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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86화 (86/200)

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86화

그 뒤로는 순식간이었다.

헌터들은 불도저같이 나서는 나를 차마 말릴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것’은 결코 지지 않는 빛으로 이루어진…….]

“몰라, 이 새끼야!”

[……오답이다.]

또다시 벽에서는 골렘들이 쏟아져 나온다.

마력을 끌어내는 나를 보며 멀찍이 서 있던 헌터들이 쑥덕거린다.

놀란 태도를 보이던 것도 한때.

이제는 잔뜩 질려 버린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이거, 이렇게 공략하는 게 맞아요?”

“음…… 사실 진 헌터님은 과거에도 저런 식으로 진행하셨다 하셨어요. 공략서에 의하면요.”

“미궁 만든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저걸 의도한 건 아닌 게 확실할 텐데.”

“내가 살다살다 미궁 제작자가 불쌍해질지는 몰랐네.”

처음에 전투를 거드는 시늉이라도 하던 헌터들은 이제는 손 놓고 구경만 하고 있다.

나서다 공격에 휘말리느니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것이 나를 도와주는 일이긴 했다.

콰아앙-!!

“……이번에도 1분이 채 걸리지 않네요.”

층이 올라갈수록 골렘들은 점점 강해지고 숫자 역시 늘어났다.

바로 전의 층과 비교했을 때 딱 두 배 정도 강해진 듯했다.

하지만 결과는 매한가지.

골렘은 이번에도 금세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다음 층이 6층이던가.”

마지막 남은 골렘의 핵이 굴러다니기에 주워 들었다.

붉은색의 둥그런 마석은 별다른 특별한 구석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오히려 그 평범함이 시선을 붙잡는다.

‘분명 전에 골렘들을 남김없이 처치했을 텐데, 왜 그대로일까.’

핵을 든 손에 힘을 주니 간단하게 파괴된다.

골렘의 핵을 샅샅이 훑어봐도 그저 그런 마법이 걸려 있을 뿐.

아무리 고대의 마법이라지만 이 정도로는 산산조각이 난 골렘을 되살릴 순 없다.

특히나 수상한 것은 골렘 그 자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건가.’

천 년은 족히 흘렀어야 할 골렘에는 흔한 이끼조차 없다.

마치 방금 전 공장에서 출하된 공산품마냥.

흑요석을 깎아 만든 몸뚱이는 작은 상처 하나 없는 상태다.

예상외의 상황에 찝찝하긴 했지만 달라질 것은 전혀 없었다.

그저 앞을 가로막으니 부술 뿐.

“이번에는 7층이에요. 이제 몇 번 남지 않았네요. 어떻게 탑에 들어오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감사드려요.”

주혜라는 따듯한 미소를 띤 채 고개를 꾸벅 숙인다.

공략대장으로서 부담감이 막중했는지 잔뜩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7층이라. 곧 이긴 하군.”

벌써 그 정도까지 왔나.

반복되는 일에 하품이 나올 지경이었지만 이제는 그 끝이 보이고 있었다.

사실 도중에 현자를 만나게 될까 내심 기대도 했었다.

하지만 정말로 모든 문제를 풀고 지나갔는지 전투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현자라는 호칭답게 멍청이는 아니었나.’

덕분에 팔자에도 없는 탑 공략을 하게 생겼다.

이렇게까지 찾았는데 설마 드래곤의 위치를 모르진 않겠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입 밖으로 내뱉으면 정말로 현실이 될까 싶어 말없이 다음 층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여기서부터 급격하게 난이도가 올라간다 했었죠.”

헌터들은 모두 긴장하며 주변을 훑는다.

모든 골렘을 내가 처치하긴 하지만 혹시나 싶은 마음인 것이다.

나도 굳이 그들을 모두 보호하며 싸울 생각은 없었다.

전투태세를 갖추는 헌터들에게 경고의 말을 던졌다.

“본인 몸은 지킬 수 있는 자들이라 믿겠다.”

그에 헌터들은 더욱 진지한 얼굴로 마력을 끌어 올린다.

그럼에도 약간의 여유는 잃지 않는다.

각자 강함에 대한 확신이 있는 것이다.

“아무렴, 여태껏 버스 태워 줬는데 밥값은 해야겠지.”

홍현민은 단검을 공중에 던졌다 받으며 걸어간다.

“그래요. 죽지만 말자고요.”

“저희 길드의 토끼 같은 길드원들을 생각하면 죽을 수도 없죠.”

제일 어린 그의 말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풀어진다.

모두들 살짝 웃으며 각자의 무기를 강하게 쥐었다.

헌터들의 시선이 모인 곳은 층의 정중앙.

