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92화
‘아스티란이어서 더욱 강력하다라…….’
굳이 이곳이어서 힘이 강할 이유에는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는데, 무언가 퍼뜩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그럼 혹시, <그녀>라는 존재가 아리엘인가?’
아스티란에는 고대부터 이어지는 전설 속 신들이 아주 많았다.
그만큼 사라진 신들도 적잖지만 아리엘이라면 달랐다.
주신 아리엘은 가장 유명하고 강력한 신이다.
마족들이 마신을, 천족들이 천신을 믿는다면 인간에게는 주신 아리엘이 있다.
마침 성서 속의 아리엘도 여성체다.
아스티란의 주신이니만큼, 여기서 가장 강력하겠고.
‘모든 게 딱 맞아떨어지는 것 같은데.’
본디 신의 권능과 힘은 신도들에서 나온다.
하지만 시스템을 약화시키겠답시고 전쟁을 할 순 없는 노릇이다.
나는 좀 더 편한 방도를 생각해 보았다.
‘신도를 없앨 수 없다면 성물과 신전을 부수면 돼.’
그것만 해도 영향력을 줄이는 데 충분할 것이다.
비록 전쟁통에 신전들이 대부분 사라졌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장소가 몇 개 존재한다.
심지어 그중 하나는 수도 주변에 있다.
가장 오래되었고, 역사와 전통이 있기로 유명했다.
그 정도는 부숴 줘야 한 번에 많은 힘을 줄일 수 있겠지.
더욱 좋은 점은, 여기서 멀리 떨어지지도 않다는 것이다.
“저, 주인님?”
마침 크레아시론이 모든 일을 마치고 밖으로 나온다.
몽둥이에는 무언가 가루들이 잔뜩 묻어 있다.
아마 스켈레톤을 산산조각 낸 잔해들일 것이었다.
“다 끝났나 보군.”
“예. 모두 주인님 덕분입니다.”
그는 뿌듯하게 대답한다.
온몸은 환희와 기쁨으로 떨리고 있다.
보는 사람이 기분 좋을 정도였다.
“받아.”
나는 그에게 준비했던 물건을 건네주었다.
황금빛 물체를 받은 그가 어리둥절하게 되묻는다.
“이건……?”
“고대 이시스 제국의 옥새이지. 원래 너의 것이니 돌려주겠다.”
옥새이자 크레아시론의 생명이 담긴 라이프 베슬.
이제껏 그를 얽매어 왔던 도구였다.
차마 상상하지도 못했었던 일일까.
그는 옥새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죽으란 말입니까?”
“이미 죽은 놈이 헛소리는.”
그는 마치 사약이라도 받은 충신이라도 되는 양, 어쩔 줄 몰라 한다.
난 잠잠히 떨리는 그의 목소리에 웃으며 대꾸했다.
“제국은 이제 연합의 형태로 분열될 것이다. 더 이상 고대 이시스 제국의 흔적은 남지 않겠지.”
제국은 점차 다른 미래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황제의 자리는 사라질 테니 더 이상 그 권위를 보여 주는 옥새는 필요가 없다.
이제는 박물관에나 가야 할 낡은 물건인 것이다.
순금이니 녹여서 금화나 만들어도 좋을 테고.
“받지 않겠습니다.”
“이제 나에게는 쓸모가 없다. 너라면 모를까.”
그는 고개를 들어 나와 얼굴을 마주했다.
안구가 있어야 할 텅 빈 공간에서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곳에서는 그의 시선이 느껴졌다.
한참 그렇게 나를 쳐다보던 크레아시론은 천천히 무릎을 꿇는다.
“저의 복수를, 그리고 제 딸의 복수를 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 남은 생을 주인님께 바치겠습니다.”
[크레아시론이 영원한 복종을 맹세합니다.]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옥새를 터져 나갈 듯한 빛이 휘감긴다.
이윽고, 금빛 물체는 사라지고 둥그런 마석만 남았다.
[갇혀 있던 라이프 베슬이 본래의 형태로 돌아갑니다. 맹세를 받은 소유자에게 영원히 귀속됩니다.]
[소유자가 죽는다면 크레아시론 역시 소멸하게 됩니다.]
마석은 서서히 내 몸에 녹아들었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그와 내가 깨지지 않는 무언가로 엮인 것이 느껴진다.
“후회하지 않겠나.”
리치는 라이프 베슬이 깨지지만 않는다면 영원히 살 수도 있는 존재이다.
인간들이 필사적으로 원해 왔던 불멸의 삶.
그의 말은 그 삶을 간단히 포기하겠다는 소리였다.
“절대.”
그는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
확고한 그의 말에서는 조금의 머뭇거림도 느껴지지 않는다.
“살아갈 이유라…….”
크레아시론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대답이 없었다.
나는 그의 앙상한 어깨를 쳐다보았다.
무언가 짐을 덜어 낸 듯 훨씬 홀가분해 보인다.
“그런 것쯤은 내가 만들어 주지.”
그는 그제야 얼굴을 들어 올리고 나를 쳐다보았다.
얼굴 표정은 도통 읽을 수 없지만 감격했다는 것만은 알 수 있다.
나는 그를 보며 한쪽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빡세게 구르다 보면 느끼는 바가 있겠지.’
자고로 노동은 삶의 원천이었다.
특히나 고될수록 더.
심지어, 마침 할 일도 있었다.
“크레아시론, 기왕 힘쓰는 거 한 번 더 하지.”
“어떤 일이든지요. 명령만 해 주십시오.”
“주신 아리엘의 신전, 그것도 부수러 가야겠어.”
“……네??”
* * *
바로 이동한 아리엘의 신전.
사람들에게 행운을 내려 준다는 속설로도 유명한 곳이다.
