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91화
지금 내가 명맥을 이어받은 건 이시스넨 제국.
예전의 명칭은 이시스 제국이다.
고대 이시스 제국을 건국한 초대 왕, 테론은 나만큼이나 유명한 자.
그만큼 수도 근처, 화려한 형태의 무덤에 안치되어 있다.
위용도 대단한 이곳은, 제국민의 자랑이자 관광 명소로도 유명한 장소다.
대리석과 황금 장식으로 뒤덮인 무덤은 보기만 해도 제국의 위세가 느껴질 정도였다.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겠지만.
“그렇게 휘두르면 뼈 나간다. 손목에 힘 빼고 휘둘러.”
한쪽 손목밖에 남지 않았는지라 크레아시론은 영 엉거주춤하다.
균형을 잡기 힘들어 보였다.
쿵-!!
“이렇게 하면 됩니까?”
하지만 그는 배울 자세가 되어 있는, 좋은 학생이었다.
곧잘 해내는 게, 얼핏 이런 일에 소질이 보인다.
물론 나라는 훌륭한 스승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스트레스에는 역시 단순 노동이 최고군.’
생각 없이 무기를 휘두르는 것만큼 생각을 비우기 좋은 행동은 없다.
마법을 쓴다면 간단하게 파괴될 테지만 그러기에는 크레아시론에게 쌓인 한은 너무나도 많았다.
“왜 이걸 쥐여 주시나 했는데, 확실히 마법보다는 직접 하는 게 좋군요.”
“역시 사람은 몸을 움직여야 해.”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는 진지한 어조로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은근히 뿌듯해 보이는 기색도 가득했다.
치렁치렁한 로브 대신 허름한 옷을 입은 크레아시론은 누가 봐도 완벽한 노가다꾼이다.
처음에는 서툴게 무덤의 철거 작업을 진행했지만 금방 이 대공사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콰아아앙-!!
그와 나는 한동안 무아지경으로 연장을 휘둘렀다.
얼마나 부쉈을까.
주변을 둘러보니 역사적인 건축물은 망해 버린 폐허와 다름없게 변해 있었다.
처참한 현장을 보니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오랜만에 뿌듯함마저 느껴진다.
“대장님, 결계가 뚫리지 않습니다!!”
“궁에선 아직도 연락이 없나?? 궁정 마법사 지원해 달라고 연락한 지가 언제인데!!”
“이미 소식 전하러 간 지 오래입니다!”
“근데 왜 아직도 지원이 없어!?”
바깥 상황도 난장판이었다.
쉴 새 없이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문은 여전히 견고하게 닫혀 있었다.
“결계 마법을 제법 단단한 걸로 준비했군.”
“이 순간을 누구도 방해할 순 없으니까요.”
아크 리치까지 오른 그의 마법은 완벽했다.
소드 마스터쯤 데려오면 모를까, 고작 무덤을 지키는 경비병들의 힘으로는 역부족인 상황.
카일에게 언질까지 해 놓고 왔기에 궁에서 지원을 받을 수도 없을 터였다.
그들은 그저 손 놓고 무너지는 무덤을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이만하면 된 것 같군. 밑으로 내려가지.”
슬슬 본격적인 행동을 할 차례였다.
나는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향했다.
이어서 나온 어두운 통로를 걷는 내내 크레아시론은 말이 없었다.
“……여기입니까.”
통로 끝의 작은 공간.
중앙에는 온갖 보석과 황금으로 장식되어 있는, 거대한 관이 있었다.
그걸 보는 크레아시론의 분위기는 음울하기 짝이 없다.
“위선자 주제에…… 죽어서도 추앙받고 있었군요.”
그는 들고 있던 무기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가까이 다가간 백색의 관은 먼지 하나 허용하지 않을 만큼 번쩍거린다.
화려한 관은 마치 거대한 거울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 한쪽에는 해골의 모습을 한 크레아시론이 비친다.
“죽으면 끝이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쯧. 왜 이렇게까지 해 놓은 건지 모르겠군.”
나 역시 이곳까지 와 본 적은 처음이다.
지하 공간은 얼핏 봐도 정성스럽게 관리가 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멀끔했다.
역시 파괴하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말마따나, 제국민들의 피 같은 세금이 쓰일 만한 장소는 아니었다.
나는 팔짱을 끼고 주변 벽에 기대어, 여전히 말이 없는 크레아시론을 지켜보았다.
뼈밖에 남지 않은 그의 얼굴에서는 눈물이 흐르는 환영이 보이는 듯했다.
