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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87화 (87/200)

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87화

“인간을…… 그것도 지구에서 온 헌터를 구경하기 위해서?”

지금 이걸 나보고 믿으라고 하는 개소리인지.

그럼 곱게 구경이나 할 것이지 골렘은 왜 정성 들여 제작해 놨단 말인가.

“미궁은 왜 다시 원상 복구해 놓은 거지?”

“이방인들은 강하다고 들었지. 한번 확인해 보고 싶었어. <예언>도 실행할 자들인데, 그 정도 사소한 곤란은 쉽게 이겨 내야 할 것 아닌가.”

그저 테스트였을 뿐이라는 소리였다.

생각보다 간단한 이유다.

하지만 나를 어이없게 만들 정도로는 충분했다.

기가 찼지만 도대체 어디까지 하나 싶어, 잠자코 그 녀석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들어 보았다.

“그대만 아니었다면 조금 더 볼 수 있었는데! 하필 수수께끼의 허점을 발견해 낼 줄은……!”

“말은 똑바로 해야지. 허점이 아니라 문제 자체가 틀려먹었지 않나.”

현대 과학에 처참하게 패배해 버린 현자.

맞는 말을 하자 뼈를 정확히 맞은 것인지 잔뜩 억울한 기색이다.

그는 어느새 씨근덕거리며 내 쪽을 향해 걸어온다.

치렁치렁한 로브가 답답한지 어느새 머리 쪽은 걷어 내린 채였다.

그 안에는 전에 보았던 새하얀, 고운 얼굴이 있었다.

반짝이는 은발을 길게 늘어트린 외관은 눈의 요정을 연상케 한다.

여전히 얼굴만은 없는 사연도 만들어 낼 만큼 신비로웠다.

“이세계인이라면 이번에는 정말로 인간과 친구가 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그는 못내 아쉬운 기색으로 중얼거린다.

쓸쓸해 보이기까지 한 그 모습에서는 대학 시절 보았던 아싸의 기운이 넘실거린다.

무시하려 했지만 투정으로 들리는 그 말에는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단어가 있었다.

“인간과 친구라. 그딴 소리를 믿으라고 하는 건가.”

“그래. 그 정도 강하고, 편견이 없는 존재들이라면.”

“드래곤을 친우로 두고도 그런 생각을 하다니, 우습군.”

“무슨 소리야. 나는 같은 종족들과 어울리지도 않는데.”

……같은 종족?

내 귀가 잘못되기라도 한 건가.

근래 들은 소리 중에 제일 미친 소리였다.

나도 모르게 어이없는 얼굴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는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뾰로퉁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다.

“……뭘 그렇게 보지? 그저 그들의 태어났기에 살아간다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야. 거리를 두는 건 나지 드래곤들이 아니라고.”

그는 당당하게 내가 왕따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왕따시키고 있었을 뿐이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네가 드래곤이라고?”

“그걸 모르고 있었다고?? 다른 인간들이라면 모를까, 말도 안 돼!!”

“×발, 그걸 무슨 재주로 알아차리는데!?”

이제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할 지경이다.

여태껏 장수하는 종족인 엘프 정도로 알고 있던 현자였다.

하지만 그 정체가 드래곤이었다니?

아스티란에 생명줄 질긴 종족들은 몇몇 있다지만 어느 누가 그 목록에 드래곤을 당당히 끼워 넣는단 말인가.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언질을 주지 않았나!! 알고도 날 때린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는 적반하장의 자세이다.

심지어 억울한 울분마저 토해 내고 있었다.

“처음 마주쳤을 때라고? 그때 분명…….”

나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과거를 떠올려 보았다.

하도 옛날이라 생생하지는 않았지만 어렴풋이 떠오르는 장면은 있었다.

[인간계의 왕인 필멸자여, 어찌 이토록 헛된 전쟁을 하는가.]

[바빠 죽겠는데 웬 놈이…….]

[나는 세계를 관조하는 자. 허나 더 이상의 싸움은 지켜볼 수 없구나.]

[개소리하지 말고, 비켜라.]

그 뒤는 내 주먹에 맞고 날아갔는지라 기억에 없다.

그가 관조자니 필멸자니 지껄이긴 했었다.

‘그냥 있어 보이는 척하느라고 지어낸 말인 줄 알았는데…….’

사실상 그때 당시에는 존재 자체가 거슬리는 자였다.

현자랍시고 하도 헛소리를 지껄이고 다녔던 때였기에 귀담아듣지도 않았고.

“그 정도까지 말했는데, 정말로 눈치채지 못했던 건가…….”

그는 허탈하게 중얼거린다.

나는 나대로 어이가 없어 조용히 있을 뿐이다.

“……명함이라도 하나 파 주지. 다음에 누군가에게 소개할 때는 그것부터 내밀도록 해.”

“되었다…….”

현타가 온 드래곤과 인간 사이에서는 긴 침묵이 이어졌다.

어색한 분위기도 잠시.

