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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88화 (88/200)

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88화

“황제 폐하께서…… 드래곤을 타고 오셨어……?”

자고로 비싼 차는 승차감보다는 하차감이 좋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드래곤이라는 탑승물은 그 어떤 것보다 적절한 대상이었다.

하차하는 순간, 모두의 경외감과 감탄이 쏠렸으니.

“운전 솜씨가 이게 뭐지? 주차 똑바로 못해??”

“[미안하다, 친우여.]”

허나 하차감이 좋으면 뭐 하겠는가.

‘이토록 거지 같은 착지라니.’

덕분에 아끼던 정원이 망가져 버렸다.

불쾌감을 숨기지 않고 헤르멘을 타박하자 그는 재깍 미안함을 표시했다.

하지만 전설 속 생물의 사과에도 이미 폐허가 되어 버린 정원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의 거대한 발에 밟힌 화단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허억!! 백 년 만에 한 번 피운다는 희귀한 꽃이…….”

그건 주변에서 지켜보던 시종들도 마찬가지였다.

황제의 정원에 있는 만큼 이곳에 심어진 관목들은 모두 돈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 귀한 종자들이다.

그들은 처참하게 짓밟힌 꽃들을 보며 울먹였다.

헤르멘은 눈치를 보더니 슬그머니 발을 치운다.

하지만 그건 옆에 있는 화단을 다른 희생양으로 삼는 행동일 뿐이었다.

“저건 북부에서만 자라는 스노우 화이트…… 끄윽.”

“시종장님!! 정신 차리세요!”

거의 졸도하기 직전인 시종들을 보며 그는 쭈뼛거리며 폴리모프를 시전했다.

반짝이는 은발을 나붓하게 휘날리는 헤르멘.

그는 고고하게 턱을 올리며 주변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그건 비단 아름다운 외형 덕만은 아니었다.

“……살아생전에 드래곤을 실제로 볼 수 있다니.”

“대체 폐하께서는 어디까지 우리를 놀래킬 셈이신지…….”

귀족들은 체면상 힐끔거리며 수군거린다.

하지만 눈빛은 반짝거리는 것이, 흥분은 숨기지 못한 채였다.

“주군, 이게 무슨…….”

카일은 표정을 굳히며 황급히 나에게 다가왔다.

눈동자는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직도 어떤 상황인지 파악이 되지 않은 것이다.

“늦지는 않은 것 같군.”

나는 화려하게 꾸며진 주위를 둘러보았다.

맑은 날씨와 어우러지는 파티와 치장한 귀족들.

과거에도 종종 보던 익숙한 풍경이다.

드래곤이라는 불청객이 있는 것만 제외하면 기억 속에 있던 모습 그대로였다.

‘귀찮아서 잘 참여는 하지 않았지만.’

넓은 야외 연회장에는 아는 얼굴들이 몇몇 눈에 띈다.

나와 야근을 하며 밤을 불태우던 재무 대신과 신하들도 여전한 모습이다.

“허허…… 폐하, 정말로 다시 돌아오셨군요. 방금까지도 공작을 믿지 않았습니다만.”

재무 대신은 그간 고생했던 탓에 카일과 비슷한 동년배지만 유난히 늙은 모습이다.

하지만 눈시울은 붉어질지언정 그의 얼굴은 그 누구보다도 밝았다.

오늘 일을 처리하려면 다시 어두워지겠지만.

나머지와도 눈인사를 마치고, 나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럼, 파티를 시작하지.”

황궁 파티의 시작을 알리는 말은 오직 황제의 권한.

오랜만에 듣는 말에 귀족들은 기어이 손수건에 눈물을 훔치고 말았다.

주변에 있던 악단들이 재빨리 음악을 연주한다.

분위기는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위대하신 대제께 인사 올립니다.”

상석에 앉아 자리를 잡자 하나둘 사람들이 모여든다.

과거 나와 알고 지내던 귀족들부터, 새로 일을 맡게 된 젊은 신흥 귀족들까지.