“……<헬파이어>.”
그는 곧 마법을 시전했다.
몸 안에 있는 마나를 모조리 끌어 올릴 듯한 기세였다.
한 손밖에 남지 않은 앙상한 손뼈 위에서 검붉은 불꽃이 넘실거린다.
저걸 던지면 테론 왕의 관은 순식간에 잿더미만 남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되었다.
“잠깐, 마법을 멈춰.”
나는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대체 왜 그러십니까? 설마 이제 와서 막으려고 하시는 겁니까??”
크레아시론은 눈에 띄게 당황한다.
그래도 착실하게 마법을 취소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간 말을 듣지 않아 얻어터지던 일들이 톡톡히 제 몫을 하고 있었다.
“설마, 그럴 리가. 아는 놈 관도 아닌데.”
“그렇다면 왜…….”
“모르긴 몰라도 몇백 년 동안 묵혀 온 원한이지 않나? 고작 그렇게 끝낼 셈인가.”
“예? 다른 방도가 없지 않습니까?”
그는 여전히 어리둥절하게 되묻는다.
내 눈에는 천진난만해 보이기까지 한 모습이다.
“복수를 위해 리치까지 된 놈이, 물렁하기는.”
작게 타박하자 그는 머쓱하게 고개를 떨군다.
하지만 이내 억울한 듯 궁시렁거렸다.
“이미 죽은 자인데, 대체 뭘 어떻게 하라는 말씀이십니까…….”
“다른 마법사라면 몰라도 너라면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나.”
그는 대마법사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흑마법사이다.
그것도 시체를 일으킬 수 있는 네크로맨서.
힌트를 주며 힐끗 관에 시선을 던졌다.
그제야 그의 턱뼈가 빠질 듯 크게 벌어진다.
“테론을 되살리라고요?”
나는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고로 대역죄인은 부관참시가 제격이다.
그러나 미동도 없는 뼈다귀를 부숴 봤자 큰 재미를 보기는 힘들 터.
“영혼은 없다지만 손맛은 챙길 수 있겠지.”
바닥에는 그가 내려놓았던 몽둥이가 굴러다닌다.
그걸 손에 들려주자 그는 얼떨떨하게 받아 들었다.
“아무리 뼈밖에 남지 않았다지만 한 번에 보내 줄 순 없잖아?”
그는 몽둥이와 나를 번갈아 본다.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지 말은 없었다.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니 손에 쥔 무기를 점점 강하게 부여잡는 게 보인다.
“크…… 크하…… 하하하하하하!!”
크레아시론이 갑자기 떠나갈 듯 큰 웃음소리를 낸다.
아니, 울음소리일까.
묘한 슬픔이 섞여 있었다.
그는 한참을 웃더니 나에게 가까이 다가온다.
“주인님을 따르기로 한 게,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로요.”
“그걸 이제 알았나.”
피식 웃으며 그의 말에 대꾸했다.
“제가 처음 모셨던 왕이 테론이 아니라, 주인님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을…….”
그는 작게 중얼거리며 등을 돌렸다.
목적지는 테론의 관이었다.
“<레이지 스켈레톤>!!”
크레아시론의 몸에서 검은 마나가 흘러나온다.
빠져나온 마나는 관에 흡수되었다.
쿠쿵-
보석으로 치장된 관 뚜껑이 묵직한 소음을 내며 열렸다.
곧 스켈레톤 하나가 허리를 세운다.
온몸에는 화려한 보석과 머리에는 황금의 관을 쓴 상태였다.
“테론…….”
그는 과거 테론 왕이었던 스켈레톤을 마주한다.
슬픔은 떨쳐 버렸는지 목소리에는 설렘마저 섞여 있다.
나는 자리를 비켜 주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쿵-!!
지하의 계단을 오르자마자 큰 굉음이 울린다.
본격적인 복수의 시작인 것이다.
‘아마 시간이 제법 필요하겠지.’
계단 층에 털썩 주저앉았다.
무너져 버린 잔해들이 보인다.
그곳에 테론 왕의 과거의 영광은 없었다.
주변을 훑었지만 이미 다 파괴된 탓에 흥미는 생기지 않는다.
‘뭘 하면서 시간을 때울까.’
고민하던 찰나,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물건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마신이 준 아티팩트가 있었지.’
퀘스트를 진행하고 보상으로 얻은 지도 꽤 되었던 것이 생각난다.
하지만 그것을 확인하기에는 여유가 없었기에 인벤토리에 처박아 뒀었다.
“인벤토리.”