정신을 부여잡은 뒤 한참을 그와 대화했다.

처음엔 조심스럽게 말을 하던 그는 점점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말도 빨라졌다.

“……했어! 알에서 깨어날 때부터 알았지. 나는 인간이라는 종족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중간중간 개소리라 소리칠 뻔했지만 가까스로 인내심을 발휘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과물은 하찮은 수준이었다.

‘이거 그냥…… 인간 팬클럽 같은 거잖아.’

아마 그 팬클럽에는 저 드래곤 홀로 있을 가능성이 컸지만.

헤르멘이라고 불러 달라는 그 현자, 아니 드래곤.

그는 지독한 인간 오타쿠였다.

전쟁을 말리려던 것도 인간들이 서로 싸워 대는 꼴이 안타까워 시작한 일이라 했다.

“허나 거기서 이방인인 그대를 만나게 되었지. 얼마나 기뻤는지 아는가? 아스티란에 있는 인간들은 모두 나를 피하거나 적으로 여겼어. 나는 드디어 인간 친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지.”

“그놈의 친구 소리는…….”

“기특한 인간들은 항상 무언가의 목적을 가지고 필사적으로 살아가지. 정말 인상적이었어. 그리고 그 중심에는 대륙에서 가장 강하다는 그대가 있었고. 비록 만나자마자…….”

그는 뒷말을 삼킨다.

다시 생각해도 끔찍한 한 방이었는지 부르르 떨기까지 했다.

드래곤씩이나 되는 존재가 담력이 약하기 그지없었다.

“크흠, 하여튼 간에 모든 이방인들이 돌아간 뒤에도 도저히 포기할 수 없더군. 그래서 대륙의 남아 있는 자들이라도 어떻게 꼬드겨 보려 했지.”

“그래서 현자가 드래곤의 친우라는 거짓말까지 친 거고. 문턱 좀 낮춰 보려고 애썼군 그래.”

“그런데 아무리 드래곤들이 친절하다는 소문을 내도 다가오는 인간들은 없더군…….”

말을 하다 울적해지는지 그는 쓴 미소를 지어 보인다.

이래저래 줄거리는 많았지만 결국 요약하자면 하나였다.

왕따 드래곤의 인간 친구를 찾는 여정.

스스로는 눈물겨운 이야기라 생각하겠지만 내가 볼 때는 전혀 아니었다.

‘별 헛소리를 다 듣겠네.’

더 이상은 들어 줄 필요도 없는, 시간 낭비였다.

여기까지 온 목적은 마르바스에게 용언을 건 드래곤의 행방을 찾는 것.

말하는 꼬라지를 보아하니 그 드래곤은커녕 아는 드래곤 하나는 있을까 싶다.

혼잣말을 떠벌거리는 그를 보자니 한숨만 나온다.

“하지만 이건 운명이야!”

“뭔 놈의 운명.”

그딴 게 존재했다면 내가 이 지경까지 오진 않았겠지.

나는 자고로 운명이니 뭐니 지껄이는 사람은 믿지 않는다.

하물며 그게 드래곤이라면 더더욱.

“그대와 내가 다시 만나지 않았나!”

그는 눈을 반짝이며 나를 쳐다본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간절한 눈빛이다.

이 미친 드래곤은 같잖은 친구 놀이에 나를 끼워 넣으려 하고 있었다.

“그런 장난질에 어울려 줄 생각 전혀 없다.”

“아니, 왜? 이건 전설로 남을 정도의 일이야! 최초로 드래곤과 친구가 되는 일이라고!”

“전설 같은 건 몇 번이나 스스로의 손으로 써 왔어.”

이미 황궁의 서고는 내 일대기로 가득 차 있다.

저잣거리의 아이들은 대륙의 영웅인 나를 흉내 내며 크고 있고.

거기에 드래곤의 친우 따위의 호칭이 더해져 봤자였다.

“하…… 인간을 방해하려는 드래곤을 찾으러 왔더니 인간과 친구 하려는 드래곤만 있군.”

나는 머리를 거칠게 쓸어 올렸다.

대륙의 다른 드래곤을 찾아봐야 할까.

하지만 그럴 만한 시간적 여유가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계속 지구에 돌아가지 않을 순 없었으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인간을 방해하다니. 그것도 드래곤이? 그럴 리가 없어. 설마 <예언>을 말하는 것 인가?”

그는 내 혼잣말을 듣더니 조심스럽게 물어 온다.

그제야 나는 생각을 돌렸다.

같은 종족들과 교류는 없다지만 그가 아는 것이 하나쯤은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주제에 같은 드래곤이긴 하니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탑에 오르려는 인간들을 저지하려 하더군.”

“……뭐? 율법에 따라 조금이라면 관여할 수 있지만 그건 말이 되지 않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그가 입을 다문다.

‘뭔가 알긴 아는 건가?’

“뒷말은 뭐지?”

말을 하다 그만두는 것만큼 환장할 일은 없다.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조급해지는 내 태도에 그는 잠시 무언가 곰곰이 생각한다.