축하 선물을 받으며 한마디씩 건네는 것도 한참이었다.

“아직 죽지도 않고 살아 있군.”

피식 웃으며 말을 건네자 주변의 신하들은 와르르 웃는다.

“제국을 위해서, 그리고 주군을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없지요.”

“사실 드래곤보다는 폐하의 귀환이 더 놀랍습니다.”

“하긴, 전에 일들 생각해 보면…… 드래곤쯤이야.”

그들은 내 옆의 헤르멘을 힐끔대며 말했다.

은근슬쩍 소개를 요구하는 행동들이다.

하지만 시선이 따갑지도 않은지 그는 파티를 정신없이 구경하고 있었다.

“이게 인간들의 파티란 말인가……. 책에서 본 그대로군.”

마치 동물원에 처음 온 아이 같은 모습이다.

현자로 활동할 때도 귀족의 파티에는 초대받지 못했다고 하니 저럴 만도 했다.

지금 이 상황이 그에게는 별천지와 다름없을 것이다.

그렇게 한동안 파티장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헤르멘도 구경은 이만하면 할 만큼 했을 테고…….’

슬슬 파티가 무르익었다.

이제는 시간이 되었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귀족들은 숨을 죽이고 나를 향해 천천히 무릎 꿇는다.

“다들 나의 귀환을 위한 파티에 온 것을 환영하는 바이다.”

좌중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감동과 그리움, 그리고 경외감.

나를 올려다보는 그들의 눈에서 모든 복합적인 감정들이 느껴진다.

“모두 내가 없는 동안에도 제자리에서 제국을 위해 애썼더군. 내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야.”

내 마지막 말에 분위기는 점점 경악으로 물든다.

차마 입을 떼지는 못하지만 대체 무슨 말을 하냐는 얼굴들이다.

“그래서…… 오늘 이후로 나는 황제의 자리를 내려놓으려 한다.”

“말도 안 됩니다!!”

“다시 돌아오신 것이 아니셨습니까??”

결국 귀족들은 큰 소리를 낸다.

황제의 앞에서 무례를 저지른다는 생각은 저 멀리 던져 버린 상태였다.

퍽-!!

어디선가 부드러운 물체가 수직 낙하하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 보니 그 정체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허……?”

하루아침에 빚더미에 올라선 사람이 있다면 저런 얼굴일까.

한스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거대한 쟁반을 들고 있었다.

바닥에는 내 키보다 더 큰 케이크가 엉망이 되어 떨어진 채였다.

제일 위에는 ‘축, 대제의 귀환’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어쩐지 계속 보이지 않더니 깜짝 선물을 준비한 모양이었다.

“주군, 이 말은 듣지 않은 걸로 하겠습니다.”

카일 역시 딱딱한 어조로 말한다.

잔뜩 굳은 표정과는 달리 꾹 쥔 주먹은 떨리고 있었다.

깊은 눈동자에는 절망마저 느껴진다.

“저희를 이리 버리실 수는 없습니다!!”

귀족들은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나를 뜯어말린다.

즐거웠던 파티 분위기는 망한 지 오래였다.

하지만 격렬한 반응 속에서도 나는 무덤덤하게 서 있을 뿐이다.

‘이 정도쯤이야 예상했다. 이건 반드시 해야 할 일이야.’

무려 백 년 넘게 통치했던 황제 자리를 내려오는 일이다.

오히려 반대가 없으면 더 이상했다.

그거야말로 한 번쯤은 쿠데타를 의심해 볼 때였다.

“앞으로 이시스 제국은 구 왕국들의 경계로 쪼개어 연합의 형태로 이루어질 것이다. 더는 황제라는 존재가 필요 없도록.”

아스티란에 돌아왔을 때부터 생각했던 일이다.

격동의 시기는 이미 지났고, 이제 매일같이 일어나던 전쟁은 옛날 일이 되었다.

제국을 묶어 주는 역할을 할 자는 더 이상 필요가 없다.

계속 이처럼 황제를 공석으로 두고 있느니 차라리 없애는 편이 나았다.

