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85화
“<검은 탑> 공략 도중에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던 거 아니야?? 말도 안 돼!”
“그것보다 진 헌터님은 실종된 상태였잖아요!”
헌터들은 벌린 입을 여전히 다물지 못하며 수군거린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내 존재를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나 역시 이렇게 될지는 몰랐는지라 상황 파악을 하려 우선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이 공간은 잿빛 수수께끼의 미궁이 맞긴 한데, 이런 식으로 <검은 탑>에 진입할 수도 있는 거였군.’
하기사 <검은 탑>을 여태껏 지구에서 들어갔었지 다른 차원에서 접근을 시도한 적은 없었다.
차원 이동이라는 건 인간의 몸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
당연히 실험조차 할 수 없다.
“저, 환영 마법 아닐까요……?”
말없이 가만히 있자 한 명이 엉뚱한 가설을 내놓는다.
“그런 건 공략법에 없었는데……. 하지만 가능성을 무시하진 못합니다.”
“하필 용병왕의 모습이야…….”
곧바로 머리를 쥐어 싸매며 논의를 하는 헌터들.
그럴싸한 의견이라 생각했는지 바로 심각한 분위기가 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긴 하는데, 혹시 모르니 일단 공격…… 해 볼까요?”
“아무리 환영 마법이라지만…… 대체 누가?? 전 싫습니다.”
그들은 쭈뼛거리며 내 눈치만 볼 뿐이다.
이러다 공격할 사람을 뽑는 사다리 타기라도 할 판이었다.
“보자보자 하니까 못 들어 주겠군. 누굴 환영 마법 취급하는 건지.”
도저히 이 멍청한 꼴들을 눈뜨고는 봐 줄 수 없었다.
표정을 구기고 마력을 한껏 끌어모았다.
“헉!! 피…… 피해!!”
쾅-!!
내가 던진 마나 덩어리는 위협적으로 날아가 홍현민의 바로 옆에 있던 벽에 부딪힌다.
그 충격에 그는 들고 있던 무기를 떨어트리고 말았다.
“다음번에는 빗나가지 않을 거다. 정신들 차리도록.”
그들은 멍하니 나를 바라만 본다.
‘귓구멍들이 막혔나.’
폭발음에 귀라도 먹었는지 조용하기만 하다.
다시금 마력을 모으자 그제야 허겁지겁 하나둘 다가온다.
“이 성질머리, 말투……. 진짜 진 헌터님이 맞는가 본데요?”
“아니, 그동안 어디 계셨습니까?”
그들은 어색한 미소로 나에게 인사하며 반가운 척들을 한다.
내 기분을 풀어 주려 애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면서 파괴된 벽을 힐끗 보는 게 잔뜩 겁을 먹은 모양이었다.
“뭐야, 진짜 용병왕이었어?”
“어떻게 된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안심이네요. 탑의 난이도가 점점 올라가고 있었는데, 진 헌터님이 계신다면 괜찮겠죠.”
투덜거리는 홍현민 옆에서 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모습을 확인하기도 전.
순간 과거에도 느껴 본 푸르른 풀 내음이 난다.
역시나 고동색 긴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묶은 여자가 서 있다.
5대 길드 중 하나인 주몽의 길드장, 주혜라였다.
“예전에 한번 뵈었죠. 주혜라입니다.”
탑 1층을 공략할 때 보았던 기억이 난다.
여전히 침착한 인상의 그녀는 작게 웃더니 나를 중앙 공간으로 안내한다.
“19층 공략은 저희 주몽 길드와 자유 길드가 진행하고 있었어요. 사실 나비 길드도 참여할 예정이었는데, 오기 직전에 길드장이 쓰러지는 바람에…….”
나비 길드의 길드장이라면 서채아였다.
이전까지 모든 공략에 참여했다더니 결국 앓아누웠나.
“큰 전력이었기에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적어 주신 공략법대로 문제들을 풀어 가고 있었어요.”
“그 얼토당토않은 넌센스들 말이지.”
“네, 문제들이 좀 그렇긴 하죠…….”
잿빛 수수께끼의 미궁의 구조는 단순하다.
총 10층의 탑을 올라가야 하는데, 층마다 있는 석상들이 문제를 낸다.
마치 고대 이집트의 설화인 스핑크스와 비슷했다.
하지만 그 문제라는 것들이 초반 층에서는 어이없기 짝이 없다.
