신다 들었습니다. 바로 모시겠습니다.”

하염없이 나를 기다렸던 있는 운전기사에게 눈짓했다.

숙련된 드라이브 솜씨를 느끼자니 유난히 탑승감이 거지 같았던 헤르멘이 떠오른다.

그에 자연스럽게 내 시선은 손등으로 향했다.

나에게만 보이는 은빛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우정의 맹약: 현재 실버 드래곤 헤르멘과 친구를 맺은 상태입니다.]

문양을 살펴보자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른다.

허울 좋은 명칭에 비해 별다른 능력치 효과도 붙어 있지 않다.

쓸모라고는 쥐뿔도 없는 문양이었다.

굳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자면 어느 차원에 있어도 그와 대화할 수 있다는 것뿐.

‘아직 별다른 말은 없다만…… 그 수다쟁이 드래곤이 벌써부터 감당이 안 되는데.’

나는 지구로 돌아가는 걸 일부러 말하고 오지 않았다.

드래곤의 권능 중에는 차원 이동도 있기에 따라오겠다 징징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수호용으로서 일도 있기에 쉽사리 몸을 빼내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몇 번씩 찾아오는 일은 막지 못할 터였다.

벌써부터 귀찮아질 상황을 상상하니 자동으로 얼굴이 구겨진다.

나는 똥 씹은 얼굴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어느새 여의도에 있는 익숙한 헌터 협회의 건물이 보인다.

도착하니 협회 직원 몇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허, 정말로 진 헌터님이시군요. 계속 믿지 않았습니다만…… 오늘 회의에 참석하실 거라 들었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그들이 이끄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미 회의는 시작한 지 오래라, 건물 내부는 조용하다.

주변에 있는 직원들도 조심스럽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사방에 깔린 5대 길드의 길드원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지금도 몇 명의 길드원들이 나를 알아보고 지나갈 때마다 인사를 했다.

가볍게 무시하고 지나가는 중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나비 길드는 없군.”

국내 랭커와 웬만한 규모의 길드는 모두 모이는 자리일 텐데 나비 길드는 없었다.

그사이에 5대 길드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았다면 말도 되지 않는 일이다.

“나비 길드에서는 부길드장님 혼자 참여하셨습니다.”

“서채아가 앓아누웠다고 들었는데. 그 때문인가?”

“아, 역시 잘 아시는군요. 그래서 요즘 나비 길드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헌터들은 웬만한 병에는 걸리지도 않는다.

SS급인 서채아라면 더더욱.

‘그러고 보니 19층 공략 직전 갑자기 쓰러졌다 했지.’

아직까지 깨어나지 못했다면 가벼이 넘길 일은 아니었다.

블랙마켓에서 실험당하던 것이 문제가 된 것일까.

지금으로서는 그 사건밖에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입니다.”

서채아에 대해 나도 모르게 깊게 생각했었는지 어느새 회의실 앞에 도착했다.

협회 직원은 문을 열어 주고 돌아갔다.

느긋하게 안으로 들어서자 온갖 시선이 나에게 쏠린다.

회의는 잠깐 중단한 상태인지 분위기는 풀어져 있었다.

“허허…… 때마침 다음 안건으로 넘어갈 때 오셨군요. 환영합니다.”

김동식 협회장은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맞이했다.

주변은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길드부터 마탑까지, 많은 헌터들로 북적거렸다.

그중 비어 있는 자리에 앉자 몇몇 길드장이 아는 척을 해 온다.

“<검은 탑> 공략 후에 진 헌터님이 없으셔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거봐, 멀쩡할 거라 했잖아.”

“진 헌터님, 19층 공략을 도와주셨다고요? 덕분에 하루 만에 공략을 끝냈습니다.”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앞에 놓인 서류들을 훑었다.

다른 나라들의 <검은 탑> 진행 상황들과 현재 상태 등이 쓰여 있었다.

대충 보고 넘기려는데, 어디선가 다 죽어 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으…….”

주인공은 전에 보았던 주몽 길드의 권지나였다.

고개는 책상에 푹 처박혀 있다.

주변에 있던 길드원 몇 명도 비슷한 상황이다.

자리가 근처인지라 그 처참한 모습들이 생생하게 보인다.

“하하…… 어제 저희 길드 간부끼리 회식을 했던 바람에…….”

물끄러미 바라보자 주혜라가 멋쩍은 듯 웃어 보인다.

그 와중에 그녀는 과음하지 않았는지 멀쩡해 보인다.

‘술 마시고 회의에 참여하는 게 헌터계 유행인가.’

“길드장으로서 이런 꼴을 보여드려서 부끄럽네요. 별로 마시지도 않았는데…….”