인벤토리에서 받은 아이템들을 꺼냈다.
칠흑같이 어두운 정육각형의 조그마한 물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사용 방법을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이질적인 형태였다.
[??? 상자의 정보를 확인하시겠습니까?]
때마침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에 확인 버튼을 눌렀다.
몇 번 느껴 봤던 마신의 힘이 상자들을 감싼다.
그제야 그것들은 상자의 모양처럼 열릴 만한 이음새가 드러난다.
[무작위 상자[???급]: 무엇이 들어 있는지 확인할 수 없는 상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랜덤으로 등장합니다.]
이름부터 개 같은 냄새가 물씬 맡아진다.
게임으로 따지면 랜덤 뽑기와 같은 아티팩트였다.
한 번도 운이 좋았던 적이 없기에 앞으로의 운명을 직감할 수 있었다.
‘……마신 새끼…….’
기껏 고생한 보상이 이따위 것이라니.
처음에도 느꼈지만 어지간히 사람 괴롭히는 걸 좋아하는 신이었다.
미간을 찌푸리고 검은 상자들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째려본다고 상자가 겁먹고 열리지는 않는다.
성의 없는 손짓으로 세 개 중 하나를 열었다.
달칵-
상자가 약간의 틈을 보이며 열리려는 찰나.
시스템의 경고음과 함께 붉은색의 메시지가 떠오른다.
[존재해서는 안 되는 물건이 감지되었습니다.]
[경고! 무작위 상자에서 나올 아티팩트가 설정한 범위를 뛰어넘었습니다!]
[강력한 힘이 마신의 권능을 억누릅니다.]
“×친, 이게 무슨…….”
존재해서는 안 되는 물건이라니?
이해할 수 없는 문구들이 순식간에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그와 동시에 상자의 입구는 굳게 닫혔다.
심지어 열지도 못한 상자가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 사라진다.
‘대체 마신 놈은 여기다 뭘 집어넣었기에?’
살다 살다 저런 시스템 메시지는 처음 본다.
기대하라더니 무언가 엄청난 선물을 준비하긴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열 수조차 없다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오갈 데 없는 시선이 바닥을 향한다.
그곳에는 아직도 열지 못한 상자가 두 개나 더 굴러다닌다.
당장 상자째 부셔 보고 싶은 기분에 휩싸였다.
하지만 꼴에 신의 힘이 담긴 물건이랍시고, 흠집조차 나지 않을 게 분명했다.
나는 인벤토리에 남은 쓰레기들을 던져 넣었다.
‘×발 마신 새끼, 물건 좀 적당히 고를 것이지.’
하다못해 시스템을 이기기라도 하던가.
쪽팔리게 신이나 되면서 권능을 펼치는 일조차 못하다니.
마신을 섬기는 마왕이 되는 것에 대해 진심으로 회의감이 든다.
차라리 요정계의 요정수가 훨씬 나았다.
그건 나에게 뭘 시키지라도 않았으니까.
“하…….”
작은 한숨을 쉬었다.
궁시렁거림은 멈추지 않는 상태였다.
갑자기 주변을 묵직한 힘이 뒤덮는다.
‘이건…… 마기인가.’
익숙하다 못해 이젠 내 마력 같을 지경이었다.
잠자코 기다리자 역시나 익숙한 목소리가 귀에 들려온다.
[흠…… 무리였나.]
마신은 안타까운 어투로 중얼거린다.
“이딴 걸 선물이라고 주다니…….”
[큼큼…… 이건 나도 예상하지 못했던 바. 허나 방법은 분명히 존재해.]
“그럼 빨리 뭐라도 해 보던가.”
[간단한 이유지. 아마 <그녀>의 힘이 아스티란에서 특히나 강력하게 미치기 때문일 터.]
“힘이 강력하다라…….”
[그렇다네. 그러니…… 상자…….]
“……상자 뭐?”
마신의 목소리가 점점 작게 들린다.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는 오직 상자뿐이었다.
공기 중에 머무르던 마기는 어느새 사라진 지 오래였다.
[경고! 강력한 힘이 마신의 힘을 일시적으로 약화시킵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다시금 떠오른다.
내용을 보아하니 명백하게 마신의 조언을 막는 의도였다.
하지만 완벽하진 않지만 이미 힌트는 어느 정도 들은 뒤다.
‘시스템의 힘을 약화시키면 상자를 열 수 있다.’
말로는 간단하다.
하지만 일반적인 몬스터도, 인간도 아닌 시스템이다.
그 힘을 약화시킨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