‘떠날 사람의 자리는 없어도 되겠지.’

아스티란에 더 이상의 영웅은 필요가 없다.

심지어 과거라면 모를까, 이제는 나 대신 이들을 지킬 자도 있다.

“헤르멘.”

옆에서 눈치만 살피던 헤르멘이 슬며시 내 곁에 선다.

이미 같이 계획했던 일이기에 그의 태도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모두 보아서 알겠지. 헤르멘의 정체는 드래곤이다. 그리고…… 내 친우지.”

“친구…….”

그는 내 마지막 말을 곱씹는다.

잠시 멍하니 있던 그는 곧 정신을 찾고 나를 향해 돌아본다.

얼굴은 환희에 차 감격으로 젖어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없겠지만 제국 연합을 지킬 수호용은 남을 것이다. 몇천 년이 흐를지라도.”

그들은 내 강경한 말투에 더 이상 대답조차 하지 못한다.

어차피 나 없이도 잘해 왔던 자들이다.

당분간은 혼란스럽겠지만 곧 제자리를 찾겠지.

“……잘해 보이겠다. 나의 친…… 구를 위해서라도.”

그의 시선에는 드래곤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만큼 긴장이 섞여 있었다.

수호용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굴 일인지.

그가 조금 우습게 느껴져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래, 내 손으로 일궈 낸 제국이니 실망시키지 말도록.”

“반드시.”

헤르멘의 청은빛 눈동자에는 굳은 의지가 담겨 있었다.

* * *

귀족들은 모두 돌아가고, 짧았던 파티 자리는 끝이 났다.

더 남아 있을 자들은 있으라 말하긴 했지만 이 상황에서 순수하게 즐길 사람은 없었다.

“……주군.”

“아니, 이게 말이 됩니까?? 젠장, 전부터 폐하의 의중은 알아차리기 힘들었지만 이번은 정말 모르겠습니다.”

카일과 한스가 득달같이 나를 쫓아왔다.

한 명은 절망하고, 한 명은 분노한다.

하지만 슬퍼하는 얼굴은 모두 같았다.

“이미 너희에겐 미리 언질 주지 않았나. 너희를 위해 살라고.”

“그게 이런 말씀이신 줄은 몰랐습니다!”

“어떻게 그게 같은 말입니까??”

그들은 점점 이성을 잃어 간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어 말문마저 막힌 듯하다.

‘시간이 필요하겠지.’

벌게진 얼굴들을 뒤로하고 졸졸 쫓아오는 헤르멘과 함께 중앙궁으로 향했다.

다른 곳은 조금씩 바뀌었지만 이 장소만큼은 예전과 똑같았다.

마치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아주 난리들이군. 그깟 황제 자리가 뭐라고.”

시종들을 모두 물린 후 내가 쓰던 방의 기다란 소파에 느슨하게 걸터앉았다.

헤르멘은 어색한 몸짓으로 내 앞에 마주 앉는다.

“……정말 괜찮겠나? 그대를 진심으로 따르던 자들 같았는데.”

“그래서 더더욱 필요한 일이지. 또 나를 위한답시고 헛짓거리들을 하면 곤란해.”

“그거야 그렇다지만…….”

그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훑어본다.

온갖 화려한 장식품과 가구들에 홀린 듯 정신없이 구경하는 모습이다.

“마음에 드나?”

“물론. 인간의 문명은 확실히 놀랍기 그지없어.”

“그럼 네가 이 방을 이어서 쓰면 되겠군.”

“……뭐?”

그는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어차피 머무를 곳이 필요하지 않나? 나는 이곳에 돌아오지 않겠지. 혹시 다시 온다 쳐도, 그게 언제일지 장담하지 못해.”

“……그렇지. 그대는 이방인이니. 그것도 탑에 오르려는 자.”

“잘 알고 있군. 그러니 그 친구비라는 것 좀 받아야 할 때가 온 것 같은데.”

내 말에 그는 줄곧 띄우고 있던 미소를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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