[문제를 내겠다, 도전자여. 이번 문제는 넌센스이다. 신이 화나면?]
[……넌센스라고? 설마 신발끈은 아니겠지.]
[정답이다.]
[×발…….]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고대의 던전이지만 이곳은 지옥에서 올라온 부장 개그로 가득하다.
층수가 올라갈수록 문제는 점점 어려워져, 그나마 수수께끼답게 되어 가긴 한다.
하지만 처음에는 문제를 맞추는 내 자신이 불쌍해질 정도였다.
다른 헌터들도 이미 겪었던 일이었는지 얼굴이 자괴감으로 가득하다.
“이 미궁의 공략법을 읽었을 때는 믿지 않았었는데…….”
“……사실상 맞추기도 싫은 문제들이죠.”
“이번 2층 넌센스 문제는 곰이 다니는 목욕탕이었죠.”
……정답은 곰탕이었겠지.
그들은 허탈한 웃음소리를 내며 손에 들린 작은 책을 구긴다.
제목을 보니 ‘당신도 할 수 있다, 사원들을 웃기는 필살 넌센스 200제’였다.
‘공략법을 읽고 저딴 걸 사 왔나.’
저따위 쓰레기를 만들기 위해 쓰인 종이가 아까울 지경이다.
책을 지은 저자도, 출판사도 베어져 나간 나무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해야 할 것이었다.
“그냥 다음번엔 일부러 틀리고 골렘을 소환하는 게 낫겠어.”
홍현민은 끔찍하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어 댄다.
나도 이번만큼은 그의 말에 공감했다.
그건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퀴즈들이었다.
“여하튼 이제 곧 3층에 진입할 예정이었어요. 적어 주신 공략법에 따르면 이번부터 문제다운 문제가 나오겠죠.”
“그나마 좀 낫겠군.”
“길드장님, 가능한 시간을 아끼려면 문제를 풀어내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뭐, 일단 시도해 보자고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던 공략대를 다독인다.
모두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고, 혹시 벌어질 전투를 준비했다.
“그럼, 출발합니다.”
그녀는 결연한 얼굴로 다음 층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비슷한 내부 공간이 펼쳐진다.
다만 중앙에 있는 석상의 모습은 조금 달랐다.
[어서 오거라, 도전자들이여. 여기는 잿빛 수수께끼 탑의 3층이다.]
나는 빠르게 주변을 훑어보았다.
현자의 흔적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정말 10층에 살림이라도 차린 건가.’
대체 무슨 계획으로 여길 들어온 건지 알 수 없다.
우선은 미궁을 공략하는 수밖에.
“다들 준비하세요.”
[한 남자의 집에 도둑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도둑맞은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맞춰 보거라.]
역시나 이번 층의 문제는 난이도가 급격하게 상승해 있다.
헌터들은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정답을 맞출 준비를 한다.
“혹시 자작극 같은 게 아니었을까요?”
“아니면 훔쳐 간 게 들켜서는 안 되는 물건일지도…….”
그들은 그럴싸한 대답을 하기 위해 고심하는 눈치였다.
스무고개처럼 몇 번의 힌트는 주어질 것이지만 그럴 이유는 없었다.
나는 석상의 바로 앞으로 다가갔다.
“모른다.”
[자세히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떻겠나.]
“앗, 진 헌터님. 문제를 맞추지 않을 생각이신가요?”
주혜라는 당황해 나를 말렸다.
주변의 헌터들도 잠시 말을 멈추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공략법에 써 놓지 않았나. 어차피 문제를 틀려도 상관없어. 나오는 골렘을 잡으면 다음 층으로 가는 문은 열리니까.”
“그건 그렇지만…….”
“용병왕 말도 맞아. 어차피 그냥 때려 부수면 될 텐데, 뭐 하러 머리를 써?”
홍현민이 검을 꺼내 들고 씨익 웃는다.
이럴 때만은 나와 생각이 비슷했다.
그가 나를 거들고 나서자 모두들 포기한 듯 하나둘 전투태세를 마친다.
“자유 길드장님까지 그런 생각이시면…… 어쩔 수 없죠.”
이윽고 주혜라까지 포기했는지 한숨을 푹 쉰다.
매끈한 흰색 활을 만지작거리던 그녀는 나를 힐끗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모르겠으니 빨리 해야 할 일이나 하지.”
[……정 그렇다면야.]
