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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90화 (90/200)

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90화

첫 손님은 불만을 잔뜩 가진 헤르멘이었다.

뒤를 이어 마르바스도 재빨리 들어온다.

“설마 내가 마왕님과 같은 인간들을 괴롭히기라도 하겠는가?”

그는 내 눈치를 보며 말한다.

얼굴에는 억울함이 잔뜩 묻어 있다.

궁에 눌어붙은 드래곤 한 마리, 그리고 관광객 마족들.

그들은 번갈아 가며 나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요즘의 집무실은 거의 사랑방이 되어 버린 상태였다.

“여기가 내 집무실이지, 너희의 방은 아닐 텐데.”

차갑게 쏘아붙이자 그들은 잔뜩 기가 죽어 버린다.

“……죄송합니다, 마왕님.”

“왜 나까지 이 더러운 마족과 같이 엮는 건가?”

“마르바스의 인상이 좀 험하긴 하죠.”

도자기가 달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집무실에 항상 망부석처럼 앉아 있는 릴리스다.

우아하게 찻잔을 들어 올리는 그녀의 모습은 느긋함이 묻어난다.

마치 자신의 성마냥 편해 보이기까지 했다.

“대체 마계는 뒀다 뭐 하고…….”

“하지만 여기가 더 재밌는걸요?”

그녀는 천연덕스럽게 대꾸한다.

마르바스부터 시작해서 간간이 하급 마족들까지.

요즘의 마계에는 아스티란 관광 열풍이 불어왔다.

물론 처음의 마족들은 하등한 인간이니 뭐니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마계의 공작들이 문제의 원인이 되었다.

허구한 날 자리를 비우고 대륙에 내려오는 탓에 그들이 관심을 가진 것이다.

이제는 아스티란을 다녀오지 않은 마족들은 유행에 뒤처졌다며 따돌림까지 당한다고 들었다.

그에 마족을 처음 만나는 대륙인들이 겁에 질리는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오히려 마족들은 인간들과 털끝 하나 닿으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기겁을 했다.

그들은 명백히 인간이자 마왕인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릴리스 공작님, 여기 다과입니다.”

“어머, 고마워요.”

“별말씀을. 다른 요청이 있다면 바로 말씀해 주세요.”

궁의 시종들도 슬슬 식충이 마족들에게 익숙해졌다.

벌벌 떨던 것도 잠시.

금세 적응하고 마족을 일반적인 귀족과 다름없이 대하고 있었다.

이제는 서로 거리낌 없이 대화할 정도였다.

“전부터 생각했는데, 하녀장 일솜씨가 아주 마음에 들어. 혹시 여기 말고 마계의 내 궁에서 일할 생각 없나?”

마르바스는 입맛을 다시며 궁의 하녀장에게 말을 던진다.

눈빛은 마치 잡아먹을 듯 강렬하다.

하지만 중년의 하녀장은 그 세월만큼이나 산전수전 다 겪은 프로였다.

그녀는 익숙한 듯 담담하게 대꾸했다.

“영광입니다. 하지만 죄송스럽게도 딸린 식구가 많아서 거절해야겠군요.”

“흠, 그런가? 아쉽게 됐군. 마음이 바뀐다면 언제든 말해. 아니면 마족의 계약이 필요할 때 나를 부르도록. 영혼 같은 건 받지 않고 흔쾌히 해 주지. 뭐, 무료이니만큼 온 대륙을 파괴하는 것처럼 대단한 건 못하겠지만.”

“말씀 감사합니다. 마계 공작님의 계약이라면…… 한 나라의 왕도 가능하겠군요.”

“원하는가? 그래, 하녀장보다는 왕이 더…….”

마르바스는 하녀장의 농담을 진짜로 받아들였는지,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저러다 정말로 나라 하나 던져 줄 기세였다.

작게 한숨을 쉬고 하녀장에게 나가라 손짓했다.

그녀는 곧 소리 없이 웃으며 방을 빠져나갔다.

“할 일들도 없는 건가.”

“이왕 할 거면 흑마법사로 만들어 주는 것도…… 음? 내 계약자는 어디 갔는가.”

이미 하녀장은 마르바스의 계약자가 돼 버린 지 오래였다.

그녀가 단단히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뭐, 마계는 평화로우니까요. 이상하게 마족들도 점점 차분해지는 것 같고요.”

릴리스는 방긋 웃으며 대꾸했다.

그녀의 말이 맞긴 했다.

파괴와 싸움을 일삼던 마족들은 어딘가 나사 빠진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래 봤자 사이코패스가 동네 양아치로 변한 정도였지만.