그곳의 석상은 그 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은빛으로 번쩍이는 외관은 무기에나 쓰여야 할 재질로 되어 있다.

“이번 골렘은 미스릴로 만들어져 있겠네요.”

주혜라가 거대한 석상의 발 부분을 만지작거린다.

여태껏 석상의 재료와 같은 골렘들이 나타났으니 틀린 추측은 아니었다.

곧 큰 굉음이 울리며 석상의 눈 부분이 붉게 빛난다.

다음 문제가 시작됨을 알리는 소리였다.

[그는 잿빛 산의 분노요, 붉게 타오르는 파괴이다. 그가 가는 곳마다 모든 것은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녹아 없어지리.]

이번에도 뜬구름 잡는 듯한 수수께끼가 나온다.

특히나 7층부터는 두 번의 기회는 없었다.

오직 단 한 번의 대답으로 정답을 맞춰야 한다.

이번에도 당연히 모른다고 대답하려는 찰나, 갑자기 어디서 본 것이 생각난다.

한동안 아렐리아가 다큐멘터리에 빠져 있던 적이 있었다.

어찌나 중독되었는지 저녁에 TV를 보고 있던 자세가 아침에 일어났을 때도 그대로였다.

말 그대로 밤을 꼬박 새운 것이다.

‘전에 스쳐 가면서 봤던 것이 화산 폭발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왠지 수수께끼의 정답을 알 것만 같았다.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기에 바로 생각난 대로 대답했다.

“그건 용암이다.”

헌터들은 놀란 얼굴로 나를 돌아본다.

이번에도 내가 오답을 뱉을 거라 예상한 것이다.

“오, 꽤 그럴싸한데요?”

“듣고 보니 이거 외에는 답이 없어 보이네요.”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기대하는 얼굴로 석상을 바라본다.

잠시간 침묵이 이어지고, 석상은 작게 진동하며 눈을 번뜩인다.

[정답이다.]

석상의 대답과 함께 어디선가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 층으로 향하는 문이 열린 것이다.

헌터들은 잠시 석상을 멍하니 쳐다보더니 하나둘 소리를 지른다.

“와! 진짜 맞췄어요!!”

“이렇게 무사하게 넘어갈 줄은 몰랐습니다. 이제 19층 클리어가 얼마 남지 않았군요.”

기뻐하는 그들과 달리 나는 떨떠름한 감정이 들었다.

정말로 정답을 맞출지 몰라서는 아니었다.

“잠깐.”

다음 층 문을 열려던 헌터들이 내 말에 어리둥절해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여전히 석상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석상의 두 눈은 계속 붉게 빛나는 채였다.

이 정도면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긴 하겠지.

“정말 용암이 정답인가?”

[그렇다, 도전자여. 8층이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과거 아렐리아가 보고 있던 화산 폭발의 다큐멘터리는 나도 심심풀이로 같이 시청했었다.

대체 뭐 얼마나 재밌기에 저러고 있나 싶은 마음이었지만.

여튼, 거기서 다룬 내용 중에는 용암에 대한 정보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었다.

“용암이 모든 걸 순식간에 녹인다고 했었지. 그렇다면 네 문제는 틀렸다.”

[……뭐라고?]

마법으로 만들어진 석상이지만 이상하게도 목소리에는 떨림이 느껴진다.

마치 정말로 당황한 사람 같았다.

헌터들은 걸음을 멈추고 나와 석상의 대화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흥미진진해 보이는지 마치 토론 대회를 진행하는 기분이었다.

“용암의 온도는 700도에서 1,200도야. 네가 말한 용암으로는 쇠조차 녹이지 못한다.”

[아니, 잠깐. 도전자여, 그게 무슨…….]

그제야 헌터 중 마법사 한 명이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소리친다.

“그러고 보니 진 헌터님의 말이 맞아요! 용암은 생각보다 표면 온도가 낮죠!”

“……정말요? 살면서 용암에 대해 그렇게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간단한 이론이죠. 쇠가 녹는점은 1,500도가 조금 넘으니까요. 하물며 텅스텐은 모든 원소 중 녹는점이 가장 높아…….”

아는 지식을 자랑할 기회가 생긴 그는 계속 떠벌거린다.

몇몇 헌터는 문과 출신인지 생전 처음 듣는다는 얼굴이었다.

[이 내가 문제를 잘못 출제했다고??]

콰르릉-!!

석상도 문과를 나왔을까.

그러고 보니 수수께끼들이 이과 감성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석상의 깎아진 얼굴 부분이 당혹으로 일그러지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와 동시에 이제껏 보지 못한 굉음을 내며 크게 진동했다.

탑이 무너질 듯한 소리였다.

[미궁의 주인이 극도로 혼란스러워 합니다! 다음 문제를 출제할 수 없습니다!]