그만큼 오늘도 신도들과 신관으로 북적였다.
‘내게는 한 번도 행운을 준 적 없는 신이고.’
나는 삐뚤게 웃었다.
크레아시론은 나를 슬쩍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그래, 바로 진행해.”
이미 해 봤던 일이기에 일 처리는 빨랐다.
크레아시론이 마법을 시전하자 순식간에 결계가 생긴다.
“공…… 공격!? 그것도 리치야!! 당장 성기사들을 불러!!”
“감히 신성한 아리엘 님의 신전에 침입하다니!!”
생성된 결계 탓에 밀려난 사람들이 아우성을 친다.
부질없이 마법 결계를 두드리기도 했다.
어차피 저 정도로는 그의 마법은 절대 파괴되지 않을 터였다.
“크레아시론, 너는 메인 로비를 맡아. 나는 밑으로 내려가마.”
“저…… 그런데 정말 괜찮을까요? 신전 파괴라니. 신벌이 내릴지도 모릅니다.”
그는 염려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이미 죽은 자신보다는, 날 위한 걱정이었다.
“신벌?”
나는 그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이미 그따위 것은 신경 쓰지 않은 지 오래다.
세상에 나쁜 놈이 이렇게 많은데도 멀쩡하게들 살아간다.
그에 비하면 나는 착한 축에 속한다 자부했다.
굳이 걸리는 거라면 스킬 봉인 때와 같은 상황.
하지만 신전이 파괴되는 거야 한두 번도 아니고, 이 정도야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그래 봤자 게이트 파괴보단 덜할 테지.’
나는 바로 지하로 향했다.
이미 신관들은 크레아시론의 마법으로 강제 텔레포트 당했기에 텅 비어 있었다.
몇 번 와 본 적이 있던 곳이라 발길에는 거침이 없었다.
곧 눈앞에는 거대한 아리엘의 신상이 드러난다.
주변에는 철저하게 보관된 성물들이 깔려 있었다.
“시작해 볼까.”
어깨를 돌려 약간의 스트레칭을 했다.
폭렬의 페르아렌은 이미 내 손에 단단하게 쥐어져 있었다.
콰아아앙-!!
가뿐히 뛰어올라 신상을 가격했다.
대륙에서 제일가는 성물이라는 아리엘의 신상이 단숨에 산산조각 난다.
쿵-!!
바닥에는 그 잔해들이 굴러다닌다.
나는 그것들 역시 하나하나 조각냈다.
주변을 감싸던 신성력이 약화되는 게 느껴진다.
고대부터 내려왔다던 성물들도 마찬가지.
신성력으로 보호하고 있지만 내 검을 막을 수는 없었다.
콰쾅-!!
수십 개의 성물이 박살 난다.
어느새 눈앞에는 딱 하나만 남아 있다.
아리엘의 권능이 깃들어 있다는 성검이었다.
‘이것만 부수면 상자를 열 수 있겠지.’
검을 치켜올리려는 찰나.
갑자기 허공에서 강력한 기운이 쏟아진다.
하지만 그건 신성력이 아니었다.
[마왕이여, 제발 그만두게.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
짙은 마기가 백색의 신전에 어울리지도 않게 흩뿌려진다.
허탈한 마신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녀>의 힘을 약화시키라 하지 않았나.”
[아니, 그걸 어떻게 그런 말로 해석하는가?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
그가 침음을 흘리며 입을 다문다.
‘이게 아니었나?’
보다 확실한 방법이라 생각했는데.
주변을 훑자 난장판이 된 신전의 모습이 보인다.
[아스티란에서는 불가능하니 지구에 가서 열어 보란 뜻이었다.]
“그럼 진작 말을 그렇게 할 것이지.”
나는 불만스럽게 마신을 쏘아붙였다.
그의 나직한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심지어 <그녀>는 주신 아리엘이 아니야! 가뜩이나 아리엘의 권능이 약화된 상태인데, 지금 그녀가 얼마나 나를 들들 볶고 있는 줄 아는가?]
“……주신 아리엘이 아니라고?”
잘못 짚어 버렸나.
애꿎은 신 하나 털어 버린 셈이었다.
[아리엘은 지금 강신할 힘조차 없어. 대신 말을 전하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지. 그런 그녀가, 어떻게 나의 권능을 억누를 수 있단 말인가.]
내가 그 사정까지 어떻게 알겠는가.
이건 미리 이야기해 주지 않았던 마신의 탓이 전적으로 컸다.
미안한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다.
“어차피 행운의 축복 한번 내려 주지 않았던 신이니 이래도 싸.”
아리엘부터 여행의 신, 지혜의 신까지.
다른 귀환자들이 여러 신에게 축복 버프를 받는 걸 몇 번 보았었다.
하지만 나만은 달랐다.
축복은커녕 그 비스무리한 것도 전혀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불행 버프가 발동되지 않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건 그대의 행보가……. 하…… 되었다…….]
내 여지까지의 일들이 뭐, 왜.
나는 하늘에 대고 우러러 한 점 부끄러운 것이 없다.
과정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결과만 좋으면 된 것 아닌가.
지금의 나는 대륙을 구한 영웅이었다.
포상을 해 줘도 모자랄 판국이다.
“불만 있으면 직접 나와서 하라고 해.”
팔짱을 끼고 기운이 뭉쳐진 곳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는 말문이 막힌 듯 연달아 한숨만 쉰다.
[그게…… 응? 아리엘, 무어라 하였나. 울지 말고 이야기해 보게. 뭐? ……말을 전할 거라고?]
쩔쩔매는 마신의 목소리가 서서히 작아진다.
이윽고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흑…… 이…… 나쁜 놈아…….]
목소리의 주인은 주신 아리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