급기야 얼굴에는 장난기 가득한 미소가 만면에 피어 있었다.

“……친구비.”

“무슨 헛소리지?”

“나와 친우가 된다면 친구비 명목으로 정보를 주지.”

그는 눈을 번뜩이며 당당하게 원하는 바를 요구한다.

우정에 돌아 버린 왕따 드래곤은 드디어 인생의 진리를 깨달아 버린 것이다.

친구는 유료라는 것을.

* * *

이시스 제국의 수도 중심부에 위치한 황궁.

고고한 위상이 가득한 그곳은 오랜만의 연회로 떠들썩했다.

정원사들의 피와 땀으로 가꾸어진 널찍한 정원은 수많은 귀족으로 가득하다.

답답함을 싫어하는 진의 성격을 잘 알기에 일부러 택한 장소였다.

“이게 얼마만의 황궁 연회랍니까. 그동안 폐하의 장례식이며 흑사자 기사단의 합동 장례식까지, 우중충하기 그지없었는데요.”

“그저 신의 보살핌이지요. 겹경사가 따로 없네요.”

“대공께서 저렇게 밝은 모습을 보이시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네요.”

귀족들은 멀리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카일을 보며 따스하게 웃는다.

기쁜 웃음은 전염되어, 모두 화기애애 떠들어 댔다.

화창한 하늘마저 도와주는 이번 연회는 틀림없이 성공하리라.

그들은 즐거운 분위기를 만끽하며 곧 모습을 드러낼 황제를 기다렸다.

“황제 폐하께서 곧 돌아오실 거라 연락을 취하셨네. 그러니 이번 연회에 소홀함은 절대 있어서는 안 돼.”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해 두었습니다. 그러니 공작께선 이만 쉬시지요.”

카일은 오랜만에 본업인 공작으로서 진두지휘하며 파티를 준비했다.

궁인들은 고생하는 그를 보며 걱정을 표했지만 그를 말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믿고 맡겨 주셨는데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지.”

대륙에 길이 남을 위대한 대제이자 평생을 바친 주군을 위한 귀환 파티였다.

‘주군을 위해서라면 뼈가 갈릴지언정 기필코 파티를 성대하게 마치리라.’

그는 어딘가 잘못된 충성심으로 파티를 전쟁터마냥 대하고 있었다.

그때 옆에서 누군가 유유자적 휘적이며 걸어온다.

터질 듯한 연회복이 답답한지 윗 단추 몇 개는 느슨하게 풀어놓은 한스였다.

그의 손에는 또다시 목이 따인 와인 병이 들려 있었다.

“쉬엄쉬엄하지? 어차피 금세 왔다 가실 게 분명할 텐데.”

“네놈은 조금이라도 돕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건 어때.”

“어이쿠, 공작님 말씀이라면 따라야 한다지만 나도 후작인데 좀 봐줘라.”

“후작답게 행동이나 하고…… 하.”

‘이럴 시간에 다른 준비나 마저 하는 게 좋겠군.’

발걸음을 돌려 다른 쪽으로 향하려던 때였다.

갑자기 한가롭게 대화하던 귀족들 무리에서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혹여나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일까.

그는 불안한 심정을 끌어안고 다급히 다가갔다.

“이게 웬 소란들인가.”

“공…… 공작님. 저기에…….”

가까이서 보니 거의 사색이 되어 있었다.

귀족들은 예의마저 잊은 채 하늘을 향해 손가락질까지 한다.

‘대체 하늘은 왜…….’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에 눈조차 뜨기 힘들었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고 그들이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올려다보았다.

텅 비어 있어야 할 상공에 무언가 떠다닌다.

“설마…… 와이번??”

수도 한복판에 몬스터라니.

심지어 황궁을 향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은색?”

옆에 있던 한스가 술에 취했는지 이상한 소리를 한다.

와이번이 은색이라니, 말도 되지 않는 소리에 카일이 타박하려는 차였다.

“드…… 드래곤이야!!”

귀족 무리 중 한 명이 기겁하며 소리친다.

‘드래곤? 말도 안 돼…….’

하지만 그건 착각이 아니었다.

은빛의 비늘을 번쩍이며 다가오는 생물은 정말로 전설 속에서나 나오던 드래곤이었다.

가까이 올수록 그 거대함과 위압감이 사람들의 어깨를 짓눌렀다.

스스로도 모르게 주저앉는 자들도 더러 있었다.

쿠웅-!!

큰 굉음과 함께 공포의 존재는 결국 정원 한편에 자리하고 말았다.

카일은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을 움직여 다가가려 애썼다.

한 발자국이나 떼었을까, 그는 곧 드래곤의 등 위에 누군가 있음을 깨달았다.

바닥으로 훌쩍 뛰어내린 자는 익히 알고 있는 얼굴이다.

“……폐하??”

“젠장, 정원이 다 망가졌잖아.”

진은 나직하게 욕설을 하며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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