[잿빛 수수께끼의 미궁을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습니다!]

[<검은 탑> 19층을 클리어하였습니다! 10초 뒤 탑 밖으로 나가게 됩니다.]

“와씨, 이걸 이렇게 깨 버리네.”

홍현민은 벙찐 얼굴로 허탈하게 중얼거린다.

그건 나 역시 공감이었다.

고작 수수께끼 한 번 잘못 내었다고 저렇게 되다니.

멘탈이 순두부라도 되는 건가.

나라면 모른 척 넘어갔을 것이다.

‘뻔뻔하게 숨겨진 의미가 있었다며 큰 소리 한번 내주면 더 좋고.’

저래서야 정답을 맞추자 절벽에서 뛰어내렸다는 스핑크스와 다를 바가 없었다.

부끄러운 게 뭐 대수라고 자살까지 하는지.

작게 혀를 차며 천천히 부서져 내리는 석상을 쳐다보았다.

그때 경고음과 함께 시스템 메시지가 눈앞에 떠오른다.

[해당 플레이어는 비정상적인 진입 방법으로 공략을 진행했습니다.]

[탑 밖으로 자동으로 이동할 수 없습니다.]

지구의 <검은 탑>을 통해 들어오지 않아서일까.

다행히 다른 헌터들과 함께 귀환하리라는 걱정은 덜게 되었다.

곧 싱글벙글 웃고 있는 헌터들의 무리가 빛에 휩싸인다.

“어? 진 헌터님은 왜 이동하지 않……!!”

경악에 찬 주혜라의 단말마와 함께 그들은 모두 사라졌다.

아마 돌아가면 내 행방에 대해 신나게 떠들어 댈 것이다.

차원 이동까지는 생각하지 못하겠지만.

‘이제야 조용하군. 어찌나 시끄럽던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헌터들이 떠나자 텅 빈 공간은 침묵만 존재한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나의 시간이었다.

나는 무너져 버린 석상의 잔해를 훑어보다, 계속 지켜보고 있을 이에게 말을 건넸다.

“그만하고 나오지. 지켜보고 있는 건 진작 파악했으니.”

몇 초간의 적막이 흐르고, 10층으로 향하는 문 방향에서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포대 자루 같은 커다란 로브를 둘러쓴 자가 슬며시 모습을 드러낸다.

발걸음에는 조심스러움이 잔뜩 묻어나 있다.

“……어떻게 알았지?”

떨리는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경계로 가득하다.

현자와 처음 만난 지도 백 년은 족히 되었지만 부드러운 목소리는 여전했다.

‘늙지도 않는 건가.’

얼굴 한 조각 비치지 않고 있지만 그 안에는 젊은 모습이 감춰져 있을 터였다.

혹여 엘프라도 되는 것일까.

그의 외모로 보건대 인간은 아닐 거라 짐작하긴 했었지만.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자 그는 놀란 토끼마냥 파르르 떤다.

“뭐…… 뭐야? 그 눈은? 설마 또 때리려는 건가?”

역시 전에 한대 얻어맞았던 게 트라우마가 되었나.

세게 때린 것치고는 죽지는 않았기에 보기보다 맷집은 있는 줄 알았는데.

훌륭한 몸뚱이 안에는 연약하기 짝이 없는 학자의 영혼이 들어 있는 듯했다.

“그건 네 대답에 따라 달라지겠지. 보아하니 헌터들이 이곳에 올 때부터 지켜보고 있던 건가.”

드래곤의 행방을 찾는 것이 당초 목적이긴 했다.

하지만 지금은 더 궁금한 점이 있다.

‘도대체 이곳에서 뭘 하고 있던 거지? 목적이 헌터들임은 확실하다.’

헌터들을 방해하려 했나 싶었지만 구경만 하던 걸 보니 그건 또 아닌 듯하고.

이리저리 고민해 보아도 짐작일 뿐.

여전히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았다.

“아니, 나는 그러려던 게…….”

“딴소리 할 셈이면 그만둬. 인내심이 바닥나기 직전이니.”

인벤토리에서 검을 꺼내 들어 위협적으로 휘둘렀다.

그에 현자는 다시 쭈글거리며 구석으로 향한다.

“대체 미궁에 들어온 속셈이 뭐지? 골렘과 석상들은 왜 비슷하게 만들었고?”

“……그것까지 알고 있다니.”

그는 우물쭈물하며 입을 다문다.

여전히 날카로운 시선을 유지하자 계속 주춤거리더니 무언가 작은 소리가 들려온다.

현자는 뭉개진 단어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니까.”

“뭐라는 거야?”

“다른 차원에서 온 인간들이 보고 싶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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