이 모든 건 내가 정식으로 마왕이 되면서부터였다.

[마계의 지배자 마왕으로서 마계와 동기화 중…….]

마왕이 된 직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시스템 메시지.

정보창 한쪽 구석에는 동기화 중이라는 메시지가 떠 있다.

요정왕이 되었을 때 요정수와 동기화한다는 것과 똑같았다.

그때는 요정들의 타락을 없애는 역할을 했지만 마계의 경우에는 조금 다른 듯했다.

‘아마도 저 동기화라는 것이 마족들을 변화시키는 주요 원인이겠지.’

“그러고 보니 전투에 대한 갈망이 좀 줄어들었군. 뭐, 강한 상대를 볼 때는 여전하지만.”

그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헤르멘을 쳐다본다.

그 시선을 받은 헤르멘은 금세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아스티란에서 그 어떤 싸움도 금지다. 어긴다면 어떻게 될지 잘 알겠지.”

아직까진 별다른 사고가 없었다지만 내가 돌아간 뒤는 모르는 일이다.

헤르멘이 제국 연합의 수호용으로 제 역할을 하겠지만 일이 터진 뒤에는 늦을 테니.

마르바스는 내 경고에 약간 움찔한다.

하지만 곧 가슴을 쭉 펴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당연한 일입니다. 이미 마족들에게도 엄포를 해 놓았습니다.”

“나까지 나서는 일은 절대 없게 해.”

내가 손을 대는 순간 그저 그런 상태로 끝내지 않을 테니.

어찌 보면 마계와 아스티란 둘 다 나의 소속이다.

나로서도 그들이 사이가 좋지 않은 건 원치 않았다.

“주군, 여기 계셨습니까? 아! 마르바스 공작도 있었군요.”

“오, 내 친우 한스 아닌가.”

“마침 잘되었네. 저번에 하던 술 내기, 마저 하는 것은 어떤가?”

“으하하, 아주 좋지! 그렇지 않아도 마계에서 만든 술을 가져왔네!”

너무 사이가 좋은 것도 탈이었지만.

한스와 마르바스는 이미 같은 주인을 모시는 수하라며 친구가 된 지 오래였다.

물론 친구라기보다는 술친구에 더 가깝긴 했다.

그래도 나이로 따지면 천 년 가까이의 차이가 있는데, 그 세월의 간극은 엿 바꿔 먹고 저리된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마르바스, 또 얼마나 마시려고 그래요?”

릴리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일어선다.

아마도 그들을 따라갈 생각인 듯했다.

“마족이 걸려 오는 승부를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마르바스는 능글거리는 말투로 대꾸했다.

곧 카일은 떠나는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저놈, 잡아 올까요?”

어느새 한스 경이라는 호칭조차 생략되었다.

낮부터 술이나 퍼먹는 그가 어지간히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사실 저 꼬라지는 오늘의 일만은 아니었다.

그나마도 여태껏 참다, 드디어 한마디 꺼낸 말이겠지.

아마 허락한다면 당장 머리채를 잡아끌고 올 터였다.

“지금은 그대로 둬.”

“예? 하지만…….”

그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다.

당연히 벌을 주리라 생각한 듯했다.

평소라면 나라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었다.

“저 자식, 일주일 뒤면 북부로 보내 버릴 거니까.”

내가 며칠 동안 처리한 서류에는 한스에 대한 것도 있었다.

그를 북부 영지의 공작에 임명하는 내용이다.

말이 좋아 공작이지, 북부는 모두가 꺼리는 영지.

거기로 가면 한동안 그 좋아하는 술은 입에도 못 댈 것이다.

“북부 영지 말씀이십니까? 거긴…….”

“몬스터가 발에 차이는 곳이지.”

슬쩍 웃으며 대답하자 카일 역시 마주 보고 웃는다.

상당히 만족한 듯한 미소였다.

“어차피 행정 업무라곤 쥐뿔도 못하는 놈이야. 몸뚱이나 굴리면 그만이지.”

“무식한 한스 경에게 딱이군요.”

“그래, 일은 이만하면 된 것 같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며칠 동안 쉴 새 없이 일한 탓에 온몸이 찌뿌둥한 기분이다.

가볍게 스트레칭을 해도 몸은 도통 풀리지 않는다.

무언가 근육을 사용할 만한 일이 필요했다.

‘슬슬 그걸 할 때인가.’

조만간 시도할 일이긴 했는데, 지금 타이밍이 괜찮아 보였다.

물끄러미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언덕 위에 대리석으로 깎아 만든 건물이 보인다.