“……네에에? 길드장님, 많이 먹지 않았다니요……!?”

엿듣던 권지나가 경악한 얼굴로 그녀를 돌아본다.

다른 길드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할 말이 굉장히 많은 표정이었다.

“어제 열 명이서 마신 소주가 일곱 짝이에요!! 거기에 맥주는 세지도 못…… 우웁!!”

미친, 살면서 소주를 짝으로 세는 소리를 들어 볼 줄이야.

말이 일곱 짝이지 총 210병이란 소리였다.

저 정도면 어제 술집 주인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어이가 없는 눈으로 주혜라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는 그저 싱긋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주몽 길드는 주량을 보고 간부를 뽑나…….’

“마법이라도 걸어 드리고 싶지만…… 숙취 해소 마법은 없어서요. 아니면 중독 해제 마법이라도……?”

그들을 보던 앞자리에 있던 신연주가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네온다.

얼굴은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표정이었다.

“괜찮, 아요…… 으윽…….”

권지나는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는 말투로 대답했다.

안타깝긴 해도 이건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었다.

아니, 주혜라가 불러온 재앙일까.

대충 들어 보니 술자리는 주혜라가 주도한 듯했다.

그 와중에 본인만 살아남은 것이고.

“헌터가 술에 지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죠. 다들 정진하세요.”

“……이게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으으…….”

청순하게 생긴 그녀가 술독에서 태어난 악마로 보일 지경이다.

나는 또 다른 주정뱅이를 향해 흘깃 시선을 돌렸다.

마침 이도윤 역시 나를 보고 있었는지 눈이 마주친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내 예상과는 달랐다.

숙취에 찌들어 있기는커녕 전혀 흐트러지지 않아 보였다.

그새 옷매무새를 정리했는지 말끔하기까지 했다.

의아하게 쳐다보자 그는 웃어 보이는 여유까지 보인다.

“다들 자리에 착석해 주십시오.”

때마침 박신우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약간의 휴식 시간은 끝이 난 것이다.

조용히 이야기를 주고받던 랭커들은 곧 입을 다문다.

그는 회의를 진행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그럼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19층까지는 아스티란이 주 무대였습니다. 다른 나라들 역시 비슷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20층부터입니다.”

“무엇이 나올지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다, 이 말인가요?”

“맞습니다. 9대 미궁은 끝이 났으니 현재로서는 아스티란의 금지된 영역들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북부나 사막이라면 몬스터가 아니라 지형 자체가 문제겠는데…….”

진지한 분위기의 회의는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근처에는 계속 생과 사를 오가는 헌터들이 있었다.

“으흑…….”

급기야 그들은 울먹이는 소리를 낸다.

“쉬잇, 조용히들 하세요.”

“길드장님, 미워…….”

주혜라의 단호한 경고도 의미는 없었다.

작게 혀를 차고 다시 회의에 집중하려는 찰나,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숙취 해소 마법은 없어도, 연금술 물약은 있을까.’

왠지 모르게 김지연이 떠넘긴 물약들이 생각난다.

별 희한한 것들을 만드는 연금 조이다.

그들이라면 숙취 해소 약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벤토리를 열어 물약을 뒤져 보았다.

역시나 별 쓸모도 없는 것들이 나오는 와중에 초록 병 몇 개가 눈에 띄었다.

‘미친…….’

[견디셔[C급]: 숙취 상태 이상을 풀어 주는 물약. 피로 회복 효과도 있어 한 병만 마시면 말끔하게 원래의 상태로 돌아옵니다. 다만 맛은 보장할 수 없습니다.]

마침 적당한 물건이긴 했다.

그래도 정말로 이딴 걸 만든 것에 어이가 없긴 하다.

그러고 보니 지나가는 말로 연금술사 팀에 회식이 많다는 말을 들었던가.

이건 그들이 살기 위해 몸부림친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시장에 내놓으면 잘 팔리겠군.’

맛 부분의 설명이 걸리긴 했지만 그 어떤 직장인도 주저하지 않고 마시겠지.

효과 하나는 시스템에서 보장할 정도였으니까.

‘직접 그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옆을 보니 내 실험체들은 여전히 책상에 얼굴을 처박고 있었다.

우선 바로 옆에 있는 주혜라에게 초록색 병들을 건네주었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약들을 확인한다.

곧 그녀의 눈동자는 점점 커져 간다.

“이런 게 있다니……. 정말 감사해요.”

주혜라는 작게 감탄하며 길드원들에게 물약을 나눠 주었다.

나의 작은 생체 실험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바로 인벤토리를 닫으려는 그때.

‘……이건 뭐지?’

마지막에 있는 물약이 이상하게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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