내 대답에 석상의 눈 부분이 빛을 잃더니 침묵한다.
곧 양쪽에 있던 벽이 진동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쿵! 쿵! 쿵!!
그곳에선 시꺼먼 공간이 생기더니 거대한 고대 골렘들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한눈에 봐도 만만치 않은 상대로 보이는지 헌터들은 각자 무기를 잡은 손에 힘을 더한다.
“모두 전투태세를 하세요!!”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오는 골렘들.
잠시 고요함이 이어졌다.
허나 아비규환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콰아앙-!!
커다란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골렘들은 빠르게 팔을 휘두른다.
공격을 가까스로 피한 헌터들은 서둘러 반격을 준비했다.
“<파워 슬래시>!!”
여기저기 헌터들의 공격 스킬이 난무한다.
하지만 두꺼운 몸체에는 생채기만 날 뿐, 골렘은 끄떡도 없는 모습이다.
“젠장, 너무 단단한데?”
홍현민은 난처한 얼굴로 입술을 깨문다.
다른 헌터들도 비슷한 상태다.
“우선 골렘의 핵부터 찾아야 해요!!”
“그냥 부실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쩔 수 없나. 마법사들은 모두 골렘을 스캔해!”
“그럼 조금만 버텨 주세요!!”
그래도 나름 국내 헌터계를 지탱하는 랭커들이긴 했다.
그들은 곧 골렘의 공략 방법을 떠올렸다.
홍현민의 고함에 재빨리 방어형 헌터들이 앞으로 나선다.
단단한 방패를 들어 올리고, 궁사들은 지원 사격을 했다.
“제일 앞의 골렘은 머리예요!!”
“바로 공격해요!!”
수많은 헌터들이 골렘 하나에게 달려든다.
나머지도 주변 적들에 대한 경계는 잊지 않았다.
“모두 비키세요!! <소닉 애로우>!!”
멀리서 마나를 끌어모으던 주혜라가 소리친다.
그녀의 말에 재빨리 근거리 헌터들은 물러났다.
콰아앙-!!
소용돌이치는 빛의 화살이 골렘의 머리를 꿰뚫는다.
완벽한 한 방이었다.
거대한 골렘의 몸체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쓰러진다.
‘국내 랭커들의 월드 랭킹 순위가 급격히 올랐다더니…… 많이들 성장하긴 했나.’
“다음!!”
일사불란한 움직임들.
각자 다른 소속의 헌터들이지만 물 흐르는 듯한 전투가 봐줄 만하다.
굳이 나까지 끼어들지 않아도 상황은 금세 정리될 듯했다.
‘하지만…… 느려.’
안전을 최우선으로 공략하는 헌터들이다.
이처럼 조심하며 장시간 전투를 이어 간다면 당연히 승리할 것이다.
허나 지금은 고작 미궁의 3층.
어느 세월에 공략을 마무리하고 현자 놈을 찾는단 말인가.
“다들 비켜.”
말이 끝나자마자 휘말리기는 싫은지 헌터들이 황급히 멀어진다.
흘낏 보니 어느 정도 거리는 벌어져 있는 상태였다.
바로 인벤토리에서 폭렬의 페르아렌을 꺼내 들고 마나를 잔뜩 불어넣었다.
마력은 형상화되어 순식간에 높은 천장까지 치솟는다.
‘이만하면 되겠지.’
쿵쿵거리는 소리와 함께 골렘들이 나를 에워싼다.
공격해 오는 그때 타이밍을 맞춰 검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큰 굉음과 함께 골렘들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다.
골렘의 핵까지 부서진 것이다.
돌덩이가 되어 버린 골렘의 잔해를 뛰어넘어 헌터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멍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골렘들을 한 방에 처치했어……?”
“허…… 용병왕이 대단하단 소리는 많이 들었지만.”
곧 누군가의 감탄 어린 목소리가 들려오고, 사방이 시끄러워진다.
경직되었던 분위기는 한순간에 풀어졌다.
나는 못마땅한 얼굴로 헌터들을 바라보았다.
“다들 뭐하나?”
“네……?”
“갈 길이 급하니 서두르지.”
그들은 허둥대며 다음 층으로 향할 준비를 한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이후는 어쩔 수 없겠지.
느긋한 헌터들에 비해 나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목마른 놈이 우물 팔 수밖에.’
탐탁지 않았지만 방도가 없었다.
나는 공략대 버스를 운행할 준비를 했다.