고대 이시스 제국의 초대 왕, 테론 왕의 무덤이다.

멀리서 보아도 그 규모며 화려함은 여전했다.

하지만 그 주인의 과거를 아는 나에게는 역겨운 모습이다.

‘자고로 배신한 놈들은 죽어서도 복수해 줘야 하는 법.’

나는 아직 크레아시론의 복수를 잊지 않았다.

그 무덤에 침을 뱉게 해 주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리고 여태껏 수고한 그를 위해, 단순히 그 정도로 끝낼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카일, 잠시 뒤 테론 왕의 무덤에 사고가 터질 거야.”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냥 그런 게 있다는 것만 알아 둬. 아마 지원 요청을 해 올 텐데, 무시하도록 하고.”

“일단은 알겠습니다.”

그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예고까지 해 줬으니 나머지는 알아서 잘 처리해 주겠지.’

고개를 돌려 집무실 내부를 훑었다.

서류가 어지럽게 놓인 책상에 잠시 시선이 간다.

제국 설립 후 백 년이 가까운 세월 동안 나와 함께한 것이다.

펜이 놓인 위치며 서랍까지.

내 손때가 묻지 않은 곳은 없었다.

가볍게 책상을 만지자 차가운 대리석의 냉기가 느껴진다.

카일은 그저 말이 없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카일, 그동안 수고했다.”

그와 눈을 마주했다.

색이 옅은 회색 눈동자가 흔들린다.

내 말의 의도를 알아차린 것이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수많은 감정이 휘몰아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하지만 내가 유일하게 읽을 수 있는 감정은 오직 슬픔뿐이었다.

“……네, 여태껏 감사했습니다.”

카일은 씁쓸한 얼굴을 한다.

그러나 잘게 떨리는 목소리에 비해 대답은 단출하다.

“감사라…… 그래.”

그의 말이 업무 처리에 관련된 말이 아님을 잘 안다.

인생의 반절을 함께한 나에 대한 감사겠지.

굳이 긴말은 필요가 없었다.

“한동안 못 보겠군.”

피식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는 입술을 깨물며 시선을 피한다.

굳어 있는 얼굴은 도통 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잘 지내고 있길.”

작별 인사는 짧을수록 좋다.

가볍게 말하고 걸음을 옮겼다.

방문을 나서려는 그때, 뒤에서 작은 소리가 들린다.

“다시…… 돌아오시긴 하실 겁니까?”

미련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다.

차마 나를 붙잡지 못하는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래, 일이 다 끝난다면.”

구태여 뒤를 돌아보진 않았다.

다시금 멈춰 있던 발걸음을 재촉했다.

* * *

인적 드문 곳에 도착하자마자 변화하는 공간을 사용했다.

마법 재료들이 즐비한, 익숙한 초원이 펼쳐진다.

빠르게 걸음을 옮겨 오두막의 문을 열었다.

“……이번에는 안 놀고 있었습니다만.”

그는 지레 찔려서 손에 들린 연구 도구들을 흔들어 보인다.

박신우에게 넘길 스크롤들은 이미 만들었는지 구석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시키신 일들도 다 했습니다.”

“혹시나 했는데 여기 있었군. 김지연과 연구한다던 것은?”

“아, 그 헌터 말입니까. 이미 시험작 몇 개를 만든 상태입니다. 재밌는 헌터더군요. 재능도 충분하고요.”

그는 하던 실험에 다시 집중한다.

대충 근황을 묻기 위해 온 거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등을 돌린 채 부지런히 움직이는 그에게 툭, 말을 뱉었다.

“크레아시론, 내가 전에 했던 말 기억하나?”

“예? 어떤 말씀이신지…….”

그제야 그는 어정쩡한 걸음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네가 이시스 제국의 초대 왕에게 유감이 많다고 했었지.”

“……갑자기 그건 왜……. 맞습니다.”

크레아시론은 금세 침울해진다.

잊고 있던 과거를 떠올리기라도 하는지 앙상한 손은 떨리기까지 한다.

“너를 받아들일 때 테론 왕의 무덤에 침을 뱉을 수 있게 하겠다고 했던 것, 잊지 않았나.”

“……네, 당연합니다.”

나는 한쪽 입꼬리를 들어 올린 채 인벤토리를 열었다.

“마음이 바뀌었다.”

수많은 아이템 사이에서 적절한 것을 두 개 꺼냈다.

기다란 몽둥이 형태의 무기들이었다.

그중 하나를 그에게 안겨 주었다.

“연장 들어.”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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